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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사진이요. 웨이드가 불스라니! 웨이드가 불스라니이이이이이[1]
시카고 불스 No. 3 | |
드웨인 웨이드 (Dwyane Tyrone Wade) [2] | |
생년월일 | 1982년 1월 17일 |
출신학교 | 마케트 대학교 |
신장 | 192cm (6' 3.75")[3] |
체중 | 99.8kg (220 lbs) |
포지션 | 슈팅가드 |
드래프트 | 2003년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 마이애미 히트에 지명 |
소속팀 | 마이애미 히트(2003~2016) 시카고 불스(2016~) |
등번호 | 3 |
수상내역 | NBA Finals MVP (2006) All-NBA First Team 2회 (2009-2010) All-NBA Second Team 3회 (2005-2006, 2011) All-NBA Third Team 3회 (2007, 2012-2013) All-Defensive Second Team 3회 (2005, 2009-2010) NBA All-Rookie First Team (2004) NBA All-Star 12회 (2005-2016) NBA All-Star Game MVP (2010) NBA Skills Challenge champion 2회 (2006-2007) |
2006년 NBA 파이널 MVP | |||||
팀 던컨 | → | 드웨인 웨이드 | → | 토니 파커 |
2009년 NBA 올해의 득점왕 | |||||
르브론 제임스 | → | 드웨인 웨이드 | → | 케빈 듀란트 |
2010년 NBA 올스타 MVP | |||||
코비 브라이언트 & 샤킬 오닐 | → | 드웨인 웨이드 | → | 코비 브라이언트 |
2006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 ||||
톰 브래디 | → | 드웨인 웨이드 | → | 브렛 파브 |
"나의 믿음은 당신의 의심보다 강합니다"ㅡ 드웨인 웨이드
1 소개
블랙캣 조던에 가장 근접했던 사나이
통산 PER NBA 역대 10위(25.29)
동포지션 역대 TOP5 안에 들어가는 마이애미 히트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선수[4][5]
별명은 디 웨이드(D-Wade), 플래쉬(Flash)[6], 삼식이(Three)[7], 동부센터[8]. 마이애미 히트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NBA를 대표하는 슈팅가드 중 한명이다.
말그대로 괴물 드래프트였던 2003년 드래프트의 5번째 픽. [9] 대학 3년을 보내고 NBA에 들어온 케이스로, 동시대의 슈퍼스타인 르브론 제임스보다 나이가 많다.[10]
2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에서는 돌파형 슈팅가드. 볼핸들링과 시야, 패싱이 뛰어나서 포인트가드로 데뷔했다. 플래쉬라는 별명이 걸맞게 퍼스트 스텝이 리그 최고수준으로 빠르고 거기에 방향전환이 뛰어나 수비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돌파해 내고, 강인한 신체를 활용하여 컨택을 이겨내고 득점하여, 수비수가 쉽사리 밀착수비를 못한다. 기복이 있지만 미드레인지 점퍼도 준수한 편.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커리어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첫번째는 데뷔 ~ 2008년까지인데, 이 때는 리그 최고속의 스피드를 이용해 상대 백코트의 파울을 유도해내거나, 미드레인지에서의 점프슛을 이용한 득점을 올렸다.(뱅크샷의 비중이 높았다.) 또한 덩크성애자라고 불릴 정도로 공격에서 기술적 수준이 높은 덩크들을 많이 보였다.
- 그 다음으로는 08-10 까지의 원맨팀 시절, 07년 입었던 어깨부상 이후 슛감은 다소 죽었으나 혹독한 벌크업을 통해 스피드를 제외한 다른 운동능력들의 정점을 찍었다. 이 시절의 웨이드는 빅맨의 스크린이 없이도 몸빵과 티맥이후 스윙맨 중 최고인 퍼스트스텝, 다소 줄었어도 여전히 최상급인 스피드에 완성된 유로스텝등 리그 최고의 드리블 기술들을 이용해 그냥 공간을 찢고 들어가 2점을 벌어오는 수준의 효율을 보였다. 이 때의 웨이드는 파워, 스피드, 기술 모든 것이 S급인 00년대 최고의 슬래셔였다.
- 마지막으로 빅3 ~ 현재이다. 사실상 포인트가드나 마찬가지였던 르브론의 존재로 인해 볼 소유가 줄어든 후, 역습시 르브론과의 콤비 플레이나 빅맨의 스크린을 받은 후 고효율의 돌파를 시도하는 방식을 보여주었고, 르브론이 클리블랜드와 돌아간 지금은 노쇠화와 고질적 무릎 부상으로 인해 스피드와 점프력이 줄고 돌파의 위력이 죽자 포스트업과 그간 봉인했던 미드레인지 점퍼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수비에서는 순발력이 좋고, 수비에 적극적이며 범위 넓은 헬핑디펜스를 펼친다. 지역방어시대 이후 동포지션 최고의 퍼리미터 디펜스를 가졌던 선수 둘 중 하나다.(다른 예로는 동갑내기 토니 알렌이 있다) 또한 길쭉한 팔과 민첩성을 이용한 스틸과 블록 슛을 잘한다. 역대 최고의 가드 블라커 중 하나다. 골밑에서 득점이 많고, 야투율이 높고 블락슛이 뛰어나 동부 센터라는 별칭도 있다 . 최전성기였던 09년에는 40승대 팀을 데리고 수비왕 3위에 오르기도 했다. 10-14 마이애미가 리그 최악의 프론트코트를 지니고도 높이 싸움에서 강한 팀들과 맞붙어 이기고 4년 연속 파이널에 갈 수 있었던 주된 이유가 바로 웨이드와 르브론이라는 최고의 퍼리미터 디펜더들을 위시로 한 무한 스위칭 헷지 디펜스였다.
09-10 시즌에는 시즌 최고의 덩크라 여겨지는 덩크를 선사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해설도 일품이다.[11]
단점은 3점슛의 부재 (개인 통산 3점슛 퍼센트가 30%가 안 된다. 하지만 그걸 알고 많이 쏘지는 않는다.)와 부상. 특히, 돌파형 선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선수들과 많이 부딪히게 되고, 이로 인해 앨런 아이버슨처럼 몸이 혹사당하는 것이 아닌지가 염려된다. 부상문제는 1년에 많으면 82경기 가까이 뛰는 NBA무대에서 에이스가 짊어지는 혹사문제지 본인의 건강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12] 다만 이후에도 그간 마일리지로 인해 결장경기가 많았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달고 살게 되었다. 그 예로 정규시즌을 반 가까이 쉬고 가졌던 13-14 플레이오프에서는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3 커리어
3.1 마이애미 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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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시즌에 마이애미를 이끌며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지만, 르브론 제임스와 카멜로 앤써니의 라이벌리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04-05 시즌, 마이애미는 샤킬 오닐을 영입하면서 막강해졌고,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7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석패를 했다. 하지만 웨이드와 오닐의 콤비는 환상적이었다.[13]
05-06 시즌에는 디트로이트에게 복수를 하며, NBA 결승에 진출했다. 상대는 더크 노비츠키가 버티고 있는 댈러스 매버릭스. 댈러스가 첫 두 경기를 가져가며 기선을 제압했다. 역사상 먼저 2패를 한 뒤, 우승을 한 팀은 없는 상황. 히트는 견제가 심한 오닐 대신 웨이드에게 프리롤을 주고 공을 몰아준다. 웨이드가 3, 4, 5경기에서 각각 42점, 36점, 43점을 퍼부으며 마이애미의 역전을 이끌어 낸다. 결국 4대 2로 마이애미는 우승을 차지했고, 웨이드는 결승 MVP에 선정되었다.
다만, 이 결승은 댈러스 팬들에게는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웨이드가 돌파를 할 때마다 미친듯이 심판들이 파울을 선언해, 자유투를 끊임없이 줬다는 것이 쟁점.[14]
ESPN의 필진인 홀린저는 이 파이널 시리즈를 조던,던컨,오닐의 시리즈를 넘어 역대 최고의 파이널 퍼포먼스에 놓기도 했다.
이후 06-07시즌 리그진행 중반부까지 당해년도 MVP였던 노비츠키보다 높은 PER로 1위를 찍고 자유투도 커리어 유일 80퍼센트대를 돌파하는 등 돌파와 미드레인지를 모두 갖춘 완전체 슈팅가드로서 퍼스트팀 입성은 무난해보였다. 하지만 이후 불의의 어깨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이후 확연히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전해년도 챔피언이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광탈하는 일에 일조하게 된다. 07-08시즌은 잔부상에 신음하며 아예 ALL NBA 팀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오프시즌에 벌크업하고 신체 밸런스를 잡고 맞이한 08 올림픽에서 그동안의 한을 다 쏟아내는 듯한 멋진 플레이를 보인 후 맞은 08-09 시즌 웨이드는 NBA 사상 최초로 1시즌에 2000득점, 500어시, 100스틸, 100블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ㅎㄷㄷ 평균 득점 1위에, 슈팅가드로서 조던과 티맥에 이어 PER 30의 벽을 뚫는 등 굴지의 효율성을 보여주었다. 수비왕 3위에 올랐던 것은 덤.
하지만 오닐이 떠난 후, 변변한 동료가 그다지 없던 웨이드는 마이애미를 다시 결승은 커녕,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까지 이끌 수도 없었다.
2010년 여름, 자유계약이 되었지만, 마이애미는 그와 재계약을 맺었다. [15] 그리고 크리스 보쉬를 영입하면서, 드디어 웨이드에게 믿음직스러운 파트너가 생겼다!
그리고 7월 9일, 르브론 제임스도 마이애미로 온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돈을 저 셋한테 다 썼으니 남은 선수들은 뭘로 때울거임
10-11 시즌, 웨이드, 제임스, 그리고 보쉬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는 NBA 결승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본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르브론의 역대급 역귀짓과 더불어 절치부심하고 돌아온 더크 노비츠키가 맹활약한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패배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거기에 디펜시브 퍼스트팀을 노리고 있었으나 코비에게 뺏기기도 했고.(아직도 코비의 이 디펜퍼스트팀은 논란이 꽤 있다.)
11-12 시즌, 드디어 고대하던 팀의 역대 두 번째 우승을 일궈냈다! 다만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예전의 위상을 되찾은 "The King" 제임스가 시즌 MVP에 이어 파이널 MVP까지 따내는 기염을 토했고, 부상에서 돌아온 박력왕이 상상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의도치 않게 같은 팀의 리더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웨이드를 지워버렸다.(...) 그나마 평균이라도 했다면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을텐데, 우리의 자비로운 달마 대사님께서는 시종일관 풀린 눈으로 안일한 플레이를 펼쳐 다른 방향으로 미친 존재감을 과시했다. 심지어 파이널 두 경기에서는 상대팀 선수들마저 당황스럽게 하는 4쿼터 폭풍 클러치 턴오버를 보여주시기까지 하면서 썬더 팬에게는 희망을, 히트 팬에게는 절망을 가져다 주기도 하셨는데... 재빠른 제임스의 헬핑과 러셀 웨스트브룩의 경험 부족 덕분에 급한대로 불은 잡았지만... 정말 매 경기 끝물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만들어내며 막판 똥줄은 이루어진다를 시전하셨다. 웨이드로서는 어찌되었건 이겼으니 다행.
두말할 필요없는 마이애미 히트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리더였으나, 르브론 제임스가 온 이후로 자연스럽게 2인자 역할로 밀린 데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의 최대의 강점이었던 엄청난 운동능력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약점이었던 외곽 슈팅 능력은 어찌된 일인지 향상은 커녕 제자리걸음 내지 퇴보하고 있는 관계로 전성기 시절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운동능력을 살린 돌파를 주무기로 삼던 가드들은 30세에 접어들면 대부분 안정적인 점프슛을 장착, 몸을 덜 쓰면서 효율적인 플레이를 함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보통인데[16] 웨이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 다만 이러한 기량저하가 노쇠화 때문인지 아니면 파업으로 인한 단축 시즌 때문에 시즌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벌어진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17]
다행히 12-13시즌 커리어하이 야투율을 찍으며 리바운딩에 성공. 운동능력 감소가 노쇠화가 아니라 시즌전 있었던 부상과 단축시즌 운영으로 인한 불규칙한 오프시즌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냈다.그리고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와 함께 삼각편대를 형성 정규시즌을 최다승률로 마감하고 역대 2위의 연승기록까지 만들어 냈다. 시즌 막판에 무릎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득점이 16점 이하로 떨어지며 고전했지만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파이널 4차전 등 중요한 순간마다 힘을 내며 자신의 3번째 우승반지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2013-2014 시즌에는 플레이오프를 대비해 무릎관리를 받기 위해 틈틈이 휴식을 취하면서 30경기 가까이 결장했다. 하지만...
파이널에서 체력저하 및 부상에 의한 경기력 저하로 마이애미의 시리즈 패배에 공헌하고 말았다.[18]
파이널 패배 이후 2년 4200만 달러의 잔여계약이 남아있었는데 옵트아웃을 선언했다. 웨이드의 몸 상태가 많이 안좋은데다 르브론이 클리블랜드로 돌아가면서 처량한 신세가 될 뻔 했으나 보쉬는 다행히 마이애미에 남았고, 웨이드 본인은 2년 $31M 재계약에 합의했다.
별 볼일 없었던 14-15 시즌후 웨이드는 팀과 연봉과 계약기간으로 줄다리기 협상을 하며 팀을 떠나는것 아닌가라는 의혹을 낳기도 하였으나 결국 1년 $20M에 재계약에 성공한다
15-16 시즌 샬럿 호네츠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원정 6차전 엘리미네이션 게임에서 상대 팀 에이스 켐바 워커가 미쳐 날뛰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샬럿의 추격을 이끌자 4쿼터 클러치 타임에 2번의 3점슛과 한번의 말도 안되는 터프샷, 그리고 블락으로 게임을 끝내버렸다. 정규시즌에서 3점슛을 2번 이상 성공시킨 경기가 딱 한경기인데 플레이오프 팀이 탈락할수 있는 위기에서 중요할때 3점슛을 2번 꽂아넣으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것을 입증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샬럿 팬과 4쿼터 클러치 타임 내내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도 볼거리.
토론토 랩터스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시리즈도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지만 3차전 경기 시작전 캐나다 국가가 제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은 엄숙하게 국가를 듣고 있는데 혼자서 슛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여 큰 논란이 되었다. 거기다 사과는 고사하고 무슨 문제냐는 뻔뻔함을 보여 모두의 어이를 털어버리는 중. 경기는 카일 라우리와 쇼다운을 펼쳤지만 마이애미가 91-95로 패배 정의구현 4차전에서는 토론토와 마이애미 두 팀다 망경기력을 보이는 가운데 웨이드가 마이애미의 멱살을 잡고 끌고갔고 결국 4쿼터 종료 12초전 동점샷을 넣으면서 연장전에 기여했다. 그리고 연장전에서 레이업을 시도했는데 공이 림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 엄청난 묘기샷이 되었다(...) 이 장면을 포함해 참으로 희한한 장면이 많았던 예능 경기였는데 아무튼 마이애미가 94-87로 승리를 하면서 시리즈 스코어는 2:2 동률이 되었다. 4차전 종료 후 사과했고, 이후 마이애미와 토론토는 7차전까지 가는 뜨거운 혈전을 펼쳤으며 웨이드도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7차전에서 마이애미가 패배하며 시즌이 끝나고 말았다.
15-16 시즌 이후 마이애미와의 재계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케빈 듀란트의 GSW 합류 발표 이후로 상황이 급변하여, 웨이드가 르브론, 클리블랜드 단장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클리블랜드에 도착, 미팅에 들어갔다. 루머수준으로 치부되었으나 곧 사실임이 밝혀지고, 스케쥴에 있던 몇몇 FA미팅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팬들은 클리블랜드의 부족한 샐러리 캡을 덜어내는 시나리오를 펼쳤으나, 결국 마이애미 보드진에 지쳤는지 2년간 40m행을 거절하고 시카고 불스와 2년간 47m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3.1.1 재계약 무엇이 문제였는가?
마이애미에 드래프트 된 이후로 마이애미에서 계속 활동하며 커뮤니티에서도 인기가 있었고 만년 2인자에 불과한 히트를 1인자로 올려놓기로 하는 등 큰 공헌을 세우며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동했음으로 당연히 그가 명예롭게 마이애미에서 은퇴할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나 결국은 그가 마이애미를 떠남으로 현실되지 않았다.
아직 웨이드의 주가가 높던 2010년에 웨이드는 마이애미에 우승을 더 가져오기 위해 르브론, 보쉬 영입을 위해 적극 물밑작업을 펼치고 실제 연봉도 서로 맞춰 조정하는 등 마이애미에 우승을 가져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실제 웨이드가 13년동안 마이애미에서 뛰는 동안 그가 연봉 1위였던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이번에는 조금 더 대우를 받기를 원했으나 마이애미는 이제 노쇠한 그에게 고작 $10M 연봉을 제시했던게 문제. 아무리 전성기가 지났더라도 팀에 세번이나 우승을 가져다 준 레전드 급 선수에게 너무하다는 반응들이 나온 가운데 . 시카고 불스, 덴버 너게츠, 댈러스 매버릭스, 밀워키 벅스 등에서 다년계약으로 연간 20M정도의 계약을 제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히트에서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로 연간 20밀리언 달러 수준을 제시했다고 했다. 하지만 웨이드는 그동안 쌓인게 있었던지 그보다 나은 대우를 원했고, 히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이유로 (세금에 대한 벌금 포함) 그 이상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웨이드는 자존심이 있는대로 상해 다른 팀들과 협상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시카고 불스와 2년간 47m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현실과 이상의 사이가 좁혀지지 않은 문제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히트는 코비의 말년을 봐서 그런지 아무리 프랜차이즈 스타라해도 이제 몸도 기량도 한물간 웨이드에게 연간 2000만불을 주는 경제적 부담을 앉기는 부담이되었고, 실제로도 어느정도 타당한 부분도 있다. 실제 웨이드에게 20만을 묶는다면 다음해 더 많은 프리에이전트가 나올때에 묶여 버리게 된다.
하지만 웨이드 입장에서 보면 더 많은 봉급을 전성기때 받을 수 있었는데도 자기 나름에서는 많은 할인에 깎아주기를 반복했는데 다른 모든 스타들이 가격대비 높은 연봉을 받는데 (올해 최고 대어중 하나라고 하는 마이크 콘리도 연간 3000만(!)을 받는다.)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3회 우승을 이끈 자신에게 그 정도도 못해주냐는 자존심이 컸던 것. 많은 분석과들과 기자들은 웨이드가 굳이 이런 결정을 내린대는 돈도 돈이지만 자존심이 더 컸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사건으로 국내의 히트팬덤도 상당히 흔들렸는데, 국내 히트팬들은 상당수가 웨이드를 오랫동안 응원했던 사람들이기 때문 [19] 웨이드를 따라 팬심을 시카고로 옮기는 사람들과 그래도 응원하던 팀을 버릴 수 없다며 플로리다에 남은 사람들로 나뉘었다.
3.2 시카고 불스
16-17 오프시즌에서 시카고 불스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기존 스타들이었던 데릭 로즈와 조아킴 노아가 각각 트레이드와 FA로 뉴욕 닉스로 자리를 옮겼고, 파우 가솔이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향하는 등 리빌딩쪽으로 노선을 잡는듯하다가, 중추인 지미 버틀러가 트레이드설이 돌았지만 결국 잔류했으며 라존 론도와 드웨인 웨이드를 영입했다. 론도와 웨이드는 보스턴과 마이애미가 라이벌리를 이룰 시절 경기에서 신경전을 많이 벌이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한 팀에서 뛰게 되었으니 꽤 묘한 상황.
4 이모저모
- 패션 테러리스트로 유명한 누구누구와는 다르게 NBA를 대표하는 패셔니스타이다. 옷 잘 입기로 유명해서 각종 패션제품들의 디자인 및 브랜딩에도 직접 참여할 정도. 사진
- ↑ 웨이드는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데뷔 이후로 13년을 함께 해 온 마이애미 히트를 떠나 2016년 7월에 시카고 불스로의 이적을 결정했다.
- ↑ 2010년 9월 에스콰이어 메거진 인터뷰에 따르면 드웨인 웨이드의 이름은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지었는데, 할머니께서 아버지 이름 철자를 dwayne이 아니라 dwyane으로 지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영문기사 철자 틀리는 선수 1위에 뽑히기도 했다.
- ↑ 2003년 드래프트 측정 결과 맨발 신장 6' 3.75" = 192.4cm, 착화 신장 6' 4.75" = 194.9cm 드래프트 익스프레스 홈페이지
- ↑ 국내•외를 막론하고 히트팬과 기자들은 그를 '마이애미 히트의 영혼과 심장(Miami Heat's Heart and Soul)'이라고 표현했다.
- ↑ 현재는 시카고 불스 소속이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표기.
- ↑ 웨이드의 소포모어 시즌부터 함께하며 웨이드와 히트의 첫 우승을 함께 일궈낸 샤킬 오닐이 지어준 별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돌파 능력, 빠른 공격 스타일 등의 플레이 특징을 가리키는 별명이다. 웨이드의 별명 중 가장 유명한 별명이며 그의 전성기 시절을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많이 쓰인다.
- ↑ 2013년 NBA 우승직후 인터뷰에서 샴페인에 취해 "Call me Three"를 반복해서 말하는 영상에 착안하여 나온 별명. 3번의 우승과 자신의 등번호 3번을 중의적으로 가리키는 별명이다.
- ↑ 가드치고는 높은 리바운드 수치와 가드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의 야투 성공률과 블락 수치, 낮은 3점슛 시도개수와 성공률(그리고 08-09 이후로는 리그 상위권에 드는 포스트업 기술 및 성공 지표)등의 특징이 합쳐져 나온 별명이다.
- ↑ 1픽 르브론 제임스 3픽 카멜로 앤써니 4픽 크리스 보쉬 5픽 웨이드. ㅎㄷㄷ
- ↑ 제임스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NBA 드래프트에 이름을 넣었다.
- ↑ 끝에 "코닥 모멘트" 라고 해설 하시는 분은 바로 이분.
- ↑ 사실 부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운도 작용해서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보쉬와 르브론이 마이애미로 오면서 혹사의 정도는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된다.
- ↑ 오닐은 LA에서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웨이드와는 더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오닐이 이적한 후에도 둘은 친하다.
- ↑ 사실 이 문제는 이 시즌 있었던 핸드체킹룰 변화의 영향이 크다. 코비가 35득점했던 시즌이 바로 05-06, 스윙맨들이 마음껏 날아다녔다. 웨이드는 정규시즌에서는 그렇게 많은 수혜를 입지 못했던 편
- ↑ 계약이 만료된 후에 재계약을 했는데, 그 이유는 마이애미가 살기 좋은 도시라서인것도 있지만 NBA에서 원하는게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를 한 연고지에 묶어두기' 때문이기도 하다(시카고의 조단, LA의 코비처럼). 리그 룰에 의하면 원 소속 팀은 다른 팀에 비해 계약 기간을 1년 더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팀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네의 농구스타를 계속 묶어두기 위한 아주 좋은 미끼인것이다. 계약 금액 전부가 보장이 되는 NBA에서, 다른 팀들보다 1년 긴 장기간 계약은 말그대로 선수에게 돈을 쏟아부어주는 것이다. 1년 계약 연장으로 한 2000만 달러가 보장되니... 웨이드는 태생지인 시카고를 고려해봤지만, 역시 쇼미더머니는 강하다. 그리고 웨이드도 마이애미에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니니.
- ↑ 대표적으로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가드들은 이런 플레이 스타일 변화를 통해 30세가 넘어서도 최고의 선수로 남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점프슛을 장착했다기보다는 젊었을 때부터 원래 점프슛이 완성되어 있던 선수들이긴 했지만. 다만 조던이나 코비는 커리어초창기부터 점프슛 능력을 보유하긴 했으나 "완성도" 면에서는 떨어졌다. 조던같은 경우 데뷔 당시부터 중거리슛능력이 매우 뛰어났으나 슛거리가 비교적 짧은 편이라 20피트(6미터)안쪽까지만 슛이 가능했고(이 정도면 국제규격으로는 거의 삼점라인과 비슷하지만, NBA는 이보다 1미터 정도 길다) 3점슛은 초창기 성공률이 19%를 기록할 정도로 없다시피했다. 조던이 삼점을 하나의 옵션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부터였다. 코비는 이와 반대로 루키시즌부터 삼점이 가능할 정도로 슛거리는 길었지만 성공률 면에서 좀 떨어진 경우. 두 선수 모두 20대 중~후반으로 넘어가는 기간에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
- ↑ 시즌 시작 전에 마음 먹고 제대로 놀았다는 말이 있다.
- ↑ 특히 4차전에서의 부진은 전시즌 파이널의 마누 지노빌리를 연상케하는 활약으로 마이애미팬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 ↑ 샤킬오닐과 같이 우승을 했을 때부터 응원하던 사람도, 르브론과 보쉬와 빅3를 이루었을 때부터 응원했던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