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1 개요

拉北

한 마디로 북한에 납치돼서 끌려간 것을 말한다. 6.25 전쟁 당시 수많은 납북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귀국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북한에 의해 납치된 것이니 월북과는 구별해야 할 것이지만,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월북으로 왜곡되어 가족들이 연좌제로 고통 받는 일이 많았다. 특히 강원도 어부들의 경우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 우연히 휴전선을 넘거나 휴전선을 넘은 북한 군선에 의해 납북[1]되었다가 겨우 귀국한 뒤에도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전쟁 이후 이산가족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납북되었다가 이산가족방문으로 다시 만난 사례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 태국, 루마니아, 프랑스, 요르단, 토고 등 국적에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납북되어 있다.[2] 이런식으로 납북되어온 외국인들은 대부분 공작원들에게 외국어를 교육 시키는 일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2 6.25 전쟁 당시

※ 고향이 북한인 사람들은 ★ 표시를 한다.

3 6.25 전쟁 이후

  • 도이나 붐베아 : 1978년 이탈리아에서 납북된 루마니아의 여성 화가. 납북된 뒤에는 월북미군드레스녹과 결혼해서 살았으며 끝내 조국인 루마니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1997년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훗날 일본으로 탈북한 다른 월북미군찰스 로버트 젱킨스와 친하게 지냈는데,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젱킨스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꼭 바다에 뿌려주세요. 그렇게라도 내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저주받은 북한 땅에는 죽어서라도 머물고 싶지 않아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젱킨스는 그녀의 소원대로 해주기 위해 북한에서 출국할 때 그녀의 골분을 바다에 뿌려주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북한 당국에 빼앗겼다고 한다.
    • 이름 미상의 토고 여성 : 도이나 붐베아와 마찬가지로 납북당했는데 도이나 붐베아가 사망한 이후 북한 당국에 의해 드레스녹의 후처가 되었다.
  •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 창랑호 납북 사건
  •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 : 이들은 1986년에 구사일생으로 탈북에 성공했다.
  • 요코다 메구미
  • 홍도 고교생 피랍사건 : 1977~1978년 홍도에서 고교생 4명이 납북된 사건. 2011년 주간조선이 입수한 평양시민 신상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평양에 거주하고 있었다.
  • 고상문 납북 사건
  • 이재환 : 19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납북되었다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2001년 사망. 그의 친구였던 생명운동가 이광필 씨는 그의 사망에 대한 진상 조사를 북한 당국에 촉구하고 있다.

4 관련 문서

  1. 납북되었다가 탈북한 울산 출신 어부 이재근의 말에 따르면,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만났으며 이중에는 정부의 공식 납북자 명단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심지어는 제주도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중에 납북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는 대남 간첩으로 악용을 했다. 글구 탈북할 때 주중 한국대사관의 밀항하라는 개소리와 외교부의 모르쇠는 덤
  2. 최은희의 증언에 의하면 외국의 여성들을 납치하기 위해 미남계 까지 쓴다고.... 제법 얼굴이 잘 생긴 공작원이 자신의 국적을 숨기고 여성을 유혹하여 결혼하자고 꼬신 뒤 북한으로 유인하여 납치를 하는데, 피해 여성들은 이 공작원이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일본의 갑부인줄 알고 팔자를 고치려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