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즈미 야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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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d-lafcadio-hearn-1406.jpg
小泉八雲
1850년 6월 27일 ~ 1904년 9월 26일

1 개요

아일랜드영국출신으로 일본귀화소설가. 귀화하기 전의 이름은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

2 생애

그리스의 한 섬에서 태어나 2세 때 아일랜드로 이주해 교육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에 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하였다.[1] 19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기자활동을 하였으며, 1890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가게 되면서 일본과의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시마네 현의 이즈모(出雲)라는 곳에서 교사 생활을 하게 된다. 1895년 한 사무라이의 딸과 결혼한 후 일본에 귀화하게 되며, 이후 도쿄제국대학에서 강의하다 일본에서 사망한다. 당시 도쿄제국대학 교수로서의 그의 위상은 학생들과 사상계에서는 확고했으나, 그의 사상은 근대화, 제국화의 길을 걷던 당시 일본 정부와는 맞지 않았기에 결국 잘리게 된다. 그리고 그의 후임이 나쓰메 소세키로, 나쓰메 소세키는 '그' 라프카디오 헌의 후임이 되었다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2] 마츠에에 있는 그가 살고 있던 집은 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그 옆에는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3 주요 작품 및 특징

주요 작품으로는 《괴담》 외에 《치타 Chita》(1889), 《동쪽 나라에서 Out of the East》(1895), 《마음 Kokoro》(1896), 《부처의 나라 선집 Gleanings in Buddha-Fields》(1897) 등 여러 권이 있다. 작품의 특징은, 그가 원래 서양인이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본풍 정서가 진하게 녹아 있다. 특히 《괴담》을 쓸 때에는 책을 찾아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부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 정서를 살려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이야기 자체에 저자의 각색이 많이 들어가 있다.[3]

그가 이렇게 일본의 괴담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영국과 미국에서 살아 오면서 현대 문명에 대한 회의감을 느껴왔고, 이로 인해 과학적인 것보단 영적이나 자연적인 것들에 더 큰 흥미를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1893년에 자신의 친구이자 일본학자인 바질 폰 체임벌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 이런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인생에 살아갈 목적을 부여해준 것은 영적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신, 악령, 수호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인류를 위해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살아갈 목적을 부여했고 자연을 경외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중략) 유령도 수호신이나 악령, 신도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은 전기와 증기, 그리고 숫자의 세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건 정말 허무한 일입니다.

4 그 외

서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진하게 풍기는 일본 특유의 정서때문에 박경리가 싫어하던 작가이기도 했다.

국내에 번역된 이 작가의 책을 찾고 싶다면, '코이즈미 야쿠모' 라는 이름보다 귀화 전의 이름인 '라프카디오 헌' 으로 된 책이 많으므로, 이 이름으로 찾아 볼 것.

동방 프로젝트의 제작자 ZUN의 발언에 따르면 오리지널 앨범에 등장하는 캐릭터 비봉클럽의 멤버 중 마에리베리 한야쿠모 유카리가 그의 이름과 연관이 있는 캐릭터로 보이며, 더 나아가 메리 = 유카리 설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세한 내용은 마에리베리 한 항목 참조.

  1. 이로 인해 외모가 흉해졌으며,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사진은 대부분 왼쪽 눈을 가리거나 오른쪽 얼굴만 찍힌 상태다.
  2. 금전적인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에 귀화하여 일본국적을 얻은 뒤 외국인으로써의 특혜가 사라진 코이즈미 야쿠모의 월급은 라프카디오 헌일 때의 비해 절반으로 줄고 세금이 늘어나는 등의 상대적 불이익이 생겼기에 동정론도 있었지만, 애초에 일본인으로 귀화를 해놓고도 외국인일 때의 특혜를 바란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3. 이에 영향을 받은 ZUN이 동방프로젝트의 스토리를 이런 스타일로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