두 아이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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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공작원에 의해 와타나베 히데코가 살해당하고, 그녀의 두 자녀가 납북된 사건.

두 아이 납치사건(2児拉致事件), 또는 와타나베 히데코 두 아이 납치 사건(渡辺秀子さん2児拉致事件)이라 불린다.

1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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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와타나베 히데코씨.

1973년 12월 사이타마현 후쿠오카시(현 후지미노시)에 거주하던 와타나베 히데코씨는 당시 32세의 주부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북한공작원(간첩) 고데기고대기(高大基, 일본명 : 고 다이키)와 고향인 홋카이도에서 1967년 결혼했다. 고대기는 자신이 북한의 간첩임을 숨기고 결혼한 상태로, 그녀는 단순히 그를 재일 한국인이라 알고 2명의 자녀들과 함께 평범하게 생활해왔으나 1973년 6월 남편이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행방을 쫓아 도쿄 시나가와 소재의 남편 회사를 찾아갔으나 해당 회사는 북한 공작원들의 위장 회사였으며 정체가 탄로날 것을 염려하게 된 그들에 의해 히데코씨와 두 자녀는 감금당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히데코씨는 공작원들 중 한 남자의 손에 교살, 6살인 장녀 키요미(敬美)와 3살인 장남 츠요시(剛)는 74년 6월 배에 태워져 북한으로 납치 당하고 만다.

경찰의 사정 청취에 따르면 히데코씨를 살해 후엔 '상자에 넣어 돌을 쌓아 버렸다', '유기 장소는 야마가타와 아키타현의 경계'라는 등의 증언이 있었다고 하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북한까지 데려간 건 보모역인 55세의 여성[1]이며 한국 국적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일본인 키노시타 요코(木下陽子)의 지시에 의해 납치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알려져있다. 공작선을 기다리기 전, "언니도 먹을게"라며 본인은 멀미약을 먹고 안심시킨 뒤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2 위장 회사의 실체

고대기가 근무하던 회사는 겉으로는 '유니버스 트레이딩'이라는 이름의 무역 회사였으나 실체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작 거점이었다. 사장으로 가짜 일본인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조총련 고위 간부였던 김병식 부의장이 실책이었고 10명 남짓한 공작원들이 비밀 조직을 만들어 물밑 활동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고대기는 그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실책인 김병식은 당시 '조총련의 왕'이라 불렸던 한덕수(韓徳銖)의 조카의 남편이었으며 조총련계의 로얄 패밀리였다. 그가 조선 문제 연구소에 일하고 있을 때 자료실장을 맡은 것이 고대기인데, 이 연구소는 겉으로는 조총련의 정책 담당 부서로 한국의 역사, 문화, 사회, 정치 등을 통해 일본 사회에 한국인들의 전통을 알리려는 연구소였지만 실상은 북한의 정보 수집 조직이었으며 고대기는 일본의 자위대와 미군 등의 정보 조사를 목적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공안과 외사경찰(外事警察)에게 철저하게 마크 돼 있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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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에 의해 찍힌 고대기의 사진.

고대기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 이유는 김병식과 한덕수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 다툼이 계기인데, 이 다툼은 조총련 내부의 자금 유용 문제로까지 번졌기 때문에 위험하진 한덕수는 김병식을 모함에 빠뜨리기 위해 1972년 그를 남북 적십자 회담 책임자로 북한 본국에 강제 송환하여 북한 밖으로 못 나오게끔 한 것이다. 북한식 권력 다툼에서 패한 자의 말로는 쉽게 예상 가능한 일이기에 김병식의 측근이었던 고대기도 안전할 수 없었다. 그는 그 해 여름 히데코씨에게 1200만 엔이라는 거금을 건네며 "이걸로 오비히로[2]에서 살도록 해"라는 말을 남기고 북한으로 건너갔다. 북한으로 간 이유는 불명이다.

납치를 사주한 키노시타 요코는 '유니버스 트레이딩'의 역임이자 공작원의 통괄역을 맡고 있었고 한국명은 홍수혜(洪寿恵)였다. 2007년 국제 지명 수배가 내려져있으며 현재 북한에 거주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2.1 요도호 사건과의 관계성

공작 거점이 된 '유니버스 트레이딩'은 1970년 일어난 요도호 사건의 멤버였던 오카모토 타케시의 처 후쿠토메 키미코(福留貴美子)가 73년까지 파견되어 일하던 회사였다.

그녀는 몽골을 간다고 떠났다가 본가로 어느 공산국에 와있다, 외국에 좀 더 체제해야 되겠다는 전화를 건 뒤 소식이 끊겼는데, 이후 북한에 거주하는 것으로 밝혀진 여성이다. 북한 측에서는 1988년 남편과 함께 토사 붕괴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그녀는 북한 사상에 공감하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주체사상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살해 당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유니버스 트레이딩'에서 일하는 동안 직원인 공작원이 접촉하여 납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지고 있다.

3 두 부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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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전 찍은 가족 사진

와타나베 히데코씨는 갓포(割烹) 요리점인 '히노데(日の出)'의 간판 아가씨로 이름이 알려져있었고 고대기는 그녀에게 반해 가게에 자주 출입하여 얼굴을 마주했다고 한다. 잦은 왕래로 가까워진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고대기는 북한 공작원이라는 것을 숨기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위장 결혼이라 여길 수도 있으나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많으며 무엇보다 사라지기 전 히데코씨에게 거액을 주며 고향으로 가서 살라는 말을 남긴 점으로 보아 고대기는 히로코씨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없으나 고대기가 히데코씨에게 자신이 공작원이라는 것을 알렸다는 설도 있고, 히데코씨가 이미 공작원임을 알고 있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ANN의 취재에 따르면 본인의 친구에게 "'우리 신랑은 대학을 두 번이나 나온 엘리트 상사야"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우리 남편은 사실 북한 공작원이야..."라고 상담을 해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당시 그 친구는 '공작원'을 '엔지니어'로 착각하여 '산업 스파이인가?' 정도로 인식하며 "엔지니어는 장인이니까 돈이 많겠다"라고 응했다(...) 그 말을 들은 히데코씨는 그냥 웃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갑자기 사라지자 이대로 남편은 잊고 고향에서 아이들과 조용히 살아야 할 것인지, 남편을 찾아 가족을 데리고 원래의 생활을 되찾아야 할 것인지 그녀는 커다란 고민에 빠졌다. 사건 전에 그녀를 만난 언니 케이코씨는 "그 해 동생은 다른 해와 달리 유난히 깊은 고민을 안고 본가로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실제 그녀는 고향의 신메이 신사를 찾아가 신주에게 상담한 결과, 어디까지든 남편을 따라가세요라는 조언을 듣고 왔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다시 도쿄에 있는 남편의 회사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찾으러 간 것으로 예상된다.

후에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 공작원 김정민은 1970년 중반에 고대기와 평양에서 면회하였고 혼자서 살고 있다고 증언하였는데, 국제 인권 단체인 엠네스티 인터네셔널이 1994년 발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에 승호 수용소에 수용되있는 정치범 49명 리스트에 고대기의 이름이 들어가 있던 것으로 확인된다. 비고란에는 '전(元) 재일 조선인'라는 표기가 있기에 고대기 본인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현재는 폐쇄된 수용소이나 악명 높기로는 요덕 수용소 못지 않았기에 현재 살아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4 일본 측의 대응

2007년 일본 외무성은 북한에게 '납치는 중대한 주권 침해'라고 항의하였고 두 아이와 국제 지명 수배자인 키노시타 요코의 신병을 인도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200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제85회 강제적 실종 작업 부회 정부 설명 리셉션에서 두 아이들이 납치되어있다고 보고하였다.

단, 아이들은 영주권법[3]에 의해 북한 국적이므로 정부가 공식 발표한 17명의 납북자 명단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와타나베 히데코씨가 살해되었다는 증언이 뚜렷하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북한 납북자들을 조사하는 '특정 실종자 조사회'는 실종자 명단에 기록하고 있다.
  1. 이 여성은 현재도 일본에 거주 중이며 여성의 남편이라는 인물이 모자이크가 걸린 상태로 매스컴의 인터뷰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여성 이외에 남성인 협력자 두 명도 현재 일본에 있으며 당시 국가 공안 위원회 회장은 '납치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므로 시효는 성립되지 않는다' 는 견해를 보여 이 세 명은 체포당하지 않고있다.
  2. 히로코씨의 본가가 있는 곳.
  3. 84년 국적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부계주의에 기초하여 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일본 국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