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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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 9월 5일에 발생한 체사피크 만 해전의 모습: 왼편이 프랑스 해군, 오른편이 영국 해군

파일:Attachment/전열함/ship-of-line-ohio.jpg

 미국의 전열함, USS 오하이오

한자: 戰列艦
영어: Ship-of-the-line

1 개요

목조 범선이자 범선 전투함의 마지막 테크트리라고 할 수 있는 전투함이면서 흔히 유럽식의 범선 전함이라면 떠올리기 쉬운 형태이다.

해전에서 대포가 등장하기 이전의 전투함은 유럽의 경우 보통 그 주무대가 지중해로서, 갤리선이 주력함이였고 이나 석궁을 활용하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양함대가 결판내는 것은 서로서로 배를 접현시켜서 백병전을 벌이거나 아니면 충각 전술로 상대방의 배에 충돌하여 격침시키는 형태가 일반적이였다. 이런 갤리선끼리의 해전은 레판토 해전이 마지막이었으며, 해당 해전도 대포를 쏘긴 했었다. 가톨릭 측 주요 승리 요인으로 대포를 적재하기에 배의 구조가 훨씬 더 유리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이후 화약과 대포가 개량을 거듭하고, 대항해시대가 도래하며 범선 기술이 함께 발달하면서 해전의 주역은 갤리선에서 서서히 범선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의 대포는 현재와는 다르게 화약의 폭발로 고체 탄환이 날아가 목표물에 충돌하여 그 충격만으로 피해를 주는 형식이였기 때문에 한방에 배를 격침시킬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 폭탄이 아닌 큰 쇠구슬을 발사한다는 뜻. 그렇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더많은 대포를 장착가능한 복층 갑판구조를 가진 함선이 개발되었고 또한 그 포격에 견딜 수 있는 배의 형태가 요구되었다. 그 중간과정으로서 3층갑판 갤리온이 나왔고 이를 더 개량한 것이 전열함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예전 대포는 약해빠져서 2차대전 당시의 전함처럼 3연장 포탑 3~4개 정도의 포만 운용했다간 도저히 격침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현측에다 대포로 도배를 했다고 보면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대포의 위력은 약하지 않았다. 주로 사용하던 round shot은 단순한 쇳덩어리라서 나무로 만들어진 범선을 침몰시키기에 효율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3급 전열함의 상부 포갑판에 탑재하던 18파운드 포는 30미터 이내에서 0.75미터 두께의 참나무를 관통했다고 한다. 탄속이 너무 빨라 반대편 갑판을 뚫고 나가버려 큰 피해를 주지 못해서 탄속이 느린 카로네이드가 나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약한건 매일반이였다. 현대에서 흔히 생각하는 고폭탄을 쓸수 없었기에 라운드샷 수십발을 퍼맞고도 멀쩡한건 당연한 일이였고 운이 좋아서 흘수선 근처에 맞아 침수를 유발하더라도 상대도 바보가 아닌지라 펌프에 수병을 붙이고 캔버스등으로 긴급보수를 실시했기에 침수로 침몰하는일도 적었다. 이런꼴이니 수시간을 계속 퍼부어대도 격침되는일은 거의 없고 그나마 약한부위인 마스트가 전부 부러져서 항행능력을 상실하거나 수병의 피해가 너무 많다던가 장교진의 피해가 너무 커서 사기가 저하되어 항복으로 끝나는게 당시 해전의 양상이였다. 이런 꼴이니 현측을 함포로 도배해야 그나마 승산이 있다는건 당연한 이야기.

1830년경에 프랑스에서 현재의 고폭탄에 해당하는 작열탄을 사용하는 대포를 개발했다. 이 작열탄은 선체에 맞는순간 바로 폭발을 일으켜 불에 타기 쉬운 물질들로 가득찬 범선에 치명적이어서 이후 범선의 선체를 철갑으로 강화한 장갑함이 나왔고. 그 철갑을 관통하기 위해서 비록 함포의 숫자를 희생하더라도 대구경,고관통 포를 설치하기 시작하고 그걸 막기 위해 장갑을 강화하면서 점점 발전한게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하지만 전열함 시대에도 포격을 할 시 대부분이 흘수선 위쪽을 맞으므로 격침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굳이 격침을 하려면 파도를 이용해서 적선의 흘수선 아래 부분이 드러날때 타이밍 맞춰 쏘는 방법이 있는데, 당시 포격 방식으로는 그런 흘수선 하단 "조준사격"이 타이밍 맞추기도 어려울 뿐더러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힘들었다. 그냥 흘수선 위쪽을 걸레짝을 만들어놓고 도선 전투를 하거나 적 승조원의 숫자를 줄여버리는 등으로 상대함이 항복하면 승리하는 것이 대부분. 나무라는 특성상 잘 가라앉지도 않아서, 대개 승리한 쪽은 항복한 함정을 나포, 자함 승조원 일부를 차출해 본국에 먼저 보내거나 자함과 동행시켜 끌고가곤 했다. 게다가, 당시엔 나포한 적국 함선이나 상선 및 화물을 정부가 종류와 상태 등을 보고 가격을 매겨 매입하여 나포해 온 승조원들에게 상금(Prize Money)을 지급했으므로, 되려 간신히 이겼더니 적함이 가라앉아 버리면 승리한 쪽 승조원들이 승질을 냈다(...).

나포한 배가 전투의 영향으로 불이 나면 포로 신세인 나포된 배의 승조원들은 물론 나포한 쪽의 승조원들까지 합세해 필사적으로 진화를 했다. 마찬가지로 침수가 발생하면 양측 승조원들이 협력해 필사적으로 펌프질을 하기도 했다. 육지와 달리 배를 잃는 순간 생존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바다의 특성과, 뱃사람들 특유의 국적을 넘는 유대감, 근대 서구권의 전투 문화 등으로 교전이 끝나면 대개 상호간의 적개심이 쉽게 가라앉았던 점 그리고 나포 상금 등이 작용했다.

2 이름의 유래

전열함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더 많은 대포를 장착가능하도록 복층 갑판구조로 만들어진 함선들이다. 즉 이러한 구조의 함선은 진행방향에서 90도 각도 좌우측 방향에 가장 강력하며 선수와 선미 쪽은 선회포 몇정 뿐이라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선수와 선미를 적에게 공격받는 일이 없도록 여러 척의 함선이 일렬로 서로서로 붙어서 약점을 보완해주며 동시에 화력이 집중된 측면은 모두 함께 적을 향해서 전체 함대의 화력을 증강시키게 되는데 이것을 전열(戰列) 전술이라고 한다. 전열함(戰列艦)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전술 개념에서 따온 것이며, 영어로도 ship-of-the-line이라고 불렸다.

3 실제 활용과 구분

당시 바다의 제왕이라 불렸던 대영제국 함대의 경우 배의 등급을 1~6등급으로 구분했으며 이중 약 60문 이상의 포로 무장한 3~4등급 함선 이상의 전투함을 전열함이라고 불렀다. 또한 전열함도 2층에서 최대 3층갑판을 채택하는 게 대부분이고, 전열함 중에서 제일 많은 수가 취역한 것은 보통 74문의 3급 전열함이었다.

실제로 1815년까지 영국해군 내에서 취역한 전열함 대수는 최대 104문에 3층 포갑판 1급이 8척가량, 최대 98문 3층포갑판 2급이 7척, 최대 80문에 2층 내지 3층 포갑판 3급 전열함 94척이었다, 실제로 2급 이상부터는 하부 포갑판 운용 제한과 안정성의 문제로 후에 선체를 늘려 2층 포갑판 설계의 전열함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트라팔가 해전 당시 스페인, 프랑스 연합 내의 주 전력은 2층 포갑판을 채용한 전열함들이 주력이었다.

그런데 2층 포갑판을 주로 채용한 프랑스의 전열함들은 영국에 비해 함선 운용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동일한 80문의 전열함이라도 해전 당시의 파도, 바람과 특유의 안정성 문제에서 3층 포갑판을 채용한 영국 전열함은 최하층 포문을 파도가 넘나드는 문제로 종종 포문을 열지 못하고 전투를 임하던 것에 비해 자유로웠다.

또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열함은 영국의 전열함에 비해 설계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107척이나 건조된 프랑스의 테메레르급 74문형 전열함의 경우, 영국해군이 굉장히 높게 평가해서 동급함의 나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으로 설계를 카피해서 폼페이급, 아메리카급 전열함을 건조했다. 테메레르급은 주력함 중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이 건조된 함급이다.

그러나 동일한 74문급의 전열함이라 할지라도 영국의 전열함은 크기가 작은 편이었고, 이로 인해 공간이 좁아서 승조원이 활동하기가 불편하다던가 복원성이 좋지않아서 항해능력이나 포격 등에 있어서 곤란한 점들이 많았다. 그 예로 1740년 4월 스페인의 70문 전열함 프린세사(princessa)와 영국 70문 전열함 3척이 교전를 벌인 일이 있었는데, 3대1의 상황임에도 최종적으로 항복할 때까지 무려 6시간 동안 교전을 벌인 일이 있었다. 이것은 프린세사가 당시 영국의 90문 전열함과 맞먹을 정도의 크기를 가졌기에 안정성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영국의 함장들이 프랑스나 스페인의 함선들을 보면 적극적으로 나포하려는 이유가 상대적으로 뛰어난 설계방식도 원인중 한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차이가 나는 데에는 어느 정도는 단함의 우월성보다는 수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영국 해군 독트린의 영향도 존재한다. 해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영국의 특성상 함의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2차대전 때까지 이어져서, 영국의 순양함이나 구축함은 타국의 함에 비해 단함으로는 화력 등에서 밀리는 대신, 항해 능력 등 전체적인 밸런스와 수적 우위를 염두에 두고 건조되었다.넬슨급은? 전함이잖아 [1]

실제로도 프랑스나 스페인의 전열함들은 설계방식은 뛰어났지만 결과적으로 해군정책 등의 차이로 인해 영국 해군을 뛰어넘지 못하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는 수적열세 때문에 적함대 격파보다 주로 자국함대 보존에 치중했으며 육군국이라 육군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해군에만 투자하지 못해 영국해군을 완전히 앞지르지는 못했다.

그래도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는 프랑스도 해군투자가 많이 되어서 영국해군에게 여러차례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드 그라스 백작이나 드 기생 백작 등이 그런 인물 들이며 특히 드 기생 백작은 프랑스 해군 최고의 방어 전문가로 평가받았다고 하며 로드니 제독을 상대로 싸운 해전에서 로드니 제독의 전열돌파전술을 견고한 전열유지로 막아내어 방어에 성공하여 영국함대를 후퇴하게 만드는등 이게 여태까지의 프랑스 해군이 맞냐고 할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시대를 맞으며 프랑스는 다시 육군 국가로 전환되었다.

한편 영국스페인프랑스의 전열함들에 비해 협소한 공간이라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포에 당시 머스킷 총에 사용되던 수석식 격발장치를 장착했다. 당시 일반적인 포격 방식은 대포 하나당 사관과 포수, 장전수, 대포를 지지하는 밧줄을 당기는 사람 등등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포수가 심지가 달린 긴 장대를 대포 화약구멍에 접촉시켜 격발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로 인해 장전하는 사람, 조준하는 사람, 포수가 각각 따로 있어 조준에서 포격까지 타이밍 맞추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파도로 인해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그리고 포격시 대포의 후퇴 반동을 피해서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발화용 장대 끝을 대포 화약구멍에 갖다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조준하는 사람, 포격하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던 기존 시스템과는 달리 조준하는 사람이 직접 줄을 당겨 격발장치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이라 대포 하나 하나를 담당하는 인원수가 크게 감축이 되어 보다 효율적인 선체 내부 공간이 확보되었고, 그냥 줄만 당기면 되었으므로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도 간편하게 사격을 할 수 있었으며, 기존의 재래식 방법보다 격발 후 포탄이 발사되는 반응속도도 빨라서 보다 정확한 조준 포격을 할 수 있어 트라팔가 해전 등에서 큰 효과를 보게 된다. 반면 스페인이나 프랑스는 기존의 재래식 포격 방식을 사용하여 포격의 정확도나 타이밍면에서는 영국보다 많이 밀리게 된다. 게다가 당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 인력의 안습함은...

그리고 전열함 중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물건들이 있었는데 4층 포갑판 전열함이 바로 그 물건이다. 이들은 실제로 제대로 활약을 해보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한게 대부분이었다. 당장 트라팔가 해전 당시 스페인의 1등급 전열함인 산티시마 트리니다드가 그 예다. 134문의 포를 갖춘 4층 포갑판 전열함이지만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나포당해 영국 해군의 전력이 될 했지만 결국 폭풍우에 좌초되어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의 1등급 전열함 펜실베니아도 상당히 안습한 운명을 자랑하는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남북전쟁기에 자침한다. 프랑스의 오세앙급은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능가하는 크기를 가진 세계최대의 전열함이었다. 산티시마 트리니다드와 다르게 거함인데도 항해성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동급함으로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에 나일해전에서 전투중 화재로 폭침한 오세앙급 전열함 120문함 오리앙호가 있다.

이런 이유로 전열함은 실제 해전에서의 활용은 매우 적은 편이었고, 일종의 결전병기의 개념으로서 실제 해전에선 오히려 20문에서 50문 정도의 대포를 갖춘 4등급 이하의 프리깃과 더불어 포문 20문 미만의 6등급 이외의 등외 전함. 예를 들어서 콜벳, 슬루프, 커터, 브리그 같은 중소형 전함들이 더 많은 활약을 펼쳤다. 전열함들은 항구에서 훗날 있을 결전을 대비에 전력을 보존하거나, 항구 봉쇄의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활용된 전투함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이런 대형 전열함은 매우 느리고 둔하였는데 순풍을 잘 타도 8노트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둔하였고, 키를 한번 돌리는데도 인원이 10명 이상 요구될 정도로 조종하기도 힘들다는 단점이 있기에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정작 근대 범선전투라면 쉽게 떠올리는 전열함이 서로서로 열을 이루면서 포격을 주고 받는 그런 장관이 펼쳐진 해전은 역사적으로 찾아봐도 굉장히 드물었으며, 오히려 기동력 좋고 경쾌한 프리깃함이 해군의 주력으로서 활용되었다.

미국의 경우 전열함보다는 일반 프리깃함보다 강력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전열함과도 전투가 가능한 대형 프리깃을 개발/배치하는 쪽을 택했다. 다만 이건 당시 미 해군이 전열함을 아예 포기하고 실용적인 노선을 탔다기보다는 유럽 국가들처럼 대대적으로 전열함에 투자할 상황이 안 되었던 것이다.(대표적인 예로 최초의 6척(Original Six)중 하나인 USS 컨스티튜션이 있다.)

그렇다고 전열함이 쓸데없는 돈지랄 함선이라고 보는건 위험한 생각이다. 어찌되었던 적 전열함이 함대를 이루고 있으면 이를 상대할 방법은 똑같이 전열함을 잔뜩 끌고와서 한판 붙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 없거나 그럴 수 있더라도 승리할 자신이 없다면 그저 군항에 짱박혀서 해안포대의 엄호나 받으면서 벌벌 떨 수 밖에 없는 것이다.[2]

결국 봉쇄당한 측의 국가는 함대는 있는데 제대로 쓸수 없는 꼴이 되어버리기에 해군이 봉쇄당한 국가의 무역선은 심심하면 프리깃과 슬로프등 소형함선에게 나포당하기 일쑤이지만, 봉쇄를 하고 있는 국가의 무역선은 위장 사략선이 아닌한 공격당할 일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해외 무역은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였기에 이를 봉쇄한다는건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 준다. 다시말해 전열함은 전술적인 화려함은 없었지만 전략적으로는 막강한 존재감을 나타냈고 이는 근대의 전함이나 현대의 핵무기와 비슷한 역할이다. 영국이건 프랑스건 유럽 국가들이 멍청이라서 전열함을 찍어낸게 아니다. 소설 혼블로워를 보면 전열함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4 전열함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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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 증기선 라 나폴레옹(La Napoleon)

목조범선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전열함시대도 증기선이 등장함과 함께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초기에는 전열함에 증기기관을 결합한 본격 하이브리드기범선형 전열함도 등장하였지만, 세계의 주요 기항지에 석탄 저탄창과 급수 시설 네트워크가 구축되자 돛은 그저 손이 많이 가고 자리만 차지하는 짐이 되고 말았다. 아울러 조선술의 발달로 인해 함선의 재료로 금속을 더 많이 쓰게 되자 동력이 부족한 목제 범장 전열함은 점점 쓸모없는 물건이 된다. 애초에 주력이었던 시절에도 실전은 시궁창이었는데, 하물며 구식이 되고나서는...

1862년 남북전쟁에서 세계최초로 철갑 증기함끼리 전투가 있었다. 이 싸움의 주인공은 연방 해군의 USS 모니터 함과 연합 해군의 CSS 메리맥 함. 당시 화포로는 서로 장갑을 뚫을 수가 없어 충각 전술까지 써봤지만 승부가 나지 않아 결국 양쪽 모두 후퇴한다. 문제는 철갑선과 기존 범선간에 전투가 벌어지면 철갑선은 범선의 포탄을 튕겨버리지만, 범선에는 철갑선의 포탄이 퍽퍽 들어가므로 철갑선이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점이다.

또한 회전포탑의 개발과 화약과 대포의 발전으로 더 먼 사거리를 가졌으면서도 압도적인 파괴력이 있는 대포와 포탄이 속속 개발되었고, 1866년에는 원시적인 어뢰도 등장하는 등 해상 무기의 발전이 진행됨에 따라 구시대의 전열함은 완전 무용지물화 되었고, 현대적인 전함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

다만 세로로 좁고 길게 만들 수밖에 없는 배의 구조상 여전히 군함에 설치되는 발사 무기의 화력은 배의 측면에 가장 집중되었으며, 따라서 전열 전술 자체는 1차대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회전포탑을 채용한 철갑선들끼리 전형적인 전열 전술로 싸웠던 쓰시마 해전 또한 좋은 예.

세월이 흘러 포술의 발달에 힘입은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협차 사격술의 등장으로 기존의 측면포대를 이용한 전열 전술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지만, 주포의 사거리가 늘어나고 사격술이 바뀌었을 뿐이지 여전히 함선들끼리의 포격전에서 가장 유효한 대형은 함대의 화력을 모두 집중시킬수 있는 전열 대형이었다. 그래서 전열 전술을 완전히 끝장낸 것은 비행기항공모함, 그리고 무엇보다 대함 미사일의 등장이었다.

더불어 대부분의 전열함들은 상부구조물을 들어내고 그위에 창고식의 지붕을 얻어 창고선으로 사용하거나 수병들의 숙소로 사용했고 이들 대부분은 함령이 백년이상이 대부분이라 배 안에서 각종 퀴퀴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HMS 빅토리도 이런식으로 활용되다가 20세기 초반에 영국내 시민단체들의 항의로 복원한 케이스이다. 이 창고선들은 대부분 1950년대에 해저 방파제로 침몰당했으며 이는 영국군의 폭약실험에 많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몇몇 함선들은 건조된 지 백오십 년이 다 되어가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활동했다. 블랙프린스급 전열함 웰즐리와 테메레르급 전열함인 임플라커블 호가 대표적으로, 웰즐리는 결국 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 침몰(...)했고, 임플라커블은 석탄 운반선으로 뛰다가 전후인 1949년에 해체되었다. 웰즐리 함은 역사상 가장 마지막으로 격침된 전열함이자, 유일무이한 항공 폭격으로 침몰한 전열함이다. 현존하는 전열함은 가장 유명한 1급함이며 호레이시오 넬슨 제독이 탑승한 걸로도 유명한 HMS 빅토리 함(HMS Victory)이 남아있으며 현재 영국 해군의 함선 명부에도 올라와 있다. 가장 오랫동안 현역으로 남아 있는 군함이다. 물론 실제 전투 업무는 수행하지 않는, 의장 임무이다. 현재 지상 건선거에 고정돼서 항해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실제 항해가 가능한 가장 오래된 현역함은 미국의 중프리깃함인 USS 컨스티튜션 함이다.

5 매체에서의 전열함

근세를 다루고 있는 매체에서 바다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면 거의 무조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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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미션중 잡게되는 쥘리앵 뒤 카스의 배 엘 알카 델 마에스트로. 기본적인 맨오워와 모델링은 같다.

어쌔신 크리드 3, 어쌔신 크리드 4 에서 등장한다.
어쌔신 크리드 4 에서는 대영제국,스페인군 소속으로 등장하며 잭도우의 업그레이드를 성실히 하지 않았을 경우 상대하기 힘들수도 있다.

남쪽의 샬롯 인근의 위험해역에서 주로 때지어 출몰한다. 어그로 잘못끌리면 걸레짝이 되니 주의. 자세항 사항은 어쌔신 크리드 4/항해 문서 참고.

6 나무위키에 등재된 전열함

7 전열함시대의 주요 무장

8 관련 문서

  1. 넬슨급은 영국해군에서도 화력이 강력한 축이였으며, 그렇기에 몇 안되는 화력>물량을 중요시한 설계이다. 이건 군축조약시 건함 가능 척수가 2척으로 제한되는 특수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2. 위력이나 활용도 면에서 비교가 안 되지만 현대전에서 핵무기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핵무기 또한 매우 위력적이며 전략 수립에 있어 필수요소로 취급되지만 실제 전과는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