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 오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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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ar-Odom-Facts.jpg

이름라마 조셉 오돔
Lamar Joseph Odom
생년월일1979년 11월 6일
6 ft 10 in (208cm)
체중104kg (230 Ib)
출신학교로드아일랜드 대학교
포지션스몰포워드/파워포워드
드래프트1999년 1라운드 4순위
LA 클리퍼스 지명
역대 소속팀LA 클리퍼스 (1999~2003)
마이애미 히트 (2003~2004)
LA 레이커스(2004~2011)
댈러스 매버릭스 (2011~2012)
LA 클리퍼스 (2012~2013)
Laboral Kutxa Baskonia (2014)
수상경력NBA All-Rookie First Team (2000)
NBA Sixth Man of the Year (2011)
등번호7번
2011년 NBA 올해의 식스맨상
자말 크로포드라마 오돔제임스 하든

1 개요

NBA의 前 농구선수. 불우한 가정사를 겪었고, 게으름과 사탕 중독[1]같은 워크에틱문제로 생각보다 재능을 피우지 못하고, 말년에 여러가지 불우한 일을 겪으며 몰락한 풍운아.

배우자가 킴 카다시안의 동생이며 카다시안 가문의 삼녀인 클로이 카다시안이다. 즉 칸예 웨스트와는 동서지간인 셈.

2 NBA 입성 이전

오돔은 뉴욕주 뉴욕시 퀸스의 남 자메이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헤로인 중독자인데다, 불과 어머니가 12살 때 대장암으로 죽고 외할머니 손에 자라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특이사항으로 유년 시절 오돔은 미래의 NBA 선수가 되는 엘튼 브랜드와 론 아테스트(나중에 메타 월드 피스로 개명)와 같은 AAU팀에서 뛰었고, 아디다스 ABCD 캠프에서는 훗날 레이커스 동료인 코비 브라이언트와 뛰었다고한다.

3 NBA 시절

대학교 1학년 로드아일랜드 램즈에서 컨퍼런스 챔피언을 차지하고 컨퍼런스 최고의 신입생으로 뽑힌 뒤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단축시즌에 9승 41패라는 안습한 성적을 거둔 LA 클리퍼스에 뽑히고 데뷔전부터 30득점 12리바운드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 무난하게 루키 퍼스트팀에 들어갔지만 이후 클리퍼스를 살려내지는 못했다. 2001년에는 마리화나 사용이 적발되어 징계를 받는 사고도 쳤다.

제한적 FA가 된 오돔은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했다. 에디 존스, 루키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팀을 이끌며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뛰는 기쁨을 맛봤다. 이후 한 시즌만에 샤킬 오닐 트레이드 때 캐런 버틀러, 브라이언 그랜트와 묶여 레이커스로 떠났다. 코비 브라이언트 외에는 딱히 돋보이는 선수가 없어서 2000년데 중반에는 고생을 하다가 앤드류 바이넘의 성장과 파우 가솔의 영입으로 레이커스는 챔피언십 컨텐더로 부상한다.

가솔-바이넘 트윈 타워 스타팅을 앞세우기 위해 필 잭슨은 오돔에게 식스 맨으로 뛰기를 요구했다. 오돔은 처음에는 아쉬워했지만 실제로 다재다능한 그의 능력은 식스 맨 자리에서 빛을 발했으며,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코어로 활약하면서 레이커스의 2연패에 공헌하고 마지막 시즌에는 식스 맨 상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오돔의 제대로 된 커리어는 딱 거기까지였다. 2012년에 댈러스 매버릭스 트레이드 되었을 때 댈러스 팬들은 제법 기대를 했지만 오돔은 이를 멋지게 배신했다. 그는 댈러스에서 한마디로 더럽게 못했으며, D리그로 내려갔다 오거나 플레이오프에서는 뛰지도 못하는 등 추하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첫 소속팀이던 클리퍼스로 돌아갔지만 기량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4 NBA 커리어 이후

그렇게 2013년을 끝으로 LA 클리퍼스와 결별한후 2014년에 스페인 리그에서 뛴 것 말고는 선수로서의 소식은 별로 기대할게 없었고, 손대범:이렇게 훅간 선수 처음봤어요 같은 해 6월에 뉴욕 닉스와 계약만 하고 경기장에서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부인인 클로이 카다시안과 이혼 소송을 진행한다거나, 마약 문제나 음주운전 같은 소식들 뿐이었다. 그러다 2015년 10월 13일(현지 기준)으로 뜬금없이 코카인에 쩔어서 의식이 불명인 상태로 성매매 업소에서 쓰러진채 발견되었다. 다행히도 이후 의식을 회복해 재활 중이기는 하지만 오돔이 급작스럽게 몰락한데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현재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듯 코비의 은퇴경기에도 모습을 드러내 자리를 빛냈다

5 플레이 스타일

제 2의 케빈 가넷,왼손매직같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올 어라운드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탑에서 패싱게임을 할수 있는 시야를 갖추었고, 괜찮은 핸들링을 가졌고 운동능력도 준수한 축에 들고, 골밑에서 경쟁력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선수였다. 유튜브에서 그의 영상을 검색해보면 전성기시절 꽤 멋진무브들을 감상할수있다

대신 득점력은 꾸준하지는 않고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줬고, 무엇보다도 게으름이 문제였는데 비시즌에 몸을 관리하면서 기술을 쌓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고, 그 탓에 몸상태가 늦게 올라오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2010-11시즌에는 비시즌에 FIBA 선수권 대회에 나서느라 몸관리를 일찍 한 결과 이전 시즌들보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2]

이런 탓에 사람들은 라마 오돔의 멘탈이 코비의 반만 닮았으면 1옵션급이 되었을것이다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까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꼽는것은 지금 이 커리어보다는 더 나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6 트리비아

  • NBA 불운의 아이콘 중 한명으로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본인이 자초한 일 외에도 불행한일이 많았다. 자고 일어났는데 자식이 돌연 사망해 있었다던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본인 옆에 앉았던 형제만 사망했다던가...
  • 배우자가 그 악명 높은 카다시안 가문(이 집안에 대해서는 킴 카다시안 항목 참조)의 삼녀인 클로이 카다시안이었다. 클로이에게 호구를 단단히 잡혀 시달린 바가 있다. 클로이는 결혼한 상황임에도 보란듯이 바람을 피우고, 멘탈이 온전치 못한 오덤을 데리고 리얼리티 쇼('클로이&라마')를 런칭했다. 클로이의 사치벽 때문에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거야 일반인들 관점이고 사실 클로이도 옷가게와 셀렙 활동[3]으로 활발하게 돈을 버는 편이기에 클로이 때문에 금전적인 압박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었던 오덤을 아내인 클로이가 케어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더 비난해야 할 것이다. 이 두사람이 결혼까지 갔던 것도, 오덤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클로이는 일찍 아버지(로버트 카다시안)를 잃었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이혼으로 카다시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현재 재결합 상태다. 오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나 회복할 때 카다시안이 병문안을 갔던 게 계기가 된 듯한데 이걸 과연 좋은 소식이라고 봐야할지.... 클로이가 오덤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간 이후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걸 막았다는 카더라도 있다. 이 재결합으로 제임스 하든 팬들은 축배를 들었다는 풍문이 전해져 온다. [4]
  1. 얼마나 심각했으면 필 잭슨 감독이 직접 사탕금지령을 내렸을 정도였다.
  2. 보통 구단에선 부상때문에 될수있으면 국제대회에 나오는것을 만류하지만 오덤의 경우는 너무 나태한나머지 구단관계자들은 물론 동료들도함께 그가 국가대표가 되어 일찍 훈련에 들어가는것을 기뻐했다고...
  3. 방송으로 보면 매우 사치스러워 보여도 그만큼 협찬으로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저 소비 활동이 오히려 돈이 된다. 킴 카다시안베르사유 궁전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호화판 결혼식을 올려도 다 협찬인데다 광고 수입으로 결혼식 비용을 다 회수하고 이익까지 남긴 것이 그런 경우다.
  4. 클로이 카다시안은 오덤과 헤어진 이후 하든과 한동안 사귀었다. 당시 하든은 꽤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결국 결별 수순을 밟았다. 하든 입장에선 천만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