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쭝런

중화민국 역대 총통
초대대행복귀, 2대, 3대, 4대, 5대
장제스리쭝런장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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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宗仁 (이종인) / Li Zong-ren

1 개요

李宗仁 (이종인). 광서성 계림 출신으로, 중국 국민당중화민국의 군인으로, 중화민국 총통 대행을 역임했다.

2 상세

원래 광서군벌 육영정 휘하에 있었으나 1920년 육영정이 광서군벌에 패배하고 나서 혼란이 오자 1922년 광서자치군 제2로 총사령관을 자칭했다. 이후 1923년 국민당에 가입하고 광서정계군을 조직했다. 이후엔 광서성을 장악하고 운남에서 쳐들어온 당계요를 격퇴하기도 하였다. 북벌 때엔 북경정부측의 오패부와 손전방 등의 군벌을 격파했으며 상해 사건 때 장제스를 지지했다. 그러나 장제스가 군대 개편을 시도하자 1929년 리쭝런은 장제스에 반란을 일으키나 얼마 안 가 패배하고 홍콩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반장전쟁 때도 참전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또 패배했다. 결국 영 좋지 않은 사정으로 장제스와 리쭝런은 다시 손잡게 된다.

중일전쟁 때 리쭝런은 제5관구사령관으로 일본군에 항전해 쉬저우 전투와 타이얼좡 전투를 진행해 타이얼좡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이 타이얼좡 전투는 중일전쟁을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승전이었다.

이로 1943년 군사위원회위원장한중행영주임이 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 군사위원회위원장북평행정주임이 되었다. 이후 공산당과 싸웠으며 1948년 중화민국 부총통에 당선되었다. 장제스가 국공내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잠깐 하야하자 총통대리가 되었으며, 공산당과 평화협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국민당내 반발 등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국민당은... 안습 실제로는 장제스가 이쭝런을 앉혀서 장강을 경계로 공산당과 나눠가지려고 했는데, 공산당이 이기고 있는데 이를 받아들일리 없었고, 공산당은 전범 장제스를 처벌한 후에야 협상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는 실질적인 국민당의 오너인 장제스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리쭝런은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

이후 국공내전에서 패배하고 장제스와 대립이 계속되자 리쭝런은 미국으로 망명해 버렸다. 1950년 하이난 방어에 실패한 바이충시가 타이완으로 건너가려 하자 그에게 미국 망명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충시는 뿌리치고 타이완에 들어간다. 솔직히 리쭝런 따라 미국 가봐야 미국에서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것도 아니고 권력 나올 일도 없었으니... 장제스가 권력에 복귀하자 뉴저지에서 격렬히 항의했지만 그가 장제스를 막을 수단은 없었고 그만 개털됐다. 1954년 부총통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던 중, 안면이 있던 저우언라이가 초청하자 1965년 리쭝런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망명했고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환영을 받으며 왔다. 이는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프로파간다로 이용되었다. 장제스가 무지 빡쳤다 카더라 1969년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3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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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국대업에 등장한 리쭝런. 어찌 생긴건 리쭝런보단 천청과 비슷한 듯 하다.
  1. 하지만 후반부 임기는 리쭝런의 미국행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수행되지 않았고 장제스의 새로운 총신으로 떠오른 천청이 실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