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렛 하트

"I am, The Best There Is, The Best There Was, And The Best There Ever Will Be"

"나는 지금도 최고이고, 이전에도 최고였으며, 영원히 언제까지나 최고일 것이다."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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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1993년 PWI 500인 선정 올해의 레슬러
스팅브렛 하트브렛 하트
1994년 PWI 500인 선정 올해의 레슬러
브렛 하트브렛 하트디젤

예나 지금이나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지라 주름하고 머리빼곤 별 다를바 없다. 언더테이커도 같은 예일 수 있으나 그쪽은 탈모[1]

Bret "The HITMAN"[2] Hart

공식 홈페이지는 여기로

80~90년대 WWE, WCW에서 활약했던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는 프로레슬러.[3]

또한 헐크 호건등으로 대표되던 덩치 큰 파워하우스 스타일의 레슬러들이 아닌 비교적 체구가 작은(어디까지나 WWE의 헤비웨이트급 기준으로[4]) 테크니션 계열 레슬러가 메인 이벤터로 대두되던 뉴 제너레이션을 대표한 레슬러중 하나이다.(다른 한명은 라이벌인 숀 마이클스)

1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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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Bret Sergeant Hart
별칭The Hitman
생년월일1957. 7. 2
신장182.8cm (6' 0")
체중106kg
출생지캐나다 앨버타 캘거리
피니시샤프슈터
하트 어택[5]
파일 드라이버
테마곡Hart Beat
Hart Attack
Return of the Hitman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페드로 모랄레스브렛 하트디젤숀 마이클스스티브 오스틴
더 락트리플 H케인크리스 제리코커트 앵글
에디 게레로크리스 벤와릭 플레어에지랍 밴 댐
부커 T랜디 오턴제프 하디CM 펑크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레이 미스테리오돌프 지글러크리스찬빅 쇼미즈
대니얼 브라이언
총 26명
같이 보기: 그랜드슬램 (상위 등급) / 달성자
WCW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릭 플레어
(Ric Flair)
렉스 루거
(Lex Luger)
스팅
(Sting)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Diamond Dallas Page)
골드버그
(Goldberg)
브렛 하트
(Bret Hart)
크리스 벤와
(Chris Benoit)
스캇 스타이너
(Scott Steiner)
부커 T
(Booker T)
총 9명
1994년 WWF 로얄럼블 우승자
요코주나렉스 루거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
WWE시절 타이탄트론2010년 복귀 후 타이탄트론[6]WCW시절 등장음악과 팬이 만든 영상

닉네임은 히트맨(Hitman). 피니쉬 무브샤프슈터. 상징은 핑크색과 하트모양

1957년 7월 2일 캐나다 엘버타 캘거리에서 스튜 하트의 아들로 태어나 하트 던전[7]에서 프로레슬링에 필요한 기술을 배웠다. 이후 1976년에 프로레슬러로 데뷔한다.

1984년까지 아버지 스튜 하트가 경영하는 스탬피드 레슬링에서 활약하다가[8], 8월에 WWE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매부인 짐 나이드하트와 하트 파운데이션을 결성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해 수 많은 내로라하는 레슬러들과 대립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징으로 맨위사진에서 보듯이 하트 파운데이션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특유의 선글라스가 있는데 보통 등장하고 나서 어린팬에게 팬서비스로 씌워 주곤 했다.매너남 이 모습에 팬을 생각하는 브렛 하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듯.

명대사로는 "The best there is, the best there was, and the best there ever will be!(나는 지금도 최고이고, 이전에도 최고였으며, 앞으로도 최고일 것이다!)"가 있다.

2 평가

이상하다 난 암만 내리 꽂아도 애들 목 안 부러지던데?

프로레슬링 있어 다소 모호한 의미인 경기력이란 걸 평가할때, 항상 정점에 있는 선수가 바로 브렛 하트다.[9]

그냥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프로레슬링을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몰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경기 운영에 프로레슬러로 활동한 이래 공식 경기에서 상대를 단 한번도 실수로 다치게 해본 적이 없는[10] 희대의 테크니션. 아예 브렛 하트의 능력을 설명할때 쓰이는 Excellence of Execution이란 캐치프레이즈가 존재할 정도이다.

그리고 현대에 와선 크게 와닿지 않지만, 브렛 하트는 매주마다 나와서 활약하는 챔피언의 초창기 인물이었다. 브렛 하트가 릭 플레어에게서 WWF 챔피언쉽을 얻기 전에는 챔피언이 PPV외에 나와서 경기를 가지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지만, 브렛 하트는 PPV가 아닌 공중파 TV에서도 WWE 방송이 있으면 거의 반드시 나와서 경기를 가졌다. 거기다가 작은 체구의 선수든, 큰 브롤러 타입이든 좋은 경기를 만드는 사실상 무상성 레슬러였다. 괜히 빈스 맥마흔이 브렛을 보고 매일밤마다 최고의 경기를 만들수 있는 선수라고 극찬한 것이 아니다.

또한 브렛 하트는 그 전의 근육질이나 화려한 챔피언이 아닌 열심히 싸워서 보답받는 챔피언의 시초였다. 헐크 호건 등의 그 이전의 챔피언들에 비하면 덩치도 작고 외모가 만화적으로 과장되지도 않았지만 오직 열심히 레슬링을 함으로서 단체 최고의 자리에 오름으로서 챔피언쉽이 노력의 결과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브렛 하트의 성공으로 인해 WWE에서는 에디 게레로나 대니얼 브라이언 등 체구가 작지만 실력있고 노력파인 레슬러들이 성공할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인물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시작한다.

최고의 테크니션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그가 사용하는 테크닉들은 그 수준이 혀를 내두르게 하는데, 그 예를 보자면 누운 자세에서 샤프슈터로 이어간다거나 암락이 걸린 상태에서 관성을 이용해 숀 마이클스를 링밖으로 던져낸다거나...정말 저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나 싶을때 화려하게 빠져나오고 반격한다. 특히 샤프슈터의 경우는 누운 상태에서 건다거나, 심지어는 자기가 걸린 상황에서 샤프슈터로 카운터한다.[11]

이렇기에 브렛 이후의 레슬러들은 이런 브렛의 테크니컬 스타일의 영향이 컸으며 2015년 기준으로 이미 브렛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레슬러로 꼽는 선수들이 여럿 있다[12].

여기에 각본을 수행하는 연기자로써의 능력도 뛰어나서 냉철한 캐릭터 연기와 마이크웍을 두루 갖췄다[13]. 이는 스타일 면에서 대척점이라 할 수 있는 숀 마이클스, 스티브 오스틴 두 슈퍼스타와의 대립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으며, 현재까지도 프로레슬링이 보여주는 진지함과 처절함을 끝장까지 보여주는 각본으로 기억되고 있다. 링위의 연기력도 대단해서 아이언맨 매치 이후 숀에게 축하도 안하고 그냥 나가버리는 싸늘한 모습에 관중들은 둘이 정말 증오하는줄 알았으며[14], 스톤 콜드와의 서브미션 매치는 스톤 콜드가 기절해도 놓지 않고 계속 샤프슈터로 괴롭히는 모습을 보여서 순식간에 선악역을 바꿔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괜히 빈스 맥마흔과 짐 로스가 스토리텔러로서의 브렛을 극찬한 것이 아니다.

브렛의 경기/스토리텔링 스타일을 한마디로 묘사한다면 계획대로[15]. 경기나 세그먼트에 앞서 모든 것을 세밀히 계획하는데, 아예 관중들이 환호하는 시점까지 다 계산한다고 한다. 그리고 관중들의 반응은 브렛의 계획대로...

그리고 숀 마이클스와 스티브 오스틴 두 선수들은 브렛과의 대립을 통해 입지를 다졌다. 특히 브렛 하트와 스티브 오스틴의 서브미션 매치는 오스틴이 샤프슈터에 걸려도 항복을 거부하고 기절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Bad Ass의 정점인 오스틴의 캐릭터를 대중에게 부각시켰다. 브렛 본인도 이렇게 두 선수들과 명경기를 뽑아낸 것을 뿌듯하게 여긴다. 아예 인터뷰에서 자신의 최고의 라이벌이 누구냐는 질문에 스티브 오스틴과는 재밌는 라이벌리를 가졌으며, 숀과는 다소 삐걱거리는 관계였지만 그들이 레슬매니아 12에서 해냈던 일은 과소평가할수 없다며 대답했다. 숀 마이클스와의 라이벌리에 대해선 지금 레슬링을 하는 선수들은 헐크 호건을 보고 자란게 아니라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를 보고 자랐다고 얘기하며 테크니컬 레슬러들이 활약할수 있는 장을 확립한 것에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브렛은 정상급 선수치고는 후배들에게 잡을 자주 해준 편이었다. 숀과 오스틴을 제외하고도 브리티쉬 불독 등에게 패배하는 경기도 종종 있었기에 그의 명경기중에는 그가 패배한 경기도 많다. 다른 선수들에게 잡을 해주는 것을 꺼렸던 선배 호건과 비교되는 부분. 하지만 재밌게도 오스틴과 대립할때는 경기는 거의 브렛이 이기다시피 했지만 정작 이미지는 브렛이 망가져서 이미지적으로 잡을 해주었다(...)[16]. 후배를 밀어줄땐 확실히 밀어준다는 마인드라서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은 편이다. 이외에 친구인 언더테이커가 자신이 오직 힘과 공포 기믹만으로 어필하는 레슬러가 될까봐 고민하던 시기에 함께 부킹이 되자 테이커가 여러가지 기술을 선보일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돕기도 했다[17]. 브렛 본인은 이를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반면, 브렛 하트를 앞세워 어린이들도 즐길 수 있는 프로레슬링을 추구한 당시의 정통파 프로레슬링은 헐크 호건과 nWo의 파격적인 행보에 밀리며 브렛 하트의 메인이벤터 시절 WWE는 빈스 맥마흔의 스테로이드 관련 법정 출두까지 겹치며 최대 위기까지 몰리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브렛 하트가 헐크 호건의 시대 이후 스테로이드 파동과 레슬러들의 섹스 스캔들 등으로 회사가 위기에 몰렸을때 지탱해준 인물임은 부정할수 없다. 어떻게 보면 리얼리티 시대의 존 시나와 비슷한 위치.그러나 경기력은 넘사벽. 일단 브렛 하트 본인이 고지식하고 깐깐하다보니 스테로이드나 섹스 스캔들과는 거리가 멀었고[18], 한편으론 헐크 호건 스타일의 파워 레슬링에서 테크니컬 레슬링이 메이저로 올라오는 장을 선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크리스 벤와 등의 체구가 작은 레슬러들은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가 있었기에 자기가 메인이벤터가 되기에 작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얘기했으며, 딘 앰브로스의 경우는 어려서 브렛 하트가 덩치 큰 상대들을 제압하는 것을 보고 통쾌해하기도 했다고 얘기하는 등, 단순히 덩치와 힘만으로 싸우는 레슬링이 아닌 기술과 머리로 싸우는 레슬링도 WWE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다. 그리고 브렛 하트는 이후 대스타로 성장할 숀 마이클스와 스티브 오스틴과의 대립으로 그들을 부각시키면서 애티튜드 시대로 이어질 토대에 도움이 되었다. 즉, WWE가 황금 시대 이후 제 2의 전성기로 이어지는 동안 회사를 지탱한 인물이라고 볼수 있다. 그렇기에 브렛 본인이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더더욱 분노한 것이겠지만...

브렛 하트의 공헌으로, 캐나다 레슬링 = 하트 던전 = 테크니컬 레슬링의 정점이라는 공식이 성립했고 랜스 스톰, 오웬 하트, 크리스 벤와, 크리스 제리코, 에지, 크리스찬 등 캐나다출신 레슬러들의 이후 대활약의 토대를 쌓았으며, 일가인 짐 나이드하트, 브리티쉬 불독, 나탈리아 나이드하트 등이 WWE무대에서 활약했다.

WWF에 들어오고 나서 곧바로 빈스 맥마흔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자신이 WWF의 탑이 될수 있겠냐고 물었고 몇주마다 와서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 빈스에게 물어보겠다고 얘기했다. 빈스는 필요하면 언제든 와서 얘기하라고 대답했고 이런 성실함 덕분인지 헐크 호건 이후 뉴 제네레이션을 대표하는 스타가 된다.

WCW의 공세로 인해 미국에선 브렛이 그다지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미국밖에선 얘기가 달랐다. 애시당초 턴힐하며 미국은 까고 다른 나라는 칭찬하는 기묘한 역할을 한건 브렛이 미국밖에선 끝내주는 흥행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은근히 1시간 아이언맨 경기와 인연이 깊은 편이다. 가장 잘 알려진 경기중 하나가 숀 마이클스와의 1시간 아이언맨 매치이기도 하지만 이미 젊은 시절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1시간 경기를 소화해냈고(비록 아이언맨이 아닌 3전 2선승 경기였지만) 이후 하우스쇼로 릭 플레어나 오웬 하트등과 1시간 아이언맨 매치를 소화하는등 1시간 여 경기 소화를 4번이나 해낸 셈이다.

브렛의 경기력이 그래도 와닿지 않는다면, 대니얼 브라이언, 스티브 오스틴, 언더테이커, 켄 샴락, 숀 마이클스, 크리스 제리코, 랜스 스톰, 리키 스팀보트, 트리플 H, 릭 플레어, 브루노 삼마티노, 미스터 퍼펙트, 크리스 벤와, 로디 파이퍼, 뱀 뱀 비글로우, 안 앤더슨, 커트 앵글등의 레슬러들이 브렛의 기량을 칭찬한것만[19] 봐도 업계에서 큰 인정을 받는 인물이란 것을 알수 있다.

2.1 작다고 무시하지 마라

위의 평가에서 볼수 있듯이 브렛 하트는 작은 체구라도 탑가이가 될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첫 메인 이벤터로 여겨진다. 숀과 브렛의 대담 인터뷰를 보면 숀이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엔 300 파운드의 근육 덩어리들만 탑가이로 올라갔다"[20]고 얘기한다. 브렛은 체중이 불과 234 파운드 정도로 그런 근육 덩어리들에 비교하면 왜소한 편이었다. 거기에 키도 6피트 정도로 평범한 서양인과 비슷하거나 살짝 큰 수준. 이런데다가 오너인 빈스 맥맨은 빅맨성애자(...)란 조롱을 들을 정도로 덩치 큰 선수들을 선호하는데, 이런 WWF에서 브렛을 포함해 숀 마이클스등의 선수들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고생해야 했다. 그나마 마초맨이나 리키 스팀보트등이 비교적 체구가 작은 선수였고 브렛도 이런 선배들의 모습에 감명받으며 노력했지만 결국 인컨챔에서 그치거나 인기 스타는 되었을지언정 단체의 얼굴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브렛 하트는 WWF에 들어오면서 빈스와 직접 만나며 자신이 이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으며 덩치가 작다는 외모상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경기의 템포를 더 빠르게 하고 기술수를 늘리는 식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21]. 결국 미스터 퍼펙트에게서 인컨챔을 따냈고[22] 이후 릭 플레어에게서 WWF 챔피언쉽을 따내게 되었다[23]

이후 브렛은 헐크 호건의 이적 이후 WWF의 얼굴로서 유명세를 누렸다. 처음으로 300파운드의 근육질이 아닌데도 단체의 얼굴이 된 것이다. 이는 WWF의 역사상 중요한 일인데, 단순히 근육이 많은 기량 부족의 레슬러보다 링위에서 재밌는 경기를 보여줄수 있는 선수들도 더 높은 자리로 갈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골드 제너레이션의 선수들을 보고 마치 북두의 권에 나오는 덩치들 같다고 평하는 팬들도 있는데, 브렛 하트는 그런 덩치가 아니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3 몬트리올 스크류잡과 그 이후

1997년 터진 몬트리올 스크류잡으로 인해 빈스 맥마흔과는 그야말로 원수지간이 되고(그나마 나중에 화해를 하기는 했다.), WCW로 이적했지만 WWE 시절만큼의 활약은 아니었다. WWE에서는 숀 마이클스, 언더테이커, 스티브 오스틴 같은 메인 이벤터와 월드 타이틀을 겨루고 경쟁했지만 WCW에서는 이적한 직후 1년간은 U.S 타이틀 디비전에 참가하며 1999년이 되어서야 WCW 챔피언을 차지하는 등 의외로 기대한 만큼의 활약은 아니었다는 평. 애초에 그렇게 브렛 하트를 데려오고 싶어해 영입에 성공한 에릭 비숍 마저도 "당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말까지 했으니...그럼 왜 데려간거야 거기다가 브렛 하트 본인도 WCW의 선수들은 열정이 없다며 깠으며 2013년의 영국 잡지 Metro와의 인터뷰에선 WWE를 떠난것이 후회됐었지만 지금은 괜찮다는 말을 남겼다. 한마디로 WCW와는 궁합이 최악이었던 것. 이런데 비해 빈스 맥마흔은 훗날 "브렛 하트는 어느 회사가 고용하든 그 혼자만으로도 프랜차이즈를 차릴수 있으며 매일 밤마다 최고의 경기를 만들수 있는 선수"라고 극찬하며 WCW가 브렛 하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것이 내 회사에겐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했다.이런 대박 선수를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못한 WCW를 깝시다 실제로 제리코의 팟캐스트에서 브렛은 에릭 비숍을 두고 내가 살면서 본 인간중 가장 멍청한 인간이라고 깠을 정도다.

WCW로 갔지만 WCW의 실상(...)을 본 이후에는 자신도 WCW에 대한 열정이 없어져서 크리스 벤와가 WWE로 이적하기로 결정했지만 정이 든 것도 있어서 그런지 전화로 울면서 WCW를 떠나기 싫다고 얘기하자 브렛은 WWE로 가라고 적극적으로 벤와를 다시 설득했다. 사실 이때도 크리스 제리코가 WWE에 적응하기 힘들어하자 벤와를 통해서 견디도록 조언을 해준 것을 보면 숀 마이클스 등과의 갈등으로 WWE를 떠나긴 했지만 그래도 WWE가 WCW보단 나은 단체였다고 생각하는듯. 사실 브렛의 슛 인터뷰를 보면 사실 브렛의 진짜 숙적은 숀 마이클스가 아니라 WCW가 아닌가 싶을 정도.

그 후, 2000년 1월 16일 빌 골드버그의 슈퍼 킥을 잘못 맞아 뇌진탕에 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은퇴해 버린다.(정확히는 킥을 맞고 뇌진탕에 걸린지 얼마 안돼서 교통사고를 당해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났다.)

거기에 동생인 오웬 하트가 WWE에서 활동하다가 사고로 사망하고, 자기 자신도 2002년 자전거를 타다 내리막길을 내려 오면서 사고를 당해 반신 불수가 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그나마 필사적인 재활 훈련으로 일반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한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2006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 브렛 하트의 레슬러 인생이 담긴 DVD를 WWE측에서 출시했는데 이것에 브렛이 협조를 한 계기가 재미있다. 그가 DVD 제작에 참여하게 된 동기로 밝힌 것은 치과에서 만난 한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브렛 하트를 알아봤는데 그 아이는 브렛의 경기를 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나온 게임들을 보고 그가 브렛 하트인지 알았던 것이다. 브렛은 최근에 레슬링을 접하는 팬들이 브렛이 어떤 레슬러였는지, 어떤 경기를 해왔는지 그에 대한 커리어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게임에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위해서 였다고 말하고 있다. 브렛의 DVD는 2005년 11월 15일에 발매되었으며, 하루 뒤 16일에 그는 인터넷으로 방송되는 Byte This!에 나오기도 했다.

4 레슬링 사상

에티튜드 시대로 대표되는 섹스와 폭력을 강조한 면을 매우 싫어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애들이 보는 쇼인데 그런 짓을 해도 되는건가 하는 의문이 자주 보이며 후기에는 트리플 H와 숀, 빈스를 두고 수많은 레슬러들이 일했던 레슬링을 싸구려 쇼로 변질시킨 개자식들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브렛이 혐오하던 그 시절이 WWE의 전무후무한 최고의 시절이었던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24].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브렛 본인은 애티튜드 시대에 영향을 준 두명의 선수인 숀 마이클스(DX의 창립 멤버)와 스티브 오스틴(애티튜드 시대의 최고 스타)을 키워주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WCW도 성인 지향을 한 단체라 브렛의 성향과는 차이가 있었다. 어찌보면 WCW는 브렛에게 더더욱 최악이었던 것이 숀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깠을 정도로 진지한 레슬러들을 존중했던 브렛에게 정체되고 베테랑들이 다 해먹는 WCW는 그에게 전혀 맞는 단체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훗날 브렛은 WWE야말로 가장 좋았던 곳이라고 회고했다. 어찌보면 여러가지 갈등으로 자신에게 가장 맞는 곳을 떠나 고생했던 안타까운 예다[25].

자기 자신도 아이들의 영웅 히트맨 기믹을 좋아한 것에도 볼수 있듯이 레슬링을 진지한 스포츠로 표현하고 싶어했다. 덕분에 테크니컬 레슬링을 지향했으며 패턴이 다양하지 못한 빅맨들은 제대로 된 레슬러 취급도 안했다. 숀과 싸우던 시절을 회상할때도 그나마 숀은 브렛이 원했던 타입의 경기력이 있었기에 어느정도 인정했지만[26] 퇴폐적인 삶은 대차게 깠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오히려 리얼리티 시대에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는 선수. 실제로 브렛의 경기는 지나친 폭력보다는 순수한 테크닉과 진지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기 때문에 PG등급로 하향된 리얼리티 시대였다면 크게 돋보였을 것이다. 거기다가 2000년도 이후 종교를 믿으면서 인성이 성숙해진 숀 마이클스와 다시 만났더라면 더 많은 명경기를 만들었을수도 있으니 아쉬운 일이다.

또한 레슬링을 하면서 상대를 한번도 다치게 한적이 없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Hitman Hart: Wrestling with Shadows를 보면 자신이 세게 때리는 것 같아도 상대를 다치지 않는 것을 훌륭한 연기가 아니라 사기라고 여기는 사람들때문에 많이 서글펐던 모양. 이 때문에 거친 스타일로 대표되는 일본 레슬링은 다소 힘들어했다. 거기에 일본 레슬러들과는 소통이 힘드니...

이 인터뷰에서 그의 철학을 볼수 있는데 브렛은 레슬러를 볼때 3가지 카테고리가 있다고 본다. 외모, 레슬링 실력, 그리고 프로모 능력. 헐크 호건의 경우는 외모와 프로모는 10점 만점에 9점으로 평가했지만 레슬링 실력은 1점(...)을 주었고 자신의 경우 프로모는 가장 잘 할때나 7점 정도이고 외모는 그럭저럭 7점, 그리고 레슬링 실력은 10점 만점 가까이라고 평가했다근데 실력 점수는 부정할수 없다

5 개인 관계

하트 집안은 레슬러 가문이라 멤버가 많은데 그 중엔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도 있다.

동료들과의 관계는 대체로 원만했으나 깐깐하고 다혈질적인 성격과[27][28], 날카로운 독설[29]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때문에[30] 적이 좀 있는 편이었다.

브렛 이전의 슈퍼스타인 릭 플레어, 헐크 호건 등과는 사이가 좋지않았다. 인터뷰에 따르면 1993년 호건이 WWE에 복귀했을때 브렛이 먼저 악수를 청했는데 그 악수를 호건이 무시했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그이후에 2006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때 오스틴과 브렛이 이야기중에 호건이 나타나 인사를 청했는데 브렛과 오스틴은 똑같이 호건을 무시했다[31]. 호건과 달리 2014년 워리어가 사망했을때 "그는 나에게 피해를 준적도 없으며 함께 일한적도 거의 없다. 그와 함께한 많은 좋은 기억들이 있으며 그를 잊지 못할것이다"라고 추모한걸 보면 워리어와는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던거 같다[32]. 오스틴 역시 호건과 사이가 좋지 않은듯하며 호건에 대해 인터뷰를 하자 '난 그를 믿을수없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33]. 나중에는 헐크 호건이 자신과 일할 용기가 있었다면 그의 인생 최고의 경기를 만들어주었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여하간 헐크 호건에 대해선 카리스마까지는 인정하지만 그외에는 비판적이다.

릭 플레어와는 개인의 자서전에서까지 디스를 하는 말을 실었으며[34][35], 호건과도 최근 트위터 등으로 디스중인듯.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같이 사진도 찍는 등[36][37] 많이 유해진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이 화해를 보고 조카인 나탈리아는 브렛과 릭이 악수한 것은 십수년만의 일이며 자신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중 하나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호건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으로 호건이 TNA 소속이었을때 한 인터뷰에서는 하트가문의 명예를 걸고 호건이 있는 TNA에는 하트가문 출신들은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했다.하지만 현재는 스파이짓을 끝내고 WWE에 복귀했는데... 릭 플레어의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초청받았을땐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서로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레메 31쯤에는 릭과는 제대로 못만났지만 대신 아내에게 릭이 건강해보인다고 얘기해주었고 후에 팟캐스트에서 릭은 평소에 자신에게 문자 자주 해주고 좋은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했다. 브렛 또한 릭 플레어에게 빚진 것들을 언급하며 감사해했고 오해로 인해 서로 갈등이 있었던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쪽도 결국 화해하면서 좋은 친구로 남은듯.

또한 몬트리올 스크루잡 이후로도 숀 마이클스, 트리플 H, 빈스 맥마흔 등과도 당연히 사이가 좋지않았으나 2010년 이후로 숀, 빈스와는 화해를 했다. 트리플 H의 경우 그가 본격적으로 현장 업무를 도맡아하기 시작한 후 브렛이 인터뷰에서 트리플 H의 회사내에서의 역할을 칭찬했고 2006년 명예의 전당에서 브렛 하트의 농담에 트리플 H가 웃는 모습을 보여준거 보면 친한 사이는 아니라도 적어도 예전처럼 격하게 적대적이진 않은 듯 하다. 트리플 H와 브록 레스너의 경기에 10점 만점에 4점밖에 안된다고 평가하는 등 레슬러 트리플 H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만[38][39] 경영자로선 괜찮게 평가했다. 다만 인터뷰에서 자신이 트리플 H와 더 일했다면 좋은 경기를 만들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마 숀과 오스틴의 예처럼 자신이 이끌어줬다면 더 흥했을 선수라고 평가한듯 하다. 일단 만나게 되면 서로 인사만 하는 정도. 재밌는 것은 그가 그렇게 디스하던 트리플 H가 리얼리티 시대를 들어 브렛 하트의 성향에 더 맞는 방향으로 지도하고 있으며 또한 선수들의 복지에도 신경쓰고 있는 것.[40]자기를 엿먹였던 놈이 자기가 원하던 방향으로 운영하는 것을 보는 아이러니 이런 점 때문에 경영자로서의 트리플 H는 높게 평가하는 듯 하다. 다만 2016년 7월 인터뷰에서 게임 WWE 2K17에서 자기 캐릭터의 스탯이 트리플 H보다 10이나 낮자 이걸두고 제작진들이 트리플 H 후빨을 하니 어쩌니 하면서 트리플 H는 그저 5점 짜리 밖에 안되는 선수라는 얼토당토 않은 비난을 했다.

스톤 콜드와는 상당히 원만한 관계인듯 하다. 오스틴은 브렛 하트 얘기만 나오면 항상 칭찬을 했다(사실 그가 확실하게 메인이벤터로 올라갈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브렛 하트와의 대전이었다. 브렛 본인도 오스틴과의 대립과 이어진 경기를 두고 완벽한 스토리였다며 좋게 얘기했다.). 아예 2006년 브렛 하트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 사람이 스티브 오스틴이다.

이미지상으로는 좀 의외일 수도 있는데 WWE에서 가장 절친과도 같은 사이는 언더테이커. 사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 바로 직후에 빈스에게 개기고 빈스를 브렛에게 끌고 간 인물이 언더테이커였고 동생인 오웬 하트가 사망했을 때 캐나다로 직접 찾아간 인물도 언더테이커 본인이다. 참고로 몬트리올 스크류잡 직후 언더데이커에게 끌려간 빈스가 브렛 하트에게 쳐맞은 것은 넘어가자. 브렛이 빈스를 두들길 때 브렛의 묵직한 펀치 두방에 빈스의 아랫 턱이 박살났다.[41]

그 모습을 본 쉐인이 브렛에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브리티쉬 불독이 몸을 던져 말렸고 흥분한 쉐인을 진정시키려고 하다 무릎부상을 입게 된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이 더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사단이 나겠다 싶어 흥분한 브렛 하트와 다친 빈스, 그리고 역시 흥분한 쉐인을 서로 떼어놓게 된다. 이후 브렛은 숀을 찾아가 스크류잡에 가담했는지 물었지만 숀은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42]

이외에 더 락을 높게 평가해서 그가 데뷔한 즈음부터 더 락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락의 신인 시절부터 동료들에게 '내 말을 새겨 들어라. 몇 년 안에 락이 이 업계를 선두에서 이끌어나고 있을 거다. 저 녀석에겐 탄탄한 기본기와 훌륭한 외모가 갖춰져 있고, 이제 마이크 웍으로 관중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고 공개적으로 락을 추켜 세우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숀 마이클스와 트리플 H가 더 락을 모함하며 그를 묻어버리려 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하고 있다. 이후에도 평가가 후한데 유일하게 더 락을 깐건 똥슈터(...) 뿐이다.

후배들에게 후한 평가를 많이 남겼다. 2007년에 크리스 벤와가 살인을 저지른 뒤에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했을 때 한 주부 시청자가 브렛에게 '벤와를 영웅으로 바라봤던 어린 아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걔한테 존 시나를 영웅으로 삼으라고 전해주세요." 라고 답했고, 존 시나를 테크니컬한 부분이 모자랄 뿐, 언제나 100%의 노력을 하는 인재로서, 이 시대의 간판으로 어울리는 선수라고 인정했다[43].

대니얼 브라이언에 대해선 레슬매니아 28 때 터무니 없는 내용으로 챔피언 쉽을 빼앗기자, '팬들이 이 시대 최고의 레슬러가 레슬매니아에서 스쿼시 매치로 패배했다는 사실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 기쁘다'며 대니얼 브라이언을 지지하는 발언을 남겼고, 이후의 인터뷰에서 '브라이언을 보면 그 스타일과 외모에서 오웬 하트의 모습을 느낀다'고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CM 펑크에 대해선 '2012년 현재 레슬링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레슬러',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펑크와 레이 미스테리오의 경기를 보다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을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면서 칭찬했다.

딘 앰브로스 또한 교활함과 타이밍등이 훌륭하다며 CM 펑크와 함께 언급하며 칭찬했다. 2015년 11월 인터뷰에서 경기에서 감정선을 살릴수 있는 인재로 꼽으며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을 칭찬했다

이외에 케빈 오웬스, 세자로등의 재능을 높게 평가해서 딘, 케빈, 세자로야말로 WWE 챔피언에 어울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깐깐한 안목과 올드 스쿨한 취향[44] 때문인지 레슬매니아 27, 28에서 트리플 H, 언더테이커의 두 경기에 대해선 '진부한 구성을 갖고 있다'면서 차갑게 비판했다.

WWE에서 이룬 프라이드가 꽤 쌔기도 한데 80년대 태그팀 활동하던 동료들은 명예의 전당에 못 오른 반면 선수로서 WWE에 활동한 적 한 번도 없고, 항상 술 쩔어있던 페뷸러스 프리버즈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헌액된거냐고 말했다가 프리버즈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WWE 임원인 마이클 헤이즈에게 죽은 친구들을 모욕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사과한 적도 있다.

5.1 숀 마이클스, 빈스 맥마흔과의 관계

이하의 내용은 WWE Greatest Rivalries: Shawn Michaels vs Bret Hart의 내용등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라이벌이었던 숀 마이클스와는 사실 애증이 섞인 관계이다. 처음 만났을땐 숀이 브렛의 집에 놀러오기도 하고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45] 둘의 성격차이와 견해 차이 때문에 사이가 벌어졌다. 브렛이 다소 고지식하고 깐깐한 성격이라면 숀은 활발하고 악동같은 인물이었는데, 브렛은 숀이 챔피언이 된 뒤에 챔피언답지 않은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숀은 브렛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불쾌해했다. 특히 WWF가 WCW와의 경쟁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을때 브렛은 자신이 WWF를 지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숀은 클릭과 함께 사고를 치는 것을 보고 숀은 회사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는 생각에 불쾌해했다. 한편 숀은 자신이 레슬링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브렛이 너무 구식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브렛은 숀이 훌륭한 레슬러라고 생각해서 오래전부터 빈스에게 숀이 차세대 스타가 될 거물이라며 푸쉬를 줄 것을 부탁했다. 한창 숀과 갈등이 있을때도 숀의 실력은 인정했으며 장기간 대립을 하면서도 "내가 숀이랑 하는 대립이 꽤 대박이 터질 것 같다" 생각했었다고. 하지만 브렛의 이런 생각은 숀에게 제대로 소통되지 않았는데, 한번은 브렛이 숀을 디스하는 세그먼트를 했었고 이게 워낙 실감나게 잘 한지라 다른 스태프와 선수들은 브렛에게 훌륭했다며 칭찬을 했는데 비해 숀만은 얼굴이 굳은 상태였다고. 이런 상황에서도 브렛은 둘의 대립이 잘 끝나면 숀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숀은 이미 자신이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했기에 브렛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46].

이렇게 갈등이 심화되다보니 브렛이 숀의 부모를 모욕하는 듯한 세그먼트를 하고[47] 숀은 Monday Night Raw에서 브렛과의 세그멘트에서 유명한 "Sunny Days" 드립을 치며 디바 써니와의 염문설을 풍겼는데, 브렛의 가족들까지 이를 실제로 오해하는 사태로까지 번져 이에 분노한 브렛과 숀은 다툼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정작 써니와 사귄 것은 숀 마이클스였다. 이렇게 둘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다가 결국 몬트리올 스크류잡 직전까지 갔는데, 브렛과 숀은 말 싸움을 했고 빈스는 어떻게든 이 둘이 그만 싸우게 하려고 중간에서 노력했다. 허나 이러한 관계는 결국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통해 최악의 사태로 막을 내린다.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진 일차적인 이유는 브렛이 챔피언을 내려놓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는 숀과의 최악의 관계와 더불어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결부되어 있었다. 당시 브렛은 오스틴과의 대립을 통해 턴힐하며 반사회적인 악당을 응원하는 미국 관중들이라며 미국을 디스하고 캐나다 국기를 들고 다니며 마치 국가대항전의 대표와 같은 캐릭터를 수행했다. 특이하게 악역임에도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환호 받고 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야유를 받는 보기 드문 상황이었다. 한편 숀은 차이나, HHH, 릭 루드와 D-X를 만들며 악동 짓을 시작 했는데 문제는 캐나다 국기로 코를 파고, 자신의 거시기에 비벼 대는 등 캐나다 국민들의 강한 어그로를 끌고 있는 상태였다. 96년도의 서바이버 시리즈는 브렛 vs 숀을 넘어 캐나다 vs 미국이라는 국가대항전을 펼치는 듯한 분위기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브렛은 조국인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숀에게 챔피언을 절대 내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 [48] 문제는 당시 브렛은 각본 거부권이라는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당한 권한 행사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WCW로 이적하기로 된 상황에서 브렛은 서바이버 시리즈 다음 날 Raw에서 벨트를 반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WWE 우먼스 챔피언 이었던 메두사가 Nitro에 등장해 에릭 비숍의 명령대로 챔피언 벨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본 빈스는 브렛 또한 그러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두려워했다. [49] 브렛이 고집을 꺾지 않자 결국 빈스는 트리플H와 숀을 불러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계획하게 된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브렛은 숀이 나오는 경기는 단 하나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2007년 출판된 그의 자서전을 보면 후기에 숀 마이클스와 빈스 맥맨, 트리플 H를 증오하는 글을 남겼다. 오웬의 죽음 이후 브렛은 빈스와 공원에서 만났는데 이때 왜 자신을 스크류잡했냐고 묻자 빈스는 "내 일생 최대의 실수였다"며 그저 미안해할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레슬매니아에서 숀이 언더테이커와 레슬매니아 25에서 경기를 가진 것을 보고 훌륭한 경기였다고 극찬. 숀, 언더테이커, WWE가 모두 자랑스러웠다고 호평했다. 본격 화해전인 2009년에 이미 오랜만에 본 최고의 경기였다고 호평할 정도. 이 인터뷰에서 브렛은 자신의 은퇴 경기는 오스틴이나 숀과 했으면 했다고 답해서 본격 화해전에 이미 감정이 어느정도 누그러졌음을 알수 있다.

브렛이 사고를 당한뒤 병실에 전화가 연결되자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한 것은 빈스 맥마흔이었다[50]. 빈스는 이때 전화로 브렛에게 포기하지 말라며 응원을 했고 이 말을 들은 브렛은 빈스와 숀에 대한 증오를 거둘까 고민하게 된다. 일단 자서전을 쓸 당시에는 여전히 증오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후 젊은 하트 파운데이션 멤버들에게 자신의 전화 번호를 숀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1년 내내 숀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숀이 브렛에게 전화를 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 숀은 브렛에게 전화했다가 브렛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감히 브렛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브렛이 RAW에 복귀하기로 하자 브렛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고 브렛은 RAW에서 복귀 세레모니를 하기전 숀과 백스테이지에서 만나게 된다. 그때 본격적으로 화해할수도 있었지만 둘은 관중들 앞에서 진실되게 화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잠시 헤어진뒤 링위에서 화해하는 대화를 하게 된다. 즉 당시 링위에서 브렛과 숀이 했던 화해는 연습없이 행해진 세레모니였다. 이후 브렛은 숀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같자 자신도 편해졌다고.

이 화해 이후에는 둘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와 계속해서 연락중이라고 한다. 브렛은 화해를 결심한 이후에도 둘이 뒤에선 계속해서 서로 증오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후에 숀이 진심으로 브렛의 용서를 고맙게 여기는 것을 보고 그와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얘기한다. 브렛 하트 감사제에서 숀 마이클스는 브렛에게 그와 대립한 것이 영광이었다고 얘기했으며 은퇴식때 브렛을 두고 가장 고맙고 미안한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렇게 사이가 안좋았던 브렛과 숀도 링위에 올라가면 호흡이 잘 맞았다. 그 예로 레슬매니아 12의 아이언맨 매치가 있는데, 브렛과 숀은 경기 전에 경기의 흐름을 미리 계획했고 이를 따랐다. 브렛의 회상에 따르면 그가 계획한대로 탑로프에 올라간뒤 전광팡의 타이머를 봤는데 정확히 5분이 남았다. 브렛과 숀이 계획한 그대로 경기가 흐른 셈. 초단위로 경기 계획을 다 따라갈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은 둘이었고 덕분에 브렛과 숀은 수많은 명경기를 남겼다. 사실 둘이 화해하기 이전의 인터뷰 등에도 보면 브렛이나 숀이나 레슬매니아 12의 아이언맨 매치는 각자 최고의 경기였다고 회고하며 각자의 실력은 인정했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라이벌인 셈.

이후 크리스 제리코의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당시 숀이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 상황까지 간건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분명히 얘기했으며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기분나빴던 일이라고 얘기했다. 그런 덕분에 숀과의 화해 등으로 좋게 끝을 맺은게 후련한 듯 하다. 이후 다른 원수라고 할수있었던 릭 플레어와도 화해하고 아이스 버켓 챌린지에 릭 플레어를 지명할 정도로 좋은 관계가 되었으니 숀과의 화해는 브렛에게 있어서도 좋은 결정이었다.

숀과는 명절마다 서로 연락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숀이 인터뷰에서 밝혔다.

6 주요 기술

가장 유명한 것은 운명의 5대 기술(Five moves of Doom)이다. 기본기지만 가장 완벽하게 구사해 경기를 조합하는 그만의 특징이다.

초창기 그의 피니쉬 무브파일 드라이버였지만 샤프슈터를 사용한 이후부터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태그팀 한정으로 짐 나이드하트와 함께 사용하는 하트 어택이 있다.

6.1 경기 스타일

테크니컬한 면으론 역대급. 많은 사람이 역대 최고로 꼽기도 하며 설사 최고가 아니라도 탑 3에 놓는 사람들도 많다. 그 당시로선 보기 힘들었던 기술로 위기를 빠져나오는 모습으로 관중들을 열광시켰으며 특히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샤프슈터로 반격해 승리하는 모습은 브렛의 큰 매력중 하나였다.

다만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브렛은 단순히 화려한 기술을 늘어놓는 것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큰 비중을 두는 선수라는 점이다[51]. 또한 초창기에는 막 골드 제너레이션을 지나 새로운 스타일로 가는 때라 현대의 팬이 보기엔 템포가 좀 느려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화려한 기술로 정신없는 경기를 펼치는 것을 예상하면 오히려 실망할수도 있다. 물론 지능적인 레슬링을 한다는 점이 변함없다. 뒤로 팔목이 잡힌 상태에서 링을 빙빙 돌면서 관성으로 숀을 넘겨서 풀어난다거나.

그러나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세세한 디테일을 보면 브렛만큼 섬세한 선수가 없다. 거기에 상대도 이런 스토리텔링에 능숙하면 더없이 경기가 좋아진다. 이런 점이 특히 잘 보이는 경기가 숀과의 아이언맨 경기와 스티브 오스틴과의 서브미션 경기이다. 아이언맨 경기에선 초반에는 베테랑으로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냉철하게 대처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숀이 페이스를 높이자 오히려 초조해져서 소소한 반칙을 하고 대놓고 심판에게 짜증을 내는등, 열정적인 도전자의 페이스에 말려 무너지는 베테랑을 연기했다. 또한 오스틴과의 서브미션 경기는 그전까지 오스틴의 끈질김에 점차 분노한 상황인지라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오스틴의 공격에 맞서 링벨로 공격하는등 점차 과격해지더니 마지막에는 기절한 오스틴을 공격하는등 자신의 분노에 자신이 먹혀버린 모습을 연기했다.

한마디로 테크닉+스토리텔링이 브렛의 경기 스타일이라고 할수 있다.

7 2010 HITMAN

많은 팬들은 그와 빈스의 관계로 인해 다시는 브렛 하트가 WWE TV에 등장할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으나, 2009년 12월 레슬 전문 사이트에 따르면 브렛이 2010년 1월 1일부터 4개월간 WWE와 계약을 맺었으며 레슬러는 아니지만 단장 같은 역할로 WWE에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과연 그의 새로운 모습은 어떨지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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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미국시간으로 2010년 1월 4일에 생중계된 RAW에 등장, 숀 마이클스와 악수를 하는 장면을 연출. 실제 화해한 것인지 비즈니스에 불과한 것인지는 이론이 분분했는데[52], 실제로도 백스테이지에서 숀과 화해를 했다고 한다. 사실 숀이 브렛과 포옹하는 부분은 숀이 즉흥적으로 한 행동이어서 브렛이 놀랐기 때문이다. 숀은 앞서 백스테이지에서 브렛과 얘기를 했지만 단순히 악수뿐 아니라 뭔가 더 확실한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후로도 서로 문자를 보내면서 연락을 한다고 한다. 다만 트위터를 쓰는데 능한 브렛과 달리 숀은 트위터나 홈페이지를 쓰는 것이 불편해서 그쪽으로는 잘 연락을 안한다고.

파일:Attachment/브렛 하트/bretns.jpg

불미스러웠던 그 사건이후 백스테이지에서 12년만에 찍은 사진
서로 환하게 웃고 있는 감동적인 모습[53]

그리고 빈스 맥마흔과도 악수를 했으나, 빈스에게 로우 블로우를 맞았다. 이후의 내용은 앞으로 각본에 반영될 듯 하여 기대감 상승 중.

거기다 립서비스로 보였던 스튜 하트의 명예의 전당 헌액만큼은 99.9% 사실이라고 한다. 우왕ㅋ굳ㅋ인 듯 했으나...

2월 1일 RAW 방영분에 빈스 맥맨에게 맞은 로우블로우를 복수하기 위해 등장한 브렛에게 빈스는 "그 때 얘기한 일들이 사실이 아니다. 넌 그런걸 받을 자격이 없다."고 얘기하며, 스튜 하트의 명예의 전당 헌액마저도 취소시키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분노한 브렛이 빈스를 공격한 순간,바티스타가 난입해 브렛을 공격한 뒤 붙잡았고, 붙잡힌 걸 확인한 빈스가 브렛의 얼굴에 껌을 뱉었다.[54] WWE에 복귀했으나 안습의 모습만을 보여준 브렛에게 복수의 기회는 올 것인가?

마침내 3월 15일 RAW에서 공식적인 계약식을 통해 WWE 레슬매니아 XXVI에서 노 홀드 바 경기로 빈스 맥맨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WWE 레슬매니아 XXVI에서 빈스와의 대결이 성사되었지만 빈스는 다시 한번 브렛을 엿먹이겠다며 돈으로 매수한 브렛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다. 하지만 브렛은 자신이 엿먹히지 않으려면 자신도 엿을 먹이면 된다고 말했고 결국 브렛의 가족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빈스를 배신했다. 그 후, 브렛 하트는 일방적인 공세[55]끝에 분노의 샤프슈터로 빈스에게 기브업을 받아내어 복수에 성공했다. 사실 이때 숀 마이클스와 함께 일하기를 원했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는 그의 몸 상태 때문에 경기 끝나고 걸어나가는 것까지만 해도 충분히 고행이었기 때문.

이 경기를 통해 프로레슬링계 최악의 배신인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대해서, 빈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를 보여 사과한 것으로 빈스와 브렛 양자 모두 시원하게 앙금을 털어냈다.

레슬매니아 26 이후에는 하트 가를 잇는 태그팀 하트 다이네스티(타이슨 키드 & DH 스미스 & 나탈리아)를 도와서 매니저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와 중에 5월 11일 미즈의 도발로 인해 졸지에 US 챔피언쉽에 도전하는 상황이 되었고, 팬들은 브렛이 US 챔피언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5월 18일 RAW에서 열린 US 챔피언쉽 경기에서 샤프슈터로 미즈를 꺾으면서[56] 새로운 US 챔피언에 등극했다.[57]

그러나 얼마 후, RAW의 단장으로 등극하면서, 벨트는 반납했다. 그리고 US 챔피언은 공석 처리. 그런데 단장으로 등극한 상황에서 넥서스의 "선수 계약서 요구"를 거절한 채 모두 쫓아내버리자 쇼 막판 백스테이지에서 공격당한 뒤 강제적으로 리무진에 태워져서 "선수로서 계약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라."라는 말을 들은채 피해를 입었고 이후 빈스 맥맨에 의해서 단장직에서 해고되었다.

저 사건을 계기로 한동안 WWE 방송에 등장하지 않다가 WWE 썸머슬램 (2010)에서 넥서스를 상대할 팀 WWE의 멤버로 경기에 참여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바디슬램을 비롯한 여러가지의 기술을 보이며 팬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썸머슬램 이후 TV 쇼 출연은 자제하고 있으나, 자선 활동을 비롯한 특별 행사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8 이후 근황과 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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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7일자 RAW는 브렛 하트의 고향인 캐나다 캘거리에서 브렛 하트 감사제 특집으로 방송되었는데, 제리 럴러를 비롯해서 WWF 시절부터 절친했던 팻 패터슨, 하트 던젼에서 함께 수련했던 크리스 제리코, 그리고 라이벌 숀 마이클스와 빈스 맥맨 회장과 제자인 타이슨 키드, 조카인 나탈리아와 모든 WWE 슈퍼스타, 디바들이 나와서 브렛 하트를 축하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크게 기대는 안했는데 숀이 나오자 감사제가 특별해졌으며 빈스의 헌정을 듣고서 이제서야 내가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 라디오 방송에 숀 마이클스와 함께 출연해서 1997년 서바이버 시리즈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만약 그 때 빈스가 스크류잡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은 다음 날 RAW에서 깔끔하게 타이틀을 반납하고 WCW로 갔을 것이다라고 코멘트하기도 했다. 브렛의 성격에 메두사처럼 타 단체에 타이틀을 들고가는 짓은 아마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팬들의 중론.

레슬매니아 30을 앞두고 대니얼 브라이언이 챔피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코멘트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되었다. 물론 만약 이때 챔피언이 안됐으면 팬들의 실망도 엄청났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존 시나를 높게 평가해서 만약 부상당하지 않았다면 은퇴 경기를 존 시나와 하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트위터에 답변을 남겼다.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이 이런말까지 해주는데 그런 시나의 경기력은...[58]

2014년 7월 7일자 RAW에 특별 등장했다. 무대가 다름아닌 몬트리올이었는데, 이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도 몬트리올에 돌아온 것은 영광이며 다시 한번 경기를 가질수 있다면 몬트리올에서 하고싶다는 마이크웍을 한다. 이때 데미안 섄도우가 브렛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해 브렛을 조롱하며 말빨은 당신의 특기가 아니지 않냐는 말을 하다가 브렛에게 한대 얻어맞는다(...). 방송후 유튜브에 올라온 인터뷰에선 몬트리올에 돌아와서 기쁘다는 소감과 함께 데미안 섄도우를 보고 웃어야 될지 화나야 될지 모르겠는데, 일단 웃기게 코스프레하고 나온건 칭찬해줬다. 어차피 자기를 자극시키려는 인물들이 많아서 섄도우의 조롱 세그먼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7월 11일자 스맥다운에선 크리스 제리코의 하이라이트 릴에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RAW에 이어서 이번에 HBK로 코스프레한 샌도우가 나와 도발하자, 전매특허인 샤프슈터로 샌도우를 혼내 주기도 했다.

글솜씨가 뛰어나 신문에 기고를 하거나 시를 쓰기도 했다. 로맨스 소설을 집필중인데 레슬링과는 관계없는 내용이라고. 또한 만화 그리기도 한 솜씨하기에 자서전 안의 일러스트는 자신이 직접 그렸다.

핑크색을 상징으로 쓰는 몇안되는 남성으로 브렛 본인도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조크성으로 얘기하기도 한다.[59]

2016년 2월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을 남기며 전립선암 투병중임을 밝혔다. 또다시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와 마주하게 된 브렛 하트는 이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울 수 있는 전투를 앞두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회복까지 긴 여정이 될 것이라 하였다.

회복이 잘 되고 있는지 페이백에서 조카인 나탈리아 네이드하트의 일일매니저로 출연해 릭 플레어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샬럿의 샤프슈터에 탭아웃하지않은 나탈리아가 패하자[60] 나탈리아와 함께 플레어 부녀에게 샤프슈터를 시전했다.

9 통산 업적

NC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 5회 (캘거리 버전)
Stampede 브리티쉬 커먼윌스 미드 -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Stampede 북부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Stampede 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WWC 캐리비안 태그팀 챔피언 1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CW US 챔피언 4회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WF 챔피언 5회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2회
WWE US 챔피언 1회
WWF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61]
1991년, 1993년 킹 오브 더 링 우승[62]
1994년 로얄럼블 우승 [63]
WWF 역사상 두번째 3관왕
WCW 역사상 다섯번째 3관왕
역대 최초 양대메이저 3관왕 달성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2006년)

  1. 그런데 나이는 브렛이 8살 더 많다. 이건 뭐 브렛이 사기적으로 동안인건지, 아님 언옹이 노안인건지...
  2. 참고로 캘거리에 있는 하키팀중 하나의 팀명이 더 히트맨인데, 바로 브렛 하트의 링네임에서 따온 것이다. 브렛이 쓰도록 허가를 해줬다고. 브렛은 캘거리 히트맨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
  3. 특히 캐나다에서는 영웅 대우를 받았다. 그의 필살기 샤프슈터는 이미 캐나다인의 성역이 되었으며, 빈스와 짜고 브렛을 엿먹였던 숀 마이클스는 2010년 브렛과의 화해 전까지 캐나다만 오면 아무리 선역이라도 온갖 욕을 다 얻어먹었다.
  4. 대체적으로 헤비급 선수들은 키가 190cm를 넘고 몸무게는 120kg을 넘는다
  5. 태그 팀 '하트 파운데이션'시절 짐 '앤빌' 네이드하트와 사용했던 피니셔이다
  6. 음악이 약간 어레인지가 가해졌다.
  7. 아버지인 스튜 하트가 지도하는 훈련장, 그런데 장소가 저택의 지하실을 개조한 것이었다는 것, 흠좀무. 참고로 또 한명의 태크니션인 크리스 벤와가 여기 출신이며 캐나다 출신 프로레슬러로 이곳을 거치지 않고 WWF, WCW, NWA 등의 메이저 단체에 등장했던 이들은 드물것이다. 그 외에 랜스 스톰, 타이슨 키드, 나탈리아도 모두 하트 던전 출신이며, 제리코도 잠시 몸담은 바 있다.
  8. 이때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경기를 하기도 했다. 이미 이 시기에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1시간 가까운 경기를 소화해냈다. 아쉽게도 남아있는 영상은 투 아웃 오브 스리 폴 경기중 마지막 10여분 가량뿐이다.
  9. 멜쳐가 WWE 경기에 준 별 5개짜리 경기는 총 5개인데, 그 중 2개를 만들어냈다(라이벌인 숀 마이클스도 2개의 별 5개 경기를 만들어냈다.). 1994년도 섬머슬램에서의 동생과의 철창 경기, 그리고 레매 13에서 스티브 오스틴과 가진 서브미션 매치.
  10. 심지어 파일드라이버로 인해 장애인 수준의 목부상을 입은 오스틴이 브렛의 파일드라이버는 언제든 맞아줄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근데 그 파일드라이버를 날린게 브렛의 동생 오웬이라는게 아이러니.
  11. 특히 동생인 오웬 하트와 대립할때, 그리고 WCW에서 사실상 동일 기술을 쓰는 스팅과 경기할때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12. 배드 뉴스 배럿(이쪽은 브렛을 두번째로 좋아한다지만)이나 세자로등
  13. 다만 이게 너무 뛰어났기에 숀 마이클스와의 갈등이 더 심해진 면도 있다.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의 대담 인터뷰에 따르면 브렛 하트가 너무나 실감나게 숀을 디스하는 세그먼트를 했는데 당시 철없던 숀은 이걸 듣고 꽤 기분 나빠했다고. 브렛은 세그멘트전에 숀에게 "내가 이런저런 말을 할텐데, 괜찮아?"라고 물었고 숀은 괜찮다고 했는데 정작 듣고나니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너무 연기를 잘해도 문제 물론 당시 둘의 갈등이 있었기에 생겼던 문제지만. 하지만 브렛 본인은 자신의 프로모 능력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자기 프로모 능력이 가장 좋을때나 10점 만점에 7점이라고 평가할정도니 다른 때에는 그보다 더 낮게 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14. 이 당시엔 숀과 브렛의 관계가 좋았다. 브렛은 이 경기 이후 휴가를 가질 예정이었기에 자기가 복귀하자마자 숀과 대립을 이어갈수 있도록 일부러 쌀쌀맞게 행동한 것. 숀은 이 경기 다음날 직접 브렛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얘기했었다.
  15. 릭 플레어같은 올드스쿨 타입의 선수들은 즉흥적으로 경기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바티스타의 자서전에 따르면 릭 플레어가 경기 도중에 미리 짜놓은 계획을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운영하자 보고 있던 트리플 H가 "저 양반 지금 뭐하는거냐"며 당황했다고. 브렛 하트는 2013년 출시된 DVD에서(릭과 화해뒤의 시점) 플레어의 실력은 인정했고 다 좋았는데, 언제나 즉흥적으로 하다보니 특정 패턴이 생기게 되는 게 문제라고 얘기했다. 이에 대해선 세대차이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설명.
  16. 예로 오스틴이 기절할때까지 샤프슈터를 걸고도 풀지 않아서 악랄하고 쫌생이같은 이미지를 보여준 브렛에 대비되어 오스틴은 badass한 매력을 선보이게 된다.
  17. Bret Hitman Hart: Dungeon Collection에서
  18. 써니와의 염문설이 돌기도 했지만, 그건 숀 마이클스의 세그먼트성 도발에 가까웠고, 브렛 본인은 숀이 다른 남자의 아내와 바람이 나자 난투극을 벌였을 정도로 깐깐했다.이건 깐깐한게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면 열 받지 않나?
  19. 몇몇의 경우는 아예 역대 최고로 꼽는다
  20. 정확히는 헐크가 300파운드였고 그외 얼티밋 워리어나 렉스 루거등 빈스가 찜했던 선수들은 275~280 파운드 정도였다. 물론 덩치가 장난 아니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21. 사실 브렛이 젊어서 숀을 높게 본 것도 이런 이유다. 무모할 정도로 몸을 날리며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숀을 보고 브렛은 빈스에게 숀을 푸쉬줘야 한다고 직접 얘기하기까지 했다
  22. 이 당시를 회상하며 브렛은 퍼펙트가 자신의 경기들을 좋아했으며 자신이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수 있도록 도왔다며 선배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브렛 본인도 퍼펙트를 두고 자신이 상대한 최고의 선수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고
  23. 이 경기는 특이하게도 TV에 방송되지 않은 경기였는데, 이도 속사정이 있다. 원래 릭 플레어는 좀 더 큰 무대에서 브렛에게 챔피언쉽을 넘겨주고 싶었지만 얼마전 얼티밋 워리어와의 경기에서 반고리관을 다쳐서 힘든 상태라 속히 치료가 필요했기에 서둘러 벨트를 넘긴 것이다. 릭 플레어의 팟캐스트에 출연한 브렛이 당시를 회상한 바에 따르면 경기를 앞두고 복도에서 릭과 빈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브렛을 힐끔힐끔 보며 얘기를 하고 있었기에 브렛은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하고 불안해 했었다고. 그러다가 빈스가 그 날 브렛이 WWF 챔피언이 될거라고 하자 벙쪘다고
  24. 다만 브렛이 스테로이드 파동 등 회사 이미지가 안좋을때 회사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고 아이들의 영웅 기믹 등을 밀고 나갔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만 하다. 기껏 자신은 회사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회사측에선 섹스와 폭력을 밀고 나갔으니...
  25. 나중에 회고하기를 WWE와 관계회복을 결심한 것은 끝이 안좋았지만 너무나 좋은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6. 본격 화해전에는 인간 취급도 안했지만 화해후의 인터뷰를 보면 숀은 실력있던 선수였다고 거듭 강조한다. 사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즈음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Hitman: Wrestling with shadows를 보면 숀을 보고 "레슬링 실력은 좋은데 프리마돈나같은 선수"라고 얘기하는등 일단 실력은 오래전부터 인정했다
  27. 특히 레슬링 실력이나 패턴이 단순하면 그걸로 깠다. 헐크 호건같은 파워형 레슬링은 지루하다며 까고 심지어는 릭 플레어마저도 상대가 누구든 한가지 패턴밖에 없다며 깠다. 물론 플레어 옹도 자신의 업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브렛을 디스하며 깠다.
  28. 또한 백스테이지 등의 행실도 매우 중요시했다. 본인이 아이들의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즐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방정맞고 망나니같던 왕년의 숀을 매우 껄끄러워했다(그나마 숀의 레슬링 실력은 인정해서 초창기부터 빈스에게 숀을 밀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 클릭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사고치고 다니던 숀과 트리플 H 등과 관계가 안좋았던 것도 이런 이유.
  29. 유튜브에서 브렛 하트를 검색해보면 수많은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트리플H나 WCW 등을 까는 영상이 꽤 나온다. 이것때문에 브렛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다만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트리플 H와 숀을 게이 자식들이라고 깐 건 사실 트리플 H가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30. 가장 위대한 슈퍼스타 50명을 꼽은 자리에서 자신이 숀 마이클스, 언더테이커, 스티브 오스틴에 이어 4위에 꼽히자 나중에 인터뷰에서 "내가 오스틴을 더 많이 이겼는데 왜 내가 더 밑인지는 알아서 생각해라"라며 불쾌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31. 짐 로스 진행으로 행해진 숀 마이클스와 브렛 하트의 대담을 보면 브렛 하트는 호건이나 워리어같은 선수들을 근육만 많고 하는건 없는 지루한 인물들로 생각했다고 나온다. 재밌는건 숀 마이클스와 브렛 하트라는 두 라이벌은 이런 근육질의 선수들이 아니라도 메인 이벤터가 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똑같이 몸부림쳤었다는 것. 짐 로스가 브렛이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 되자 숀에게 메인이벤터가 될수있다는 희망이 생겼냐고 물었을때 숀은 "인터콘티넨탈 정도로는 안된다. 브렛이 WWF 챔피언은 되야 우리같이 덩치가 비교적 적은 선수들도 메인 이벤터가 될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대답했다.
  32. 다만 그가 계속해서 스테로이드를 복용한게 아닌가 하는 말을 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고 사과했다.
  33. 하지만 오스틴은 나중에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당시에는 자기가 현역이라 자신이 방어적이었던 것이지 헐크의 업적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고 얘기하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34. 릭 플레어쪽에서 먼저 자서전으로 브렛은 오웬의 죽음 등을 자기 경력을 위해 써먹었다고 비난했고 이에 분노한 브렛이 반박했다.
  35. 이외에도 릭 플레어는 브렛이 캐나다 밖에선 흥행력이 떨어진다고 디스했지만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레슬링 전문가들도 브렛이 미국에서 흥행력이 대단하다고 평가했으며 빈스 맥맨까지도 브렛을 데려간 회사는 그 혼자만으로도 프랜차이즈 하나를 만들수 있는 굉장한 인물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니... 사실 플레어가 아주 틀린건 아닌게 미국에선 흥행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문제는 미국밖에선 흥행카드였다플레어 선생이 잘못 짚었다
  36. NXT에서 그의 조카 나탈리아와 릭 플레어의 딸 샬럿의 NXT 위민스 챔피언십이 열렸는데 각각 매니저로서 등장했다.
  37. 참고로 이 사진은 브렛이 아예 자기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다.
  38. 괜찮은 레슬러지만 위대한 레슬러까지는 아니라고...언더테이커와의 경기를 볼땐 최대한 좋게 보려고 했는데 경기 진행이 다 예측이 되었다고 한다.
  39. 이 인터뷰에 이은 후속 인터뷰(https://www.youtube.com/watch?v=ZQ0UhrO_mdk)에서 HHH와 브록 레스너의 경기도 조언할까 했다가 자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만뒀는데, 또 경기가 자기가 예측한 그대로 갔다고 말하며 조언을 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HHH에 감정이 희석된 지금은 내가 도와주면 더 잘할수 있는 선수로 보는 모양이다. 최악의 피니쉬 무브로 HHH의 페디그리를 꼽았다. 전혀 안 아파보인다는 게 이유다. 그 와중에 샤프슈터를 최고로 꼽았다
  40. 브렛은 스크류잡 이후 다른 선수들에게 "이런 일은 너희에게도 일어날수 있다"며 경고했다.
  41. 빈스가 밝히길 이때 입은 부상때문에 얼마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42. 그러나 훗날 숀 마이클스는 스크류잡에 가담했음을 밝혔다. 아마도 당시 브렛에게 완강히 가담 사실을 부인한것은 안그래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이를 밝힌다면 흥분한 브렛이 이성을 잃고 자신에게 달려들까봐 두려워해서 부인을 한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과거 브렛과 숀은 각본상의 디스 세그먼트에 대한 충돌로 한번 몸싸움을 벌인적이 있었고 숀이 브렛에게 일방적으로 밀렸었다.
  43. 사실 존 시나는 브렛이 한창 리즈 시절 당시에 자신이 자랑스러워했던 아이들의 영웅 역할인데다가 그 역할을 너무나도 잘 해내고 있다
  44. 다만 올드 스쿨이라도 릭 플레어보단 젊은 세대이기 때문에 과거의 승패 패고 전부 즉흥적으로 경기를 운영한 선수들과는 다르다
  45. 심지어는 초창기엔 같이 술마시면서 여자들이랑 어울려 놀기도 했다고 한다.
  46. 숀은 오래전부터 브렛의 실력을 존경했고 경력 초기엔 "언젠가 그와 함께 경기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화해전인 2003년에도 브렛과 함께 했던 아이언맨 매치를 자신의 최고의 경기로 꼽았을 정도였다. 그런 심경이었기에 브렛이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언행이 더더욱 화가 났을 것이다.
  47. 브렛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고, 설사 자신이 그런 말을 했더라도 그것은 숀 마이클스 본인이 아닌 그의 캐릭터를 향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문제는 숀 마이클스의 링 위의 캐릭터는 본인 자체와 큰 차이가 없었으며 당시의 숀은 그것을 냉정히 받아들일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 결국 브렛이 그런 오해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48. 이때 브렛은 차라리 디트로이트나 다른 미국 도시라거나, 스티브(오스틴)을 상대로 한다면 져줄수 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기각.
  49. 브렛의 성격이라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테지만 당시 먼데이 나잇 워라는 과열된 상황에 에릭 비숍이 어떠한 행동을 할 지 모른다는 것에 빈스는 걱정했던 것이다.
  50. 오웬 하트의 장례식 이후 대화를 다시 하기 시작하긴 했었다.
  51. 빈스 맥맨, 짐 로스, 커트 앵글등이 특히 이 부분을 칭찬했다
  52. 특히 영상으로 보면 둘이 여전히 어색해하는 듯한 모습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53. 정확히는 레슬매니아 26에서 숀이 은퇴 경기를 가진 후의 모습이다.
  54. 1월의 한 RAW에서 빈스는 브렛을 "단물이 다 빠진 껌 같은 존재"라는 조롱을 하였고, 2월 1일 브렛에게 다시 한 번 굴욕을 주기 위해 이러한 상황을 만든 듯 하다.
  55. 빈스 맥맨은 단 1대도 때리지 못한채, 37대의 체어샷을 맞는 등 브렛에게 압도적인 공격을 당했다.본격 회장님 몰매 맞는 시간
  56. 물론 이 경기가 NO DQ 매치가 되면서 다른 선수들의 난입으로 인해 상황이 유리해지긴 했다. 하트 다이너스티가 미즈에게 하트 어택을 작렬하면서 사실상 넉 다운 된 미즈를 샤프슈터로 요리했기 때문. 참고로 이 경기는 NO DQ, NO COUNT OUT 매치였으나 다른 선수들만 난입할 뿐 무기는 나오지 않는다.거지같은 Rated PG 하기사 뇌진탕때문에 고생하다가 간신히 재활한 사람한테 그런 걸 쓴다는 것도 좀 그렇긴 하다.
  57. 이 기록은 브렛이 WWE에서 따낸 (현재로서는)처음이자 마지막 US 챔피언이며 이전에도 획득하긴 했지만 이전 4회의 기록은 WCW 시절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US 챔피언은 WCW에서의 기록도 인정되기에 통산 5회 기록이 되었다.
  58. 시나는 경기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능력이 거의 없는 수준이지만, 대신 상대가 이끄는 방향으로는 잘 따라가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숀 마이클스CM 펑크, 케빈 오웬스처럼 경기력이 좋으면서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리드하는 성향을 가진 레슬러를 만나면 꽤 좋은 경기가 나온다. 미즈 같은 상대를 만나도 이끌리는 대로만 가려고 해서 문제지만.
  59. 이후에 핑크색을 상징으로 쓰는 대표적인 선수는 돌프 지글러
  60.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재연하는 각본에 대해 브렛 하트 본인이 승낙했다고 한다.
  61. 짐 디 앤빌 나이드하트와 함께 하트 파운데이션.
  62. 역대 유일한 2회 우승자
  63. 렉스 루거와 공동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