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

1 일반적인 의미

  • 대걸레
  • 麻袋 : 굵고 거친 삼실로 짠 커다란 자루. 모래를 채워 넣은 모래마대는 군인들이 진지를 구축하거나 물난리가 났을 때 수해 방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수해 피해가 잦은 곳에 잔뜩 쌓아두기도 한다.

2 마산대학교의 줄임말

학교 홈페이지에도 아예 대놓고 마대라는 말을 쓰고 있다.

3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馬岱

생몰년도 미상

마등의 조카이며 마초의 사촌동생. 서량 출신의 장수. 는 불명이다.[1]

3.1 정사

마초가 유비에게 '문종(門宗)이 다 죽고 유일한 혈족이 마대밖에 안 남았으니 집안의 제사가 이어질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으며 이후 평북장군까지 올라갔다. (촉서 마초전)

234년에는 양의는 마대를 보내 한중으로 달아난 위연을 추격하게 하고 참수했다. (촉서 위연전)

235년에 촉장 마대가 위나라를 침범했는데 사마의가 보낸 우금[2]에게 패했다. 이 싸움에서 촉은 천여명이 참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진서 선제기)

정사에서 마대에 대한 기록은 위의 3줄이 전부다. 그나마 마지막 줄은 정사 삼국지가 아닌 진서 기록이다.

3.2 연의

마초의 종제고 위연을 참한 인물이다보니 위연의 비중이 늘어난 연의에서 덩달아 비중이 커졌다.

마초만은 못하지만 나름대로 실력있는 무장으로 등장하며, 특히 삼국지 후반부에서 맹활약한다. 초반엔 거의 마초와 같이 활약한다. 마초를 따라 서량에서 난을 일으켜 조조를 공격하고, 조조에게 패한 뒤 마초를 따라 장로에게 투항하며, 마초를 따라 장로의 명을 받고 유장을 공격한 유비를 공격하며, 마초를 따라 같이 유비에게 투항한다. 유비와 마초가 죽은 뒤, 제갈량이 북벌을 결심하고 위를 공격할 때부터 맹활약하며, 촉군 중에선 위연 다음으로 No.2 정도의 활약을 보인다.

제갈량이 죽은 뒤 위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연의에서는 양의의 계략에 따라 처음에는 위연의 반란에 찬성하는 척 친하게 지내다, 위연이 양의를 공격하려 들 때 뒤에서 칼로 쳐서 위연을 살해하였다. 위연이 죽은 후 위연의 직위와 녹봉은 마대의 차지가 되었다.

참고로 유비가 입촉할 당시 장로가 보낸 지원군을 이끌고 마초와 함께 참전했으며 위연을 훼이크 샷으로 부상입힌 적도 있다. 나중에 위연을 제거한 사람 또한 마대였으니 여러모로 악연.

3.3 기타

마초의 혈족이 마대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록을 생각해보면 마등이 위위로 임명되면서 일가족 모두가 마초의 가족을 제외하고 중앙으로 이주했는데 마대 혼자 마초와 함께 남았을 거라는 추론에 이를 수 있다. 설마 마등이 멸족당할 때 혼자 장사꾼 차림하고 도망치진 않았을 거다. 만일 마대가 마초를 따라 남았으면 뭔가 이유가 있을 법도 한데, 기록 자체가 투명인간 수준이라 알 수가 없다.

다만 마대가 진창후라는 높은 작위를 하사받은 것을 근거로 정사에 기록되지만 않았을 뿐, 실제 마대가 촉한 내부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있다. 참고로 마초의 작위가 이향후[3]로, 마대는 적어도 마초와 동급이거나, 더 높은 작위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마초의 인맥빨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 하지만 저 3줄 이상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추가 기록이 발견되거나 하지 않는 한 결국 추측일 뿐이다.

3.4 미디어 믹스

  1. '중화'는 반삼국지에서 만들어낸 것이며, 중국측 자료 《섬서성부풍현향토지(陝西省扶風縣鄕土志)》에 기록된 백첨(伯瞻)은 책 자체가 1897년에 나온거라 신빙성이 없다.
  2. 오자양장 우금이 아니라 옛날 조인의 부장이던 그 우금이다.
  3. 현후인지 향후인지는 학술계에서도 진지하게 거론될 만큼 논쟁거리다. 비슷한 논쟁은 무향후, 서향후에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