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카 마사루

역대 소니 CEO
타몬 마에다(1946~1951)이부카 마사루(1951~1976)모리타 아키오(1976~1994)오가 노리오(1982~1995)
이데이 노부유키(1995~2005)하워드 스트링거(2005~2012)히라이 카즈오(2012~현재)

300px-Masaru_Ibuka.jpg
井深大(1908, 04. 11 - 1997, 12. 19)

"다른 사람의 경험과 머리를 빌려라."
"도전과 실패를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경험이 쌓이고 독자적인 노하우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무섭게 일했다(우리의 목표를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무서움을 몰랐기 때문에 큰일을 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소니를 있게 한 거장.
가전제품으로 세계를 평정한 전자업계의 제왕이자 육아 교육의 선구자.

일본의 전기 기술자 및 기업인이자 육아 교육자.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세계적인 가전 메이커 소니를 창업한 공동 창업주다.

1 생애

이부카 마사루는 1908년 토치기현의 닛코에서 태어났다. 5세 때 도쿄로 이주, 8세때는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고베로 이주했다. 어릴적 부터 수학과 물리학이 뛰어났고 기발한 발명으로 유명했다. 와세다대학 이공학부에 입학했으며 대학생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발명품 전시회에서 변조광전속장치를 출품해 입상하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바우라 전기(현재 도시바)에 지원했으나 떨어지고 사진 화학 연구소(Photo Chemical Laboratory, 통칭 : PCL, 후에 소니 PCL이 됨)에 입사한다. 이때에도 달리는 네온이라는 발명품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하여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PCL에서 나와서 일본 측정기 주식회사를 설립하는데 이때 세계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제국해군 전시개발위원회에서 복무하게 되고, 그의 회사는 군수 전자기기를 납품하게 된다. 열선 유도 무기를 개발하는중에 일본제국해군 장교로 근무하던 모리타 아키오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이부카는 1945년 니혼바시 백화점에서 도쿄통신연구소를 설립한다. 아사히 신문에 낸 광고에 우연히 모리타 아키오가 관심을 갖게 되고 이부카와 합류하게 된다. 이후 1946년 둘은 19만엔을 들여서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다.

2 소니를 창업하다

종전 후인 1946년, 이부카는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20여명의 직원과 자본금 19만엔을 들여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창업 당시 마사루는 38세였고, 모리타는 25세로 모리타가 13살 어렸다. 그러나 모리타의 가족이 당시 창업한 회사에 투자한 까닭에 실질적인 주주는 모리타의 집안이었다.

창업 당시 이부카의 시아버지인 타몬 마에다(이전에 일본 문교부 장관)가 대표를 맡았고, 이부카는 전무이사 (기술 담당), 모리타는 상무이사(영업 담당)을 맡았다.

이후 1950년 최초로 테이프 레코더를 개발, 일본내 판매를 하게 되었고, 그 후 1957년 세계최초로 포켓사이즈로 된 휴대용 라디오를 생산해냈으며 이듬해인 1958년 사명을 소니로 개칭하게 된다. 이부카는 기술 개발을 담당하여 초창기 제품개발 전반에 관여하였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세계최초의 트렌지스터 텔레비젼을 개발해 내기도 하였다. 1968년, 트리니트론 텔레비전 기술을 개발하고 73년 에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많은 일본 최초. 세계 최초인 제품을 개발했으며, 사장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베타맥스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3 말년

1972년 미국 전기전자엔지니어협회로부터 ‘위대한 창업자상’을 받았고 IEEE 협회에서도 설립자상을 받았다. 75년까지 소니를 경영하면서 세계적인 전자업체로 발전하는데 공헌했으나 1976년 소니 회장에서 은퇴하여 육아 교육학에 전념했다. 그는 국가 장래는 유아교육에 있다는 신념하나로 1969년 유아 교육 협회를 설립한 이래 30여 년 동안 유아교육에 전력을 다했다. 1972년에 소니 교육 진흥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1985년부터는 일본 보이스카우트 협회의 이사장이기도 했다. 또한 그의 차녀가 지적장애가 있어서 장애인이 자랍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모리타에게 말해서 1978년에 오이타 현에 장애인이 일할 수있는 공장 "소니 태양 이 건설되었고, 생산 시설을 갖춘 사회 복지 법인 '희망의 집'에 많은 기부도 하기도 했다. 그러한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서 1991년 세계스카우트연맹에서는 그에게 청동늑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모리타와 친분을 유지하며 소니의 고문으로 있었으며 1997년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전기 전자 기술자 협회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7년부터 IEEE 이부카 마사루 소비자 전자제품상(IEEE Masaru Ibuka Consumer Electronics Award)을 제정하여 소비자 가전기술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나 팀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