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성전 정화

예수의 성전 정화, 야코프 요르단스, 1650년경, 캔버스에 유채, 288 x 436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

1 개요

독사의 자식들아!!![1]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일화이자, 그의 죽음의 원인 중 하나가 된 사건이다. 서민들을 등쳐먹으면서 부를 불리려하는 더럽고 부패한 종교 권위자들에게, 예수가 얼마나 분노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참고로 위의 그림은 상당히 점잖게 그려진 것이다. 실제로는 목수일을 하면서 근육으로 다져진 예수가 채찍을 들고, 시장바닥이나 다름없었던 성전에서 일대 다수로 무쌍을 찍었을 확률이 크다(...).

농담이 아니고 만일 예수님께서 다시 내려와, 한국에 오신다면 제일 일 것이다. 아멘

2 원문

/원문항목 참조.

3 상세

예수가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돌아보시다가 헤롯의 성전에 들어섰는데, 성전 안에서 성전에 온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환전상과 상인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극도로 노하여 손수 나서 그들을 채찍으로 벼에서 이삭이 터지듯이 두들겨 패서 내쫓아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정화했다는 내용이다. 사랑과 평화를 설파하는데다 심지어 악마가 와도 말로 타일러 보내던 예수성경에서 유일하게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복음서에서는 사람을 때렸다는 말이 없지만, 정황상 성전을 지키는 용역 깡패들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요한 복음서에서는 아예 채찍을 동원했다고까지 서술했다.

근데 성전은 성자 성부 성령의 집이라는 내용이 성경에서 한두 번 반복되어 나온 게 아니고, 성부이며 성자이기도 한 성령이 계시는 너희 마음 속을 더럽히면 반드시 쳐 죽여버리겠다는 내용도 있다. 따라서 마귀가 와도 타이르던 자가 폭력을 사용했다고 예수를 위선자로 취급할 건 아니다.

예수는 또한 성전을 떠나면서는 성전의 거대함을 가리키는 제자들에게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아 AD 66년, 훗날 황제가 되는 티투스의 예루살렘 정벌 때 통곡의 벽 만을 남기고 전부 무너지게 된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헤롯의 성전은 벽돌 하나하나에 금박을 입혀 엄청나게 화려하게 지었기 때문에, 금박을 벗기기 위해 돌 하나하나에 일일이 달라붙은 결과 글자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박살났다. 그래도 하나는 남았는데 사실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의 성전 중 느헤미야 시절 지어진 제 2성전의 벽 일부이고, 성전 정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헤롯이 지은 제 3성전 쪽이니 좀 다르긴 하다.

흔히 공관복음이라고 하는 예수의 생애를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기록한 들과, 이들과는 많은 점에서 구분되는 요한 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자세한 전개는 양쪽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 둘이 따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그냥 같은 사건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찌됐든 당시의 종교 부패가 매우 심각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대표적인 일화를 적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3.1 종교적 부패의 실태

단지 성경의 묘사만으로는 그냥 평범한 노점상들을 공격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사건 묘사의 이면에서 상당히 복잡한 종교 부패의 현장을 세세하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동시대인인 독자들 또한 이 당시의 부패현장을 대충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굳이 복잡하게 부연설명을 붙이지는 않은 듯 하다.

종교가 의식화되고 거대 조직으로 커지면 반드시 돈을 비롯한 이권이 결부되듯이, 당시의 예루살렘 대성전은 대제사장들과 유대교 고위층들의 돈밭이자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후기 유대교에 이르러서는 '정결함과 불결함'이라는 관념이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었는데, 이런 관념을 이용해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헤롯 성전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이 헤롯 성전은 유대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헤롯이 당시 웬만한 소도시 크기로(!!!) 규모가 대단하게 지은 건물이라 타 지역에도 유명한 관광 핫플레이스(...)였다. 그 안에 관광객, 성전에 제사하러 온 신도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일하는 수 천의 제사장들과 성전 제직들, 성전을 지키는 군인과 잡무 노예가 있었고 제물 태우는 연기에 겁에 질린 짐승들 우는 소리에 외부배출구에 쏟아지는 동물 피까지 상당히 어수선하고 요즘 교회 성당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의식이 하나의돈되는 산업이 되어버린 셈.[2]

유대인이라면 성인들은 모두 파스카, 즉,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대성전을 순례해야 했다. 이런 원칙 때문에,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대성전 일대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군중들이 오갔는데, 대사제장들과 유대교 고위층들은 환전상들 및 부패한 상인 등과 결탁해서 해외에서 순례를 하러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돈을 강제로 뜯어냈다.

우선, 고대 유대교의 관념상 바다는 죽음의 장소이고 불결한 곳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배를 타고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에게 "대성전에 들어가려면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당연히 대성전에서 예식을 치러야 하니, 사람들은 정결 의식을 해야만 했는데 이런 정결 의식을 치루는 수조시설이 예루살렘에 수천 개가 넘게 존재했다고 한다. 당연히, 사용료는 절대로 공짜가 아니었다.

게다가 사용하는 화폐도 문제가 되었다.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 당시의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당시의 로마 황제 초상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부정한 것이므로 반드시 정결해야 하는 성전 내부에서는 사용하면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래서 로마 황제의 초상이 없는 대성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 화폐를 만들어서 대성전에 참배를 하는 사람들에게 환전을 해 줬는데, 이 과정에서 말도 안 되게 부당한 환율을 적용하는 폭리를 취했다. 당시를 연구한 학자들의 분석으로는 무려 10배 이상 넘어가는 폭리는 기본이었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실제 환율상 1달러가 약 1,000원 정도인데, 1달러를 환전받는 데 10,000원 이상이나 내야 한다는 셈이다. 이것이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 것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일화에서 환전상이 언급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게다가 대성전에서 바치는 예물도 문제였다. 유대교의 의식에서는 희생제사가 중시되었으며, 희생제물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저 희생제물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정하는 것이 바로 제사장들이었다. 상인들과 결탁해서 부당한 이권을 챙기던 제사장들은 순례자들이 직접 희생제물을 준비해 오더라도 "흠이 있으니 바쳐서는 안 된다."라고 퇴짜를 놓아버렸고, 그렇게 되면 흠이 없는 희생제물을 다시 구해야하는 순례자는 어쩔 수 없이 성전에서 파는 희생제물용 가축을 그 10배 이상이나 폭리를 취한 전용화폐로 환전해서 매우 비싼 값을 주고 사야만 했다. 그러니까 위에서 말했듯 1달러에 1000원을 낼껄 10000원을 냈는데 희생 제물을 살려니 1000달러를 내라는 소리이며 이는 신자들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이 깨지는 일이었다. 이렇게 폭리를 취한 돈으로 사온 희생제물은 당연히 흠이 없다고 통과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신자들이 정성스레 준비해 온 제물에 비하면, 돈놀이에 미친 상인들이 대충 길러낸 제물은 당연히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작자들이 환전을 하고 장사를 하는 곳이 성전 바깥도 아니고, 엄연히 예루살렘 대성전의 일부였던 외국인들과 여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뜰이었다.[3] 당연하지만 장사판으로 전락해 버린 그곳에서 제대로 기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예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분노하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4] 너희들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채찍을 들고 종교적으로 부패한 무리들을 쫒아내버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3.2 예수는 어째서 채찍을 들었는가?

이 일화를 납득하기 어렵다거나 평화주의자가 저러면 쓰나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나, 사실 예수그 어느 죄악보다도 성직자의 부패를 가장 혹독하게 비판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예수는 사람에게 든 마귀를 쫓아낼 때도 욕을 하지 않고 반쯤 타이르듯 얼러서 내보낸 대인배이고, 최후의 만찬 이후 잡혀갈 때 빡쳐서 칼을 빼들려는 베드로에게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면서 제지하기도 한 평화주의자이지만[5], 위선부패에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6]

특히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실로 찰진 욕을 한 바가지씩 안겨준다.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예수 등장 전에 세례자 요한도 사용한 "독사의 자식들아!"가 있는데, 이건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일반적인(?) 패드립에 직업과 신념, 인생 전반을 부정하는, 욕설을 뛰어넘는 저주에 가까운 표현이다. 당장 성경창세기에서 이 어떤 이미지로 그려지는가 하는 점과[7],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이 이야기의 을 바로 사탄으로 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8] 당시엔 종교가 인생이자 인생이 종교였던 그들에게는 들으면 거품을 물고 기절할 만한 쌍욕을 한 셈이다. 그 외에도 회칠한 무덤[9]이라든가...

예수가 얼마나 종교의 위선과 부패를 큰 죄악으로 보았는지 알 만한 부분이다. 어찌 보면 예수가 상을 냅다 엎어버렸어야 할 만큼 당시 유대교의 상황이 답이 없는 막장이었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성전 정화 이후 예수가 자신의 죽음와 부활을 암시하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리하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리라"[10]라는 말씀이 나온다.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버린 한국의 목사와 개독[11], 그리고 이런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 구원을 장사하는 우행에 분노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의미가 큰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개독을 까는 사람들은 "아마 이 땅에 예수가 다시 오면 이것부터 재현하지 않겠느냐?"라면서 이 일화를 잘 언급한다.

4 또 다른 시각 : 예수전투력에 관하여

이건 뭐야
전투력 필요없이 초능력만으로 무쌍찍을 수 있다는 건 넘어가자
환전상과 상인이 아무리 대사제장과 유대교 고위층들의 비호 아래서 터무니없는 환전놀이를 하고 있었다지만, 환율이 비싸서 못 내겠다는 식으로 항의하는 순례자도 적지 않았을 것이며 이 때문에 분명 환전상은 자신들을 지켜주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손봐줄 힘쓰는 장정 여러 명을 대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볼 때, 기본적인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의 예수 혼자서 돈놀이꾼 마당을 때려 엎었다는 이야기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러한 점만 놓고 보면 예수가 홀로 환전상이랑 경호원을 상대로 무쌍난무를 펼쳤다는 이야기가 돼 버린다.

여기서 보면, 예수가 일반인들 사이에 흔히 알려진 호리호리하고 여린 꽃미남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실은 체력적으로도 우월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예수의 직업적 배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양부 요셉의 직업이 목수였고, 당시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게 일반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예수도 목수일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의 목수는 사실상 석수에 가까웠다고 본다. 왜냐하면 척박한 이스라엘에서는 쓸만한 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일반적으로 목수는 집 내외에 쓰이는 것들을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그들의 집의 주 재료는 돌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석수의 일을 같이했고, 목수의 일은 이스라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조각목[12]으로 소품을 만들거나 수입목으로 가구나 농기구 등을 만드는 일이었기에 많은 힘을 써야 했다. 즉, 이런 것도 아주 우스갯소리는 아닌 셈이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는 소나 말에 씌우는 멍에를 잘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멍에가 보통 크고 무거운 것이 아니므로 최소한 체력이 나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30세까지 목수 일을 도우면서 지냈다고 하는데, 이 목수 일이란게 지금으로 치면 노가다와 맞먹을 만큼 육체적으로 정말 고된 직업 중 하나였다. 게다가 석수의 일도 해야 했으니, 힘이 안 셀레야 안 셀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랍비라도 육체노동으로 나름의 가업을 이어가면서 가르치곤 했다고 하니, 아주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13] 예수 항목에 있는 예수의 실제 모습을 추정한 것을 보면 실제로 우락부락한 근육질이다.

그리고 요한 복음서의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채찍을 만들어 사용했다.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채찍은 비숙련자가 쓰다가는 누굴 때리긴 커녕 자기 몸이나 실컷 때리고 말기에 이 기록이 맞다면 예수는 채찍 좀 휘둘러 본 경험도 있을 만큼 싸움 실력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고대 사회에서는 파이터가 아니더라도 채찍 휘둘러 본 경험은 얼마든지 쌓을 수 있으므로[14] 말 그대로 노동의 경험에서 쌓은 실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니, 예수가 노동자였다는 기록은 성경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만, 싸움꾼이었다는 전승은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하면 채찍 실력도 노동에서 얻은 경험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고대 시대의 종교는 현대의 국가/종교 이상으로 상상하기 힘들만큼 초월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권력에 대항하는 것인 만큼 종교의 부패를 비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만큼 예수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자면 굳은 신념 + 강한 육체 + 분노 + 채찍 = 와장창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여담으로, 이런 식으로 매우 "건장(?)"하게 묘사 된 예수는 외국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미디어 밈이 되었다. 외국에서는 이 밈을 Buff Jesus(떡대 예수) 라고 일컫는다.

5 사건 이후의 이야기

이 사건 후에도 예수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당분간 성전에서 추종자들을 가르치게 된다. 그러나 성전 정화를 계기로 사두가이파(Saddoukaioi)[15]들과 논쟁이 붙게 된다.

여기서 사두가이들은 예수에게 "당신의 그 권한은 하늘에서 왔는가, 사람에게서 왔는가?", "부활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남편과 사별하고 재혼한 여자는 부활 후에 남편이 여러 명이 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게 옳은가?"라고 논쟁을 걸었고 예수는 각각 "내 질문에 대답하면 알려주겠다. 세례자 요한의 권한은 하늘에서 왔는가, 땅에서 왔는가?"[16], "부활하면 천사들과 같아져서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17]라고 대답하였다.

사두가이들이 예수에게 말빨에서 발렸다는 소식을 듣자, 그후에 바리사이파(Pharisaioi)[18]들이 예수를 찾아온다.

여기서 바리사이들은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였고, 여기서 예수는 "첫째는 이것이다.'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19], 둘째는 이것이다.'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20]이것보다 큰 계명은 없다."는 유명한 대답을 하게된다. 그리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광역디스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하늘 나라의 문을 닫아놓고는 사람들을 가로막아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못 들어가게 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받을 것이다. 너희는 과부들의 가산을 몽땅 삼켜버리는가 하면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를 길게 늘어놓는다. 이 때문에 너희는 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겨우 한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개종시킨 다음에는 그 사람을 너희보다 갑절이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고 있다."

"너희 같은 눈먼 인도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성전의 황금을 두고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 하니, 이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황금이냐? 아니면 그 황금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전이냐? 또 너희는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 하니, 이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아니면 그 제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이냐? 사실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한 맹세이고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한 맹세이며 또 하늘을 두고 한 맹세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두고 한 맹세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눈먼 인도자들아,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은 깨끗이 닦아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 이 눈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옳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자들의 기념비를 장식해 놓고는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는 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떠들어댄다. 이것은 너희가 예언자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 이 같은 자들아,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가 지옥의 형벌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십자가에 못 박고 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며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된 베레크야의 아들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서 흘린 모든 무죄한 피의 값이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3장 1~36절, 공동번역성서

 
그야말로 깨알 같은 장문의 디스글. 요약하자면..

1. 선행을 하는 척만 하며, 실제로는 말 뿐인 위선자 놈들!
2. 권력욕에 찌든 놈들!
3. 잘못된 가르침으로 제자들을 악하게 가르치는 놈들!
4.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실천 안하면서, 십일조는 꼬박꼬박 받아쳐먹으려 하는 놈들!
5. 하느님의 분노가 너희에게 뻗치리니, 천벌을 피할 수 없으리라!!

한국의 먹사들이 떠오른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를 '먹사예수쟁이'로 바꿔어서 읽어 보면 한국의 개신교를 비판하는 글로 보아도 딱히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다.

경전에 기록된 것으로도 깊은 빡침을 알 수 있지만, 그나마 순화해서 경전에 기록한 게 이 정도이다. 실제로는 더욱 강력하고 걸쭉한 욕들이 나왔을 것이다. 참고로 개역성경에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로 번역되어 있는데,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정말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21] 이는 또한 여기서 예수는 '가난한 과부를 등쳐먹는 놈들'이라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욕하는데,[22] 하필이면 잠시 후에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은화 두 개(당시 노동자들의 이틀 치 일당)를 넣는 것을 예수가 목격한다. 이 장면에 피꺼솟한 예수는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네놈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개독 먹사들 중 이 성경구절을 왜곡해서, "당장 굶어죽을 위기에 있더라도 헌금은 꼬박꼬박 바쳐야한다. 그래야 천국에 간다. 알겠냐?"고 왜곡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의 맥락을 보면, 과부의 믿음을 칭찬하는 말인 동시에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이 새끼들아!"라며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꾸짖는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가난한 과부의 그 마음은 신자들 입장에서 존경해야 마땅하지만, 그 존경을 이용해서 '그리스도가 가장 혐오하던' 부패한 위선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건 복음에 대한 왜곡이자 신성모독이다.

이러한 예수의 활동은 결국 당시의 부패한 종교 기득권 세력들의 광역 어그로를 불러일으키고, 이들은 예수를 형사고발하게 된다. 이후에는 다들 잘 아시다시피 예수이런 와장창 사태가 일어난 당시의 로마 총독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성난 군중들의 요구로 인해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뒤, 골고타의 언덕으로 끌려가서 머리에 가시관을 쓴 채 채찍을 맞으면서 온갖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사망한다.

그러나 이후 그의 11명의 제자와[23] 마리아 막달레나, 마르다를 비롯한 섬겼던 이들이 "부활한 예수를 봤다"고 하면서,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시작이 된다.

6 기타

 
세인트☆영맨에서는 예수가 잡상인들에게 질려서 의자 밑에 숨었다가 실수로 의자를 뒤엎어서 일어난 일이라 카더라.

피터 히스토리아에서도 이 장면이 나온다.

예수의 일생을 다룬 종교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묘사할 때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복음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채찍을 휘두르고[24], 상인들의 탁자를 뒤엎고 가축들의 우리를 부수는 액션신(...)이 나온다. 예외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1973년 영상판에서는 한술 더 떠서 불허가 의료행위및 마약 밀매, 스트립쇼에다 섹스 용품에 중기관총(?!)같은 무기까지 판매하는 막장으로 묘사한다. 당연히 예수(테드 닐리)는 이 꼴을 보고 현장을 뒤엎어 버리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폐허의 장면을 보면 도저히 혼자서 깽판친 수준이 아니다. 해당 영상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농민들의 구제 사업에 돈을 내놓지 않은 지주 베롤라[25]의 농장에 공산주의자 셋이 몰래 쳐들어가 30그루의 포도나무[26]를 망가트려놓고 '첫 번째 경고'라는 표지를 걸어놓는다. 이에 분노한 돈 까밀로 신부는 마을 읍장 겸 공산당 대표인 빼뽀네를 어르고 달래서 그 3명의 악당들을 찾아내, 30대의 매질과 '첫 번째 경고'라는 말을 안겨준다. 그렇게 2명을 해치웠는데 정작 마지막 악당이 바로 빼뽀네! 빼뽀네는 "이 빌어먹을 신부놈아, 어서 때려라!"라면서 웃통을 벗고 소리친다.

이에 놀라고 당황한 돈 까밀로는 때리는 것도 그만두고 교회로 돌아가 자신이 한 일을 모두 말하고, 예수님은 "나는 너에게 죄인을 단죄하라고 한 적이 없다!!"며 야단친다. 돈 까밀로는 "하느님께서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채찍으로 때려서 쫓아낸 예수님을 용서해 주셨듯이,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빌고, 예수님은 "당시 파시스트 행동대원 같았던 나의 행위를 굳이 말하지 말아라."라고 하신 후, "빼뽀네는 자신의 죄에 따른 벌을 받겠다고 했으니, 그를 행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죄다."라고 말씀하신다. 이후 돈 까밀로는 정비소에서 고개를 처박고 일하는 빼뽀네엉덩이에 30대의 매질을 가하고, 마무리 겸 "빌어먹을 신부"라고 부른 댓가로 엉덩이를 걷어찬다. 그렇게 응징을 끝낸 돈 까밀로는 이제 남은 건 하느님의 뜻에 달렸다면서 공산당원과 빼뽀네를 때린 몽둥이를 저 멀리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날 밤, 돈 까밀로는 자기가 집어던진 몽둥이가 땅에 떨어져 닿으면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펼쳐지면서, 황금빛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리는 꿈을 꾼다.

  1. 후술하겠지만, 이건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그냥 '개새끼들아!'와 같다.
  2. 기독교의 역사, 폴 존슨 저, 포이에마 출판 참조
  3. 예루살렘 대성전은 대성전 건물을 중심으로 사제장들만 들어갈수 있는 사제장의 뜰, 유대인 남성들이 들어갈수 있는 남자들의 뜰,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외국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인들과 외국인의 뜰로 나뉘어져 있다. 이런 제한은 엄격히 준수되었으며, 만약 외국인들이나 여인들이 남자들의 뜰이나 사제장의 뜰로 들어가려고 했다가 대성전 수비대에게 붙잡히면 그 자리에서 즉시 살해당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로마 총독도 이에 대해선 아무 간섭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4. 조금 더 정확한 번역은 "내 집(교회)은 이방인이 (하느님과) 중재된 곳이라 말할 곳"이다. 삼위일체를 따르지 않는 번역본은 '나의 아버지의 집을 더럽히지 말라!'라고 했다는 것으로 나온다.
  5. 자기를 붙잡으러 온 사람이 베드로의 칼에 귀를 잘리자, 그걸 다시 붙여주기까지 한다.(루카 복음서 22:57) 다만 필요하다면 폭력을 사용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리고 12사도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낼 때 돈주머니나 식량 자루나 신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족한 것이라도 있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그러나 지금은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가고 식량 자루도 가지고 가거라. 또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을 사 가지고 가거라(루카 복음서 22:35-36).' 다만, 그 뒤의 구절에 제자들이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고 하자 예수는 "족하다"라 한 걸 보면 폭력을 사용하란 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란 의미로 봐야 한다.
  6. 이는 당시 성직자(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들 등)들은 종교 지도자로서 우매한 대중들에게 하느님의 길과 뜻을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교만과 위선으로 점철되어 있었는데다,(마태 복음서 23: 27) 그 위선을 위해 율법을 쓸 데 없이 어렵게 만들어서 많은 백성들이 심적인 고통을 겪게 만들었고, 제사장들은 아예 그 검은 속내를 훤히 내다 보이고 아가리를 벌려서 돈을 쓸어담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에 근거한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구원의 기준을 쓸데없이 높게 잡아 많은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
  7.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잘 살던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안 죽고 눈만 밝아지니까 먹어봐~" 하고 바람을 넣어서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먹였으며, 이 때문에 둘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다. 요컨데 인류가 타락하게 된 원흉이자 이후 모든 인류가 짊어지게 된 원죄의 근원인 것. 여기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느님은 여자에게 출산의 고통, 남자에게 노동의 고통을 내리면서 뱀에게도 '너는 모든 가축들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평생을 배로 기어야 하고 너는 여자의 발꿈치를 다치게 하고 여자는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원수 지간이 되리라'는 저주를 내린다.
  8. 다른 한편 예수는 뱀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적도 있었다. "너희는 뱀처럼 지혜로워져야 한다." 이 구절은 '뱀이 가진 실속 있는 대응을 본받으라'는 취지로 종종 해석된다. 그러나 그 앞에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라는 조건을 달았으며, 무엇보다 이 비교 대상은 독사다.
  9.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속에는 썩어가는 뼈들이 그득하다는 의미. 사제와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정면으로 디스하는 구절.
  10. 요한 복음서 2장 19절
  11. 여의도의 모 교회는 아예 ARS 및 휴대폰 헌금에 경품까지 거는 짓을 했다. 예수가 오면 강대상부터 엎을 일이다.
  12. 사막 아카시아의 한 종류. 성경에 조각목 혹은 싯딤이라고도 표기된다.
  13. 사도 바오로만 해도 랍비 교육 외에도 천막 짜는 기술을 배운 바 있다.
  14. 농부, 마부 등 고대 사회에서 채찍을 사용해 본 경험을 쌓을 만한 직종은 널렸다.
  15. 유대교의 한 지파이며 상류 계급이다. 위의 성전 정화에서 폭리를 취하던 그 사람들(...)이다. 선교활동보다는 제의에만 관심을 가지며, 모세오경만을 특히 중시하였다. 부활, 영혼과 천사들의 존재도 부정하였다.
  16. 만약 사두가이들이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왜 요한이 왔을 때 믿지 않았냐?"는 예수의 반박에 걸리게 되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피꺼솟한 요한의 추종자들에게 사두가이들이 맞아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 때문에 사두가이들은 예수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17. 개신교 성경의 표현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란 표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가이사는 '카이사르'를 뜻하는데, 당시 로마 황제의 호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원은 물론 율리우스 카이사르.
  18. 유대교의 한 지파. 율법의 엄격한 해석과 실천을 강조했다. 영혼의 불멸, 악인에 대한 징벌, 선한 자에 대한 보상을 믿으며 평화를 지향하였으나, 대다수인 유대인들과 소수인 자신들을 구분하여 율법을 엄수하지 못하는 자들을 멸시하고 적대시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들의 사상(유대 율법만이 모든 것에 우선하며, 지키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보다 저열하다)은 현대 하레디가 잇고 있다.
  19. 신명기 6,5
  20. 레위기 19,18
  21. 참고로, 정확하게는 "독사의 새끼들아"가 아니라 "독사'들'의 새끼들아"이다. 게다가 이 표현은 현대 영어욕설인 son of bitch와 한국 욕인 개새끼와도 일맥상통한다. 번역자들은 이래저래 순화하려고 노력했지만 어쨌든 실상은 현대식으로 하자면 영락없이 '이 개새끼들아'다.
  22. 지금도 과부는 비교적 사회적 약자에 속하지만, 저 시절에는 과부는 진짜로 생계가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항상 가르치는 그 율법과 예언들(구약성경) 중 꽤 많은 부분에서 사회적 약자들(성경 본문에서는 보통 "고아와 과부"로 표현된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고 있다는걸 감안하면...
  23. 아시다시피 이스카리옷 유다는 배신했다.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이 선출된 사도가 '마티아'이다.
  24. '나사렛 예수'처럼 일부 영화에선 채찍 대신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한다.
  25. 이름 높은 지주로 이 사람이 돈을 내지 않겠다고 하자 다른 지주들도 베롤라에게 동참했고, 이미 돈을 내기로 한 지주들은 아쉬워했다.
  26. 당시 뽀 강 주변의 농민들에게 포도나무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포도나무가 잘리는 것보다 자기 발목이 잘리는 쪽을 택하리라는 묘사가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