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스팀보트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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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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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WWE, NWA, WCW 소속의 프로레슬러

타이탄트론[1]

1 소개

본명은 리처드 헨리 블러드로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78년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보디빌딩에 열심이었고, 본명인 릭 블러드로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그러나 에디 그레이엄의 권유로 다소 악역같은 이름의 릭 블러드가 아닌 리키 스팀보트[2]를 링네임으로 사용했다.

1985년에 WWF에 데뷔해 어머니의 혈통 덕에 동양인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무술가 기믹의 더 드래곤이란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미스터 후지[3]나 허큘리즈,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 등과 대립하다가 마초맨 랜디 새비지와 레슬매니아 3에서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 매치를 가져 명경기를 만들며 조지 "디 애니멀" 스틸의 도움으로 승리해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 된다. 역대 최초로 레슬매니아에서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 바뀌었으며, 당일 메인 이벤트인 헐크 호건안드레 더 자이언트를 뛰어넘는 평가를 받았다.[4]

그렉 "더 해머" 발렌타인에게 패배해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잃은 뒤 NWA-WCW에 이적해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지만 1989년 한 해만 활동한 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거쳐 다시 WWF로 돌아갔다. 그리고 WCW로 돌아갔다가 1994년에 은퇴했다. NWA 활동 당시 릭 플레어와의 라이벌리로 유명했는데, 1989년에 3번 맞붙어 3번 다 5성 경기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1989년 4월 2일 클래쉬 오브 챔피언스에서는 릭 플레어를 더블 암 치킨 윙으로 항복시켜 그때 기준으로 유일하게 릭 플레어를 항복시킨 사나이라는 영예도 거머쥐었다.[5]

ROH에선 오만한 CM 펑크의 멘토를 맡은 이후 2005년에 다시 WWE로 복귀한다. 2009년에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한편 레슬매니아 25에서 크리스 제리코와 맞서 싸우는 레전드 레슬러 중 한명으로 등장했다.[6] 이 시기 하우스쇼에서도 경기 상대로 나섰던 크리스 제리코는 인터뷰에서 리키 스팀보트가 웬만한 현역 레슬러 85%보다 경기력이 뛰어나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2 트라비아

브렛 하트에 앞서 인기를 끌은 "체구가 작은 슈퍼스타"로 볼 수 있다. 신장이 불과 178cm로 브렛 하트의 공식 신장인 185cm보다 작다. 브렛 하트는 인터뷰에서 리키 스팀보트와 마초맨 랜디 새비지가 작은 체구의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준 인물들로 깊이 존경한다고 밝혔다.

아들인 리치 스팀보트가 한때 NXT에서 활약했지만 부상으로인한 수술 때문에 활동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1. 크리스 제리코를 상대할 때 그의 현역시절이 아닌 WWE에서 잠깐 뛰었던 울티모 드래곤의 등장음악을 재활용하였다.
  2. 하와이 레슬러인 새미 스팀보트와 흡사하게 생겨서 붙은 이름
  3. 훗날 요코주나의 매니저가 되는 레슬러
  4. WWE선정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경기 100선 3위이자 레슬링 옵저버 선정 1987년 올해의 경기다.
  5. WWE 선정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경기 100선 4위에 선정되었다.
  6. 당시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 공중기까지 시전했으며, 지미 스누카와 로디 파이퍼가 초반에 제거되면서 사실상 1:1로 크리스 제리코를 상대해 분전했다. 백래쉬 2009에서는 크리스 제리코와 1:1로 10분이 넘는 경기를 소화했다. 대체로 이벤트성 레전드 매치는 스쿼시 매치 및 다른 현역 레슬러를 붙여놓는 태그팀 매치인 한편 경기가 루즈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 걸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