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신약성경 복음서 중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 마르코 복음서 쪽에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줄거리는 같다.
2 원문
이튿날 아침에 예수께서 성안으로 들어오시다가, 마침 시장하시던 참에 길가에 무화과나무 1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리로 가셨다. 그러나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버렸다.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놀라서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그렇게 당장 말라버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이 무화과나무에서 본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21장 18~22절 (공동번역성서)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시던 참에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나 하여 가까이 가보셨으나,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여,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할 것이다." 하고 저주하셨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중략)
이른 아침, 예수의 일행은 그 무화과나무 곁을 지나다가 그 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 마르코 복음서 11장 12~14절, 20~25절 (공동번역성서)
3 해설
"안 되겠소! 저주합시다!"
"이보시오 예수 양반!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예수가 배가 고파 무화과 나무의 과일을 먹으려 해서 갔는데, 무화과 열매가 열릴 시기가 아닌지라 열매가 안 맺힌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저주한다는 내용이다.
배경지식 없이 읽으면 매우 황당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에 버트런드 러셀의 무신론 서적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도 이 부분을 들어 예수의 인격까지 거론하며 비난하였다.[1] 다만 성경의 구절이 대부분 비유적인 요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예수께서 설교할때 항상 비유로 설교했다는걸 생각하면 러셀이 뻘쭘해할 정도로 의외로 평범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신도들이 성경이 비유적이라는걸 인정 안하는 경우가 많아서 의미없지만...
무화과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잘 자라는 열매다. 즉, 어떤 의미로는 팔레스타인과 유대인들의 상징과도 같다.[2] 그리고 이 내용은 예수의 성전 정화와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서의 11장을 보면, 예수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이야기의 전반부(12~14절)가 소개된 뒤,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가 성전을 정화하는 장면(15~18절)이 나오고, 이튿날 다시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다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19절~21절)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서술된 것이다. 여기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 성전, 즉 당시의 교조주의적이고 돈에 물들은 유대교를 비유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어야 할 철에 싱그럽게만 보이던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예수가 저주하는 장면은, 당시 유대교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전 정화때 시장통과 다름 없었던 예루살렘 성전[3]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유대교의 핵심 지도자인 대제사장과 그의 장인인 전 대제사장의 묵인하에 성전 제물용 가축이 성전 뜰에 버젓이 상품으로 널려 있었고 그걸 웃돈을 얹어 팔아 대제사장을 비롯한 성전 제직들이 뒷 이익을 챙겨 떵떵거리는 상황이었다. 현실로 따지면 거의 수 억의 돈으로 환산 될 액수라고 성서 고고학자들의 연구도 있었다. 로마의 식민지 시대라는, 유대인 입장에선 팍팍한 현실에 길거리에 과부와 고아, 병자가 널려 있는 상황에서 민족 중의 장자로 임명받았던(겉보기엔 푸르르고 멀쩡한) 유대민족(무화과나무)이 제대로 열매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 역시 무화과나무처럼 저주받아 말라버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제자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무화과에 저주를 내린것이라는 것도 있다. 예수가 무화과가 마르는 기적을 보여준뒤에 "너희도 믿음이 강하면 산보고 바다에 던져지라고 해도 던져진다."라는 말을 덧붙인것이 그 근거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저 즈음은 본래 열매가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무화과는 심고 3년이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고, 1년에 2~5번 정도 열매를 맺는다. 철 이른 무화과를 비쿠라(בכורה)라고 부르며 보통 먹지 않고 버리고, 늦게 열린 무화과를 테에나(תאנה)라고 부르고 먹는다. 예루살렘 입성을 3월 말에서 4월 초로 본다면 비쿠라가 있을 시기이긴 하다.그런데 성경 본문에는 저 시점이 무화과가 열리지 않을 시기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 '무화과가 열리지 않을 시기' 라는 것은 테에나가 열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비쿠라를 무화과로 취급하지 않았고, "무화과의 전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익지 않아서 안 먹는 것이니 배가 불러서 그랬단 오해는 말자.(...) 사실 먹긴 먹었다. 테에나만큼 달진 않았지만 어린이들의 좋은 간식이기도 했고 가난한이들과 여행자를 위해 비쿠라는 남겨두는것이 관례였다.
어쨌든 얼핏 보기엔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나[4] 기독교 학계의 관점에서는 그리 이상할 건 없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세인트 영멘에서 이 말을 한 이유는 진짜로 공복이라서 홧김에 한거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를 보필하는 천사들도 이걸 따라한다. 가령 고추냉이를 잘못 먹고 예수가 뻗자 우리엘이 뛰쳐나와선 '저주받을지어다! 고추냉이는 앞으로 영원히 열매맺지 못하리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곧 예수가 고추냉이의 참맛을 알게 되자 '열매를 맺어도 좋다'- ↑ 단, 러셀도 예수가 인격자라는 건 인정한다. 다만 석가모니나 소크라테스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했다.
- ↑ 옛날 유대인들은 선악과도 무화과라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은 선악과에 사과의 이미지를 덧입혔지만, 사과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흔하지 않은 과일이다.
- ↑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오늘날 대형교회와는 비교가 안 되게 거대했다. 로마에서 통치에 용이하도록 임명한 분봉왕 헤롯이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예전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스케일 크게 지어놨는데 이게 어느정도냐면 성전 건물을 당시 소도시 크기(!!!)만하게 지었다! 이 거대한 건물은 로마 제국 영토 내의 근동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 성전에서 일하는 수 천의 제사장과 제직, 제사지내러 온 유대인, 성전 지키는 군병과 노예들, 제물 태우는 연기와 배출 하수구로 쏟아지는 짐승 피, 사람 소리 짐승 우는 소리 혼재된 어수선한 상황에 관광객들까지 오는 매우 복잡하기 짝이없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게 지금 성전 상황이란 얘긴데, 이거 웬만한 시장통 저리가라다(...). 여기에 사람 모이면 장 선다고 호객하는 장사꾼, 예식에 따라 정결하게 몸을 씻으라고 죽 늘어선 유료 목욕탕까지 있었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전의식이 하나의 산업 콘텐츠가 되어버린 것.
- ↑ 사실 전체적으로 봐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성경구절들은 이상하거나 당황스러운 내용도 상당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