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이름 | 뤼시엥 로랑[1] (Lucien Laurent) |
생년월일 | 1907년 12월 10일 |
사망년월일 | 2005년 4월 11일 |
국적 | 프랑스 |
출신지 | 생모데포시 |
포지션 | 인사이드 라이트 |
신체조건 | 165cm / 66kg |
등번호 | -[2] |
소속팀 | CA 파리(1921-1930) FC 소쇼-몽벨리아르(1930-1932) 클럽 프랑세(1932-1933) CA 파리(1933-1934) FC 뮐후즈(1934-1935) FC 소쇼-몽벨리아르(1935-1936) 스타드 렌 FC(1936-1937) RC 스트라스부르(1937-1939) 툴루즈 FC(1939-1943) 베장송 RC(1943-1946) |
국가대표 | 10경기 / 2골(1930-1935) |
1 소개
월드컵 제 1호 득점자
2 생애
2.1 선수 생활
뤼시엥 로랑은 파리 인근의 생모데포시에서 태어났다. 로랑은 첫 커리어를 당시 세미프로팀이던 CA 파리에서 시작했는데 축구 선수로 뛰면서 푸조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로랑은 첫 월드컵이 개막되던 당시 A매치에 2번 출전한 22살의 신예 선수였고 형 장 로랑[3]이 훨씬 유명한 선수였다. 어쨌든 형제가 같이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역사적인 월드컵 첫 경기. 로랑은 인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했고 전반 19분에 기념비적인 자신의 첫 골을 터뜨렸다.
우리는 멕시코와 경기를 치르고 있었고, 남반구의 겨울인 탓에 눈이 오고 있었다. 내 동료 중 한 명[4]이 공을 중앙에 놓았고 나는 공의 흐름을 천천히 쫓아가 오른발로 발리슛을 때렸다. 모든 사람들이 기뻐했지만 우리는 그라운드 위에 나뒹굴지는 않았다. 아무도 당시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악수를 하고 우리는 경기를 다시 진행했다. 보너스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당시 끝까지 아마추어들이었다.
- 뤼시엥 로랑
5분 후 골키퍼 알렉스 데포의 부상 때문에 잠시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경기는 프랑스가 4대 1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아르헨티나와 칠레에게 프랑스가 내리 패하면서 2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월드컵 이후 로랑은 소쇼로 팀을 옮겼고 그 곳에서 2년을 보냈다. 그 무렵 월드컵 첫 득점의 프리미엄 때문에라도 로랑은 이후 1932년까지는 정기적으로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러다 프랑스 축구가 1932년 프로화가 되었고 로랑은 이후 저니맨 생활을 한다.
2차 대전 당시에는 베장송에서 뛰며 독일군 포로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2.2 은퇴 후
은퇴 후에는 트레이너 또는 유소년 코치로 축구계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1972년에 축구계에서 아예 은퇴한 후에는 양조장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 이후에는 월드컵 1호 득점자의 프리미엄과 초대 월드컵 출전 선수 중 상당히 장수했기 때문에 참 많은 월드컵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초반에 보면 거의 클리셰처럼 항상 이 사람의 인터뷰가 나온다
3 플레이 스타일&평가
당시 선수들에 비해 능력으로는 크게 나은 것이 없었지만 월드컵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수.
4 뒷 이야기
-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초대 월드컵에 참가한 프랑스 대표팀 멤버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조국의 월드컵 우승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여한은 없었을 듯...
5 수상
5.1 클럽
- 쿠프 드 프랑스 준우승 1회: 1928(CA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