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타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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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9
야나기타 유키 (柳田悠岐)
생년월일1988년 10월 9일
국적일본
출신지히로시마현 히로시마 시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좌타
프로입단2010년 드래프트 2위
소속팀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1~)
2015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수위타자
이토이 요시오
(오릭스 버팔로즈)
야나기타 유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카쿠나카 카츠야
(지바 롯데 마린스)
2015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가네코 치히로
(오릭스 버팔로즈)
야나기타 유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호타준족 주전 중견수. 애칭은 기타(ギータ).

2015년에 각성한 모습은 본격 오릭스시절 이치로의 재림이자 NPB마이크 트라웃.

2015년 야마다 테츠토 와 함께 양대리그 트리플 쓰리(3할 타율, 30홈런, 30도루)를 달성한 선수.

2 경력

2.1 프로 입단 전

히로시마 출신으로 유년기엔 히로시마 시민구장을 들락날락하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열혈팬으로 자랐는데, 스스로를 "카프남자"라 자칭할 정도였다고 한다. 히로시마경제대학 당시 졸업 논문 주제는 '히로시마 카프의 경제 효과'였다. 구로다의 일본 복귀 때 누구보다도 반기며 대전을 열망했고 결국 교류전에서 열망하던 구로다와의 대전이 실현됐는데 4타석 3타수 2안타 1볼넷으로 맹타를 휘둘렀지만 팀은 패배. 올스타전에서는 방송 인터뷰 중 구로다에게 사인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히로시마에서 열린 2015년 올스타 2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온 구로다와의 대전이 성사되었는데 스플리터에 헬멧이 벗겨질 정도의 헛스윙을 날리며 시원하게 삼진.

소속팀 팬들에 대한 립서비스로 호크스도 좋아한다고 얘기는 하지만 공공연히 카프의 우승을 보고 싶어서 호크스팬은 되지 않겠다고 코멘트를 할 정도. 심지어는 대놓고 「목표는 FA로 히로시마에 입단해서 카프를 우승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이다. 보통이라면 호크스 팬들로부터 미친듯이 까여야 정상이겠으나 활약이 활약인데다, 아무리 본인이 FA로 히로시마를 가고 싶어도 짠돌이 히로시마가 그 성적에 걸맞는 돈을 내놓을 리가 만무하고(...) 호크스의 모그룹이 히로시마와의 돈싸움에서 질 일은 절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정말로 히로시마로 이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측면도 있어서 호크스 팬들은 그냥 젊은 선수의 못말리는 고향팀 사랑 정도로 생각하는 듯 하다. 구로다 히로키처럼 메이저리그로 갔다가 말년에 카프로 와줄수는...없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히로시마 상고 시절에는 다나카 마사히로사이토 유키 등 유명 선수와 같은 세대의 선수로서 여름 현 대회 4강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이후 주오대학(中央大学)에 지원하였으나 탈락했고 히로시마 경제 대학에 진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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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말랐던 야나기타 메이저리그에서 팀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 팀 출신 선배와 비슷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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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고등학교 시절에는 체중이 68kg밖에 나가지 않던 야나기타였지만, 대학 진학 이후 카네모토 토모아키나카타 쇼 등이 다녔다는 체육관에서 체중을 늘린 결과 원거리 던지기나 50m 달리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대학 통산 82시합에서타율 .428、8홈런 60타점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대학시절에 이미 장타력 포텐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암암리에 소문이 났었으나 통산 홈런 수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워낙 팀내에서 군계일학이라서 상대팀 투수가 도망다니기에 급급한 결과(...) 장타보다는 배트에 정확하게 맞추는 타격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리하여, 2010년 드래프트에 참가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2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다. 지명 당시 일화가 있었는데 드래프트 직전 스카우트 회의에서 야나기타는 소프트뱅크의 2위지명 후보들 중 한 명이었다. 그 중에서 누구를 2순위로 찍을 것인가 왈가왈부하다가 2015년 시즌에 치열한 타격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키야마 쇼고(세이부)를 지명하기로 정리가 되던 와중에, 회의를 주재하던 오 사다하루 구단 회장이 갑자기 제동을 걸었다. 오 회장은 스카우트진에게 "얘들 중에서 제일 날리는 애가 누군가?"[1]라고 질문을 던졌고, 스카우트진이 이구동성으로 "야나기타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바로 "그럼 얘 찍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면서 호크스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2] 원래 계획대로 아키야마를 찍었어도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드래프트였겠지만. 대신 프랜차이즈 출신의 숨은 진주를 못 보고 호크스에게 헌납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스카우트진은 팬들로부터 열심히 까이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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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프로 입단 후

2.2.1 2012년까지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컨택의 문제로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어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11년 1군 6경기 출장, 2012년 68경기 출장에 그쳤고 스탯 역시 인상적이지 못했다.

2.2.2 2013년

오픈전부터 12개 구단 최다인 6홈런을 때려내며 눈도장을 찍는가 싶더니, 시즌 중간에 잔부상으로 빠지는 일이 있긴 했지만 차근차근 플레잉타임을 늘려가며 시즌 막판 4번 자리까지 수행하며 104경기 출장 .295 .377 .483 11홈런 41타점 10도루라는 호성적을 냈다.

2.2.3 2014년

2014년부터는 드디어 전경기 출장을 달성한 팀내 부동의 중견수가 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17(팀내 최고, 리그 3위), 출루율 .413(리그 2위), 15홈런, 70타점, 33도루(리그 2위). 2014년 일본시리즈에서는 리드오프맨으로 활약하며 우수선수상을 얻었다. 시즌 종료 후, 골든글러브와 베스트나인을 수상하였다. 10월 9일부터 열린 미일 올스타전에도 참가했는데, 이와쿠마 히사시와다 츠요시로부터 장타를 뽑아내는 등 시리즈 타율 3할 6안타 4타점이라는 대활약을 하였고, 그 해 타격왕 저스틴 모노는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2.2.4 2015년

9월 8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30호 좌월 홈런을 치면서 30-30 클럽 가입에 도루 2개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9월 15일 오사카 돔에서의 오릭스 버팔로스 전에서 시즌 30번째 도루를 성공시키며 NPB사상 10번째, 2015시즌 야마다 테츠토에 이어 두번째로 트리플 쓰리 기록에 성공했다.

9월 27일, 치바 롯데 마린즈전에서 이대은에게 왼쪽 무릎 뒤쪽에 사구를 맞으며 교체되었다. 혼자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시즌 아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등 부정적인 전망이 난무했다. 다행히도 타격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전력질주를 못하는 정도라고 한다. 1군 말소도 되지 않았다 다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스타팅 라인업에서는 제외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0.363 182안타 34홈런 99타점 32도루 OPS 1.101. 실로 어마무시한 성적이라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리그 MVP는 이미 확정된 분위기다.

팀내 청백전에 지명타자로 출전해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쿠도 키미야스 감독이 타격은 문제 없고 전력 질주도 할 수 있다고 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이후 팀이 2015년 일본시리즈에 진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맞붙게 되면서 야나기타와 마찬가지로 트리플 쓰리를 기록한 야마다 테츠토와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정작 일본시리즈에서는 부진했는데, 이대호 등 동료들의 맹활약으로 팀이 우승하면서 마음의 짐은 덜었다. 다만 시즌 막판 사구 후유증으로(왼쪽 대퇴골 타박상) 결국 프리미어 12 대표팀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4]

11월 25일, 2년 연속으로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을 거머쥐었고, 동시에 퍼시픽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2.2.5 2016년

2016년 퍼시픽 리그 출루율, 장타율, OPS, WAR[5] 1위

4월 14일 경기에서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16경기 연속 볼넷 출루. 퍼시픽리그 기록을 갱신했다.[6] 본인의 선구안이 발전한 것도 있고, 작년의 어마어마한 성적에 힘입어 투수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보면 될듯. 4월 13일 현재 시점으로 타율은 .280인데 출루율.447. 타율과 출루율의 갭이 1할 5푼을 넘고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마크였던 장타는 봄에는 그다지 터지지 않았다가, 날씨가 더워지면서 타격감이 상승하고 있다. 6월 20일 현재 타격성적은 .293/.452/.526 OPS .978 10홈런 10도루. 눈에 보이는 홈런이나 타율에 비해 쩔어주는 비율스탯, 특히 출루율을 찍고 있다. 가히 퍼시픽리그배리 본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3 플레이 스타일

NPB 내에서도 손 꼽히는 큰 체격과 근육질에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춘 대형 외야수. 50m를 5.9초에 주파하고 원거리 던지기가 125m가 나오는 데다가 입단 후 구단 내 자체 측정 때 마운드에서 148km/h를 기록할 정도로 강한 어깨를 자랑한다. 이러한 강견과 준족을 수비에도 잘 활용하며, 스피드가 넘쳐나는 주루 플레이 또한 무기. 상당한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하는데 전 감독인 아키야마 코지의 현역 시절과 비견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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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타율만 보면 특급 교타자같지만, 사실은 진퉁 풀스윙어. 풀스윙의 대명사로, 잘 맞은 홈런 타구를 보면 외국인 타자 못지않은 무식한 비거리를 보여주는 편. 파워툴이라면 세이부의 나카무라 타케야라든가 니혼햄의 나카타 쇼 같이 야나기타와 비교할만한 타자가 있지만 현역 일본인 타자 중에 야나기타 정도로 밀어치기로 홈런을 양산해낼 수 있는 타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스윗스팟에 정확히 맞지 않더라도 워낙 강한 손목힘에 넘어가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평소에는 잡아당겨서 1-2 간을 꿰뚫는 힘 있는 땅볼이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자주 양산해내는 편이지만 전반적인 타구 방향은 고른 편으로 풀히터라고 보기엔 어렵다. 2013년부터 매년 4할 내외의 BABIP를 유지할 정도로 타구질도 좋다. 물론 높은 BABIP에는 빠른 발도 한몫한다. 워낙 타구가 강하다 보니 야나기타 타석에선 내야수비가 전반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완전히 빚맞은 느린 땅볼 타구가 내야안타가 많이 되곤 한다.

스윙할 때의 장면을 놓고 보면 종종 그 회전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몸이 돌아가거나, 심지어 헬멧이 벗어지는 장면이 자주 보이는데, 모 살찐 교타자는 정확성 위주의 타격을 하는 자신과 풀스윙 위주의 야나기타를 정반대의 스타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기사



6월 3일 DeNA와의 교류전에서 미우라 다이스케에게 날린 초대형 홈런. 전광판에 구멍이 선명하다.

그외에도 매년 좋아지고 있는 선구안을 증명하는 볼삼비도 특징인데 2013년 1:3에서 2014년 1:2 수준으로, 2015년엔 거의 0.8:1에 달할 정도로 삼진은 줄고 볼넷은 꾸준히 늘고 있다. 볼넷이야 타격이 워낙 강하다 보니 투수들이 피해가자는 심정에서 볼넷이 늘어난 것도 있겠지만 야나기타 같은 풀스윙하는 타자가 이 정도로 삼진수를 매년 줄여가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덕분에 2015년은 0.460(!!) 내외에서 출루율이 유지되는 상황.

4 이모저모

  • 2012년에는 당시 호크스 감독이었던 아키야마 코지를 따라서 이토이 요시오의 타격 연습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이걸 계기로 왕정치 회장과 아키야마 감독의 권유하에 2013년부터 이토이와 비시즌마다 함께 훈련한다고 한다. 이토이로부터 "(공을 날리는 건) 일본인 중에서도 최고. 괴물이다."와 "비거리는 기타 쪽이 2단계 위다" 라며 극찬을 받았다. 그 체격 좋고 운동 능력 쩌는 이토이가 극찬할 정도니 말 다 했다.
  • 2015년 교류전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후 동갑내기 사카모토 하야토가 "오늘 경기끝나고 밥먹으러가자"고 제안했는데, 시즌중이고 컨디션관리는 중요하니까 시즌끝나고 권유하셈이라고 거절하며 높은 프로의식을 보여줘 화제가 됐었다.[8] 물론 대부분 사카모토를 까는 분위기지만 그리고 올스타 1차전 이후 같이 올스타에 출장했던 88년생 마에켄, 아키야마, 카지타니 등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88년생이 무려 9명이나 출장하는 와중에 사카모토는 올스타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식사에는 참여하였다는 후문(...)
  • 2015년 7월 일반인 여성과 결혼했다. 시즌 끝나고 발표했다. 아이는 2016년 봄에 출산예정 [1]
  • 나성범이 존경하는 선수라고 밝힌적이 있다.
  1. 누가 제일 타구 비거리가 긴가?라는 뜻.
  2. 오 회장이 야나기타 입단 이후에 그의 풀스윙을 코치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입단 초기 컨택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폼을 교정하기보다는 야나기타 본인의 폼을 유지하도록 지시하였고, 결과적으로 일본 최고의 강타자로 대폭발. 오 사다하루 회장의 혜안이 빛난 부분이다.
  3. 엄밀하게 말하면 야나기타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굳이 높은 순위에서 지명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차례가 올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탓이 컸다. 설마 호크스 같은 풍부한 자금력을 소유한 팀이 중앙 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지잡대 출신의 타자를 2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지명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하다.
  4. 야나기타의 대체 선수로는 팀 동료인 유격수 이마미야 켄타가 선발되었다.
  5. 6.9
  6. 이전 파리그 기록은 1951년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타베 테루오라는 선수가 달성한 15경기 연속 볼넷 출루이다. 일본프로야구 전체 기록은 1970년 오 사다하루가 달성한 18경기 연속 볼넷 출루.
  7. 과거 모노노후로서(?!) 다나카 마사히로 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안무라면 본인이 더 자신 있다고...
  8. 사실 야나기타는 2013년 초에 다나카, 마에켄, 사카모토의 주도 하에 있었던 88년생들의 동일본대지진 부흥 이벤트에도 사퇴한 바 있다. 당시 사퇴 이유는 이 선수들과 아직 같이 설만한 정도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 이미 NPB를 대표하는 스타였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당시 야나기타는 아직 1군 준주전급에 불과한 상태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