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lk Hogan |
1987년 PWI 선정 올해의 레슬러 | |||||
릭 플레어 | → | 헐크 호건 | → | 랜디 새비지 | |
1991년 PWI 선정 올해의 레슬러 | |||||
스팅 | → | 헐크 호건 | → | 릭 플레어 | |
1994년 PWI 선정 올해의 레슬러 | |||||
베이더 | → | 헐크 호건 | → | 디젤 | |
1991년 PWI 500인 선정 올해의 레슬러 | |||||
헐크 호건 | → | 스팅 | |||
1990, 1991년 WWF 로얄럼블 우승자 | |||||
빅 존 스터드 | → | 헐크 호건 | → | 릭 플레어 | |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2005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1] |
북미 메이저 단체 세계 챔피언 10회 이상 등극자 | ||||
링네임 (총 합계) | 이력 | |||
릭 플레어 (21회) (※ WWE 기준 16회) |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0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7회 WCW 인터네셔널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WF 챔피언 2회 (※ WWE 기준)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8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WF 챔피언 2회 | |||
존 시나 (16회) | WWE 챔피언 13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 |||
트리플 H (14회) | WWE 챔피언 9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 | |||
스팅 (14회) |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CW 인터네셔널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 |||
랜디 오턴 (13회) | WWE 챔피언 9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 |||
헐크 호건 (12회) | WWF 챔피언 6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 |||
커트 앵글 (12회) |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WE 챔피언 4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 |||
에지 (11회) |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7회 WWE 챔피언 4회 | |||
더 락 (10회) | WWE 챔피언 8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 |||
제프 제럿 (10회) |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 |||
번 가니에 (10회) |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0회 | |||
총 11명 |
목차
1 프로필
WWE 시절의 타이탄트론 「Real American」.
"So, let me ask you something, brother!""Whatcha gonna do when Hulkamania destroys you?"
"You better eat your vitamins and say your prayers!"
현역 시절 | 커리어 말년 |
본명 | Terry Gene Bollea |
별칭 | The Hulkster The Immortal The Incredible |
생년월일 | 1953년 8월 11일[2] |
출생지 | 미국 조지아 어거스타 |
신장 | 191cm[3] |
피니쉬 무브 | 액스 봄버[4] 아토믹 레그 드랍 |
테마곡 | Real American Voodoo Child American made[5] nWo Rockhouse Remix |
주요 커리어 | WWF/E 챔피언 6회 WWE 월드 태그팀 챔피언 로얄럼블 우승 2회 (1990, 1991)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
헐크 호건 | 케빈 내쉬 | 스캇 홀 |
현대 프로레슬링의 상징이자,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대, 최고의 대스타.
하지만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 인종차별 논란으로 완전히 몰락한, WWE 역사상 최악의 금지어.
안드레 더 자이언트와 함께 WWE의 전설이자, 나아가 프로레슬링 자체를 대변하는 전설 중의 전설. 그가 없었다면 절대로 현대의 프로레슬링은 없었을 정도로[6] 현대 프로레슬링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90년대 후반에 사실상의 은퇴를 하였지만, 제명되기 전까지 아직도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적인 환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었으며, 그가 나온다는 예고만 있으면 객석은 헐크매니아 피켓으로 도배되었다. WWE 역사에 이름을 새긴 위대한 선수들이 그간 많고도 많았지만, 은퇴한지 10년이 넘은 후에도 이렇게까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인물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더 락 정도밖에 없었다.[7]
그의 입지는 비디오 게임인 WWE 올스타즈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릭 플레어 옹[8]이나 커트 앵글, 제프 하디 등 WWE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스타들이 TNA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게임에 나오지 못한 것과 달리 호건은 TNA 소속일 때도 유일하게 WWE 올스타즈 게임에 등장했었다. 그가 단체를 뛰어넘어 현대의 프로레슬링 그 자체를 대표함을 알 수 있었던 사례.
링네임의 유래는 마블 히어로 '헐크'. 그의 팬들은 Hulkamania(헐카매니아, 혹은 헐크매니아라고도 쓴다)라고 부른다.
1.1 주 기술
시합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술은 바디슬램, 클로스라인, 빅 붓, 해머링 등. 적어도 북미에서는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레슬러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서브미션도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편.
주 피니쉬는 미국에서는 아토믹 레그드롭[9], 일본에서는 엑스 봄버이다. 특징적인 무브로는 헐크 업이 있으며 설정 상으로는 관객의 함성을 들으면 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하며 결국 조금씩 떨림이 오면서 몸 상태를 회복하기 시작하며, 상대방의 피니셔를 맞아도 이 헐크업으로 대부분 무조건 씹어버린다[10]. 그리고 호건이 완전히 일어나면 상대는 못 이긴다. 단 이것은 북미 한정, 일본에서는 헐크 업을 거의 선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는 '저거 뭐야?' 하면서 때릴려고 하다가 난데없이 자신을 쳐다보며 하는 삿대질과 "YOU!"라는 대사에 정신줄을 놓게 되고 그대로 패배하면서 게임 끝…인데 가끔 이 패턴을 깨는 이들도 있다 언더테이커라든가, 브록 레스너, 빌 골드버그, 더 락 등등. 면면 보면 알겠지만 이거 깨는 선수면 그에 준하는 슈퍼스타란 얘기다.
정확히는 헐크 업→ You! 하면서 삿대질 → 다시 덤벼드는 상대 주먹을 막고 해머링 3번 → 로프반동→ 빅 붓 → 쓰러진 상대에게 레그드랍으로 마무리.
2 경력
2.1 데뷔 ~ WWE
원래는 그냥 근육을 좋아하는 청년이었으나 대학 때 프로레슬링을 보고 반해서 무작정 레슬러들을 찾아가 연습을 시작하고 일본까지 건너가는 등 기행을 하다가 어찌어찌 하다보니 슈퍼스타가 되었다. 청년기에는 기타도 매우 좋아한듯, 실제로도 그의 기타 연주가 매우 수준급이다.
참고로 20대 때부터 이미 대머리에 수염 등 심각하게 삭아보이는 얼굴이었으며 그 때문에 80~90년대 붐이었던 헐크가 40~50대였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 실제로 헐크 호건 이후의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던 브렛 하트와는 엄청난 나이차가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브렛 하트보다 겨우 4살 위였다.
미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유명세를 얻은 레슬러이며, 안토니오 이노키를 한 방에 실신시킨 엑스봄버로 일본에선 굇수전설의 레슬러 대우를 받았다. 이노키 한명 이겼는데 웬 호들갑이냐...하겠지만 이노키에게 이긴 일본 레슬러는 거의 전무하다. 이 쯤되면 감이 오려나. 아직도 일본에서는 "이치방!"을 외치며 하늘로 손가락을 올리고 엑스 봄버를 후려갈기던 모습으로 헐크 호건을 기억하고 있다[11]. 이후 북미 AWA 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중 그 재능을 간파한 빈스 맥마흔이 WWF-오늘날 WWE-의 주연으로 발탁하면서 대히트 전설이 시작되었다. 이때 빈스 맥마흔은 측근에게 난 이제 세계를 차지하게 될거야라고 얘기했다고 전해진다.[12][13]그리고 전설로
1979년 11월 17일 헐크호건의 WWE 데뷔 경기. 상대는 Harry Valdez.
WWF는 "리얼 아메리칸"이란 컨셉으로 호건을 미국의 수호자, 미국의 영웅으로 놓고 이라크, 중동, 일본, 한국(!)[14] 등 전 세계의 거인, 초인들이 미국에 와서 깽판을 치면 호건이 박살을 내놓는 다소 유치하면서도 국수주의적인 각본을 전개했다[15]. 이런 각본에 호건의 강력한 파워, 관중의 반응에 호쾌하게 응해주는 카리스마 등이 더해지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거기다 호건은 영화, TV쇼 등에도 가리지 않고 출연해 끼를 발산한 레슬러였으며 결국 프로레슬링을 좋아하지 않는 층에도 어필하며 프로레슬링 자체를 세계에 알린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현재 WWE 최고의 이벤트인 '레슬매니아'의 이름의 유래는 레슬 + 헐크 매니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탄생 유래 자체가 호건을 위한 대회였다.[16] 여러가지로 명승부를 많이 남긴 레슬러이지만 아무래도 필승 각본을 따라가는 궁극 선역 레슬러이다 보니 좀 사기성이 강하다. 그리고 경기가 지나치게 원패턴인 것이 헐크까들에게 주공격 대상이다.
일단 중요한 시합에선 거의 99% 필승이며, 어떤 반칙에도 쓰러지지 않고, 위기의 순간에 헐크업으로 부활하여 삿대질→해머링 3방→로프반동 빅 붓→아토믹 레그드롭 무적 콤보로 상대방을 박살낸다[17]. 그럼 관객은 즐기면 된다. 하지만 이런 원패턴 레슬링은 당대에도 많이 까였으며 최악의 선역으로 헐크 호건이 뽑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불패의 레슬러는 아니었고, 레슬매니아 6에선 얼티밋 워리어와의 시합에서 패하였으나 선역답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워리어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였다.[18] 허나 이후 워리어가 챔피언으로서 WWF가 예상한만큼 성공하지 못하자 불과 1년 후 흥행 보증수표인 호건을 다시 챔피언으로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WWF의 여러 프로그램들 자체가 식상해지면서 호건의 캐릭터 역시 진부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빈스는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게 되면서 호건 등 80년대 스타들은 자연스럽게 밀려나게 되고 호건은 1993년 King of the Ring에서 요코즈나에게 패배한 후 WWF를 떠나 영화나 TV쇼 등에 출연하면서 연예계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당시 WWF에서는 호건의 헤어 스타일(탈모)를 언급하는 것은 대립 중이라도 금지되어 있었다.
2.2 WCW 이적
그 후 1994년 7월 에릭 비숍의 요청을 받아들여 WCW로 이적한다. WCW의 아나운서에서 부사장이 된 비숍은 순식간에 쇼의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되었고 당시 남부지방의 작은 단체에서 전국단체로의 성장을 위해 남부지방 억양에서 탈피하기 위해 아나운서도 "민" 진 오클랜드와 바비 "브레인" 히넌으로 바꾸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수개월 간의 설득 끝에 마침내 호건과의 계약을 이끌어냈고 이는 WCW가 미디어의 관심을 받아 전국적인 인기를 얻는데 큰 공헌을 했다. 세부적인 사항을 떠나 호건의 인지도와 인기만큼은 확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96년에는 이미지를 전환하고 싶다며 악역으로 전환하여 링네임을 '헐리우드 호건'으로 바꾼다[19]. 그리고 케빈 내쉬, 스캇 홀과 nWo라는 초대형 악역단체를 결성하여 WCW 선역 레슬러들을 마구잡이로 짓밟고 세를 불린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배쉬 앳 더 비치 96의 배신은 아직도 프로레슬링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반전으로 기록된다.[20][21] 자세한 사항은 nWo 항목 참조.
파일:Attachment/헐크 호건/nWohogan.jpg
과거의 영웅에 머물지 않는 최강의 악당.
nWo때의 타이탄트론
충격적인 배신을 하긴 했지만 악역 호건 역시 카리스마가 대단했으며 역시 대히트를 친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어디 못 주는지라 경기 승패 여부로 각본진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고[22], 이는 2000년 7월 배쉬 앳 더 비치에서 폭발하고 만다.
당시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던 제프 제럿은 호건을 상대로 타이틀전을 치르게 되어 있었고 호건은 자신의 승리를 고집했지만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제럿이 핀을 가져가라는 듯 벌러덩 드러눕는다. 예정에도 없었던 사태기 때문에 호건은 당황했고, 빈스 루소는 이런 호건에게 먹고 떨어지라는 듯 링 안으로 타이틀을 던져준 뒤 퇴장했다. 결국 호건은 빈스 루소를 비난한 뒤 제프 제럿을 발로 밟은채 3카운트를 따내고는 그대로 퇴장, WCW를 떠나게 된다.[23] 그리고 알다시피 이후 1년도 안 돼 WCW는 패망하게 된다[24].
2.3 다시 WWE로
WCW를 떠난 뒤 신생단체 XWF의 결성에 참여하기도 했던 호건이지만 XWF는 망해버렸고, 2002년 스캇 홀, 케빈 내쉬와 함께 nWo를 재결성해 WWF로 복귀, 깽판을 치며 다니다가 레슬매니아 18에서 더 락과 시합[25]에서 패배한 뒤 남은 nWo 멤버에게 배신당하고 선역 전환.[26] 이후 지미 헨드릭스의 부두 차일드를 테마 음악으로 사용하며 '헐리우드 헐크 호건' 기믹으로 등장했다. 이 때 트리플 H에게서 언디스퓨티드 타이틀을 뺏어오는 노년의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 있어 당시 악역인 아메리칸 배드 애스 기믹으로 활동하고 있던 언더테이커와 경기에서 전설의 30cm 초크슬램 접수를 보여주는 등[27]의 명승부(...)를 보여준 끝에 언더테이커에게 다시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그 후엔 에지와 태그팀으로 활동하며 월드 태그팀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Worst Choke Slam Ever
2002년 8월 헐크 호건은 브록 레스너의 베어허그에 실신당하면서 패배, 당분간 활동을 중단했고 2003년초 헐리우드를 뺀 그냥 헐크 호건으로 컴백하여 더 락과 2차전을 치뤘다. 이 당시 더 락은 악역으로, 1년 전 레슬매니아 18 때와 선역 악역이 뒤바뀐 상태였고 선역 버프를 받은 호건은 더 락에게 레그드랍을 먹이며 승리...하는 듯 했지만 카운트 3가 되려는 순간 갑자기 경기장 조명이 나갔다 들어오더니 심판[28]이 기절해 있었다. 이후 빈스 맥마흔이 등장, 호건의 시선을 끌었고 더 락이 이런 호건에게 체어샷 & 락바텀 콤보를 날리면서 승리한다.
이로 인해 호건은 빈스 맥마흔과 대립, 레슬매니아 19에서 경기를 가져 이겼지만 승리 후 첫 대면에서 빈스 맥마흔은 자신이 패배를 인정하는 듯 하다가 'WWE에서 단 한 시합이라도 더 뛰면 돈 못받음!'이란 제한을 달아 버렸다. 그리하여 헐크는 당분간 등장하지 못하는 듯 했고, 며칠 뒤부터 스맥다운에서는 '미스터 아메리카'라는 선수의 영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스테파니가 아버지 빈스 몰래 영입했다는 이 극비 선수가 등장하는 당일, 나타난 인물은 미국 국기 문양이 들어간 이상한 의상을 걸치고 마스크를 쓴 헐크 호건! 심지어 등장음악과 등장 세레모니조차 헐크 호건 시절 그대로였다.
그래서 누구나 뻔히 헐크인 걸 알지만 '헐크 호건!' 하고 물으면 '난 헐크 호건이 아니다! 그가 대단한 프로레슬러인 건 확실하지만!' 하면서 활동하는 기믹이었다. 참고로 '난 헐크 호건이 아니다!'의 원문 대사는 "I'm not Hulk Hogan, Brother!"였다. 이마에 별이 달린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나온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와 닮았다 가면 레슬러는 아무리 봐도 호건인데, 본인은 호건을 동경해서 레슬러가 된 인물일 뿐이라고 하며 절대 호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빈스가 거짓말 탐지기까지 들고 나와서 호건이냐고 물어봤는데 호건이 아닌 걸로 최종 판명되었다.(물론 각본상 그런 것) 어처구니 없다. 그리고 이건 나중에 존 시나가 한동안 똑같이 써먹었다
결국 그렇게 신나게 바보짓만 실컷 하다가 헐크가 대우에 불만을 품고 WWE를 그만두자 미스터 아메리카도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대우가 안 좋았다기 보다는 이 각본이 너무 바보 같아서 헐크가 나가버렸던 것 같다. 어쨌든 뭘 해도 전설이 되는 헐크답게 이 기믹도 전설이 되었다. 물론 미스터 아메리카는 말없이 사라진건 아니고, 어느날 빈스가 링 안에 나타나서 미스터 아메리카가 가면을 벗고 관중들에게 세레모니를 하는 장면을 리플레이로 보여주며 헐크 호건인게 밝혀졌으므로(...) 해고되었다고 밝혔다.
WWE를 떠난 호건은 TNA로 가려고 했으며, 제프 제럿이 일부러 일본까지 찾아가서 헐크 호건에게 기타샷을 날리는 등 충분한 떡밥까지 깔아놨지만, 부상 때문에 무릎수술을 받으면서 TNA행은 무산이 되었다.
얼마동안 리얼리티쇼를 진행하는 등 프로레슬링과는 거리가 있는 활동을 보여줬다. 풀타임 레슬러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WWE에 가끔 이벤트성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2005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5년 섬머슬램에서는 숀 마이클스, 2006년 섬머슬램에서는 랜디 오턴과 경기를 가져 승리했다.
2.4 TNA 행
그리고 급기야는 2010년 충격의 TNA행. 경기는 하지 않고 쇼를 진행해 나가면서 경기를 부킹하는, 즉 WWE로 따지자면 제너럴 매니저격의 역할을 맡았지만 별로 큰 반응은 이끌지 못했다.[29]
이후 척추 수술로 인해 공백을 가지고 있었지만 2010 바운드 포 글로리의 메인이벤트에서 등장, 제프 하디에게 목발을 넘겨줘 커트 앵글과 미스터 앤더슨을 공격하게 하고 챔피언에 오르게끔 도와준다. 경기가 끝난 뒤 어비스와 제프 제럿까지 링에 올라왔고 순식간에 에릭 비숍, 제프 하디, 어비스, 제프 제럿과 연합인 이모탈(Immortal)을 꾸린 호건은 멤버들과 함께 챔피언이 된 제프 하디를 축하해줬으며 분노한 관중들은 연신 쓰레기를 링 위에 던져댔다. 공교롭게도 장소마저 14년 전 그 일이 벌어졌던 데이토나 비치 오션 센터.
이 PPV가 벌어지기 전 어비스가 딕시 카터의 남편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에 분노한 딕시 카터는 에릭 비숍이 제시한 어비스의 해고 관련 서류에 기꺼이 승인하는 서명을 했다. 하지만 이 서류는 사실 딕시 카터가 소유 중인 TNA 지분을 헐크 호건에게 넘긴다는 내용이었다는게 뒤이은 임팩트에서 밝혀지며 헐크 호건은 TNA를 뒤흔드는 진정한 실세로 자리잡게 된다. 게다가 철천지원수였던 릭 플레어가 이끄는 스테이블 포춘마저 이모탈과 연합하면서 거대한 세력이 되어버린다.
2011 바운드 포 글로리에서 스팅과 NO DQ 매치를 벌였다. 이 시합엔 1년 전 딕시 카터를 속이고 탈취한 TNA 경영권이 걸려 있는데, 결국 스콜피온 데스락에 걸려 탭을 쳤다. 그러자 릭 플레어를 필두로 빡친 이모탈 멤버들이 난입하여 스팅을 집단구타했고, 폭풍처럼 쏟아지는 관중의 야유속에 정신을 차린 호건은 셔츠를 찢으며 헐크 업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비록 메인 이벤트(커트 앵글 VS 바비 루드)는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를 받은 PPV였지만 이 경기 또한 못지 않은 병맛이었다는 평가가 컸다. 스팅의 호건 헬프 미의 충격도 충격이거니와, 경기에 패배한 뒤 개과천선하여 과거의 악당 동료들을 쓸어버린다는 이 패턴은 아무리 봐도 레슬매니아 18의 재현. 차이점이라면 상대가 신세대 스타가 아니라 같이 20여년 가까이를 굴러온 베테랑이라는 것뿐. 평가에 걸맞게 바운드 포 글로리는 예년에 비해 영 좋지 않은 흥행 실적을 거뒀다.
이후 TNA와의 계약이 끝나고 돈이 궁했는지 WWE와 계약하고 싶다 슬슬 입질을 넣고 있다. TNA에 다시는 안 가겠다는 드립도 치고 있고...그런데 그가 TNA에서 했던 짓을 생각하면 TNA 팬들에겐 이래저래 천하의 개쌍놈. WWE 팬들도 경쟁단체로 가더니 홀라고당 말아먹고 돌아와서는 30년 전 액션을 보여주며 "여러분이 그리웠어요ㅠㅠ" 이런 쇼를 볼 생각을 하니 당연히 그를 영 좋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2.5 두 번째 WWE 복귀(2014.02~2015.07)
결국 2014년 2월 24일 RAW 복귀 확정. 추가해서 레슬매니아 30의 호스트로 선정되었는데 이것은 역시 레슬매니아라는 PPV 자체가 호건을 위한 PPV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30주년 기념으로 등장하는건 어찌보면 호건이나 WWE로서는 큰 의미였다. 레슬매니아 30 당일, 스티브 오스틴, 더 락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오프닝 세그먼트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연설 도중 개최장소인 슈퍼돔을 실버돔[30]으로 잘못 발음하는 해프닝을 일으켜 야유를 받았다. 뒤에 등장한 오스틴, 락도 이를 두고 훈훈하게(?) 놀려주었다.
2014년 일본 투어에 참가하여 매진 흥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때 일본인 프로레슬러 켄타와 WWE 계약식 세그먼트를 진행하였다.
2014년 8월 11일자 RAW에선 생일 파티를 가졌다. 폴 온돌로프, 릭 플레어, 로디 파이퍼, 민 진 오클런드, 지미 하트, 케빈 내쉬, 스캇 홀이 등장해 그에게 축하 메세지를 전했고 WWE 측에서도 그의 커리어를 담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방영해주었다. 재밌는 것은 WCW 시절 영상은 보여줬으면서 TNA 시절 영상은 당연히 생략했다는 것. 그리고 그 영상에는 호건의 막장 가족들의 얼굴도 나왔는데 딸과 아들은 나왔는데 개막장으로 유명한 그의 前 부인은 당연히 22 생략되었다. 그 순간 브록 레스너가 등장해 공격받나 싶었으나 존 시나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었다. 이날 RAW 쇼 중간중간에 플로 라이다 등의 유명인들이 헐크 호건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방송이 끝난 뒤에는 빈스 맥맨도 등장했다.
그리고 프갤에서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영웅의 귀환 미국의 척준경, 도림 여기에 이어 WWE에 방해가 되는 단체는 가서 망쳐놓는 WWE의 수호신이란 글까지근데 진짜같아[31]
그런데...
3 인종차별 사건
전설의 몰락
2015년 7월 24일부터 WWE 공식 홈페이지에서 갑자기 헐크 호건과 관련된 자료들이 죄다 삭제되기 시작했다. 헐크 호건의 프로필, 영상, 기록과 머천다이즈 상품들은 물론이고 WWE 명예의 전당 명단에서도 삭제되었다고 한다.[32] WWE가 갑자기 한 프로레슬러의 모든 기록을 말소시키는 것은 2007년 크리스 벤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굉장한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헐크 호건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테이프가 공개되어서 라는 소문이 있었고 결국 기록 말살의 사유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확인되었다. 과정을 살펴보면 버바 더 러브 스폰지의 아내 헤더 클렘[33]과의 대화내용이 공개되었는데 그 곳에서 딸인 브룩 호건이 흑인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것을 두고 F*cking N*gger 등 여러 가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이 공개된 것이었다. 그동안 법정내 비공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으나 이번에 유출이 되었다고 한다(...). WWE에서는 이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재빠르게 호건과 관련된 기록을 싹 다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그 이전에 알베르토 델 리오나 리카르도 로드리게스의 퇴사 이후 인터뷰 때문에 인종차별문제로 껄끄러웠던 WWE 입장에서는 재빠르게 손 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무엇보다 델리오나 리카르도는 그들이 주장만 했을 뿐 증거는(어쩔 수 없는 거긴하지만) 없는 반면 호건의 경우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보니.. ???: ㅠ오ㅠ 덤으로 이건 WWE 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TNA에서도 헐크 호건의 기록과 상품들이 삭제되고 있다. 상품 리스트에서 내려진 호건 상품 중에는 출시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은 호건 경기 DVD도 포함된다.
이정도면 미국내 활동은 사실상 끝장났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지금 호건의 상황이 조용히 잠수타고 자숙하는 모양새를 취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은지라 다른 일자리가 필요하겠지만 두 번째로 몰락한 호건이 미국내에서 재기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나마 먹어주는 일본내 활동이 증가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돌고 있다. 한국도 좀 그렇지만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이 인종차별 문제에 둔감한 경향이 있기 때문. 미국 내 트위터에서는 얼마전 성폭행 사건을 터뜨린 코미디언 빌 코스비와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을 망친 인간 중 하나로 몰려 까이는 중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만 했었다면 브룩 호건의 남친이 맘에 들지 않아서 욕을 하다가 선을 넘어 과격하게 말했다는 실드라도 칠 수 있었겠지만...1주일 뒤인 7월 30일에도 추가적인 과거에 했던 인종 차별 발언이 확인되었는데 웬수 새끼아들이 교도소에 있을 때 면회를 갔다가 이야기 하는 와중에도 "깜둥이들"이란 말을 하는게 포착이 되었다고 한다.
그밖에 흑인 선수들 가운데서는 반응이 많이 갈리는 편인데 과거 헐크 호건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버질 같은 선수는 "헐크 호건이 내게 얼마나 인간적인 대우를 해줬는데 그건 단지 실수일 뿐이다"라는 식으로 옹호하기도 하고, 더 락은 "그는 나의 아버지와 삼촌들과 함께 훈련했던 절친한 친구 관계였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발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다시 말하는 약간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고, 개깡패뉴 잭은 "망할 새끼 눈에 띄면 죽여주마"라는 식의 분노를 표출했다.
이번일로 프로레슬링 팬들 사이에서는 투명드립이 유행하고 있다.[34] 위에 서술한데로 WWE 공식 홈페이지에서 헐크 호건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삭제하자 포토샵 등을 이용해 헐크 호건이 등장한 모든 장면에서 헐크 호건만 삭제하고 있다. 사실 그의 존재는 소멸되었다 투명인간과 싸우는 얼티밋 워리어, 앙드레 더 자이언트, 빅 보스맨들의 위엄. 특히 괜히 혼자 내던져지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가 압권이다.
WWE 공식 유투브에는 아직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는 헐크 호건의 영상이 몇개 있는데 이미 댓글란은 투명드립으로 가득 차 있다. 릭 플레어와의 경기에서 "왜 오토바이가 운전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 달리고 있지?"라던가 릭 플레어와 공기의 경기라고 하거나 크리스 제리코와의 경기 영상에서는 "제리코 술마셨나? 왜 혼자 레슬링해?"라고 하는 식이다. 혹은 어떤 댓글러가 "저 노란색 티셔츠 입은 사람은 누구야? 신인인가?"라고 하면 답글로 "저건 커티스 액슬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기 취급 당하는 중.
서로 다른 인종에게는 술이 취하건, 화가 나있건, 신체나 감정 콘트롤이 안된 상태에서 이야기 하는 인종차별 발언 조차 허용이 안될정도로 현대 미국사회는 인종차별을 사회문화적인 터부이자 금기로 판단하고 있는 사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장 자기의 가족을 죽이고 자살한 크리스 벤와와 똑같은 급의 기록 말살을 당할 정도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WWE가 헐크 호건에게만 너무 한다는 이유를[35] 들어서 동정 여론이 생기고 있는데 문제는 암만 동정파들이 모여서 그를 변호할려고 해도 툭하면 헐크 호건 이 인간이 헛소리를 한다는 거다. 법정에서 위증을 한 건 둘째치고, 인종 차별 발언에 대해 그냥 솔직히 사과 하면 될 걸 오랜 버릇인 남탓을 하며 "내가 자라던 동네에선 이런 말 자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 익었다"라고 했다가 호건의 어린 시절 주민들이 "우린 비록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런 인종 차별적 언어 쓴 적 없다."라며 반발해서 데꿀멍 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가 되서 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딱 인종 차별주의자들 끼리 뭉치는 행위라며 간신히 결집시킨 팬과 동정 여론을 지가 열심히 박살내는 중. 오죽 했으면 브렛 하트는 헐크 호건이 앞으로 다시는 WWE에 돌아와서는 안될 인간이라며 비판했다.갈피를 못잡고 동료들의 쉴드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2016년 5월 자신의 성관계 비디오를 유출해 자신을 몰락시킨 미국의 미디어 회사 고커[36]와 법정 싸움을 벌였고, 승소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받는데 성공했다. 호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커리어를 불명예스럽게 끝장낸 것에 대한 추가적인 고소를 하겠다고 밝힌 상황, 그리고 이런 법정 공방으로 고커는 파산을 선언하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4 트리비아
인기가 많아서 여러 영화에도 출연했다. 대표작은 록키 3. 그런데 록키 3는 헐크 호건이 유명해지기 이전에, 즉 WWF에 등장하기 전에 찍은 영화이다. 유명해져서 록키에 출연한 거라고 오해한 사람도 있었을 듯. 록키 3의 영향으로 록키 3의 주제가였던 '아이 오브 더 타이거'를 입장시에 사용할 때도 있다. 이 시기 WWF에서 재미교포이던 타이거 정 리(김덕)과 시합을 갖기도 했다.
사실 헐크가 찍은 영화는 대체로 2, 3류 영화이며 케이블TV나 비디오 가게를 전전할 정도로 별로 작품성 있는 물건들은 아니지만, 본인이 밝히기로는 유명세는 없어도 이득은 확실히 챙기는 실속 있는 영화들이었다고 한다.
그렘린 2에서도 카메오 출연했는데 그렘린들이 영화 상영을 방해하자 극장 매니저가 도움을 요청, 헐크 호건이 옷을 찢어버리며 격분 "당장 영화 안 보여주면 모두 작살을 내주마"라고 으르렁거려 그렘린들을 제압하는 포스를 보여준다.[37](...)
Sorry folks. It won't happen again.
또한 라이브 어 라이브 현대편의 맥스 모건의 모델이 된 사람이다.
대전액션게임 아랑전설의 주인공 테리 보가드는 헐크 호건의 본명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름만 헐크 호건의 본명을 땄다.
대전액션게임 월드 히어로즈의 캐릭터 중 머슬 파워가 헐크 호건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이다. 초기에는 헐크 호건과 완전히 똑같았지만 나중에 WWF측의 딴지가 두려웠는지 약간 바뀌었다. 그래봤자 수염만 없앤 것에 불과하지만.
대전액션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3의 주인공 알렉스도 헐크 호건을 모티브로 했으며 특히 휴고 앙드레와 대전에서의 이벤트는 실제로 헐크 호건과 앙드레와의 이벤트를 모티브로 했다.#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크라임 파이터 2의 2P캐릭터 호크는 헐크호건을 거의 그대로 갖다 쓰다시피 했다.
무한도전 2010년 달력 특집에서 7월 사진으로 노홍철이 돌크호건 코스프레라고도 읽고 변신이라고도 읽고한다. 번지점프대에서 레슬링하는 사진이다. 상대는 얼티밋 쩌리어로 분장한 정준하.
헐크 호건이 항상 두건을 쓰고 다녀서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헐크 호건은 대머리이다.
스컬걸즈의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세레벨라의 5번 색깔이 헐크 호건을 모티브로 했다.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초창기 WWE-당시에는 WWF-를 빛냈던 슈퍼스타 중에서 아직까지 (제한적이나마) 활동하고 있는 몇 안되는 선수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대부분의 선수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 특히 2014년 4월에는 얼티밋 워리어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1980년대 국내에 WWF 붐이 일었을 때 활약했던 선수로는 테드 디비아시와 홍키 통크 맨, 핵소 짐 더간 정도만 살아있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사망한 헐크 호건과 같은 시기에 링에 올랐던 레슬러들이 하나같이 60살을 못채우고 죽었다는 점이다. 얼티밋 워리어도 사망할 때 나이가 55살이였다. 심지어 빅 보스 맨과 어스퀘이크는 한창 때인 40대에 건강이 나빠져 사망했다. 제이크 로버츠도 그나마 살아있지만 2014년 8월 말에 비행기에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5번째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 헐크 호건을 패러디한 럴크 로건 NPC가 등장예정이다. 특히 호건의 명대사를 패러디한 "여기는 몹 젠이 안되네, 형제여(spawning is incomplete here, brother)"라는 서브네임이 압권.
TNA 팬에게는 TNA를 몰락시킨 WWE의 자객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위의 영웅의 귀환 짤도 그렇고 프갤에선 아예 WWE가 경쟁 상대에게 호건을 보내 멸망시킨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이다.
오만한 성격과 여러 얽히고 섥힌 복잡한 일들 때문에 현역 때 같이 활동했던 동료 레슬러들과 전체적으로 사이가 나쁜 편이었고, 특히 마초맨 랜디 새비지와 얼티밋 워리어와는 오랜 세월 앙숙이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고 가족문제로 고생하면서 지금까지를 돌아볼 심리적 이유가 생겨났는지 마초맨과는 단절됐던 대화를 다시 열어 화해를 시도했지만 마초맨이 운전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망연자실함을 느꼈다고 하며 애도를 표했다. 워리어는 트위터로 가식이라고 비난하면서 둘의 설전이 이어졌지만 2014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워리어가 왔을 때 호건이 화해를 요청하여 둘의 오랜 앙금도 풀렸다고 한다. 얼마 뒤 워리어까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걸 감안하면 말 그대로 극적이다.
MR.T와 함께 토크쇼에 나가서 진행자에게 기술시범을 보였는데, 진행자의 뒤통수가 정말로 깨져버리는(...) 사고가 있기도 했다.
4.1 일본 활동 시절
일본에서 활동할 때는 미국에서 거의 원패턴 경기만 했던 것과는 달리 그라운드 관절기를 적극 활용하는 파워풀한 테크니션으로 활동했다. 가끔 원패턴 경기를 하지 않고 미국에서도 테크니션으로 활동했다면 선수 생명이 지금처럼 길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릭 플레어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사실 북미에서의 그의 무적의 리얼 아메리칸 모습으로 원패턴의 재미없는 경기를 한다니 하는 비판은 가해질 순 있지만 그런 모습으로 호건의 레슬링 실력 자체가 폄훼당해선 절대 안된다. 사실 호건이 절대 체력이 얼티밋 워리어처럼 저질(...)이라거나, 그가 구사할줄 아는 기술이 거의 전무해서 원패턴의 시합을 가진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
결국 호건이 미국에서 원패턴 레슬링을 하는 것은 팬들이 원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실력이 없어서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본에서 경기를 가질 때는 일본 팬들을 위해 일본에서 활동했던 기술을 사용한다.
필살기부터가 엑스 봄버 | 일본에서 하는 특징적인 무브는 검지 손가락을 하늘을 향하며 '이찌방!!'이라고 외치는 것.[38] |
그리고 실제로 호건의 일본 프로레슬링에서의 평가는 그가 인터넷에서 가끔 볼수 있는 희대의 테크니션설(...)까지는 아니라도 거인[39] 레슬러중에서도 구사할수 있는 테크닉이나 경기 운용 모습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확실히 북미경기랑은 다르게 경기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에서의 경기 자체가 좀 루즈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가 예전에 활동했던 일본의 스타일을 강하게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움직임보다는 다소 답답할수도 있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경기 운영을 자주 하는것을 볼수 있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낸 명경기도 꽤나 많다는 점을 봐서도 호건의 레슬링 실력이나 테크닉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저질에다가 원 패턴이라고 마구잡이로 욕할순 없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 이미지를 따온 것이 바로 근육맨에 등장하는 넵튠맨. 넵튠맨의 필살기 자체가 엑스 봄버에서 따온 켄카 봄버, 이름의 유래도 당시 일본 언론에서 엑스 봄버를 "넵튠의 삼지창"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유래했다. 넵튠맨도 미국에서 유명해지기 전에 나온 것이다.
190cm만 넘어도 빅맨 대접을 받는 일본 링에 오르면 일단 존재부터 위압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40] 그러다보니 굳이 많은 기술을 쓸 필요도 없었다.
4.2 콩가루 집안
헐크 호건의 가족들 중 그나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딸 브룩 호건.[41] 아버지를 닮아서 키 180cm에 체격이 상당히 건장하다. 미식축구선수 필 코스타와 약혼했었으나, 2013년 가을 파혼했다.
헐크 호건에게는 최대의 흑역사인 아들 닉 호건은 음주운전 교통사고 혐의로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그 사고들 중에는 자기 친구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적이 있는 흠좀무한 녀석이다. 체격은 아버지와는 영 딴판으로 누나보다도 작다.
뒷소문으로는 헐크 호건이 돈을 굉장히 밝힌다고는 하지만,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된장녀 마누라에 연례행사로 람보르기니를 부숴먹는 아들, 가수 되겠다고 설치는 딸, 자신에게 빌붙어서 자신의 등골을 제대로 빼먹으려는 마누라의 내연남 때문에 돈을 안쓸래야 안쓸 수가 없다. 게다가 얼마전에는 교통사고를 친 아들 때문에 죽을만큼 고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집안도 처음부터 이 모양이었던 것은 아니다. 업종이 연예계에 가까운 업종이다보니, 평범한 시민 가족보다는 화려하고 별난 일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모범적인 제대로 굴러가던 가족들이었다. 남편과 내조하는 부인(뭐 부자 남편 둔 연예계 가정이니 어느정도 품위유지비나 미용비는 이해해야 할 듯), 멀쩡한 자녀들의 가정이었었는데...
헐크 호건 패밀리라는 리얼리티 방송에 나오면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 방송으로 온 가족이 모두 자기가 대단한 스타가 된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 문제는 이 방송이 감동의 인생사 이런 류의 방송이라면 참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이려고 자기관리를 했을 것인데, 그게 아니라 겉만 화려한 서부 졸부집안의 웃기는 모습이 컨셉이었다는 것. 이걸 또 시청률이나 광고수익을 누린 타블로이드급 언론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결국 막장에 이르게 된 것.
물론 호건 본인의 성격 자체가 오만하고 제멋대로라 지금까지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기본적으로 팬들 앞에선 친절하다고 한다.
사적인 근황은 그야말로 안습 일변도. 가수 시킨답시고 열심히 밀어준 딸은 재능이 없는 건지 푸쉬(...)에 비해 죽을 쓰고[42] 말썽만 부리고 있으며, 이런저런 일로 부인과 사이가 안좋은 상태에서 딸의 친구와 잔 것이 들통이 나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틀어져서 결국 이혼했다. 게다가 딸도 인터뷰에서 마구 씹어대서 거액의 위자료를 물어줘야할 판. 이쯤되면 돈 밝힌다고 까기도 미안할 지경이다.
딸을 위해서 정말 별 짓을 다하고 눈물겨운 노력을 했으며 죽을 힘을 다했다. 딸을 가수 시켜주기 위해 영화촬영으로 알게 된 지인들을 만나 사정하기도 했고 WWE의 디바로 만들기 위해 동료 레슬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엄청나게 해댔다. 하지만 브룩 호건은 가창력이 그저 그런 수준에조차 못미치는데다가 몸이 글래머인건 좋은데 등빨만 좋을 뿐, 미모나 운동 신경 등 디바로서 갖춰야 할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부실했다. 이 때문에 헐크 호건은 혈연을 이용해서 딸을 데뷔시켜주고 있다며 호되게 까였다.
아들을 위해서도 딸에게 투자한 노력 못지않게 눈물겨운 노력을 했지만 아들의 상태는 딸보다 넘사벽으로 심각했다. 아들이 카레이서가 되고 싶다고 해서 람보르기니를 사줬건만 사주는대로 족족 부숴먹고 교통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거의 죽었다 살아나다시피 할 정도로 고생했으며 아들이 교통사고로 징역을 사는 바람에 아들이 낸 사고의 피해자에게 가서 무릎꿇고 빌어야했다.
갑작스레 이혼을 하더니 새로 만난 사람은 24살 여자. 당시 헐크 호건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31살 차이(...). 제니퍼 맥다니엘이다. 이게 문제가 아니라 제니퍼 맥다니엘, 이 여자의 나이...헐크호건의 딸인 브룩 호건보다도 3살이나 어리다. 거기에 헐크 호건의 전 부인은 현재 19살 남자와 사귀고 있다고 한다. 이쪽은 29살 차이(...).
이러한 일 때문에 헐크 호건은 한 때 자신의 친딸과 열애설이 나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전 부인이나 아들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지만 딸과는 상당히 사이가 좋다. 그게 정도가 지나쳐서 열애설까지 번지기도 했다.
이혼 서류에 도장 찍고 나면 누구랑 만나도 상관할 바 아니지만, 띠동갑도 아니고 이런 나이차라니...보다도 본인도 아니고 본인의 딸보다도 더 어린 상대라니...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그런데 헐크 호건이 이혼한 사유를 알아보니 제아무리 성인군자, 대인배 중의 상대인배라도 그런 아내라면 이혼할만 하다. 왜냐 하면 안그래도 헐크 호건 본인이 프로레슬링으로 뼈빠지게 벌어온 돈을 아내가 흥청망청 쓰는 것도 모자라서 아내는 헐크 호건이 번 돈으로 자신의 애인인 찰리 힐이라는 19살짜리 소년의 똥구녕 치닥거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빡치지 않을래야 빡치기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헐크호건의 자가용을 이 소년이 제멋대로 몰고 다니는가 하면 헐크 호건의 방에서 자고 헐크 호건의 개인 소장품을 함부로 만지고 주머니에 넣는 등 별짓거리를 다하는 데다가 심지어는 이 소년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범칙금을 헐크 호건이 대신 물어주는 지경까지 갔다. 게다가 이 찰리 힐이라는 소년이 얼마나 천하의 개쌍놈이냐 하면 자신이 잘못해서 내야 할 엄청난 액수의 범칙금과 자신이 진 엄청난 빚 모두를 죄다 헐크 호건에게 떠넘기려 했다. 오죽했으면 헐크호건 본인이 "OJ 심슨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이해하고도 철철 넘친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였다. 듣도 보도 못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생각해보자. 더군다나 그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와 내연관계라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성질이 뻗칠까. 여기까지 참은 헐크 호건이 참으로 더 킹 오브 대인배로 보일 지경이다. 자신의 아내와 사통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등골을 제대로 빼먹으려 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헐크 호건의 아들 닉 호건은 보험에 들지도 않은 오토바이 타다 사고를 쳐서 8개월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거기에 헐크 호건의 아들에게 있는 진짜 심각한 문제는 카레이서가 된다고 깝치다가 사고를 엄청 크게 냈는데 이 사고로 자기 친구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놨다. 이래저래 무서운 집안이다.
자신의 섹스 비디오[43]가 유출되어 언론에 공개되어서 화재에 오르기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흠좀무가 대부분.
그리고 호건은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데 소송을 맡은 폴로리다 주 법원의 배심원들은 호건이 요구한 금액보다 더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언론은 즉각 항소할것이라고 한다. #
5 같이 보기
- ↑ 인종차별 사건 이후 공식 홈페이지 명단에서 삭제되었으나, 명예의 전당에서 공식적으로 삭제한다라는 WWE의 보도는 없었다. WWE는 호건을 공식적으로 퇴출하지도 그렇다고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하지도 않는 좀 애매한 스탠스를 유지하는 중이다. 일단 호건이 릭 플레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등장해서 한 말에 의하면 명예의 전당에서 자신이 퇴출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는듯하다.
- ↑ 여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헐크 호건을 80세라고, 생각하겠지만 60세 초반이다.
- ↑ 참고, 젊은 시절엔 198cm 정도 였다.
- ↑ 주로 일본 무대에서 쓰던 피니시. 북미에서도 아주 가끔 사용했다.
- ↑ WCW에서 헐크 호건 기믹으로 활동할때 쓰던 테마
- ↑ 오늘날 프로레슬링 쇼의 시스템과 개념을 확립했다고 봐도 무방한 인물. 적절한 쇼맨십에 화려한 마이크웍등 WWE가 내세우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는 기본공식은 바로 그에게서 시작된다.
- ↑ 일례로 파트 타임으로 출연하던 2005년 섬머슬램에서는 당대 최고의 스타중 한명인 숀 마이클스와의 경기에서 숀의 응원구호나 피켓따위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반대로 헐커매니아들은 경기장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2006년 섬머슬램에서
랜카츄랜디 오턴과의 경기에서는 온 경기장에는 헐커매니아와 헐크 호건의 외침이 경기장을 사로잡았다.그 와중 막국수옹을 시리얼해먹는 호건영감의 피켓이 눈에 자주 띄었다 안습(...) - ↑ 이쪽은 그래도 TNA와 합의를 보고 2012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는 했다.
- ↑ 호건 한정으로 Leg Drop Of Doom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기도 하다. 거의 쓰진 않지만.
- ↑ 초기 무적이였던 언더테이커의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도 헐크업으로 바로 씹혔을 정도다.
- ↑ 이걸 오마주한 캐릭터가 근육맨에 등장하는
기행초인넵튠맨이다. 근육맨 캐릭터 답게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닮아있다. - ↑ Sex, Lies, and Headlocks에서
- ↑ 당시 AWA에서 인기가 좋았으나 테크니션이 아니라는 이유로 박대 받던 헐크 호건은 록키 3에 나오면서 인지도를 더 높였는데 안그래도 악명높은 워커홀릭이라 영화를 잘 안보는 빈스가 그걸 본 뒤 분명 대중이 호건을 알아볼것이라 여겨서 영입했다고 한다.
- ↑ 1984년 Tiger Chung Lee라는 재일 한국인(한국명 김덕) 레슬러와 경기를 해서 이겼다. 이 당시 김덕의 기믹은 악역 일본인 레슬러였던 미스터 푸지의 한국인 무술가 친구(...), 고로 김덕도 당연히 악역이였다. 이 당시 둘이 같이 태그팀으로 경기를 할때 미스터 푸지가 욱일기를 들고 나오는 등 한국인들 입장에선 여러모로 매우 흠좀무하고 어이없을 기믹이였지만 당시 WWF가 한일관계에 대해서 잘 이해했을리가 없으니 뭐 그려려니 하자.
- ↑ 예를 들면 호건의 첫 WWF 챔피언 획득이 1984년 1월에 있었던 이란출신 아이언 쉬크와의 대결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때 아이언 쉬크와 그의 매니저가 후에 이라크 군으로 분장한 변절자 기믹의 서전 슬로터와 함께 제네랄 아난 그리고 무스타파 대령 기믹으로 다시 등장한다. 일본쪽 기믹은 하와이 출신의 요코주나. 이건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 한국의 김일도 똑같았지만 헐크 호건은 그야말로 세계구였던 것이 차이.
- ↑ 비틀즈의 매니아 = 비틀매니아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호건이 워낙 전설에 레전드급이라...이쪽 유래를 대부분 정설로 친다.
- ↑ 헐크 호건의 전성기 시절에 이 콤보를 씹어낸 레슬러는 얼티밋 워리어, 시드 저스티스, 요코주나 단 3명뿐인데 이 중 시드 저스티스는 각본과 실제 시합사이의 오류로 어쩔수없이 각본을 씹은 것이고 요코주나의 경우 헐크 호건의 WCW 이적전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즉, 제대로 씹은 것 얼티밋 워리어 한 명뿐이라는 이야기
- ↑ 현재 은퇴한 에지가 이 경기를 보고 레슬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지는 2002년에 자신의 우상인 호건과 WWE 태그팀 챔피언을 따내기도 한다.
- ↑ 사실은 에릭 비숍이 제안한 것이었다. '선역으로 인기를 누린 당신이 악역으로 전환한다면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호건을 설득시킨 것. 아울러 이때는 초기와는 달리 호건의 영입이 별 반응을 내보이지 못했고 호건 자신의 인기도 어느정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을때였다.
- ↑ 이때 당시 경기중계실황을 보면 헐크 호건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해설자인 바비 히낸이 "Whose side is he on?(누구편인 거지?)"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비 히낸이 헐크 호건과 WWF 시절부터 견원지간 기믹이 있었기 때문에 깐죽대는 커멘트라고 간과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사실상 떡밥성 코멘트였던 것.
- ↑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반전이라기보단 진짜 사고였기 때문에 논외.
- ↑ 제리코의 자서전을 보면 오웬 하트의 장례식에서 제리코가 WWE로 갈 거라고 고백하자 자신도 데려가줄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호건 자신도 이쯤에서 WCW에 지치기 시작한듯 하다.
- ↑ 이 경기는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정식 챔피언쉽 변동도 없었다. 대신 즉석에서 땜빵으로 제프 제럿과 부커 T의 WCW 챔피언쉽이 열려 부커 T가 첫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다.
- ↑ WCW의 마지막 나이트로는 2001년 3월 26일에 열렸으며 이날 경기의 중계스태프는 WCW를 인수한 WWE 스태프들이었다고 한다.
- ↑ 부제가 Icon vs Icon이었다. 악역이었던 헐크 호건이 환호받고 선역이었던 더 락이 야유를 받기도 했었고 경기력 자체도 좋았다. 여러모로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의미있는 경기였으며, 그 해 최고의 명경기로 기록되었다.
- ↑ 호건이 nWo 멤버들에 공격당하자 더 락이 다시 들어와 도와주며 협공으로 nWo를 몰아냈다.
- ↑ 언더테이커가 점프하라는 장면이 잡혔다. 7초 정도때.
- ↑ 이 시합의 심판이 바로 훗날 라 레지스탕스의 멤버로 유명해진 실반 그리니어. 이후 레슬매니아 19에서도 나오지만 이내 저지당한다.
- ↑ 호건이 처음 TNA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WWE는 14년만에 브렛 하트를 RAW에 등장시켜 숀 마이클스와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대중의 관심을 TNA로 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심지어 릭 플레어 역시 같은날 등장했음에도 그냥 묻혀버렸다.
- ↑ 실버돔은 호건이 안드레를 상대했던 레슬매니아 3의 개최장소이다. 안드레 추모 배틀로얄 경기 때문에 잠시 착각한듯 하다.
- ↑ 그가 몸담은 곳 중 WWE를 제외하고 안 망한 데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뿐이다.
- ↑ 단, 명예의 전당에서 완전히 제명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 ↑ 2012년 호건의 섹스비디오 영상의 그 주인공
- ↑ '레슬매니아3에서 앙드레 자이언트랑 싸운게 누구야?' 식의. 그의 중요 WCW 커리어인 nWo의 멤버를 소개할때 그를 빼고 스캇 홀과 캐빈 내쉬만을 이야기 한다던지.
- ↑ 또 다른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아이언 쉬크의 경우 이란 출신임에도 다른 아시아인들을 비롯해 미국에 사는 여러 소수 인종들을 비하하는 글을 엄청나게 트윗한 적이 있다. 또 워리어도 WWE로 복귀 하기전 각종 강연회를 돌아다니며 극우주의적 발언을 일삼으며 한번은 강연에 참가한 아랍계 출신 어린이에게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엄청난 인격 모독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끝판왕으로 도널드 트럼프는...설명이 필요한가?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안했으면서 현역때 흑인 선수들과 스스럼 없이 지냈고 이전에 인종문제로는 구설수로 오른적이 없이며 자식들 문제로 속썩이는 와중에 말 몇마디 잘못 한 호건이 이런 대우를 받는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라는게 골자다.
- ↑ 코타쿠, 기즈모도 등의 웹진 운영사.
- ↑ DVD와 TV방영판에만 그가 나온다. 국내 극장 및 미국 개봉판과 국내 비디오판에선 존 웨인이 나와 그렘린들과 총격전을 치룬다. 물론 다른 영화장면과 합성한 것.
- ↑ 또는 '액스 봄버!!'라고 외치기도 한다.
- ↑ 호건의 신장은 무려 2m 01cm(프로필)이다. 체중은 137kg.
- ↑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호건은 신장 2m01cm 체중 137kg이다.
- ↑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나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지 가수 되겠다고 하고다닌 행태를 보면 정상은 아니다.
- ↑ 가수 컨셉부터 잘못 잡았다. 어지간한 남자 떡대의 브룩 호건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1집같은 컨셉으로 등장한 것이다. 아담사이즈의 스피어스도 이후 성인이 되면서 귀여운 중산층 이웃집 소녀, 밸리 걸 컨셉을 포기하고 도도하고 당당한 어른으로 변신했음을 볼 때 180센티에 어지간한 남자보다 등판 넓고 어깨 넓은 브룩 호건이 '난 귀여운 소녀예요'라고 하는건...
- ↑ 상대가 버바 더 러브 스폰지의 아내 헤더 클램(Heather Clem)이다. 불륜은 아니고 바바 더 러브 스폰지가 스와핑에 취미를 갖고 있어서 호건에게 자신의 마누라랑 한 번 자보라고 권유했다고, 그런데 그걸 몰래 찍었다가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유출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