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드노트(전함)

제1차 세계대전기의 영국 해군 군함
건보트어피스급
구축함스위프트급
잠수함X1급, M급
모니터함마샬 네이급, 애버크롬비급, 로드 클라이브급, 험버급, 고르곤급, M15급, M29급
정찰순양함어드벤처급, 포워드급, 패스파인더급, 센티넬급, 블론드급, 액티브급
장갑순양함크레시급, 드래이크급, 몬모스급, 데본셔급, 듀크 오브 에든버러급, 워리어급, 미노터급
방호순양함아폴로급, 아스트라에아급, 이클립스급, 블래이크급, 펄급, 에드거급, 파워풀급, 다이아뎀급, 애로간트급, 펠로루스급, 하이플라이어급, 챌린저급, 토파즈급
중순양함호킨스급
경순양함브리스톨급, 웨이모스급, 채텀급, 버밍험급, 버켄헤드급, 아레투사급(1913), 캐롤라인급, |칼리오페급, 캄브리안급, 센타우르급, 칼레돈급, 세레스급, 칼리슬급A, 다나에급, 에메랄드급A
순양전함인빈시블급 순양전함, 인디패티거블급, 라이온급, 퀸 메리급, 타이거급, 리나운급 순양전함, 어드미럴급 순양전함A, 인컴패러블급, 커레이저스급 순양전함
전함전드레드노트급로열 소버린급, 마제스틱급, 캐노퍼스급, 포미더블급, 뒤캔급, 킹 에드워드 7세급, 스윕셔급, 로드 넬슨급
드레드노트급드레드노트급,벨레로폰급, 세인트 빈센트급, 넵튠급, 오라이언급, 킹 조지 5세급, 에린급, 애진코트급, 아이언 듀크급 전함, 캐나다급,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리벤지급 전함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A: 전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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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배수량18,420톤
전장161m
전폭25m
흘수7.9m
기관4축 추진 22,500마력
속력21노트(39km/h)
항속거리10노트로 6,620해리, 18.4노트로 4,910해리
승무원695~773명
무장12인치(304.8mm) Mk.10 함포 2연장 포탑 5기, 12파운드 Mk.1 단장속사포 27문
장갑현측 장갑벨트 4~11인치(104~280mm), 갑판 3인치(75mm), 주요 포탑 및 지휘탑 11인치(280mm)

"Fear God and dread nought.(오직 신만을 두려워하라)"

1 개요

HMS Dreadnought. 1905년에 착공, 1906년에 취역한 영국전함. 현대에 들어서 전함으로 불리는 전투함의 원조이며, 또한 '드레드노트'라는 명사의 어원. 노급이라는 명칭은 당시 일본이 이 함을 "ドレッドノート"라고 부르거나 앞 글자만 따서 ド급이라고 부르는 데 일본어에서 해당 발음이 나오는 한자 중에 하나인 弩를 붙여서 만든 것이니 최대한 원어로 부르자.

이름의 유래는 Dread(공포, 두려움) + nought(없음, 없다)의 두 단어를 합친 것. 겁대가리 상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는 뜻이다. 이후로 '조낸 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 드레드노트라는 이름을 쓴 배는 이 전함이 처음은 아니며, 17세기에 이미 3급 전열함의 이름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본 항목의 드레드노트는 6대 드레드노트이다. 그리고 7대 드레드노트는 영국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함명으로 붙었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도 범선 시절부터 쓰던 배 이름을 최신 구축함이나 항공모함이 물려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1].

기본적으로 이 배에 요구되었던 것은 다음의 3가지이다.

  1. 화력 측면에서, 주포를 단일 구경으로 통일하고 최대한 많은 포문을 한 함정에 탑재함으로서, 동일한 탄도를 가진 화포 다수를 동시에 같은 사격제원으로 발포, 일정한 탄착을 형성케 함으로서, 명중률이 극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곡사를 통해 가능한 한 원거리에서부터 명중탄을 내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부포[2]를 폐지하고 그렇게 얻은 여유 부력 및 공간으로 주포의 문수를 최대한 늘린다.
  2. 아울러 이와 같은 화력의 우위를 기본으로 하고, 자함이 상정한 표준적인 교전거리 내에서는 적어도 자기 자신의 화력에 대해 확실한 방어력을 확보함으로서 절대적인 생존성을 확보한다.
  3. 마지막으로, 증기터빈을 주 동력으로 탑재하여 충분한 고속성능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21노트의 고속을 달성했는데, 이전 구형전함의 16~18노트에 비해 크게 우위였고, 한 체급 아래인 장갑순양함과 비슷한 속도였다.


이와 같은 요구사항은 건함 당시 영국 제1해군경이었던 피셔 제독[3]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충분히 먼 교전거리와 우월한 속력을 통해 원하는 장소에서 일방적으로 적을 두들겨 팰 수 있는 무적의 전함을 확보(이는 러시아와 일본 해군이 벌인 동해-대한해협 해전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승리한 후에 분석했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까지 존재한 적도 없었던 영국 해군과 대등한 적국이 등장하는 것[4]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급의 전함은 사실상 단함만으로 기존의 전함 3척 이상과 대등 또는 그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하리라 여겨졌으므로, 이 급의 함정이 등장한다면 사실상 이때까지의 주력 전함이던 전-드레드노트형[5] 전함은 완전히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반대도 많았다. 일단 이 급의 전함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전함보다도 거대하고 비쌌거니와 그 효과 역시 분명치 않았으며[6], 무엇보다도 그동안 존재했던 구식전함 전체를 완전 도태시키는 결과를 불러서, 장차 외국과의 군비경쟁에서 둘 다 제로로부터 시작하거나, 고작해야 두세 척 차이로 시작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7]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급의 전함은 해군경 피셔 제독의 강력한 오퍼에 힘입어 실제로 건조되었고, 최초 기대대로 등장과 동시에 전드레드노트형 전함, 당시까지 표준전함이라고 불리던 전함 전체를 일시에 퇴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의 건함 경쟁은 바로 이 드레드노트의 컨셉을 이어받은 드레드노트형 전함의 보유 척수에서 벌어졌으며, 최종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배 자체는 등장 후 단 몇 년 만에 같은 컨셉의 훨씬 거대하고 강력한 전함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그 가치를 잃어, 1차 세계대전 당시엔 이미 2선급 함정이었다. 물론 수훈 자체는 없지 않아서, 1915년 3월 18일에 독일 해군의 잠수함 U-29[8]들이받아 격침시키는 수훈을 올렸다. 이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함이 잠수함을 잡아버린 유일한 사례이다. 하지만 원래 전함은 잠수함 잡으라고 만든 배가 아닐텐데? 이를 제외하고는 1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퇴물전드레드노트형 전함만으로 구성된 제3전함전대의 기함으로서 활동하였으며, 종전 후인 1919년에 퇴역했다.

이후 예비함으로 돌려졌고 1923년에 해체되었다. 건함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중요한 전함이라 HMS 빅토리[9]처럼 영구현역까진 아니더라도 기념으로 보존할 수도 있었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주력함 총톤수의 제약이 생기면서 보존이 불가능[10]해졌다. 디스커버리에서 뽑은 최고의 10대 군함에도 들지 못했다…. 지못미….

추가하자면 일본군 해군공고급 순양전함이 영국에서 제작된 것이기에 슈퍼 드레드노트급으로도 분류가 가능한데 아무튼 공고급의 도입 이후에 일본군 해군은 대부분 드레드노트급을 기초로 전함을 설계했고 일본군 해군 전함 테크트리의 최상부 야마토급 전함 역시 이 영향을 받았다(물론 미국도 비슷하지만…).

2 흑역사

1910년 2월 7일, 전함 드레드노트는 (당시 외무부 차관이었던) 찰스 하딩 명의로 된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전보의 내용은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에서 온 일군의 왕족들이 드레드노트를 견학할 예정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흑인으로 분장한 가짜였는데, 이 그룹의 리더는 이전부터 장난꾼으로 유명했던 호레이스 드 베르 콜이었고, 그 중에는 나중에 유명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될 버지니아 스티븐[11]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잔지바르 국기가 걸리고 군악대가 잔지바르 국가를 연주하는 가운데[12] 드레드노트를 견학했다. 견학도중 이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섞어서 급조한 엉터리 언어로 말했고, 간혹 경탄의 표시로 '붕가붕가!' 하는 감탄사를 외쳤다고 알려졌다.

이때 드레드노트의 함장은 윌리 피셔 대령이었는데, 이 사람은 일행 중의 버지니아 울프 및 그녀의 오빠와는 사촌지간이었지만 두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국 해군은 한동안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며 단단히 굴욕을 당했다. 해군은 이들을 고발했지만 법원에서는 이들이 아무런 법도 어기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방면했다.

1915년, 1차대전 중에 드레드노트가 독일 잠수함 U-29를 들이받아 격침했을 때, 드레드노트로 수신된 축전 중에 'BUNGA BUNGA' 라고 쓰여진 것도 있었다고 한다. 고만해 미친놈들아

3 관련 항목

  1. 미 해군의 최초 원자력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도 8번째이며 7번째 엔터프라이즈는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2번함으로 일본해군을 상대로 피격당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았으며 1947년 퇴역하게 된다. 그 뒤에 바로 함명을 이어받는 것이 현재 엔터프라이즈
  2. 부포라는 표현에서 자칫하면 드레드노트 이후 전함들의 부포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것과는 다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포는 이때까지의 전함에서 28~30cm급 주포와 함께 탑재한 15~20cm급 함포들을 말한다. 대구경 화포는 충분한 명중률 및 발사속도를 얻을 수 없어서,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속사성능 및 위력 면에서 주포를 보조할 수 있는 중구경 함포를 다수 탑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는 이 부포를 가리켜 중간포 또는 중구경포라고도 한다. 여기에 근접전에 쓸 속사포가 따로 탑재되므로, 예전까지의 전함은 수상함과의 교전 목적 하나만으로 3가지 함포를 탑재했다.
  3. 범선시대로부터 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역사적인 인물
  4.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당시 황제 빌헬름 2세의 적극적 지원 하에 해군력을 대폭 증강하고 있던 독일과의 해군력 경쟁 가능성 대두였다.
  5. Pre-Dreadnought. 드레드노트가 출현한 후, 바로 전단계의 전함을 이것과 구분짓기 위해 사용하던 개념.
  6. 특히 이 전함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의의인 단일 구경의 주포 다수에 의한 원거리 교전은 전드레드노트형 전함으로 이를 시도해 본 일본 해군 및 이를 관전한 영국 해군 관전무관단에 의해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 있었다.
  7. 독일과의 경쟁을 예로 들면, 1906년 시점에서 영국과 독일의 전드레드노트형 전함 보유 숫자는 10:1에서 시작해서 5:2 정도까지 따라잡힌 상태였지만,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아직 1:0이었다. 독일이 지금까지 전드레드노트형 전함을 건조하던 페이스대로 드레드노트형 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한다면, 이미 산업생산력에서 영국을 거의 따라잡고 있었던 독일이 영국과 거의 같은 규모의 주력함대군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었다….
  8. 함장은 오토 베디겐. 1915년에 단독으로 영국 순양함 3척을 몇 시간만에 격침시켜 일약 영웅이 되었던 함장이다. 후에 나치 독일이 칼 되니츠를 중심으로 잠수함대를 재건하면서 처음 창설했던 잠수함 전단에도 이 사람의 이름이 붙었다.
  9.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넬슨의 기함
  10. 일본이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미카사를 기념함으로 보존할때도 시끄러웠다고 한다. 그나마 일본은 끝까지 주장해서 미카사를 기념함으로 보존하게 되었지만 유사시 현역으로 써먹지 못하게 선체주변에 아에 콘크리트를 부어야 했다고...
  11. 결혼 후 성이 바뀜
  12. 워낙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방문이라서 아비시니아 국기/국가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