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따이한

Lai Đại Hàn / 𤳆大韓[1]

1 개요

베트남전시기에 파월 한국군 혹은 한국인 노무자과 현지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을 베트남에서 부르는 명칭. 한국인 아버지베트남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다. 정확한 숫자는 추산하기 힘들지만 부산일보 에서 추산하기로 5천 명이다. 이밖에 1만 명설, 2만 명설, 3만 명설까지 있다. 이들 대부분 주월 한국인 병사나 민간인에 의한 사실혼 관계나 매춘 등으로 태어났다.[2]

2 배경

베트남전의 복잡한 배경으로 인해 그때 한국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처럼 이들도 전쟁이 끝난 뒤 대부분 어려운 삶을 살게 된다. 당시 베트남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나뉘어 전쟁 중이었고 한국군과 한국 노무자들은 남베트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1973년 모두 철수하게 되는데 전쟁이 북 베트남의 승리로 끝나 남베트남이 멸망하자 이들의 운명도 비참하게 뒤틀리게 된다.

중앙일보 정치 실화 청와대 비서실에 연재된 기사에 따르면 1975년 베트남 패망 당시 한국정부는 일반의 인식과 다르게 이러한 한/베트남 혼혈들에 대한 정책을 수립했고 이들이 한국인과의 사이에서 난 게 분명하면 교민철수 행렬에 넣어주었다. 문제는 사이공 함락이 너무나 긴박하게 일어난 터라 일부 외교관 마저도 탈출에 실패했다는 점,[3] 한국 대사관에서 파악한 교민+ 라이따이한의 수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탈출을 요청했다는 점.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교민들이 전혀 무관한 현지인들에게 거액을 받고 라이따이한들의 자리를 매매하는 바람에 막상 탈출해야 할 2세들이 탈출하지 못한 이유로 남겨졌다고 한다.

파월 참전자들은 라이따이한 문제를 군인보다는 전역한 한국 출신 노무자들에 의한 것으로 주장한다. 그에 대한 이유로는 한국군이 전술기지 내에서 엄격하게 통제된 생활을 했다는 점[4], 한국군의 Tour of Duty가 1년이 약간 안 된다는 점, 당시에는 군인들이 현지에서 제대 후 기술자로 정착하거나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혹은 아예 기술자로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다만 반드시 엄격한 통제가 이뤄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실제 파병 한국군의 증언으로 한국군도 막장인 장교나 부사관이나 사병이 무단으로 나가 성폭행 사건을 저지르거나 사건을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적발된 케이스는 헌병대로 넘겨 처벌했으며, 실제로 일부 부대는 부대원들이 만에 하나 성폭행 사건을 일으킬까봐 '알아서' 일부 윤락업소로 사병들을 교대로 보내게 해주기도 했다는 증언이 있다. 참고로 월남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인 콩까이는 원래 이런 윤락업소 여성들을 일컫는 은어였다. (베트남어로 꼰가이con gái는 소녀, 딸이라는 뜻으로 단어 자체가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즉 정상적인 표현이다. 다만 조선인의 일본식 발음인 조센징 또한 단어 자체에는 비하적인 표현이 없지만 당시의 상황도 그렇고 화자들이 비꼬고 무시하는 태도로 한국인을 대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비하적인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 당시 한국인들에게 꼰가이=윤락업소여성 이었던 것)

어쨌든 참전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지에서 제대한 군인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자유롭게 지내면서 높은 확률로 '현지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스로 인정하는 이들도 꽤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재에도 일부 남성들이 동남아의 몇몇 나라에서 벌이는 것과 비슷하다.

미군 헬기 조종사로 백마부대에서 근무한 미군 출신의 증언을 따르자면 (48 AHC 공격 핼기 중대, 화력지원이나 부상자 수송임무를 맡음) 영내에서는 한국 사병들은 부대를 나가는 절차 자체가 엄격하고 도시에 있는 윤락업소 등은 비싸서 한국군 사병 월급으로는 택도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영관급 장교들은 도시로 나가는 것을 몇번 보았지만 그들이 윤락업소를 찾아간 건지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어서 간 건지는 모른다고 한다. 일단 나트랑과 닌호아에 주둔한 백마부대 한정이지만 상황상 다른 부대도 비슷했을 것이라고 보인다.

2.1 강간설

라이따이한이 한국군에 의한 강간으로 태어났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남베트남과 대한민국이 동맹국인 상황에서 남베트남을 돕기위해 파병된 대한민국 군인민간인 여성을 강간한다는 건 파병의 명분조차 흔드는 엄청난 대형 군기위반 사고이므로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처벌도 크기에 쉽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강간이 벌어진 경우도 군법회의에 넘겨지기 때문에 현지에서 강간죄로 군법회의가 벌어진 횟수를 파악해서 근거로 가져오지 않는 한 무턱대고 그런 일이 많았다고 주장하는 건 무고다. 다만 이에 대한 반박으로는 강간이 벌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알려지고, 또 군법회의에 넘어간다는 보장이 있냐는 것이다. 군인들끼리 비리나 범죄에 대해 쉬쉬하는 것은 일상다반사고 한국군이라고 해서 여기서 자유롭다고 말할 순 없다. 언론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한국군이 한국 사회에 보다 더 노출되어 있는 21세기에 와서도 심심치않게 온갖 비리, 은폐/축소 시도가 사건사고로 터지는 걸 보라.

전시에 베트남 해방 전선(베트콩)은 한국군을 포함해서 자신들과 적대시 하는 모든 파월군이 고문, 학살, 강간 등의 전쟁 범죄를 밥먹듯이 저질렀다고 선전하는 게 그냥 일상이었다. 심리전의 일환이었으니 그냥 이것을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5] 하더라도 그것 혹자는 강간설에 대해 라이따이한에 대한 불쌍한 이미지 때문인 듯 하다고 일축하기도 한다. 사실 라이따이한 문제와 파월군 성범죄 문제는 일단 별개로 봐야 하는 게 맞는다. 결혼이나 현지처 출산까지 모두 강간으로 묶일 위험도 있기 때문.

월남전 당시 타임즈지에는 강간혐의가 있는 한국군 두 명을 장교가 권총으로 즉결처분했다는 내용까지 적혀있다. 일단 사실인지 과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군율이 엄격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일부 언론들이나 학자들이 직접 취재를 가서 피해 여성들을 만난 적도 있고 이들은 스스로를 한국 군인들에 의한 강간 또는 윤간 피해자라고 하며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따라서 생존해있는 피해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들이 진술을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초대 공동대표로 있는 윤정옥 전 이화여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널리 알린 것으로 유명한데, 베트남전에서의 성범죄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베트남전에서의 성범죄와 살상에 대해 한국이 일본에 요구하듯이 사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늘 피해자로서 인식을 갖고 있었던 한국인들이기에 본인들이 '가해자의 자리에 서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라고 발언했다.출처 기사

3 차별과 편견

전쟁 때의 라이따이한이라면 헤어짐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치더라도 이후에 베트남과의 경제 교류 재개 이후 태어나게 된 신 라이따이한들 또한 적지 않다. 라이따이한과 그 어머니들은 편모 슬하에서 남편 없이 홀로 자식을 키우며 사는 것도 힘든데 자국에서도 심한 차별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이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닌데도 베트남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혼혈이 암묵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민족주의공산주의를 주사상으로 하는 새로운 베트남에서는 이들은 그들 부모가 외세와 결탁하여 태어난 출신성분이 나쁜 자식들로 취급된 것이다. 일설에는 베트남 정부에서 라이따이한 아이들의 진학을 제도적으로 막았다는 말도 있다. 게다가 자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들의 어머니도 우리나라말로 표현하자면 화냥년같은 끔찍한 욕을 듣는 일이 많다고 한다.

4 해결 방안

아버지 찾아주기, 교육지원 등 라이따이한에 대한 지원은 주로 민간단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라이따이한 남성이 재판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일도 있지만 2006년 국적 부여가 검토된 적이 있을 뿐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은 아직 없다.[6] 절대 다수의 라이따이한들은 한국으로부터 그 어떤 처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베트남과 수교가 제기 되면서 모 잡지에 관련 이야기를 어느 선교사분이 연재한 것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주민등록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아버지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아버지란 것이 책임지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인간 쓰레기

어떻게 보면 이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지금이라도 문제의식을 갖고 책임지는 자세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드문 예지만 어느 파병 한국군은 20년이 지나서 베트남으로 찾아가 옛날의 그녀를 찾아갔고 커버린 아들까지 만나 재회를 하고 사죄와 같이 아주 베트남으로 가서 재혼한 경우도 있다.그 외에 한-베트남 수교가 이뤄진 후 베트남으로 돌아와서 상대 여성과 자식을 찾던 한국인 남성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 중에는 위 사례와 마찬가지로 다시 합친 사례도 종종 있는 듯 하다.

  • 사례를 하나 기재해둔다. 베트남에서 현지처를 둔 한국인 기술자가 패전을 앞두고 현지처와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생활비 조로 집을 한 채 마련해주고 귀국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차별정책으로 재산을 다 빼앗긴 현지처는 자국인 군인과 재혼하여 자식을 두었으나 사별. 라이따이한 자녀에 대한 차별정책과 여자 홀몸으로 여러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한-베트남 수교 이후 베트남인 가족을 찾아 온 어떤 한국인을 통해 전 남편에게 국제전화를 통해 도움을 청했다. 전 남편은 귀국 후 가정이 깨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중동에 건설기술자로 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녀와 연락이 되었고 책임감을 느껴서 한국인 자녀들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베트남으로 귀국했다. 그 곳에서 다시 합쳐서 식당을 차리고 생활했는데 자신이 재혼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베트남 여성이 라이따이한 자녀만 데리고 오고 나머지 자식들은 몰래 숨겨놓고 돌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인 남편이 자신이 뭐라할 자격이 없다고 여겨서 그 자식들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콩가루집안 라이따이한과 모친들이 겪은 어려움, 한-베트남 수교 이후 이들을 둘러싼 여러 사실을 한꺼번에 알 수 있는 사례라 기재한다.이 사례의 남자는 그래도 최소한의 인간으로써의 양심은 있는 사례로 봐도 좋을 듯 싶다.

반대로 베트남과의 수교 이후 친부를 찾아 한국으로 온 라이따이한을 통해 남편이나 아버지의 베트남인 현지처의 존재를 알고 가정이 깨진 사례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건 남자 쪽 책임이 있으니 라이따이한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 억지다.

근본적 해결책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민간에서는 대한민국의 기독교 단체의 지원에 의해서 직업 훈련 학교 등의 지원 시설이 설립되었고, 2세, 3세를 위한 무상 직업 훈련과 한국어 교육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이 실시되기도 하였다. [7]

다만 현재도 베트남에 거주하는 파월 참전장병들은 라이따이한 아버지 찾아주기 등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베트남이 적화통일하면서 모든 한국사람들이 나몰라라 하면서 도망간 게 아니고 진정하게 어쩔수 없이 간 가족을 두고간 사람들도 있어서 다시 와서 눈물겨운 재회를 하는 경우도 있다.

5 일본 넷 우익들의 물타기

일본의 혐한들이 위안부 관련 인터넷 기사 댓글에 심심찮게 라이따이한을 언급하며 일본군 쉴드용으로 간간히 쓰고있다. 이들은 라이따이한을 한국판 위안부로 왜곡해서 알리거나 인식하고 있다. 라이따이한은 어디까지나 한국인과 남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2세들을 칭한 명칭이고 이들의 베트남내의 차별대우와 한국인 아버지들의 책임위안부 문제의 일본의 책임은 전혀 별개의 사안인데 이를 동일시 하며 어떻게든 자신들만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혐한초딩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라이따이한 문제는 한국인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개선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별 상관도 없는 위안부 문제에다 라이따이한을 갖다붙이며 위안부 문제를 축소/은폐하려는 것은 혐한초딩들의 저열한 수준을 드러내는 짓일 뿐이다.일본 NHK회장도 이와 비슷한 망언을 했다. 애초에 규모나 고의성, 잔학성 부분등 일본군이 압도적으로 나쁘다.

또한 위안부는 사령부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성노예 시스템이라 라이따이한 문제와는 거리도 상당히 멀고 훨씬 더 악질적이다. 위에 서술했듯이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대놓고 방관한 것도 아니고 부추긴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위의 윤정옥 전 교수처럼 한국에도 라이따이한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비교하며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 요구하는 것처럼 한국도 베트남에게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나뉘는 편. 라이따이한 문제의 책임자를 '가해 파월 한국군 장병/노무자'로 봐야 할지 '한국 정부'로 봐야 할지가 가장 큰 쟁점.

6 여담

뜬금없이 베트남의 연예인 쩐 티 킴 응안이 라이따이한이란 소문이 한국웹에서 돌았던 적이 있다. 이들의 근거는 이름에 킴(kim)이 들어간다고(...). 물론 아니다. 첨언하자면 베트남도 한자 문화권으로 중국의 한자발음을 도입한 나라라서 마찬가지 배경을 가진 우리나라와 유사한 발음이 상당히 많다. 베트남 인명도 알고보면 한자 표기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예컨대 호치민(胡志明)). 그래서 국제결혼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식 이름을 지을 때 베트남어의 한자표기를 찾아서 쓰기도 한다.

시사IN 기사에 의하면 아프리카판 라이따이한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심제프가 있다. 수가 많진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이슈가 되는 이유는 한국인 아버지들이 한국으로 도망을 가서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독일인이나 미국인 아버지는 대부분 태어난 사생아들을 본국으로 데려갔지만, 한국인 아버지들은 그냥 엄마에게 애들을 맡기고 사라져버렸다고. 기사 참고 여기나 저기나 실정은 똑같다. 동방예의지국 수준

7 유사항목

  1. '大韓'이야 '한국'을 의미하고, '𤳆'는 쯔놈문자인데, 경멸적인 어감으로 '혼혈'을 의미한다. '라이' 부분은 男(사내 남)과 來(올 래)가 한 글자로 이뤄진 것이다.
  2. 참고로 미군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최소 2만에서 최대 10만에 이른다. 미국 정부는 1987년부터 한국, 필리핀, 베트남 등 과거 미군 주둔지역에서 태어난 2세들에 대하여 이민을 받아주고 있다.
  3. 중앙정보부 무관인 이대용 공사와 몇명의 외교관, 그리고 100여 명의 교민은 결국 탈출에 실패한다. 이대용 공사 일행은 몇년 뒤에 겨우 추방의 형식으로 오게 되고 교민들은 1년 뒤 역시 호주나 태국을 통해서 귀환한다.
  4. 우리나라 비무장지대의 GP초소 생활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5. 사실 월남전의 '진실'이라는 건 앞으로도 알 수 없을 일이다. 전쟁범죄가 있었다 해도 한국 내 목격자들은 결국 노병들, 즉 가해자들이다. 얼마 전에 베트남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러 왔을 때 전우회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생각해보라.
  6. 사실 이들이 현재는 엄연한 베트남 국민인 이상. 한국에서 일방적으로 '전원에게 국적 부여'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은 현실 국제 정치에서 논란의 여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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