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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六兼元
무로마치 시대 말에 미노노쿠니(美濃国)[1]에서 활약한 일본도 도공 및 그 작품을 말한다. 미노덴 산아미파에 속한다. 대대로 마고로쿠(孫六)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2대 세키노 마고로쿠(関の孫六)가 특히 유명하며, 스에세키모노(末関物)[2]의 대표작으로서 카네사다 도파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야마다 아사에몬은 일본도의 등급을 분류한 저서 <회보검척>(懐宝剣尺)에서 1대 및 2대 카네모토를 최고등급인 사이죠오오와자모노로 감정했다.
1 산본스기(三本杉)
4대 마고로쿠 카네모토가 만든 와키자시, 간에이(寛永, 1624년) 경 제작.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삐죽삐죽한 하몬이 마고로쿠 카네모토가 만든 작품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독특한 하몬을 세 그루 삼나무란 뜻의 산본스기(三本杉)라고 부르며 세키노 마고로쿠 산본스기(関の孫六三本杉)란 이름으로 회자되었다.
2 세키노 마고로쿠(関の孫六)
2대 카네모토이며 가장 유명한 카네모토 마고로쿠이다. 에이쇼(永正) 년간에[3] 1대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와 수련을 하였고 그의 자식인 2대 카네사다(통칭 노사다(之定))와 의형제의 연을 맺었다.
2.1 아오키 카네모토(青木兼元)
인장 70.6cm, 굽어진 정도 1.51cm 명문 兼元
세키노 마고로쿠의 최고 걸작으로 뽑힌다. 도쿠가와 가신인 아오키 카즈시게(青木一重)가 마가라 나오타카(真柄直隆)[4], 타카모토(隆基) 부자를 벤 검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마가라기리(真柄斬り)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기후 현의 애도가(愛刀家)가 개인소장하고 있다.
2.2 아키노아라시(秋之嵐)
은삼강 명문 秋之嵐/織田七兵衛所持
따로 명문이 새겨져 있지는 않지만 세키노 마고로쿠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하몬이 바람에 날리는 단풍들 처럼 보인다 하여 아키노아라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즈다 노부토미(津田信澄)[5]가 가지고 있었으나 혼노지의 변 당시 노부토미가 사망하여 마에다 토시마사[6]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에 있었던 토시마사는 몰락했지만, 동생 토시츠네(利常)는 카가 번주로 남아있었고, 토시마사의 자식이 아키노아라시를 토시츠네에게 바쳤다. 현재는 카나자와 시의 마에다 토사카미 가 자료관(前田土佐守家資料館)에 소장되어 있다.
2.3 그 외
100인 참수 경쟁 당시 천하의 개쌍놈 무카이 토시아키가 사용했던 보도(宝刀)로 기사에 등장하였다. 그러라고 있는 보도가 아닐텐데?
파일:세키노마고로쿠.jpg
후나사카 히로시도 세키노 마고로쿠를 한 자루 가지고 있었는데, 친분이 있었던 미시마 유키오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미시마는 1970년 자위대 본부를 점령하고 쑈를 벌이다가 할복해버렸다. 할복 당시 카이샤쿠[7]가 세키노 마고로쿠로 미시마의 목을 베려고 했지만 실력이 미숙하여 도신이 휘어버렸다고 전해진다. 결국 그 세키노 마고로쿠는 후나사카 히로시의 손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구. 차라리 이 칼로 야쿠자나 베지 그래? 뭣하러 자살하냐?"며 비꼬고 그 칼에 "자살밖에 못하는 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후나사카 히로시는 <세키노 마고로쿠-미시마 유키오, 그 죽음의 비밀>(関ノ孫六―三島由紀夫、その死の秘密)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미시마 유키오가 어떻게 그러한 인간이 되었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현대의 세키노 마고노쿠는 세키 시에 위치한 금속가공기업인 카이(KAI) 사의 품질이 좋은 식칼 브랜드로 이름이 높으며, 한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나라로 수출되고 있다. 패턴 웰디드 다마스쿠스 강의 물결무늬가 살아있는게 특징.
3 대중매체에서 마고로쿠 카네모토
검이 그대에는 쿠로바 사네아키가 사용하는 검으로 등장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설정상에 등장하는 마고로쿠 익스터미네이션 소드가 여기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