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Rogers Hornsby 로저스 혼스비 |
출생 | 1896년 4월 27일(텍사스주 윈터스) |
사망 | 1948년 8월 16일(일리노이주 시카고) |
국적 | 미국 |
포지션 | 2루수[1]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15년 자유계약(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소속팀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15~1926) 뉴욕 자이언츠(1927) 보스턴 브레이브스(1928) 시카고 컵스(1929~193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33)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1933~1937)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로저스 혼스비 | |
헌액 연도 | 1942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8.1% (5회) |
1 개요
엄청난 커리어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상 최고의 2루수이자 최고의 우타자 중 한 명.[2]
2 상세
통산 타율이 무려 .358(홈 .359, 원정 .358). 혼스비의 위에는 1명, 타이 콥(.366)뿐이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타율 10위권에 들어가는 야수들 중 우타자는 혼스비 뿐이다. 그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 또한 혼스비는 콥(11회)과 토니 그윈-호너스 와그너(8회) 다음으로 많은 7번의 타격왕을 차지했다. 6회 이상 수상자 7명 중에서 우타자는 그와 와그너 단 두 명 뿐이다.
그럼 단순한 똑딱이였는가하면 그것도 아닌게 통산 장타율은 .577, OPS는 1.010이다. 1루수나 코너 외야수가 아닌데 통산성적에서 10할대의 OPS 혹은 2할 이상의 순장타율을 기록한 야수는 중견수 윌리 메이스와 유격수, 3루수 알렉스 로드리게스, 단 두 명이다. 그리고 A-ROD의 성적에 대한 모두가 알고 있다. 배리 본즈와 함께 2000년대 초반 자이언츠의 살인타선을 이끌었던 역대급 공격형 2루수 제프 켄트의 커리어하이와 통산성적이 비슷하다.
타자로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열 다섯명인데,[3] 이걸 두 번 해낸 사람은 테드 윌리엄스와 혼스비 뿐이다. 또한 4할 타율을 3번이나 달성해내면서 1920년대의 내셔널리그를 지배했던 탑클레스 타자었다.
프로 정신도 상당했는데, 몸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신문, 책, 영화도 보지않고 하루 12시간을 잤다. 눈을 보호해 선구안을 키우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테드 윌리엄스에게도 있다고 알려진)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신인 투수가 3연속 볼 판정을 받고 항의하자 심판이 " 공이 스트라이크였으면 혼스비가 말해줬을걸?"이라고 일축해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치지 않으면 볼. 어느 정도의 선구안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특이한 타격폼 또한 그 선구안에 한몫했는데, 홈플레이트 정 반대쪽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공을 기다렸다. 그런데 바깥쪽으로 공이 들어오는 족족 왼발을 앞으로 당겨버리며 모두 공략해냈다. 멀찍이 떨어진 덕에 몸쪽 높은 공에 대해삼진을 당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을 껏 잡아 당겨 장타를 양산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3 비판
선수로서는 위대했던 반면, 야구장 바깥의 인간으로써는 그냥 쓰레기였다. 선수 겸 감독으로 뛰기 시작한 이후로, 연봉 문제로 떼쓰기[4], 프런트 무시하기, 독단적인 작전에 황소고집에 기자들과는 언제나 최악의 사이였고, 이것 때문에 그토록 위대한 커리어에도 최초의 5인에서 밀려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똑같이 거칠기로 유명했던 타이 콥과는 또 다르게, 이 사람은 가족에게 조차 폭력적이었고 은퇴후 투자 실패와 알콜중독으로 본인과 가족의 인생을 망쳤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타이 콥은 선수시절 거칠긴 했어도 어느정도 선은 지켜 인종차별과 거리가 멀었으며 은퇴후 속옷 사업, 껌 사업등으로 엄청난 재산을 벌었고 너무 기대가 높아 엄하게 대했던 아들과의 갈등을 제외하면 가족들에게 늘 자상했으니 참으로 대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대공황때 10만불을 잃기도 했으니...
그렇다 해도 참으로 위대한 선수였기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만 그 시대에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아 영구결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