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 아키오

역대 소니 CEO
타몬 마에다(1946~1951)이부카 마사루(1951~1976)모리타 아키오(1976~1994)오가 노리오(1982~1995)
이데이 노부유키(1995~2005)하워드 스트링거(2005~2012)히라이 카즈오(201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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盛田昭夫(1921, 01. 26 - 1999, 10. 03)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똑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도록 하라!!"
"나의 경영이념은 '소니와 이해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직원들의 행복이 나의 최대 관심사다. 그들은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소니에게 맡긴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 직원에 대한 나의 최대 사명은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 '소니에 근무해 정말 행복했다.'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용기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오늘날의 소니를 있게 한 거장.
가전제품으로 세계를 평정한 전자업계의 제왕.

일본의 기업인. 이부카 마사루와 함께 세계적인 가전 메이커 소니를 창업한 공동 창업주다.

1 생애

모리타 아키오는 1921년 아이치현의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1665년부터 아이치 현 서부해안의 치타 반도에 위치한 코스가야(현 토코나메 시)에서 간장, 미소, 그리고 사케등을 제조해 판매하는 것을 가업으로 삼고 있었다. 장남이었던 그는 아버지 규자에몬으로부터 가업을 이을 수련을 받고 있었으나[1], 수학과 물리학에서 자신의 진로를 찾았고 1944년 오사카 제국대학을 물리학 학사를 받고 졸업한 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한다. 그리고 당시 일본해군 전시개발위원회에서 복무하던 이부카 마사루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된다.

2 소니를 창업하다

종전 후인 1946년, 모리타는 이부카 마사루와 함께 20여명의 직원과 자본금 19만엔을 들여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창업 당시 마사루는 38세였고, 모리타는 25세로 모리타가 13살 어렸다. 그러나 모리타의 가족이 당시 창업한 회사에 투자한 까닭에 실질적인 주주는 모리타의 집안이었다.

이후 1950년 최초로 테이프 레코더를 개발, 일본내 판매를 하게 되었고, 그 후 1957년 세계최초로 포켓사이즈로 된 휴대용 라디오를 생산해냈으며 이듬해인 1958년 사명을 소니로 개칭하게 된다. 초기 휴대용 라디오를 개발해냈을 때, 셔츠 주머니에 넣기엔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게된 모리타는 직원들로 하여금 약간 큼직한 주머니가 달린 셔츠를 입게 해 그에 맞는 규격의 라디오를 생산해 낸 것이었다. 그 후 1960년 세계최초의 트렌지스터 텔레비젼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고, 1973년 트리니트론 텔레비전 기술로 에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1979년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워크맨을, 1984년에는 워크맨의 휴대용 CD 플레이어 버전인 '디스크맨'을 출시, 소니가 세계적인 가전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같은 실적으로 인해 1960년 소니의 미국법인인 소니 아메리카 코퍼레이션이 설립되고 다음해인 1961년, 뉴욕주식시장에 상장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1988년 미국의 CBS로부터 CBS음반사를 인수하고 이듬해 1989년 역시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해 종합 미디어사로 발전하기에 이르게 된다.

3 말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에 출연한 모리타 아키오.

1994년 11월 25일, 모리타는 테니스를 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소니 회장직을 물러나게 되고 후임으로 오가 노리오가 임명된다. 그 뒤 1999년 10월 3일, 폐렴으로 인해 향년 78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4 여담

  • 혼다 소이치로와 더불어 학교 교육에 지극히 부정적인 인물이었다. 1966년, "학력무용론"이란 책을 펴냈을 정도. 이 책에서 그는 개인의 사업능력이나 성공여부에 있어 학력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 그러나 한 편으로는 논란에 서 있던 인물이기도 한데 1991년 집필한 "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을 공동저자로 펴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공동저자가 하필 이시하라 신타로 였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책의 내용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모리타와 그 작자는 미국의 경영방식을 비판함과 아울러 일본기업들과 일본의 세계경제 선도자 역할을 강조한 내용이어서 당시 미국 내에서도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었다. 당시 일본경제가 미국을 위협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나온 책이어서 그 논란이 더 했다는 점이 컸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나 훗날 영어판을 냈었을 때 그가 저술한 장은 생략되었으며 책에 관련한 어떠한 연관도 짓지 않으려 했다.
  1. 일본에서는 장남이 가업을 잇는 풍토가 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