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1 일반적인 의미

  • 洋醫 : 서양 의학을 전공한 의사. 의사한의사와 구분하여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다. 관용적으로 일상적인 자리에서 사용되나 가끔 판결문 같은 공문서 등에서도 편의상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일부에서는 이 단어가 한의학계에서 만든 단어라고 주장하였으나 실제로는 구분의 편의성 때문에 일반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던 단어였다. 당장 국어대사전이나 염상섭의 삼대만 봐도 양의라는 단어가 나온다.
  • 良醫 : 의술이 뛰어난 의사.
  • 瘍醫 : 피부과 의사.
  • 良意 : 선량한 뜻.
  • 兩意 : 두 가지의 뜻이나 마음.
  • 量宜 : 잘 헤아려 좋도록 함.
  • 兩儀 : 양(陽)과 음(陰), 또는 하늘과 땅을 아울러 이르는 말.
  • 凉意 : 서늘한 느낌.

2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촉서 「유팽요이위양유전(劉彭廖李劉魏楊傳)」
유봉팽양요립이엄위연양의유염

楊儀
(? ~ 235)

삼국시대 촉나라의 관료. 자는 위공(威公).

형주 출신으로 원래 형주자사 부군의 밑에서 일했던 인물이지만, 당시 형주에 주둔 중이던 관우에게 귀순했다. 관우는 귀순한 양의를 익주에 머무르고 있던 유비에게 보냈는데, 접견한 자리에서 유비는 양의의 정치적 식견을 높이 평가하고는 좌장군병조연에 임명하여 곁에 두었다. 그리고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상서에 임명되어 유비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였다.

하지만 특유의 성격은 어쩔 수 없었는지, 상서령 유파와 사사건건 부딪혔고, 유파를 어떻게든 안고가려 애쓰던 유비는 양의를 홍농 태수로 좌천시켰다. 홍농은 위치상 장안과 낙양의 중간에 있는 곳으로 당시 위나라의 영지인데 적지의 태수라는 것의 의미는 사실상 무보직과 다를바 없었다.

유비 사후 제갈량이 다시 양의를 불러들여 남만을 정벌하는 동안 해당 부서의 일을 맡겼고, 남만 정벌 후에는 제갈량을 따라 한중으로 옮겨가 북벌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제갈량이 양의를 아꼈던 이유는 작전계획에 따라 부대를 편성하고 필요한 물자를 산정하는 행정/보급 업무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때에도 여러 사람과 반목하는 등 대인관계가 좋지 못했고, 특히 촉의 핵심 장군인 위연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만나기만 하면 서로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제갈량을 힘들게 했다. 위연도 성격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란 식으로 충돌을 피했는데 반해, 양의는 위연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꼬장꼬장하게 나오는 바람에 사이가 최악이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두 사람이 이러면 당연히 주변의 분위기를 해칠 수 있으니 누군가를 내치거나 충돌 가능성이 없는 곳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릉대전으로 인하여 많은 인재들을 잃은 촉은 군수품 조달 및 관리라는 촉으로썬 꼭 필요한 재능의 소유자였던 양의와 맹장 위연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제갈량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최대한 공정하게 두 사람을 대하고 있었고, 호방하고 온화한 성품이던 비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뜯어 말리고 달래는 식으로 갈등을 완화시켰다.

그러나 제갈량 사후 이들의 충돌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임종하기 직전 자신의 후계자로 장완을 그 다음으로는 비의를 지명했다. 다만 장완은 성도에 남아 있었기에 강유와 양의, 비의에게 후퇴 작전을 지휘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위연이 후퇴를 거부하고 반기를 들고 북벌군의 퇴로를 끊었으며 양의와 위연이 동시에 상대방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표를 올렸다. 북벌군이 전멸하고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양의의 표를 받은 장완이 위연이 저지른 짓을 알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위연을 데려올 것을 명했고, 결국 양의가 제멋대로 위연과 그의 일족을 주살해 버렸지만 비교적 시의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면서 북벌군이 전멸하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었다.

여기까진 별 문제가 없었으나 제갈량 사후로 장완이 상서령으로 임명되어 정무를 승계한데 반해 양의 자신은 고작 중군사에 임명되어 여전히 한직에 머무르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애초에 제갈량이 양의의 능력을 아껴 중히 쓰긴 했으나 양의를 후계자로 언급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1] 그저 북벌군 퇴각작전의 지휘를 맡긴 것에 불과했지만 양의는 제갈량이 자신을 아낀 것과 반기를 든 위연을 죽인 공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래 대인관계가 나빴던지라 여기에 호응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나마 원만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양의를 비롯한 많은 문무백관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했던 후군사 비의만이 찾아와서 양의를 위로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리는데 "차라리 그때 위씨(魏氏)를 따랐으면 이런 푸대접은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이 위씨가 위나라인지, 위연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으나, 상식적으로 따져서 불과 얼마 전까지 사사건건 대립했던 위연을 따를 리는 없었을테니 차라리 위나라로 귀순했어야 한다는 소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물론 진짜로 반역할 생각은 없었겠지만[2] 대놓고 역적이 되겠다는 소린데, 대한민국 군인에 비유하자면 계급이 오르지 않는다고 월북 혹은 쿠데타를 일으키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나마 양의와의 관계를 유지했던 비의조차도 이런 희대의 개소리는 묵과할 수 없었고, 그 즉시 이와 같은 양의의 발언을 유선에게 상주했다. 사형 당해도 할 말이 없었지만 양의의 공적을 생각해서 사형은 면하게 하라는 장완의 진언 덕분에 서민으로 강등되어 한가군으로 귀양가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귀양지에서 계속 서찰을 올려 주변 사람들을 쓸데없이 비방했다. 이에 진노한 유선은 즉시 양의를 체포하여 압송하게 하였다. 이렇게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자 양의는 체포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처세술과 인격, 좁은 소견으로 인해 인생을 망친 케이스로 진수 역시 자신의 결점으로 패망한 자들의 열전에 양의를 집어넣는 등 정사에 남겨진 평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의할 점은 양의와의 대립 때문에 위연이 억울한 충신으로 동정받는 경우가 있는데 진실은 위연도 인간성에 문제가 많아 심각한 국가위기를 불러올 뻔 했다. 손권은 전말을 전해듣고 양의와 위연을 모두 비판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일찍 요절한 양의의 형 양려는 덕행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정사 촉서 양의전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이 양의의 말과 행동이 절제되지 못함을 두려워해 감히 따르는 자가 없었는데, 오직 후군사(後軍師) 비의(費禕)가 가서 그를 위로했다.'라 기록되어 있다. 양의가 그 성격탓에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기피대상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기록임과 동시의 그런 사람도 호방하게 대한 비의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위연과 반목했다는 이유로 많은 버프를 받아 수혜자가 되었다. 가정 수비에서 마속을 대체해 참전할 장수로 자진해 나선 것이 첫 등장이었고, 막장이던 인간관계 부분은 거의 다 삭제되고, 손권이 위연과 더불어 소인배라고 평가했던 내용[3]도 위연이 반역할 것이라는 일방적인 지적으로 바뀌었다. 다만 제갈량 사후의 부분에 대해서는 정사에 충실한 편. 비의가 양의의 발언을 그대로 유선에게 고하자 유선은 격렬하게 화를 내며 양의를 처형하려 한다.[4] 연의에서 그 물렁하고 아둔하게 묘사되기로 유명한 유선이 격노하는 모습은 이 장면이 유일할 정도다.

2.1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그냥저냥 쓸만한 내정형 무장. 삼국지 3에서는 전 능력 70 전후의 지극히 개성 없는 능력치였으나 삼국지 9 이후의 비교적 최근 시리즈 기준으로는 통솔이 70 전후, 무력은 낮고(40~50 사이) 지력과 정치는 80 전후, 매력 바닥(25 미만)을 찍는 어설픈 군사형 무장이 된다. 또한 전통적으로 의리가 낮기 때문에 지속적인 충성도 관리가 필요하다. 역사적 행보 탓에 문관치고는 매력이 매우 낮은 점도 아쉬운 부분. 냉정하게 능력만 보면 문관과 무관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90대 전후 능력치를 지닌 위연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양의 자신의 능력치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므로 후기 촉에서는 충분히 쓸 만한 무장이다. 의리가 낮다 뿐 상성 자체가 유비나 유선과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므로 촉 소속일 때에는 충성도 관리도 비교적 어렵지는 않다. 이는 위연도 동일하다. 하지만 매력이 어느 정도 있는 위연과는 달리 양의의 매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양의는 위연과는 달리 양의로 태수를 삼으면 절대로 안된다.

삼국지 3에서는 후기 삼국지 시리즈와는 달리 지력이 약하고 무력, 육지, 수지, 매력이 모두 70대 초반이라 장군으로 등용이 가능했지만 군사가 되지는 못했다. 육지73 수지70 무력70 지력61 정치72 매력71에 야망8 운7 냉정7 용맹7으로 전혀 양의같지가 않다.

삼국지 6에서는 시궁창 쓰레기같은 인간성이 그대로 반영되었는지 다른 능력치가 죄다 50~70대를 호가하는 와중에 매력만 33이다. 그나마 연의상으로 제갈량이 죽고 위연이 난을 일으킨 것을 진압한 것 정도만 반영돼서 바닥은 모면했지만 역시나 매력이 양민 이하인 것은 변함이 없다. 통솔67 무력54 지력69 정치75 매력33의 능력치이다. 얼굴은 문흠과 비슷하며 바라보는 방향 정도만 다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6/49/83/76. 혼란, 덫을 가지고 있다. 제법 높은 정치 덕에 재야 장수를 등용하는 걸 보면 참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8/44/82/79/17. 지력이라도 높고, 유인, 진정이 있고 통솔 68이면 후기장수치고 아주 구리진 않으나, 촉 1군에 끼긴 무리가 있다. 농업, 상업 특기가 있으니 내정용으로 굴리는 것이 무난하다. 다만 매력이 워낙 병신인지라 양의로 재야인재를 등용할 생각은 꿈도 꿀 수가 없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 역시 매력이 바닥인 것은 여전하다. 통솔68 무력40 지력82 정치79 매력23. 특기는 없으나 지력이 80대를 찍으므로 계략 방어용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으나, 위연과 혐오무장 관계라 위연의 지력 보충용으로는 쓸 수가 없다. 또한 유파와도 혐오무장이나 둘 다 문관이므로 별 의미는 없다. 또한 친애무장으로 제갈량이 있다. 위연이나 유파와의 혐오관계와는 달리 양의만 제갈량이 친애무장이다. 뭐 양의는 부장용이므로 별 의미 없는 친애관계기는 하다.

위연과 마찬가지로 의리는 낮고 야망은 매우 높지만 상성이 맹획 쪽이라 맹획으로 플레이할 때 위연과는 달리 충성 100 상태에서도 포획시 한방에 등용이 된다. 위연은 착했습니다. 삼국지 11에서 의리가 낮고 상성이 가까운 장수는 설령 충성 100이라도 포획시 바로 등용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양의 상성 61, 위연 상성 80, 맹획 상성 60이라 이런 일이 일어난다. 비슷한 원리로 손견이나 손책도 태사자나 감녕 등의 장수를 쉽게 등용할 수 있으며 조조도 허저나 전위를 쉽게 등용할 수 있다. 물론 태사자, 감녕, 전위, 허저 등은 의리가 양의 따위와는 비교 안되게 높다.

삼국지 12에서는 통솔 68, 무력 40, 지력 82, 정치 79의 능력치로 등장하며 병종은 궁병에 전법은 파괴력약화, 특기는 병기 하나 뿐이다. 병종과 능력치를 고려하면 파괴력 약화 소유 무장 중 손환 다음으로 좋은 무장이며, 지력 80이 넘으므로 제조소에 넣기에 딱 좋은 무장이다. 일러스트는 찌질하지만 절묘하다. 매력삭제 최대의 수혜자다. 유비가 매력 삭제의 피해자인 것과 비교된다. 기껏해야 10~20대 수준의 매력이었던 양의는 이로서 바닥 능력치인 분야가 없어졌다.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왕평, 마충과 같이 궁병으로 등장한다. 셋 중 제일 늦게 등장하는 만큼, 제일 쓸모없다. 일기토도 없고. 그저 육손의 뒤치기 때 미성에 남기고 가는 존재일 뿐. 실제 역사상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초상화가 자상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라 심한 괴리감이 느껴진다. 사실 왕보의 일러를 살짝 고친 것.

삼국전투기에서는 오란고교 호스트부오오토리 쿄우야로 나왔다. 위연과는 시종일관 싸웠고 제갈량이 죽었을 때 다른 촉군은 전면철수를 하는 와중에 위연 혼자만 사마의에게 공격을 감행하려 하자 장완비의등이 양의에게 위연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양의는 이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위연을 죽여버렸다. 위연을 죽이고 나서 중군사가 되었는데 촉한의 중신들이 바보는 아니였는지라 양의에게 계급장만 높게 달아주고 병력은 양의에게만 유일하게 단 한명도 배치하지 않았다. 만약 양의가 여기서 "그래도 녹봉은 나오니까 그걸 받아먹는 거라도 고마워해야지."로 일관했으면 양의가 나중에라도 정말 제대로 중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양의가 그런 성격을 가졌으면 위연과 반목하지도 않았다. 결국 비의 앞에서 사마의에게 갔으면 자신이 중용되었을 거라는 헛소리를 하고 만다. 결국 그나마 비록 이름뿐이지만 그래도 관직이였던 중군사에서마저 쫓겨나자 악플러가 되었고 이로 인해서 양의는 처형당했는데 양의의 묘비가 키보드다.
  1. 화양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이 유선에게 은밀히 표를 올려 양의의 성품에 문제가 있으니 만약 자신에게 불행이 닥치면 장완이 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다.
  2. 서서, 맹건, 석도 등 자신의 동문이 위나라에서 맡고 있던 직책을 제갈량이 알게 되자 "위에는 얼마나 인재가 많길래 그들이 겨우 그 정도 지위밖에 오르지 못했단 말인가!!!"하고 탄식하였던 것으로 보아 인간성이나 처세술도 좋지 못해 유비의 눈 밖에 났고, 촉의 인재 부족만 없었다면 중용되기 어려웠을 양의가 위나라에서 대접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3. 양양기와 자치통감 같은 사서에도 등장한다.
  4.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같이 비의가 '위연이 그렇게 된 건 위연의 잘못도 있지만 양의의 잘못도 큽니다'라고 이전행적까지 한꺼번에 몰아서 까는 작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