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WWE 명예의 전당(WWE Hall of Fame)은 WWE 주최로 1993년부터 개최된 행사로 레슬매니아 전야 행사로 개최된다.
2 WWE 명예의 전당 멤버
따로 문서가 없는 사람들만 행적을 소개한다.
2.1 역대 헌액자
2.1.1 1993년 헌액자
- 안드레 더 자이언트 - WWE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
2.1.2 1994년 헌액자
- 아놀드 사카랜드 :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레슬러로 활약하다가 은퇴 후에는 브루노 삼마르티노, 밥 백런드의 매니저를 맡았다. 2007년 82세로 사망했다.
- 고릴라 몬순 : 1960년대에 WWWF에 데뷔한 후 선수 생활 대부분을 WWWF에서 보냈으며 은퇴 후에도 빈스 맥마흔 시니어와의 친분으로 WWWF 임원으로 재직했다. 해설자로도 활동했고, 1993년에는 각본상 WWF 회장을 맡기도 했다. 62세이던 1999년 심부전으로 인해 사망했다.
- 치프 제이 스트롱보우 :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했다. 1970년대 WWWF에 데뷔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 기믹으로 활동했지만 실제로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다. 2012년 83세로 사망했다.
- "네이처 보이" 버디 로저스 : 사후 추증. 1940년대에 데뷔해 1960년대까지 활동했다. 릭 플레어의 별명인 네이처 보이의 원조로, 실제로 릭 플레어의 기믹은 버디 로저스의 것을 상당수 차용했다. 피겨 포 레그락의 원조이기도 하다. 1992년 71세로 사망했다.
- 제임스 더들리 : 프로레슬러는 아니고 원래 니그로리그 출신 야구선수였다. 은퇴 후 아메리카 흑인으로는 최초로 대규모 경기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빈스 맥마흔 주니어의 조부인 제스 맥마흔에게 경기장을 대절해주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맥마흔 일가와 인연을 맺었는데 빈스 맥마흔 주니어가 WWF를 물려받은 후에도 영구 고용이 보장됐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였다고. 2004년 94세로 사망했다. 더들리 보이즈와는 관계가 없다.
- "클래시" 프레디 블래시 : 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의상으로 유명했으며 이후 더 락이나 크리스 제리코 등의 의상도 블래시의 영향을 받았다. 은퇴 후에는 악명 높은 악역 매니저로 활약했다. 2003년 85세로 사망했다.
- 보보 브라질 :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한 흑인 프로레슬러로, 초창기 흑인 레슬러로서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1998년 73세로 사망했다.
2.1.3 1995년 헌액자
- "빅 캣" 어니 레드 : 원래 미식축구선수로 오프시즌에 짬짬이 프로레슬링을 하다가 1969년부터 아예 프로레슬러로 전향했다. 1980년대까지 NWA, AWA, WWWF, WWA, NWF 등에서 활동했다. 대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대략 3년을 더 살다가 2007년 68세로 사망했다. 여담이지만 부시 가문과 친분이 있어, 200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지 워커 부시를 지지했다.
- 조지 "디 애니멀" 스틸 :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몬스터 기믹의 원조. 1980년대 중반부터는 선역으로 전환했다. 의외로 프로레슬러가 되기 전에는 교사로 일했었다고.
- 더 그랜드 위자드 : 사후 추증. WWWF와 WWF 시절 프레드 블래시, 캡틴 루 알바노와 함께 악명 높은 악역 매니저였다. 1983년 심장마비로 인해 57세로 사망했다.
- 페드로 모랄레스
- 이반 푸스키 :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폴란드 출신 프로레슬러. 프로필상으로도 5피트 8인치(173cm)인 단신이었지만 빌리 그레이엄, 스탄 한센, 브루저 브로디 같이 자신보다 키가 한참이나 더 큰 선수를 상대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키만 작았을 뿐이지 보디빌더를 하면서 체중이 100kg에 육박했던지라 1978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대회(World's Strongest Man)에 나가기도 했다.
- 안토니오 로카 : 사후 추증. 194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활동했다. 이탈리아 태생의 아르헨티나인으로, 아르헨티나 백브레이커의 원조. 간암으로 투병하다 1977년 49세로 사망했다.
- 페뷸러스 물라 : 최초의 여성 헌액자.
2.1.4 1996년 헌액자
- "바론" 마이클 시클루나 : 1950년대부터 1983년대까지 활동한 몰타 공화국 출신 프로레슬러. 주로 악역으로 활동했으며 WWWF 시절 월드 태그팀 챔피언을 지냈다. 2010년 80세로 사망했다.
- 빈스 맥맨 시니어 : 사후 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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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슈퍼플라이" 스누카: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 1980년대 중반 WWF에 데뷔하며 당시 WWF에는 생소하던 공중살법을 구사하며 인기를 끌었다. 2015년 9월 명예의 전당 명단에서 제명됐다. 1983년 당시 연인을 살인한 혐의를 받았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일이 있었는데, 이후 자서전에 해당 사건을 언급한 내용과 과거 법정 증언 내용이 상당 부분 달라서 재수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 조니 로즈 :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프로레슬러. 선수로서는 커다란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은퇴 후 20년이 넘도록 수많은 제자를 육성했다.
- 팻 패터슨
- "캡틴" 루 알바노 : 1950년대부터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WWWF와 WWF에서 악역 매니저를 맡았다. 2009년 76세로 사망했다.
- 킬러 코왈스키 :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한 폴란드계 캐나다 출신 프로레슬러. 주로 악역을 맡았는데 1952년 경기 중 상대 선수였던 유콘 에릭의 귀를 자른 사건[1]으로 악명이 더욱 높아졌다. WWF에서 활동하던 때에는 브루노 삼마르티노에게 도전하는 입장이었지만 매번 물만 먹었다. 은퇴 후에는 트레이너로서 트리플 H, 차이나 등 수많은 제자를 육성했다.
- 발리언트 브라더스 (지미 & 조니) : 1970년대 WWWF에서 활동한 태그팀. 실제 형제는 아니고 각본상 형제였다.
2.1.5 2004년 헌액자
- 바비 "더 브레인" 히난 :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프로레슬러로 활동했고, 은퇴 후인 1984년부터 수많은 악역 레슬러의 매니저를 맡았다. 히난 패밀리란 말이 나올 정도로 동시에 여러 선수의 매니저를 맡았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 여러 레슬러나 팬들도 역대 최고의 매니저로 히난을 꼽을 정도.
- 돈 무라코 :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 전성기이던 1980년대에 WWF에서 헐크 호건, 밥 백런드, 리키 스팀보트 등과 대립했다.
- 빅 존 스터드 : 사후 추증.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 2미터가 넘는 키에 큰 체구로 거인 기믹으로 활동했으며 WWF 시절에는 마찬가지로 거인 기믹이었던 안드레 더 자이언트와 대립하기도 했다. 1989년 로얄 럼블 우승자. 악성 림프종 때문에 1995년 47세로 사망했다.
- "슈퍼스타" 빌리 그레이엄 : 별명 그대로 1970년대의 슈퍼스타로, 그레이엄의 등장으로 프로레슬링 역사가 바뀌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 이후 등장하는 헐크 호건이나 랜디 새비지처럼 뛰어난 경기력보다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관중을 휘어잡는 스타일의 원조로, 실제로 헐크 호건도 그레이엄의 광팬이었다. 입담이 출중해 릭 플레어도 그레이엄의 입담을 본받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 그렉 "더 해머" 밸런타인 : 1970년대에 데뷔한 후 WWF를 비롯해 WCW, NWA 등 여러 단체를 종횡무진하며 40여 개의 챔피언 벨트를 따냈다.
- 정크야드 독 : 사후 추증. 1970년대에 데뷔해 1980년대 WWF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WWF에서 챔피언이 된 적은 없지만 개목걸이나 체인을 두르고 나와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8년 딸의 졸업식에 참가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45세로 사망했다[2].
- 제시 "더 바디" 벤추라 :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했다. 프로레슬러로서 WWF에서 챔피언 벨트를 따낸 적은 없지만, 언변이 좋았던지라 은퇴 후 해설가를 맡아 1987년부터 1990년까지 4년 연속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서 선정한 최고의 해설가로 뽑혔다. 이후 정치계에 입문해 미네소타주 브루클린 파크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1998년에는 미네소타 주지사에도 출마해 당선됐다.
- 티토 산타나 : 1970년대에 데뷔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WWF에서 활동하며 잘생긴 외모로 여성 관객의 인기를 끌었다.
- 피트 로즈
- 서전 슬로터
- 할리 레이스 :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 NWA에서 활동하던 197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8번의 NWA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지내며 이 시기 NWA의 상징으로 불렸다.
2.1.6 2005년 헌액자
- "미스터 원더풀" 폴 온도프 : 1980년대 WWF에서 헐크 호건과 대립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로디 파이퍼와 태그팀을 맺고 헐크 호건과 미스터 T의 태그팀을 상대하며 레슬매니아 1의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
- "카우보이" 밥 오튼 주니어 :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NWA와 WWF에서 활동하면서 헤비웨이트 챔피언 감으로 거론될 정도로 기량은 뛰어났으나, 평소 행실이 그리 좋지 않아 헤비웨이트 챔피언과는 거리가 있었다. 랜디 오튼의 아버지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 니콜라이 볼코프 :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WWF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WWF에서는 소련 출신이라서 반미주의자라는 기믹이었지만, 실제로는 크로아티아 출신이다.
- 지미 하트 : 통칭 공포의 주둥이. 화려한 의상과 메가폰이 상징이었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대표하는 악역 매니저.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젠트리스'라는 밴드의 보컬이었고, WWF와 WCW에서 활동하면서 몇몇 선수들의 테마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숀 마이클스의 Sexy Boy가 있다. 본명이 제임스 하트이고 한 때 하트 파운데이션의 매너지를 맡기도 했지만, 브렛 하트 등 하트 가문과 혈연 관계는 아니다.
- 헐크 호건 : 인종차별건으로 WWE에서 명예의 전당 빼고 모조리 제명.
- "라우디" 로디 파이퍼
- 디 아이언 셰이크 :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WWF에서 이란 출신 반미주의자로 활동했던 프로레슬러. 실제로도 이란인으로 프로레슬링을 하기 전에는 아마추어 레슬러였고,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당시 이란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레슬링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가 프로레슬러가 됐다.
2.1.7 2006년 헌액자
- 브렛 하트
- 윌리엄 "더 리프리지레이터" 페리 : 미식축구선수. 레슬매니아 2에서 열린 20인 배틀로얄에서 6명의 미식축구선수가 참가했는데, 그 중 1명이었다.
- "미스터 USA" 토니 아틀라스 : 1970년대 NWA에 데뷔해 한 때 NWA 최초의 흑인 챔피언 감으로 거론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WWF에 진출해 헐크 호건과 대립하기도 하고 1983년 락키 존슨과 함께 태그팀을 이뤄 흑인 최초로 WWF 태그팀 챔피언이 됐다. 1990년대 초반에는 약물에 빠져 노숙자처럼 지내기도 했지만 재기에 성공했다. 별명은 보디빌딩 대회에서 3차례 미스터 USA 칭호를 받은 것에서 유래됐다.
- 번 가니에 : AWA 공동 창립자이자 프로모터로 WWF에서 선수로 활동한 적은 없다.
자신이 사장이었다지만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10차례나 AWA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재임하는 등 프로레슬러로도 기량이 뛰어났다. 그러나 자신처럼 경기력이 탄탄한 선수들만 중용했던 탓에 1980년대부터 대세로 떠오르는 파워하우스 계열을 홀대하며 AWA 몰락에 부채질을 했다[3]. 2015년 89세로 사망했다. - 에디 게레로 : 사후 추증.
- 더 블랙잭스 (멀리건 & 잭 란자) :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AWA와 WWWF 등에서 카우보이 기믹으로 활동한 태그팀.
- 센세이셔널 셰리
- "민" 진 오컬런드 : 1970년대부터 AWA, WCW, WWF/WWE에서 활동한 아나운서. 원래 AWA의 링아나운서로 커리어를 시작해 인터뷰어도 맡다가 빈스 맥마흔에게 스카우트돼 1980년대 중반 WWF로 왔다. 1990년대 중반에는 WCW로 이적해 nWo가 결성된 후 헐크 호건과 인터뷰하는 등, 은근히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함께 했다.
2.1.8 2007년 헌액자
- "디 아메리칸 드림" 더스티 로즈 :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NWA, WCW, WWF 등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골더스트, 코디 로즈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130kg의 거구임에도 날랜 몸놀림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한편으로는 데스매치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터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각본진 등으로 일했다. 위암으로 투병하다 2015년 69세로 사망했다.
- 미스터 푸지 : 1970년대부터 WWWF에서 활동했으며 1980년대 중반 은퇴한 후에는 매니저로 전향해 요코주나 등 악역 레슬러들의 매니저를 맡았다. 하와이 태생으로 양친 모두 일본인이고, WWF에서는 일본인 기믹으로 활동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어를 거의 못했다고 한다. 2016년 향년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닉 복윙클 :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AWA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로, 릭 플레어에 앞서 버디 로저스의 스타일을 물려받아 비열한 챔피언으로 악명 높았다. 비열한 스타일과 달리 원래 기량은 뛰어났으나 상대의 스타일을 충분히 끌어내는 것이 악역으로서 자신의 역할이라며, "상대가 왈츠를 추면 나도 왈츠를 추고, 스윙댄스를 추면 나도 스윙댄스를 춘다."는 명언을 남겼다. 트리플 H가 한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언급했다. 2015년 80세로 사망했다.
- 와일드 사모안즈 (시카 & 아파 아노아이) :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WWF와 NWA 등의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21차례 태그팀 챔피언을 지냈다. 여러 레슬러를 배출하기로 유명한 아노아이 가 출신으로 분량상 아파와 시카의 아들들만 봐도, 아파의 장남 사물라는 사무(Samu)라는 이름으로 이종사촌 파투와 함께 WWF 헤드슈링커스란 태그팀으로 활동했고, 차남 로이드는 1990년대 중반 WWF에서 잠깐 활동했었고, 삼남 아파 주니어는 마누(Manu)라는 이름으로 2000년대 말 WWE에서 잠시 활동했고, 손자 랜스도 독립단체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고 있다. 시카의 장남 맷은 로지라는 이름으로 WWE에서 활동했고 차남은 바로 그 로만 레인즈다.
- 커트 헤닉 : 사후 추증.
- 제리 롤러
- 짐 로스 : 현대 북미 프로레슬링계를 대표하는 아나운서. 1970년대 중반 프로레슬링 아나운서를 시작해 1993년 WWF에 입사해 20여년을 함께 했다.
- 더 셰이크 : 사후 추증.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현역 시절에는 시리아나 요르단 같은 아랍 출신의 부호란 기믹으로 활동했다. 하드코어 레슬링의 선구자로, 일본에서는 조카인 사부와 함께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WWWF 시절에는 브루노 삼마르티노나 안토니오 로카 등과 대립했다. 셰이크란 링네임을 쓰는 프로레슬러들이 많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 "디 오리지널 셰이크"로도 불린다. 2003년 76세로 사망했다.
2.1.9 2008년 헌액자
- 고든 솔리 :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NWA의 주무대였던 플로리다 지역에서 활동한 아나운서. 1981년부터 1983년까지 3년 연속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최고의 아나운서로 선정했다. 1990년대 말 인두암으로 투병하면서 성대를 제거하면서까지 투병 생활을 이어갔으나 2000년 71세로 사망했다.
- 매 영
- 에디 그레이엄 : 사후 추증.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했던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모터. NWA 지역 챔피언을 다수 지내다가 1970년대 초 플로리다 지역 챔피언쉽(CWF)을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1980년대까지 플로리다는 NWA의 주무대로 자리 매김했고, 그레이엄 본인도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대 말 NWA 회장으로 재임했다. 그러나 투자 실패와 알콜 중독으로 55세이던 1985년에 권총으로 자살했다[4].
- "소울맨" 락키 존슨 : 캐나다 출신 흑인 프로레슬러. 1960년대부터 WWF를 비롯해 미국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선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더 락의 아버지다.
- 브리스코 브라더스 (잭 & 제리) : 형인 잭 브리스코는 원래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1965년 NCAA 전미학생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이후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해 1980년대까지 NWA 지역 챔피언 벨트를 다수 획득하면서 NWA의 인기스타로 군림했다. 그러던 1980년대 중반, 잭은 동생과 함께 보유하고 있던 짐 크로켓의 조지아 챔피언 레슬링(GCW) 주식 지분 대다수를 빈스 맥마흔에게 팔아남기면서 WWF로 이적했다. 이를 계기로 WWF는 전미를 주름잡는 단체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NWA는 상대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NWA의 여러 프로모터들은 잭을 비난해 결국 잭은 프로레슬링계를 떠났고, 2010년 68세로 사망했다. 형을 따라 프로레슬러가 된 동생 제리는 주로 형과 태그팀으로 활동했다. 형과 함께 WWF로 이적했는데 비난을 견디다 못해 프로레슬링계를 아예 떠난 형과 달리 제리는 잠깐이나마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애티튜드 시대가 저물면서 일선에서 물러나 로드 에이전트 일에 전념했다.
- "하이 치프" 피터 마이비아 : 사후 추증. 미국령 사모아 출신 프로레슬러. 1970년대 WWF에 데뷔해 치프 제이 스트롱보우와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2년 암으로 인해 45세로 사망했다. 더 락의 외조부로, 아파와 시카 아노아이의 아버지인 아미투아나 아노아이와 의형제를 맺어 아노아이 가문과도 돈독한 사이였다.
- 릭 플레어
2.1.10 2009년 헌액자
- 빌 와츠 :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모터. 오클라호마 스탬피드의 원조다. 1960년대 중반 WWWF에도 데뷔해 브루노 삼마르티노와 태그팀으로 활동했으나 얼마 못 가 턴힐해 대립했다. 1960년대 말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 등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를 설립해 단체 에이스 겸 각본진 수장으로 재직했다. 1979년 NWA에서 탈퇴해 UWF란 단체를 만들어 WWF와 NWA에 대항하면서 스팅 같은 유망주도 발굴해냈지만 1980년대 말 미국 남부의 불황으로 단체 흥행에도 타격을 입으면서 결국 UWF를 매각했다. 이후 WCW의 부사장을 맡아 일선에 복귀하지만 친아들 에릭 와츠를 대놓고 밀어주는 등의 행동으로 이에 반발한 기존 선수들의 이탈과 시청률 부진으로 인해 1993년 WCW에서 나왔다.
- 폰 에릭 패밀리 (프리츠 & 케빈 & 데이비드 & 케리 & 마이크 & 크리스) : 케빈 제외 사후 추증.
- 더 펑크스 (도리 Jr. & 테리)
- 도리 펑크 주니어는 원래 대학 때까지 미식축구선수였다가 1963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1969년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된 후 4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러로 칭송받기도 했다. 1980년대 말 동생 테리와 함께 카우보이 기믹으로 WWF에 데뷔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 트레이너로서도 많은 제자들을 육성했고, 1970년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했던 것을 계기가 돼 전일본에 외국인 계약을 주선하기도 했다. 클로버리프의 원조다.
- 테리 펑크도 형과 마찬가지로 대학 때까지 미식축구를 하다가 1965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1975년 잭 브리스코를 상대로 이기면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됐는데, 형제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된 건 펑크 형제가 처음이었다. NWA 챔피언이 되면서 이미 실력은 인정받았음에도 하드코어 매치나 데스매치에 도전하거나 50이 넘은 나이에 문설트를 시도하는 등,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보통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베테랑들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까봐 젊은 선수들을 상대하는 걸 꺼리지만 ECW 시절에는 신진 육성을 위해 젊은 선수들을 상대로 지는 것도 거리낌 없이 했다. 다만 매번 은퇴를 번복하며 일흔이 되고도 경기에 나설 정도로 과하게 몸을 혹사시킨 탓에 진통제를 달고 사는데다, 진통제 남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
-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 코코 B. 웨어 : 1980년대 WWF에 데뷔해 앵무새 프랭키를 데리고 다니며 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챔피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 때 오웬 하트와 하이 에너지란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리키 " 더 드래곤 " 스팀보트
- 하워드 핑클 : WWWF 시절이던 1970년대 중반부터 2002년까지 WWE 링아나운서를 맡았다. 릴리안 가르시아가 정식으로 RAW 링아나운서를 맡으면서 이후로는 WWE 홍보부에서 일하고 있다.
2.1.11 2010년 헌액자
- 안토니오 이노키
- 웬디 릭터
- 밥 유커 : 야구선수 출신 방송인. 레슬매니아 3 당시 메인이벤트였던 헐크 호건과 안드레 더 자이언트의 경기 때 링아나운서를 맡았다. 레슬매니아 4에서도 오프닝 배틀로얄 해설 겸 백스테이지 인터뷰어를 맡았는데, 안드레 더 자이언트가 인터뷰 도중 유커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유명했다.
- 테드 디비아시 시니어
- 고저스 조지 : 사후 추증.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 서부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레슬러로, 프로레슬링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처음으로 도입해 현대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5].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모피 코트나 향수를 뿌리면서 거만한 태도로 관중들을 대하는 등, 당시로서는 전에 없던 파격적인 캐릭터였던지라 악역이었음에도 팬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역대 최고의 악역이란 투표에서 1위로 뽑혔던 로디 파이퍼도 진정한 1위는 고저스 조지라고 말했다. 1963년 심장마비로 인해 48세로 사망했다.
- 모리스 "매드 독" 버숀 :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프랑스계 캐나다인 프로레슬러. 루나 버숀의 삼촌이다. 원래 아마추어 레슬러로, 1948 런던 올림픽에 캐나다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180cm가 안 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다져진 탄탄한 기본기와 별명 그대로 미친 개처럼 난폭한 스타일로 인해 현역 시절 내내 최고의 악역으로 손꼽혔다. 1987년 교통사고로 다리 한 쪽을 절단했고, 2013년 84세로 사망했다.
- 스튜 하트 : 사후 추증. 캐나다 출신 프로레슬러. 브렛 하트, 오웬 하트 등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 2차 대전 종전 후 프로레슬러가 됐고,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는 한편 자택 지하에 마련된 "던전"을 통해 수많은 레슬러들을 육성했다. 1992년 트레이너로서도 은퇴했다. 2003년 88세로 사망했다.
2.1.12 2011년 헌액자
- 숀 마이클스
- "핵소우" 짐 더간 : 각목과 성조기가 트레이드마크로, 애국자 기믹이었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헐크 호건 못지 않게 인기를 끌었다. 1988년 로얄럼블 우승자지만 로얄럼블 우승 외에 WWF 시절 챔피언이 된 적은 없었다.
- "불릿" 밥 암스트롱 :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조지아와 앨라배마 등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아들 4명도 모두 레슬러가 됐지만, 아버지의 링네임인 암스트롱을 그대로 쓴 3명은 묻혔고 실제 성인 제임스를 유지한 브라이언만 성공했다. 장남 조셉은 스캇 암스트롱이란 이름을 썼고 2006년부터 WWE 심판으로 일하고 있다.
- 써니
- 드류 케리 : 코미디언. 2001년 로얄럼블에 출전했는데 바로 뒷순번인 케인에게 겁먹고 자진 탈락했었다.
- 압둘라 더 부처 : 1960년대부터 활동한 프로레슬러. 기믹상 수단 출신이라 영어는 못한다는 설정이 있어 늘상 매니저를 대동해 다녔지만 실제로 아버지는 아메리카 원주민이고 어머니는 아메리카 흑인인 캐나다인이다. 유혈이 낭자한 경기를 주로 펼친, 하드코어 레슬링의 전설. 수단 출신이라는 기믹과 육중한 체구, 하드코어 매치로 인해 생긴 머리 여기저기에 생긴 상처들로 험악한 인상이었던지라 주로 악역으로 활동했다. 하드코어 레슬링을 주로 했던 탓에 WWE 명예의 전당 헌액을 두고 빌리 그레이엄은 반대를 표명했었다. [6]
- 더 로드 워리어즈 (로드 워리어 호크 & 로드 워리어 애니멀 & 폴 엘러링) : 로드 워리어 호크만 사후 추증. 1980년대 중반부터 GCW, AWA, NWA, WCW, WWF, 전일본, 신일본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한 태그팀. WWF 시절에는 리전 오브 둠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폴 엘러링은 AWA, NWA, WWF, 전일본 시절 매니저를 맡았다. 로드 워리어 호크는 2003년 심장마비로 인해 46세로 사망했다.
2.1.13 2012년 헌액자
- 밀 마스카라스 : 엘 산토, 블루 데몬과 함께 루차도르계의 전설로 손꼽힌다. 밀 마스카라스는 스페인어로 천 개의 마스크라는 뜻으로, 매 경기마다 다른 디자인의 마스크를 꼈다. 일본에서는 입장시 두 개의 마스크를 끼고 등장해 마스크 1개는 관중을 위해 객석에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 에지
- 포 호스맨
- 마이크 타이슨
- 요코주나 : 1980년대 말 원래 신일본에서 데뷔했다가 1992년 WWF와 계약했다. 250kg이 넘는 육중한 체구로 인해 스모선수 출신인 일본인 기믹으로 일본계 출신인 미스터 푸지를 대동하고 다녔다.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도 1차례 지냈고 헐크 호건, 디 언더테이커, 숀 마이클스와 대립하며 탑힐로 활동했지만 체중 관리에 실패해[7] 1997년 초 WWF에서 해고됐다. 이후 독립단체에서 활동하다가 2000년 협심증으로 인해 34세로 사망했다. 실제로는 일본인이 아니라 사모아계 미국인으로, 그 유명한 아노아이 가문 출신이다. 아파와 시카의 조카고, 로지와 로만 레인즈의 사촌형이고, 리키쉬의 외사촌동생[8]이며 우마가의 외사촌형이다.
- 론 시몬스
2.1.14 2013년 헌액자
- 믹 폴리
- 트리쉬 스트래터스
- 밥 백런드 : 브루노 삼마르티노를 잇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WWWF/WWF의 인기스타였다. 1978년부터 1983년까지 WWWF/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지내 브루노 삼마르티노 이후 2번째로 오랜 기간 챔피언으로 재임했다[9]. 하지만 WWWF를 물려받은 빈스 맥마흔 주니어는 WWF로 단체 이름을 바꾸면서 미국 전역 진출을 꾀했는데, 헐크 호건 쪽이 관중들에게 어필하기 낫다고 판단해 백런드를 일선에서 밀어냈다. 결국 1984년 WWF에서 탈단해 AWA나 일본에서 활동했다. 1990년대 들어 실질적으로 은퇴했지만 WWE나 TNA 등에서도 단발성으로 출연했다.
- 브루노 삼마르티노
- 도널드 트럼프
- 부커 T
2.1.15 2014년 헌액자
- 얼티밋 워리어
-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
- 리타
- 폴 베어러 : 사후 추증. 디 언더테이커의 매니저로 유명했다. 2013년 심장마비로 인해 58세로 사망했다. 케인의 소개 및 그의 아들들이 연설한 후 디 언더테이커가 깜짝 출연해 그를 추모했다. 안타깝게도 폴 베어러의 장남 마이클 무디도 2014년 9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 미스터 T
- 카를로스 콜론 시니어 : 푸에르토 리코 출신의 전설의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모터.
자신의 사장으로 있었다지만WWC 유니버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무려 26차례나 지냈다. 칼리토, 프리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 레이저 라몬 : 본명인 '스캇 홀'이 아닌 WWF 당시 활동명인 레이저 라몬의 이름으로 헌액되었는데, 이는 훗날 nWo의 WWE 명예의 전당을 위해 스캇 홀의 자리를 비운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근데 정작 같은 멤버인 케빈 내쉬는 디젤이 아닌 본명이다.그 전에 돈건놈이 잣되서 nWo가 들어갈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2.1.16 2015년 헌액자
- 랜디 새비지
- 아놀드 슈워제네거
- 리키쉬
- 더 부시웨커스 (루크 & 부치) : 1960년대 결성돼 30여년을 활동한 베테랑 태그팀. 1980년대까지는 NWA의 소속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원래는 브롤러 계열의 악역 태그팀이었으나 WWF에 데뷔하면서 더 부시웨커스로 팀 이름을 바꾸고 바보처럼 익살스런 행동을 하는 선역 태그팀으로 탈바꿈했다. 2명 다 실제 뉴질랜드인이라서 WWF에 오기 전 태그팀 이름으로 '더 키위스', '더 쉬퍼더스' 등을 사용했다.
- 얼룬드라 블레이즈
- 래리 즈비스코 : 브루노 삼마르티노의 제자로 원래는 선역이었으나 WWF에서 스승을 배신하면서 악역으로 활동했다. 1980년 WWF를 떠나 NWA, AWA, WCW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링네임은 1920년대 맹활약한 폴란드 출신 프로레슬러 스타니슬라우스 즈비스코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 래리 즈비스코는 미국인이다.
- 후지나미 타츠미 : 1971년에 데뷔한 일본 출신의 전설적인 레슬러로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 중. WWF 시절엔 헤비급&태그 팀 챔프를 지냈으며, 타 다체에서도 다수의 타이틀을 획득한 커리어가 있다. 드래곤 스크류와 드래곤 슬리퍼 등 이름에 '드래곤'이 붙는 기술들 다수를 직접 개발했고, WWF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역임했다.
- 케빈 내쉬
2.1.17 2016년 헌액자
- 스팅[10]
- 갓파더
- 페뷸러스 프리버즈 : 1980년대 텍사스의 WCCW에서 맹활약한 전설의 스테이블, 2명 이상의 태그팀원 전원을 태그팀 챔피언으로 인정하는 프리버드 룰의 시초가 바로 페뷸러스 프리버즈 이다.[11]
- 빅 보스 맨 : 사후 추증
- 재클린
- 스텐 한센 : 미국보다는 일본에서 유명한 레슬러로, 현재도 널리 쓰이는 기술인 래리어트의 창시자. 그의 피니쉬인 웨스턴 래리어트로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등등 수 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렸다. 참고로 WWE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WWWF시절에 참전한적이 있고 브루노 삼마르티노와는 철창매치로 챔피언전을 한적이 있다.[12]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옛날기믹이었던
빅 쟈니 확카우보이의 원조, 사실 거의 똑같다. 복장에 거친 경기운영과 피니쉬가 래리어트까지. 다른점이라면 래리어트를 한센은 왼팔로 쓰고 JBL은 오른팔로 쓴다는 정도 - 스눕 독 : 래퍼 스눕독. 그는 두차레 WWE RAW에 출연한적 있고 사촌인 사샤 뱅크스가 WWE에서 활동중이다.[13]
3 워리어 어워드
2015년부터 시행된 어워드로 2014년 얼티밋 워리어가 WWE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 행사장에서 이 사회의 숨은 영웅들을 위한 헌액 부분이 마련 되었으면 좋겠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는데, WWE가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워리어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을 기려서 '워리어 상'(Warrior Award)을 만들었다.
3.1 수상자
- 2015년 수상자 (첫 수상자)
- 코너 "더 크러셔" 미할렉 : 소아암을 앓던 소년으로 레슬링을 좋아했는데, 메이크어위시 재단을 통해 WWE에서 그를 위해 2012년에 '더 크러셔'란 링네임으로 데뷔하게 만들어 줬다. 특히 WWE의 스타들과 만나서 경기를 갖는 영상으로 사람들을 훈훈하게 해줬으며, 그를 위해 소아암에 걸린 어린아이들을 돕는 기금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스테파니 맥마흔은 미할렉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며 이는 워리어의 정신과도 부합하기 때문에 수상자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4년 4월 25일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WWE에서 미할렉의 이름을 따서 Connor's CURE라는 별도의 재단을 만들었고 WWE 샵에서 관련 상품을 판매 하고 있으며 수익금은 소아암 환자들을 지원하는데에 사용되어진다고 한다.수상 확정 발표 영상 수상 소감 발표 영상 안타깝게도 미할렉이 이미 사망하고 난 후여서 미할렉의 아버지가 대신해서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 2016년 수상자
- 조안 룬덴 - 미국의 티비쇼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방암을 극복하신 분으로 WWE가 유방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고 워리어 어워드와의 취지와도 맞기 때문에 2016년 워리어 어워드에 선정 되었다.수상 확정 발표 영상
4 레거시 어워드
2016년부터 시행된 어워드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었던 고인이 된 레슬러들를 기리기 위해 '레거시 어워드'(Legacy Award)를 만들었다.
별도의 시상은 하지 않고 WWE 명예의 전당 행사때 발표하고 WWE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것으로 끝낸다.
4.1 2016년 선정자
파일:WWE Legacy Award 2016.jpg
WWE 홈페이지에 게재된 관련 글
- 루 테즈 - 북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전설의 선수로 주요 경력으로는 월드 헤비웨이트 레슬링 챔피언 3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가 있다.
- "세일러"아트 토마스 - 최초의 흑인 프로레슬러 슈퍼스타
- 프랭크 곳치 - 루 테즈 보다 더 전 1800년대 말부터 시작해 1900년대 초에 활동했던 전설의 레슬러로 주요 경력으로는 월드 헤비웨이트 레슬링 챔피언 1회 및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가 있다.
- 밀드리드 버크 - 여성 최초의 프로레슬링 슈퍼스타로 NWA 월드 위민스 챔피언을 지낸 적이 있다.
- 에드 "스트랭글러" 루이스 - AWA와 NWA에서 맹활약한 레슬러로 주요 경력으로는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등 총 4번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지냈다.
- 팻 오코너 - AWA와 NWA에서 맹활약한 레슬러로 주요 경력으로는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U.S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A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경력이 있다.
- 조지 헤켄슈미트 - 유럽 프로레슬링 초창기 슈퍼스타
5 평가
WWE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레슬러들이 많이 헌액됐지만, 공식적으로 레슬러가 아닌 유명인사들도 종종 헌액한다.2016년 스눕독까지 총 9명. 방송인 밥 유커, 드류 캐리,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 도널드 트럼프 등 WWE에 등장하여 이슈가 된 적이 있으면 전당에 헌액해준다. 이들 중 갑은 레슬매니아에 3번 등장 그리고 툼스톤-툼스톤-초크슬램-스팅크 페이스 콤보 했던 메이저리그 안타왕 피트 로즈.[14]
반면 WWE에서 큰 족적을 남긴 사람도 WWE와 사이가 안 좋으면 헌액해 주지 않는다. 애초에 이벤트성이고 레슬매니아 전날 헌액식에 참가해야 하는 만큼 WWE와 사이가 좋고 앙금이 풀려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전제 조건인 셈이다. 프로레슬링 해설위원 성민수씨는 "이벤트성이고 공신력은 없으며 레슬매니아 홍보를 위한 명예의 전당"이라고 평했다.[15] 칼럼 기사
대표적으로 헌액이 늦어진 인물이 마초맨 랜디 새비지로, WWE와 사이가 안 좋기에 늦어졌다가 2015년에 사후에 헌액되는 형식으로 헌액되었다. 얼티밋 워리어 역시 어렵게 WWE와 관계를 회복하여 2014년에 헌액되고 헌액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면이 WWE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과거의 스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레슬매니아 홍보를 극대화하는 면이 있다.[16] 그리고 적어도 WWE는 관계가 나쁜 레슬러들도 출석을 위해 설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17] 꼭 WWE를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레슬러 활동이 거의 끝나 헌액 대상자에 포함되는 인물 중에서 2015년 현재 헌액이 불투명한 인물로 여성 레슬러 차이나가 있다. 차이나는 여성 프로레슬러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남성 프로레슬러 못지 않은 맹활약을 했고 DX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지만 WWE를 떠난 후 사생활에 문제가 있고 포르노까지 찍는 등 문제가 많았기에 당분간은 WWE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해서 헌액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옛애인 트리플 H가 이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도 있다. 또한 애티튜드 시대의 레슬링이 지금의 PG등급 WWE와 맞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 시대 여성 레슬러 아이콘인 세이블 역시 헌액되지 못하고 있다. 그 직전의 써니, 그 직후의 리타와 트리쉬만 헌액된 상태.[18]
사실상 진짜로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찾는다면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특히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은 아직 현역인 선수들도 있으므로 더 공신력이 있다.
헌액된 인물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선수도 많다. 30개 구단이 1년에 40명 로스터를 운영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1년에 3~4명 입성하는게 명예의 전당인데, WWE는 매년 10명가까운 인원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지금 추세로 명예의 전당을 운영한다면 중간급 타이틀 홀더들은 죄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도 있다.- ↑ 1965년 유콘 에릭이 자살하면서 이 사건이 원인이 돼 자살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실제로는 코왈스키의 신발끈이 에릭의 귀에 걸리면서 일어난 사고였던지라 경기 후 코왈스키가 병원에 문병을 갔을 때도 서로 웃으며 대화했다고 한다. 에릭이 자살한 건 금전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 ↑ 불행하게도 딸도 2011년 사고로 인해 31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 ↑ WWF가 AWA에서 홀대받은 선수들을 스카우트 해갔는데, 대표적으로 헐크 호건과 더 로드 워리어스가 있다.
- ↑ 아들 마이크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는데, 2012년 마이크도 권총 자살하며 아버지와 똑같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 ↑ 무하마드 알리, 제임스 브라운, 밥 딜런 등도 고저스 조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밥 딜런은 자서전에 고저스 조지와의 만남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적었다.
- ↑ 참고로 트리플 H가 슬렛지 해머를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듯이 압둘라 더 부처는 포크를 주로 사용하였고 그를 상징하는 무기가 되었다.
- ↑ 무려 700파운드에 육박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뭐...
- ↑ WWE에서 활동한 시기는 요코주나가 더 빨랐지만 실제로는 리키쉬가 1살 더 많다.
- ↑ 원래 1979년 말 당시 WWF와 제휴단체였던 신일본 원정 중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타이틀을 뺏겼지만, 곧 이노키가 방어전을 피해 벨트를 반납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어서 WWE 측은 공식적으로 이 시기 모두를 백런드의 재임기간으로 인정한다.
- ↑ 2012년 TNA 명예의 전당에 이어 헌액되면서 북미 서열 1,2위 단체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 ↑ 2016년 3월 현재 WWE 태그팀 챔피언인 뉴 데이가 바로 이 프리버즈 룰을 적용하여 3명 모두 태그팀 챔피언으로 인정받고 활동 중이다.
- ↑ 미국에서는 서전 슬로터처럼 주로 AWA에서 활동했다.
- ↑ 스눕 독의 명예의 전당 현액에 대해 팬들 중 일부는 작년에 사망한 모터헤드의 보컬 레미 킬미스터를 줘야했다라는 의견이 있는데, 모터헤드는 트리플 H의 "King of kings"와 "The Game" 테마곡과 에볼루션의 테마곡인 "Line In the Sand"을 불렀다. 추후에 현액될 가능성도 있다.
- ↑
케인배케인의 별명 빅 레드 머신이 피트 로즈가 포함된 신시내티 강타선의 별명 빅 레드 머신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케인을 띄워주기 위해 등장했다. - ↑ 사실 2004년 시작도 레슬매니아 홍보 차원에서 한 건데 이게 의외로 반응을 얻자 가치가 높아진 것. 그래서 04-05년에 주요 인물들을 너무 많이 헌액해서 뒤로 갈수록 홍보 효과가 좀 떨어져서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존재한다.
- ↑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겠다고 했는데 살아있는 본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이보다 뻘줌할 수 없기 때문. 마초맨 랜디 세비지 같은 경우도 본인이 싫어해서 헌액되지 않은게 더 크지 WWE가 일부러 안했다고 보긴 힘들다.
- ↑ 대표적으로 얼티밋 워리어, 스팅, 브루노 삼마르티노 등. 스팅은 WWE와 관계가 안좋았던 건 아닌데 본인이 WWE에 등장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협상이 잘 진행되서 등장도 하고 헌액도 되서 나름 잘 된 경우고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 ↑ 세이블의 경우 딱히 헌액에 문제가 되는 점은 없기 때문에 안한다기보다는 순서가 오지 않았다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