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Central League) | 퍼시픽 리그(Pacific League)
65px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Eagles)
55px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Saitama Seibu Lions)
65px오릭스 버팔로즈
(Orix Buffaloes)
50px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65px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과거에 참가했던 팀들
225px300px
로고[1]마스코트
클러치(左), 클러치나(右)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 Eagles
東北(とうほく)

楽天(らくてん)

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구단 법인명㈜라쿠텐 야구단
(株式会社楽天野球団)
창단2004년 10월 29일
연고지미야기센다이
구단 연고지 변천미야기 현 (2005~)
구단명 변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
홈 구장미야기 구장 (2005~)
2군 구장리후시중앙공원야구장
모기업라쿠텐
감독나시다 마사타카 (梨田 昌孝)
킷 스폰서마제스틱
일본시리즈 우승
(1회)
2013
퍼시픽 리그 우승
(1회)
2013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13
공식 홈페이지
201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12-요미우리 자이언츠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014-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라쿠텐 산하 스포츠단
비셀 고베
(축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야구)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미야기센다이 시. 홈 구장은 라쿠텐 kobo 스타디움(미야기 구장)이다.

2004년에 있던 일본프로야구 재편 문제의 해결책으로 50년 만에 새로 창단된 구단으로, 2005년부터 퍼시픽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즉 현재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중 가장 최근에 생긴 구단.

줄인 명칭이 좀 따로 노는 편인데, 장내 아나운서 쪽은 라쿠텐 이글스를 쓰지만, 언론이나 중계에서는 도호쿠 라쿠텐을 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아직 지역명 부착이 활성화되지 않은 관계로 전자에 가깝다.

2 창단 과정

리그 편입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하다. 한창 일본프로야구 재편 문제로 시끄러웠던 2004년에 몇몇 오너들 주도로 1리그 10팀제로 바꾸기 위해서 파산 직전인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와 현 오릭스 버팔로즈의 전신인 오릭스 블루웨이브 간의 합병을 인정하게 되자 "그럼 5개 구단으로 퍼시픽리그를 운용할 거냐?" → "(나머지 구단도 운영이 어렵다고 징징거리니) 결국 또 한 구단[2]을 줄여서 절름발이 운영을 없애겠네?" → "그런데 리그에 팀이 4개면 대만 야구만 봐도 알지만 매번 붙는 애들하고만 붙어서 재미 없잖아." → "결국 리그 합치겠네" 라는 전망과 센트럴리그 측(특히 교진)의 자연스런 압박이 더해졌다. 그리고 파리그는 이날의 설움을 교류전에 담아 매년 세리그를 처절히 꾸겨버리고 있다

물론 난데없이 리그 수가 반토막나고 직장이 두 개 줄어들게 되는 꼴이 되버리니 일본프로야구 선수회와 팬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고, 후루타 아츠야 선수회장의 주도 하에 사상 전무후무한 선수회의 1일 파업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일본의 대표적 IT업체이던 라이브도어가 "그럼 우리가 그 빈자리 메우지. 대신 킨테츠 본거지였던 오사카에는 한신이 있어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될테니까 그동안 야구 팀이 없었던 미야기센다이에서 창단할게."라면서 센다이 시민들에게 신생팀 창단 떡밥을 던지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그동안 일본프로야구는 그림의 떡으로 생각했다가[3] 생각지도 않게 우리 팀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생긴 센다이 시민들이 "모기업이 듣보잡이든 뭐든 좋으니까 우리 고장에 팀이 생긴다면야..."라면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여기에 직장이 하나 줄어드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던 선수협회까지 가세. 급기야는 센다이를 연고로 하는 신구단 창단 붐은 사회현상으로까지 확장되어 결국은 기존 11개 구단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알다시피 단일리그 구성의 주체가 되고 싶어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이때 흑역사인 호리우치 츠네오 시대였다. 결국 신생팀 창단이 결정나고 처음 참여하기로 했던 IT 업체인 라이브도어와 일본의 대표적 인터넷 쇼핑몰이었던 라쿠텐이 참여해 구단 창설 신청서를 제출, 2개 기업을 최종 심사하여 라쿠텐이 선정되고 이듬해인 2005년부터 퍼시픽 리그의 참가를 승인하면서 공식적으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발족하게 된다.

보통 신규 참가 구단이 그렇듯 라쿠텐 역시 초반에는 완전히 암담한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그도 그럴게 처음에 라쿠텐킨테츠 버팔로즈를 직접 흡수한게 아니라, 이미 오릭스와 킨테츠가 합병된 뒤에 생긴 신생 구단이기 때문에 킨테츠의 선수들을 그대로 라쿠텐에 존속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수 문제로 라쿠텐 쪽에서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해체구단 선수 드래프트를 할수 밖에 없었는데, 이 때문에 오릭스가 주요 선수는 싹 쓸어가고 남은 이미 한물간 노장선수나 아예 1군 경험도 없는 햇병아리들만으로 팀이 짜여지게 되는 안습한 상황에 처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선수의 의지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라고 쓰고 오릭스 수뇌부에 반기를 든 이와쿠마 히사시, 이소베 코이치 등 눈엣가시 선수회 인원들 라쿠텐으로 귀양보내기(…)까지 오릭스 소속을 원하지 않는 선수는 오릭스 우선 지명에서 뺐지만 그렇다고 라쿠텐 쪽으로 주요선수들이 전부 다 흘러들어가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킨테츠의 간판이었던 나카무라 노리히로와 오무라 나오유키는 FA 권리를 행사해서 각각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튀었다. 그걸 빼면 애초에 전시즌 꼴찌-5위 팀들이었던 오릭스-긴테츠의, 게다가 2선급 멤버들로는 뭐가 될 게 아니었다.

3 역사

3.1 2005 시즌

이와쿠마와 꼬마들

그렇게 안습한 선수진에 초기 구단주가 사비 털어서라도 조낸 비싼 현역 메이저리거를 영입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프론트의 쌩까기(…)가 겹쳐 개막 후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창단 첫경기를 순전히 이와쿠마의 완투로 3-1 승리라는 쾌거를 기록했으나...

바로 다음날 0-26으로 최다점차 완봉패 일본 기록을 갈아치우며[4] 안습과 고난의 첫해를 시작했다. 그 후로는 2009년, 2012년현진 이글스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참상. 그나마 승리를 기대할 만한 날이 이와쿠마의 등판일이었고 이와쿠마가 등판하는 날도 승리할 확률이 50%를 밑돌았다(...). 이 해 이와쿠마 히사시의 성적은 182.1이닝 113실점 101자책 9승 15패 ERA 4.99......

일찌감치 4월부터 타 팀들과 큰 폭의 경기차로 라쿠텐은 파리그 최하위 자리에 그대로 고정되었고, 5월에도 사정이 나아질 건 없었다. 교류전 36경기서도 11승 25패로 압도적 최하위. 그나마 주니치 드래곤즈에 3연전 전승을 거둬 체면치레는 했다. 7월에는 그래도 10승 9패 1무로 월간 성적 5할을 돌파했지만 8월은 참 처참했다. 3승 21패 승률 0.125멘도사 라인보다 못한 승률을 찍으며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결국 파리그 5개팀 상대로 전부 상대전적 열세 확정 및 세리그에서도 3연전 싹쓸이라도 했던 주니치를 제외하곤 죄다 상대 전적이 좋지 못했다.

이렇게 2005년 시즌이 끝나고 보니 팀 성적은 무려 38승 1무 97패(……).[5] 당시 5위였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게임차가 무려 25게임, 정규시즌 1위였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게임차는 51.5게임차. 엄마야.(…) 세간에서는 100패 안 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평가.

문제는 나름 일본 대표 쇼핑몰이자 꽤 돈이 많은 라쿠텐이라는 물주를 등에 업었음에도 외국인 보강도 싸게 하는데다 FA 획득에는 손 뗀 짠돌이 프런트. 덕분에 구단 운영은 퍼리그 5개 구단 다 적자났는데 혼자서 흑자를 봤다고 한다.(…) 그러고는 창단 감독인 타오 야스시는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시즌종료 1주일 전에 해임했다. 태평양 건너 플로리다에 있는 모팀 구단주 못지않은 프런트의 이 막장행각 때문에 첫 해에 라쿠텐 팬이기를 그만둔 토호쿠 지방 사람들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타오로는 안 된다는 라쿠텐 프런트의 판단은 나름 정확했다. 노무라 카츠야가 부임하고 나서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고 낚시왕다나카 마사히로라는 또 한 명의 에이스 후보를 데려오는 행운이 겹치는 덕분에 오히려 라쿠텐은 센다이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

3.2 2006 ~ 2009 시즌

처절한 하위권 탈출기

이후 2006년 시즌 독설가로 유명한 노무라 카츠야 감독을 영입해서 제대로 된 팀 빌딩을 시작하며 그래도 프로팀답게 상위권 도약의 발판을 만들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 후 성적은 마찬가지로 6위였지만 47승을 거둬 전년보다 승수를 9개 더 챙겼고 5위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차도 4.5게임차로 근소해졌다.얘낸 비교적 좋은 선수들 챙겨가고도 왜 이러냐

이후 2007년에 비약적인 성장으로 4위, 2008년에는 아쉽게 5위를 기록했지만 08년도 퍼시픽 리그가 전체적으로 혼전 양상이였고 순위로는 5위였지만 1위와의 승차가 불과 11.5게임차 밖에 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또 21승 4패 ERA 1.87라는 부활투를 선보인 에이스 이와쿠마 히사시, 신인 타나카 마사히로가 크게 성장했고 경로당이었던 타선에도 텟페이와타나베 나오토 등의 젊은 피가 수혈되는 등 4년만에 동네북+승률자판기 이미지를 탈피하기 시작했다.

2009년 시즌에는 그동안의 팀 빌딩의 성과가 전체적으로 잘 터져나와 개막 첫 달을 처음으로 리그 1위로 마감하면서 2009년 시즌 돌풍을 예고. 시즌 중반에는 2위와 4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분전한 결과, 리그 2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을 확정 지음에 따라서 창단 첫 A클래스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1차전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이와쿠마 히사시, 타나카 마사히로의 연속 완투승으로 가뿐히 발라버리고, 정규시즌 1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클라이막스 시리즈 스테이지2에서 격돌. 핸디캡 1패 포함 1승 4패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포스트시즌 진출 시,노무라 카츠야 감독과 재계약을 하겠다던 얘기가 구단 내외부에서 나왔는데 프런트쪽에서 계약 연장을 안하기로 결정해. 팬들의 반발을 샀다. 노무라 감독은 이 소리를 듣고 "재계약을 안하는건 상관 없는데 왜 포스트시즌 시작할때 발표해서 사기를 떨어뜨리냐, 이 막장 프런트야!" 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구단과 사실상 등을 돌렸다. 그 외에도 "난 라쿠텐 이글스는 좋지만 라쿠텐 구단은 싫다." 라든가(…), 구단에서 회유책으로 명예감독 + 영구 결번을 제시하자 "라쿠텐따위에 무슨 명예를 느끼라고?", "내가 난카이에서 결번을 받으면 받았지(...)[6] 라쿠텐에서 이걸 왜 받냐?"라는 화려한 독설로 구단의 회유책을 보기좋게 걷어 차버렸다. 오오 노무라 감독. 그리고 라쿠텐은 이전부터 조짐이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막장 프런트 인증.

노무라 카츠야의 생각 : 라쿠텐 이 놈들, 난카이도 이렇진 않았다

3.3 2010 ~ 2012 시즌

우여곡절의 시기, 그러나 서서히 보이는 UTU의 느낌

2010년에는 일단 땜빵으로 전 히로시마 감독이었던 마티 브라운이 팀을 맡고, 보기좋게 6위로 추락했다. 덤으로 베이스 뽑기...는? 2011년 시즌부터는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아아…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2011년을 맞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을 영입한 직후부터, 과거와는 달리 대규모 현질을 하고 있다. 우선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하는 이와무라 아키노리, 마츠이 카즈오를 영입하고 그외에도 메이저에서 복귀하는 선수들을 다 찔러보는 중. 또 김병현, 이승엽도 영입대상으로 고려했고 두산 베어스에 뛰었던 켈빈 히메네스를 영입하는 등 대대적으로 보강했다. 결국 김병현을 영입했고 마무리 투수로 기용할 듯. 결국 마쓰이 빼고 다 망했지만

그러나…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이 라쿠텐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당연히 지진으로 도호쿠지방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거기다 라쿠텐의 연고지가 하필이면 피해가 제일 심한 미야기 현인 데다가 홈구장마저 파손된 상황이다. 다행히 2개월 정도 보수공사를 하면 홈구장은 문제가 없다지만 정규시즌 개막을 10여일 앞두고 이런 사태가 벌어져서 선수들의 멘탈은 최악으로 떨어진데다 홈구장을 보수할 때까지 경기를 어떻게 할지도 문제. 원정경기로만 치룬다면 성적하락은 불보듯 뻔하다. 게다가 홈구장을 복구한다 해도 수만 명이 사망, 실종된 도호쿠의 사정상 서포터즈와 팬들의 힘도 많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라쿠텐으로선 의욕적으로 시작하려던 시즌에 악재를 제대로 만난셈.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결국 퍼시픽 리그는 4월 12일로 개막이 연기되었고 라쿠텐은 한신의 양해를 얻어 고베홋토모토 필드 고베를 임시 홈구장으로 삼기로 했다. 이 구장은 오릭스오사카 교세라돔으로 옮기기 전, 그러니까 오릭스긴테츠의 합병 이전에 사용했던 구장으로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오릭스가 우승 전력이 아니라는 평을 뒤집고 리그 우승을 일군 구장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일 등으로 인해 결국 2011년 성적은 5위로 마감했다. 6위는 전년도에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했던 치바 롯데 마린즈.

2012년도에도 5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조선의 4번 타자혼자서 야구하는 팀이 바닥을 깔고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해서 팀이 손발이 맞아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전반기에 1위를 달리던 치바 롯데 마린즈DTD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면서 승수를 쌓아올려서 한 때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까지 사정권에 들어올 정도였으나 결국 막판에 소프트뱅크의 UTU에 밀려서 4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3위였던 소프트뱅크와는 불과 1게임차로 2009년 이후로 3년만에 팀 역사상 두번째 시즌 5할 승률에 성공했다.

3.4 2013 시즌

창단 9년만에 첫 우승!

250px
2013년은 본격적으로 호시노 빨이 결실을 맺는지, 투수진은 타나카를 위시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타선도 장거리포 부재에 시달리던 과거와는 달리 앤드류 존스케이시 맥기히라는 메이저 출신 용병들이 중심을 잡고, 아카미나이 긴지 같은 젊은 타자들이 부상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구단 역사를 쓰게 되는데 창단 이래 처음으로 7월 이후 단독 선두를 밟았다. 교류전때 15승 9패로 2위의 호성적을 거둔 뒤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비슷한 팀컬러인 한국 프로야구넥센 히어로즈가 2013년에 약진하고 있어서 양국 두 신생팀이 이번 해 들어 드디어 빛을 보는 듯. 9월 26일 퍼시픽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과거 집주인[7] 치바 롯데 마린즈와 맞붙게 되었다. 10월 17일 1차전에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10월 18일 2차전에서는 연장 10회까지 간 끝에 2:4로 패하였다. 10월 19일 3차전에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10월 21일 4차전에서는 8:5로 승리하였다. 그리하여 퍼시픽리그 1위 팀에게 주어지는 1승을 포함하여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였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맞붙게 되었다.

10월 26일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는 0:2로 패하였다. 이어 10월 27일 2차전에서는 2:1로 승리하였다. 10월 29일 3차전에서는 5:1로 승리했지만 10월 30일 4차전에서는 5:6으로 패하였다. 10월 31일 5차전에서는 4:2로 승리하면서 1승만 거두면 사상 첫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상황이었으나, 다나카를 선발로 내세운 11월 2일의 6차전에서 2:4로 패[8]하며 3승 3패로 같아지면서 7차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11월 3일 7차전, 홈에서 3:0으로 승리하여 창단 이후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호시노 센이치의 감격적인 콩라인 탈출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7차전의 마무리 투수는 전날 160구를 넘게 던져 완투패를 당하고도 다시 나온 다나카 마사히로. 일본시리즈 MVP는 3차전과 7차전에서 연속으로 호투하며 2승을 기록한 미마 마나부에게 돌아갔다. 사실 진짜 MVP는 미마에게만 2패를 헌납한 스기우치 토시야라는...

하지만 2013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준결승에서 만난 대만의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에게 4대 1로 충격패. 이는 일본 아시아 시리즈 사상 최초로 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한 수모이기도 하다. 가을삽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보다 처참하구려

그리고 미일협정을 통해 새로 개정된 포스팅 시스템 때문에 곤혹을 겪게 됐다. 포스팅 시스템이 빅마켓 구단들만을 위한 특권처럼 되었다는 스몰마켓 구단들의 이의에 따라 논쟁 끝에 새로 개정됐는데, 개정 내용을 보면 포스팅비는 최대 2천만 달러로 제한되며, 최고 입찰액을 구단 하나하고만 사실상 독점 협상을 하는 구조에서 최고 입찰액을 제안한 모든 구단과 협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하는 선수에게는 선택 권한이 넓어졌다는 이점이 생기고, 스몰 마켓 팀들도 포스팅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빅마켓 구단들은 독점 협상권을 더 이상 얻기 불가능해졌고, 선수를 포스팅하는 원 소속 구단도 포스팅비를 통해 막대학 이적료를 얻어 차후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다나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팀은 이와쿠마에 이어 두 번째 메이저리거 배출에 성공하지만 다나카를 보내는 공백을 대신해 얻는 비용은 실망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이와쿠마는 포스팅 실패 후 FA로 건너간거라 라쿠텐은 그의 공백만 생기고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다나카 포스팅비도 막대하게 챙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라쿠텐은 포스팅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라쿠텐을 제외한 일본 야구팀들이 모두 찬성해버려 포스팅은 결국 개정. 포스팅 비용을 두둑히 챙기지 못해 다나카를 FA 때까지 잡거나 울며 겨자먹기로 포스팅 하거나 둘 중 하나에 놓이게 됐다.

라쿠텐 구단 내부에서는 다나카를 잔류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많아 12월 8일 우선 다나카와 만난 뒤 설득을 하던가, 그래도 그가 어떻게든 진출을 도모하겠다면 지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팬들은 어차피 라쿠텐은 다나카를 잔류시키려 할 것이고, 다나카는 메이저리그로 얼른 진출하기 위해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며 대립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구단주 미키타니 히로시는 공식적으로 다나카를 보낼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고, 이에 나머지 구단들이 포스팅 금액을 보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달래기 일단 공식적인 발표는 17일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두고봐야 할듯.

이후 발표를 미루다 크리스마스날 드디어 대승적으로 다나카의 포스팅을 승인했다. 조건이 있었는데 다나카가 구단에 연봉 일부를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헌데 MLB 사무국 측에서 규정위반이라며 제동을 걸어온 상태. 금전적인 상실감을 덜 받기 위해 다나카로부터 연봉 일부를 기부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라쿠텐으로서는 심히 난감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정확히는 구단이 아닌 센다이에 기부금을 낸다고 말한 것이었지만 규정위반으로 제동이 걸리게 되었고 결국 백지화 하기로 했다. 다나카 포스팅 비용으로 구장 및 주위 시설 다 뜯어고칠 생각이었다는데 말 그대로 안습

거기다 포스팅비 2천만 달러조차도 일시불이 아닌 분할 지급(18개월간 1천만+3백 4십만+3백 4십만+3백 2십만 달러)이라서 더 난감해진 상황이다.

오프시즌에는 드래프트에서 고졸 최대어로 꼽히던 좌완투수 마쓰이 유키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셋업맨, 마무리로 활약하던 브라이언 팔켄보그, 한국에도 왔다 간 트래비스 블랙클리, 마이너 계약을 맺은 케이시 맥기히를 대신해 보스턴 레드삭스 등에서 활약한 '볼넷의 신' 케빈 유킬리스등 나름 이름값있는 선수들을 영입했다.

이쯤 되면 더더욱 이 구단에 관한 압박이 심해질지도 모르겠다

3.5 2014 시즌

일본시리즈 우승팀에서 리그 꼴찌로 추락하는 최악의 수모를 당하다

라쿠텐 감독을 맡을때부터 허리 통증을 가지고 있었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결국 5월 말을 기점으로 치료를 위해 무기한 휴가를 낸 상태. 팀 역시 다나카 마사히로가 해외로 진출하고, 케빈 유킬리스가 완벽한 먹튀가 되면서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퍼시픽리그 최하위를 기록 중. 설상가상으로 9월 29일 오릭스전부터 10월 7일까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전년도 일본시리즈 1위팀이 퍼시픽리그 꼴찌로 떨어지고 마는 최악의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9] 예전에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결국 이번 시즌은 리빌딩이 될 것이라 천명되며 일찌감치 시즌은 포기한 상황.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시즌 후 지도자 은퇴를 선언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10월 7일 마지막 경기에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은퇴식이 있었다.

3.6 2015 시즌

제자리 복귀

2014 시즌만큼이나 2015 시즌도 암울해 보이는 상황. 전반기를 마무리한 7월 20일 현재 36승 3무 43패로 파리그 5위에 랭크되어 있다. 교류전에서 한신 타이거스에 3연전 싹쓸이를 허용하긴 했지만 다른 세리그 팀들을 어찌어찌 잘 잡아내며 버텨서 치바 롯데 마린즈와 완벽히 똑같은 10승 8패의 성적으로 교류전을 마감한 게 위안거리. 그러나 소프트뱅크닛폰햄세리그 학살 대성공 그러나 그 뒤로 패를 무지하게 쌓더니 9월 15일 닛폰햄전에서 패해 기어이 꼴찌로 추락했다.

오쿠보 히로모토 감독이 2년 연속 B클래스의 책임을 지고 8월 28일에 사퇴 의사를 밝혔고, 10월 1일 나시다 마사타카 전 긴테츠[10], 닛폰햄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했다. 시즌 도중 타시로 토미오 타격코치[11] 가 자진 사퇴하는 등 곡절이 많았고, 이 과정에서 미키타니 구단주의 현장 개입과 코치진들과의 불화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프리미어 12에서도 에이스 노리모토 다카히로4강전 9회에 등판해 한국 타자들에게 탈탈 털리면서 패배의 주범이 되어 팬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노리모토의 탓이라기보다는 오타니 쇼헤이가 내려간 뒤 상대적으로 공이 느린데다 원래 장기 이닝 관리능력이 우선시되는 전문 선발 투수[12]로 교체를 한 고쿠보 히로키 감독의 실수.

3.7 2016 시즌

최하위는 벗어났지만 3년연속 B클래스

2013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기껏 살려놓은 분위기가 1년도 못가고 2년 연속 최하위로 빛이 바랜 상황에서 팀의 침체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지 2016시즌을 앞두고 과감하게 전력보강에 나섰다. FA 시장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의 주전 3루수이던 이마에 도시아키를 영입했고, 외국인 선수로는 2013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인 자니 곰스와, 한국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레다메스 리즈도 데려왔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여름 고시엔에서 화제를 뿌린 나이지리아 혼혈 외야수 오코에 루이를 1순위로 지명했다.

무엇보다도 팀을 전혀 통솔하지 못했던 오쿠보 히로모토를 자진 사임의 형식으로 물러나게 하고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나시다 마사타카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이 팀은 묘하게도 창단 때부터 무능한 감독이 1년을 말아먹음(다오 야스시) → 유능한 감독이 장기집권(노무라 카츠야) → 무능한 감독이 1년을 말아먹음(마티 브라운) → 유능한 감독이 장기집권(호시노 센이치) → 무능한 감독이 1년을 말아먹음(오쿠보 히로모토) → … 의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지라 이번에는 유능한 감독이 팀을 다시 중흥기로 이끌 거라면서 기대를 거는 팬들도 꽤 많다. 과연 그렇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시즌 시작 전에 승리수당 몰아주기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라쿠텐뿐만 아니라 요미우리, 소프트뱅크, 세이부 등도 다 해온 일이고 워낙 일본 야구계에 관행처럼 해오던 일인데다, 요미우리 선수들의 도박 파동 때문에 기타 요미우리 선수단의 문제점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불거져나온 문제라 그냥 "앞으로는 안 하겠다" 선에서 마무리 되고 큰 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맞이한 시즌 개막전에서 전년도 우승팀이자 2년 연속 일본시리즈 우승팀이고 2016년에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소프트뱅크를 상대하게 되었다. 경기초반 3점을 내주며 끌려가던 전개에도 불구하고 상대팀 투수 셋츠 타다시를 두들겨서 7대 3의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 그 기세를 탔는지 4월 10일까지 퍼시픽리그 선두를 마크했지만...

역시나 빈약한 전력이 금방 뽀록나면서 성적이 하락해 금방 하위권으로 쳐지게 되었다. 게다가 없는 살림에 큰맘 먹고 데려온 이마에 도시아키는 부상으로 드러누우면서 FA 먹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외국인 용병도 4번타자 젤러스 휠러 정도만 밥값을 해주고 레다메스 리즈는 구원으로 몇경기 올렸다가 한국 데뷔 초창기처럼 제구력 실종에 한국 시절보다 구속만 낮아진 모습을 보이면서 실패, 혹시나 하고 선발로 돌려봤지만 그것도 실패하면서 한국 시절의 나빴던 모습만 보여주면서 2군행. 먹튀짓의 정점은 자니 곰스로, 별다른 활약도 없이 삽만 푸다가 구마모토 대지진 후로 "지진이 무섭다"면서 한 달만에 계약을 해지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곰지진, 곰도망[13]

그 결과 5월 하순에 9연패를 당하는 등 한 때 최하위로 쳐졌으나 오릭스 버팔로즈의 삽질로 5위로 다시 상승한 상태. 그래봤자 오릭스 바로 위. 거기다 2016년 시즌은 무시무시한 매놈들 때문에 리그 우승은 거의 땡이다. 내년 시즌이나 기대하자. [14]

한가지 희망적인 게 있다면 드래프트 1순위 지명에서 센다이 출신의 히라사와 타이가를 롯데와의 경합 끝에 놓치고 대신 지명한 오코에 루이가 기존의 일본 프로야구계의 상식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성장 스피드를 보여주고 있고[15], 3순위로 뽑은 대졸 모기 에이고로가 일찌감치 마쓰이 카즈오의 노쇠화로 빈 유격수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2015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퍼리그의 신인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면서 강력한 신인왕 후보가 되고 있는 등 신인 농사는 굉장히 잘 지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2016년 당장은 아니더라도 팀의 에이스인 노리모토 다카히로나 영건 마쓰이 유키가 큰 부상없이 건재하다면 진짜로 다음해, 다다음해에는 기대를 해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7월 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누르고 4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라쿠텐이 아직 4할 승률인데 3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5할8푼의 호성적이라서(....) 일본꼴데가 DTD하면 되지 뭐 실제로 점점 가까워지고있다

9월 20일 세이부가 이기는 바람에 5위로 떨어졌고, 이후 나란히 연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표만 봐서 5위이지 잔여경기까지 따지면 라쿠텐까지가 그나마 포스트시즌 가시권이고, 4위인 세이부는 잔여경기가 너무 부족해 9월 21일 기준으로 거의 탈락한 상태다. 그러나 롯데한테 2연패당한 상황이라 매우 어렵다. 결국 9월 24일 닛폰햄과의 경기를 지고 롯데가 오릭스에게 승리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세이부한테 추월당해 최종적으론 5위로 시즌 마감. 일단 신인수급이 잘된 것과 최하위 탈출에 의의를 둬야 할 것 같다.

4 유니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유니폼 항목 참조.

창단 10년이 조금 넘은 신생구단이지만 이벤트 유니폼이 많이 나와 그것을 정리한 항목이 단일 항목으로 분리되었다.

5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2년2013년2014년2015년2016년
연 평균1,177,793명 (+0.8%)1,281,087명 (+8.8%)1,450,233명 (+13.2%)1,524,149명(+6.6%)1,620,961명[16] (+4.9%)
일일 평균16,358명17,793명20,142명21,467명22,513명[17]

6 홈구장

미야기 구장 항목 참조.

7 그 외

  • 일본 프로리그 12개 구단중 최악의 응원가로 유명하고, 같은 리그의 오릭스 버팔로즈와 비교해서 더 까인다. [18]일단 들어보자. 이런 응원가에 욕을 처먹다가 본인들도 안되겠다고 판단한 건지 모닝구무스메를 섭외해서 응원가를 만들었다.[19], 그리고 반응이 좋자 비슷한 노선을 탔는데, 문제는 2007년 야구 응원가에서 벗어나 그냥 J-POP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도 계속 삽만 푸면서 J-POP을 만들고 있다.(…)[20]
  • 구단 사장 타치바나 요조[21]가 여러 가지 의미로 비범하다. 2013년 시즌 후 다나카 마사히로메이저리그 진출에 관해 직접 윈터미팅 현장으로 30개 구단 단장들을 만나러 달려갔으며, 구단 홍보를 위해서 도호쿠 지방을 백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뛰는 등 여러모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2015년 시즌 전에는 선수들과 스프링캠프에 같이 참석했는데, 선수들과 경쟁해서 20m 셔틀런 횟수 1등을 했다. 그리고 2ch에서는 선수 겸 단장 드립이 나왔다[22]
  • 하지만 그러한 프론트의 열의가 긍정적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 듯, 2015년에는 선수 기용, 작전 지시[23] 등을 둘러싼 프론트의 현장 개입을 둘러싸고 미키타니 히로시 구단주와 타시로 토미오 타격코치, 오쿠보 히로모토 감독과 불화설이 돌기도 했다.

8 주요 선수들

8.1 현역

8.1.1 투수

  • 1 마쓰이 유키
  • 11. 시오미 타카히로
  • 14. 노리모토 다카히로
  • 20. 안라쿠 도모히로 : 고시엔 혹사의 대표적인 케이스. 고등학교 때 시속 150km를 넘는 강속구를 뿌리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고시엔 본선에서 연투에 연투를 거듭하면서 구위가 떨어져 가는데도 처절하게 마운드에서 버티는 모습 때문에 일본 야구계 안팎에서 혹사논란이 재점화되었다. 다르빗슈 유 등 메이저리거나 쿠와타 마스미같은 일부 고교야구 OB들은 이 선수를 예로 들며 혹사를 방지,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투구수 제한, 엔트리 확대 및 선수들 부상 방지에 대한 관심 등 개선책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뱀발로 장훈, 왕정치, 호시노 센이치, 타니시게 모토노부등 여러 원로 OB와 현 일본 프로야구 감독 및 해설가들은 "그런거 하나 관리 못하나?" , "선수로써는 실격이군", "대체 대회기간에 뭘 하는 것인가?" 이런 류의 구태의연한 개드립을 말하다가 욕만 주구장창 근데 호시노 감독은 자기 팀인데 먹었다. 2014년 드래프트 때 라쿠텐이 1순위로 지명했지만 혹사 후유증으로 신인 시즌은 거의 재활로 보냈고, 시즌 막판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 선발로 데뷔해서 프로 첫 승을 따냈다.
  • 21. 카마타 요시나오
  • 22. 토무라 켄지
  • 26. 카네토 노리히토
  • 31. 미마 마나부 : 2013 일본시리즈 MVP. 진짜 MVP는 이 투수에게만 2승을 헌납한 스기우치 토시야라는 후문이 있다.
  • 41. 아오야마 코지
  • 43. 캄 미콜라이오
  • 49. 레다메스 리즈 : 한국 야구팬들이 알고 있는 그 선수가 맞다. 현재 1군/2군 등록 반복 중.
  • 58. 카라시마 와타루
  • 61. 김무영 한국 선수로서는 드물게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떠나, 일본프로야구에 드래프트되어 아직까지도 활동중인 선수.

8.1.2 포수

8.1.3 내야수

8.1.4 외야수

  • 3. 자니 곰스
  • 7. 마츠이 카즈오
  • 9. 오코에 루이 : 2015년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된 고졸 신인. 아버지가 나이지리아 출신인 혼혈로 2015년 여름 고시엔 대회 본선에서 동도쿄 지역 대표인 간토다이이치 고교의 리드오프로 출전, 일본 수준을 초월하는 주력[24]과 야구센스, 넓은 수비범위로 팀의 4강진출에 공헌했다. 서도쿄 대표인 와세다 실업고의 1학년생 기요미야 고타로와 더불어 단숨에 도쿄를 대표하는 고교야구 선수로서 프로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프로 입단 후에도 여전히 관심의 표적이었지만 뛰어난 운동능력에 비해 타격은 아직 정확도가 떨어져서 좀 더 성장이 필요한 상황.
  • 23. 히지리사와 료
  • 25. 마키다 아키히사 : 2016년 현재 현재 라쿠텐에 마지막으로 남은 원년 멤버이자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출신 선수.
  • 32. 마스다 신타로
  • 71. 카를로스 페게로
  • 98. 펠릭스 페레즈

8.2 OB

8.3 구단출신 메이저리거

  1. 글자 로고만 쓰면 허전해서 그런지 마스코트 상반신과 같이 그려진 로고를 더 많이 쓴다. 바로 옆에 있는 로고이다.
  2. 모기업 다이에의 경영난으로 휘청이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가 타겟이 되었다. 정작 호크스는 이 사단이 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요미우리보다도 자금이 빵빵한 곳을 모기업으로 얻게 된다. 긴테쓰 지못미
  3. 물론 센다이에 프로야구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롯데 오리온즈집시 롯데 시절에 잠시 센다이를 연고로 했었고 1974년에 일본시리즈 우승까지도 했다. 그러나 완벽히 정착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시즌을 치르다가(1974년 일본시리즈 홈경기도 미야기 구장의 관객수용량이 일본시리즈 개최조건인 3만명에 미달한다며 고라쿠엔 구장에서 치뤘고 우승 퍼레이드도 도쿄에서 치룰 정도) 결국 카나가와카와사키 시에 정착했다.
  4. 경기 기록지. 상대 선발 와타나베 슌스케는 9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을 각 하나씩만 허용했고 그나마도 그렇게 나간 주자들은 다 병살로 잡아들여서 27타자 완봉승에 성공했다.
  5. 승률이 .281, 즉 3할이 안 된다. 이 승률은 대략 마왕 시절의 이 팀과 끝도없이 막장모드를 달리던 꼴랑이와 비슷한 기록. 그리고 이 기록을 2013년 한화 이글스가 노리고 있었으나 결국 3할은 넘겨서 시즌 마감.라쿠텐과 같은 입장의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있음에도
  6.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노무라는 난카이의 에이스였다곤 하나 난카이 구단과는 아주 험악한 관계였다. 이게 어느 정도나면 난카이가 지은 "난카이 호크스 기념관" 에 팀의 에이스이자 감독까지 지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노무라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없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험악한 관계인질 알 수 있다.
  7. 롯데 두번째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연고지가 미야기 현이었다.
  8. 다나카는 9이닝 4실점 160구 완투패. 무슨 고시엔하냐?
  9. 비슷한 예로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치바 롯데 마린즈가 다음 해에 꼴찌로 추락한 전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롯데도 1970년대에 잠깐 미야기 현에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롯데 오리온즈였지만은.
  10. 참고로 긴테츠 버팔로즈의 마지막 감독이기도 하다. 2004년 긴테츠의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최후의 경기 때 이 사람이 남긴 말인 "모두들 가슴을 펴고 플레이해라. 너희들이 달고 있는 등 번호는, 모두 긴테쓰 버팔로즈의 영구결번이다(みんな胸を張ってプレーしろ。お前たちが付けている背番号は、すべて近鉄バファローズの永久欠番だ)." 는 지금도 야구계에서 명언으로 평가되는 말이기도 하다.
  11.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2011년 SK 와이번스 타격 코치를 지내다가 김성근 감독의 경질과 함께 사퇴했는데, 공교롭게도 라쿠텐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게 되었다.
  12. 노리모토는 신인인 2013년부터 줄곧 선발 투수로만 활동했다.
  13. 심지어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라는 말도 했다. 이런 것도 똑같네.
  14. 나시다가 감독을 맡은 팀들은 전부 2년차에 리그 우승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근데 문제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했다는 것이지만... 또한 라쿠텐 항목에 나온 감독들의 사이클을 보면 무능한 감독이 1년을 말아먹은 뒤에 유능한 감독이 취임해서 3년차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징크스가 있다. 내년에 안 되더라도 다음 해에 희망을 가지자.
  15. 스프링 캠프 때 까지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수준의 스피드 등, 천부적인 툴은 좋지만 타격자세에 문제가 많아 교정하려면 1~2년 정도는 걸리며 주전으로 정착하려면 3년 후쯤이나 되어야 할 것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으나, 불과 3개월만에 타격폼을 교정하고 고졸임에도 1군 클래스로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인터뷰 스킬도 좋고 상당히 모범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장차 구단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서 기대가 큰 상황이다.
  16. 구단 신기록
  17. 구단 신기록
  18. "요미우리 자이언츠 응원가를 군가라고 하면, 라쿠텐도 그 종류에 들어갈거야." "군가를 만든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 등의 반응이다.
  19. 구단 설립 당시 마케팅을 담당하는 라쿠텐 스포츠 프로퍼티를 모닝구무스메 소속사인 업프론트그룹과 합작하여 설립한 덕분. 설립 후 업프론트내 팀들이 응원가를 한차례씩 담당했었다. 이후 2010년 7월 1일에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라쿠텐 스포츠 프로퍼티를 완전히 인수 합병하여 업프론트와는 결별, 이후부터는 응원가 그런 거 없다.
  20. 이 글에서 참조했다.
  21. 게이오기주쿠대학 럭비부 출신으로, 구단 사장 취임 전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증권맨으로 일했다. 실제로 증권맨이라 숫자를 다뤄 본 경험이 많다 보니 세이버메트릭스적 데이터 분석을 구단의 핵심역량으로 삼는 중. 실제로 라쿠텐과 같은 산업 내에 속한 아마존도 전자상거래를 통해 얻은 데이터분석 기술이 핵심역량이다.
  22. 사실 그런 드립이 나올 만도 한 게 트위터를 보면 선수들과 친하며 구단 내 관계자와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팬들과의 관계도 좋은 게, 팬들이 타치바나 사장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만들어 주기도 할 정도.
  23. 이 역시 세이버메트릭스와 관련이 있다.
  24. 1루수 글러브를 맞고 튕긴 내야안타성 타구를 2루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