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민족

바다 민족(Sea Peoples)

파일:Attachment/Sea People Invasion Routes.jpg
바다 민족의 침공 루트.

1 개요

암흑시대를 불러온 장본인들

'바다 민족'은 기원전 12세기경의 기록에 등장하여 당시로써는 대제국이었던 히타이트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집트를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뒤 사라진 수수께끼의 민족들이다. 그 참상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하면 된다. #

이들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이집트 쪽의 기록에 등장한다. 그들은 다민족의 연맹체였고 주로 배에 상륙하여 해안가를 약탈하는 방식으로 주변의 중동 국가들과 이집트에 타격을 입혔다. 이들의 이름은 레바논에 지금도 남아있는 오벨리스크에 기록되어있는데, 가령 루카(Lukka)라는 민족의 명칭이 등장한다. 연대 측정에 의하면 이 기록은 기원전 2000년에서 1700년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나온다.

그 뒤 루카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기원전 14세기에 이집트의 기록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들은 아멘호텝 3세가 지배하던 시기의 왕의 편지에서 등장하는데 용병으로 등장한다. 또한 루카인들은 이 시기에 이집트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100년 뒤인 13세기 람세스 2세의 재위 때 등장한다. 람세스 2세의 재위 2년차에 이들 민족의 하나인 세르덴인들이 델타 지역을 침공하였다가 격퇴당하는 사건이 생긴다. 이들은 나일 강을 통해 배를 타고 침략하였고 이집트의 기록에 의하면 이들의 용맹과 항해술은 바다에서 견줄 자가 없다고 하였다. 이들 중 몇몇은 람세스에게 생포당해 군대로 편입되어 히타이트 국경에 보내졌다.[1]

그 뒤 이들은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제국이 충돌한 카데시 전투 때 등장하여 델타 부분에서 직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는 람세스가 카데시 전투에서의 자신의 활약을 새긴 기록에 등장하는데, 이를 기록한 10개 정도의 석조가 지금도 남아있다. 이에 따르면 람세스에게 군대를 넷으로 나누라고 조언을 한 사람들이 바로 세르덴인들이라고 되어있다.

2 구성원

바다 민족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이들이 단일 민족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이집트인들은 에크웨시(Ekwesh), 테레시(Teresh), 루카(Luuka), 셰르덴(Sherden), 세켈레시(Shekelesh), 톄케르(Tjeker), 그리고 유일하게 동방(Levant) 지역에 영구히 정착한 부족인 펠레세트(Peleset)를 기록에 남겼는데, 에크웨시는 청동기 시대의 그리스인들의 명칭으로 아카이아인들이며, 테레시는 에트루리아인들의 조상인 티레니아인들을 칭한다. 루카는 에게 해의 아나톨리아인들을 칭하며(터키 남부 지방인 리시아, Lycia의 명칭으로 남아있다), 셰르덴은 사르디니아인들이고, 세켈레시는 시칠리아 섬에 살았던 시켈(Sicel)인들이었다. 펠레세트는 필리스티아(블레셋)인들을 칭하는 것이며 톄케르는 트로이인들을 칭하는 것으로 본다. 이렇게 구성 민족은 다양하다.

이렇게 구성원을 알기 어려운 이유는 이들과 만난 문명이 이집트와 아시리아 빼고는 다 전멸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들조차도 간신히 살아남은 경우로 이들은 바다 민족의 주요 침공 루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그 실상을 알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당연히 이 두 제국에서 남겨진 기록만으로 사태를 파악해야 하니 전체적인 윤곽을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 그나마 히타이트 등의 멸망당한 문명의 점토판이 발굴되면서 점차 정보량이 증가하고 있다. 참고로 이 점토판들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발견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다 민족들이 건물을 불태우는 와중에 잘 구워졌기 때문(...)이란 말이 나올 지경이다. 당대 기록은 대체로 그냥 날점토판 기록물인 걸 생각해보면 진짜로 잘 구워져서 보존되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2] 이때의 기록들을 보면 무기로 쓸 금속이 부족하니 신전의 성물과 제기를 몽땅 녹이라는 다급한 기록과, 동맹을 맺은 도시가 불타는데 자기 도시도 공격당하고 있어 원군을 보낼 수 없다는 기록 등으로 당시의 처절한 상황이 보여진다. 참고로 위 기록 중 원군을 보낼 수 없다는 기록은 채 보내지지도 못하고 작성된 도시의 폐허 유적에서 불에 그을린 채 발견되었다. 지못미.

위의 의도하지 않게 남겨진 점토 문서들의 정보량을 바탕으로 해서 현재는 어떤 단일 민족이 침공한 것이 아니라 다민족들의 연합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대이동해왔다고 추측하고 있다. 또한 고대 로마의 몰락을 불러온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에서 보듯이 처음에 이동을 시작한 민족은 침공과 이동을 거듭하면서 현지인을 흡수하고 혼혈이 탄생하여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름만 동일한 다른 구성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3 영향

한마디로 말해 지중해의 청동기 시대를 완전히 절단내고 철기시대로 들어가게 한 장본인들이다. 단, 문명 수준은 수백 년 전으로 후퇴[3]했으며, 엄청난 인명손실과 주요 도시들이 모두 파괴되고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천재지변이 일어난 듯한 모습을 남겨주었다. 스파르타가 위치한 펠로폰네스 지방은 거주민의 90%가 죽거나 달아나 무인지역이 되었을 지경.

바다 민족의 대이동이 끝난 직후 겨우겨우 살아남은 도시의 생존자들이 도시의 페허 위에 다시 거주지를 건설한 나라인 리디아를 포함해서 레반트 지역 등등에 간간히 남아있으나, 그마저도 하나같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유린당한 흔적만을 남겼고 이 나라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에 점령되면서 사라졌다.

또한 국가간의 무역도, 도시간의 무역도 완전히 끊어지고, 길마다 도적떼가 들끓었으므로 자연히 무역 활동도 없어졌으므로 문명을 복구하려는 노력 자체를 힘들게 만들었다. 게다가 무역로를 복구하려면 아직 바다를 지배하는 바다 민족부터 쓸어버려야 하니... 그래서 다시 해상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그리스에 폴리스가 다수 발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실 폴리스라는 도시문명이 발달하는 이유도 루트가 전멸하면서 살아남은 파편화된 도시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와중에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선문자 B를 포함한 문자 사용도 끊어져서 역사학적 의미 그대로의 진짜 암흑시대다. 남아있는 기록이란 게 호메로스의 서사시 정도 외에는 없다. 이것도 당대에 문자로 쓰여진 게 아니라 암송을 통해 구전된 것을 후대인 기원전 8세기에 호메로스가 기록한 것이다.

덕분에 지중해와 인접한 문명이 거의 괴멸 상태에 놓이면서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세력이 막강해지기 시작하였으며, 이 때문에 한때 이집트는 아시리아의 지배에 놓였고, 다시 독립하였으나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다시 식민지가 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4 반론

상당히 오랜 기간 이 문서에는 '바다 민족이 과연 지중해 청동기 문명을 멸망시킨 존재인가?' 또는 '그들이 단일한 하나의 민족인가?' 등의 질문에 대한 반론 자체가 달리지 않았다. 최근 네이버 캐스트의 히타이트 역사에서 해양 민족의 존재에 대한 트레버 브라이스의 반론이 추가되었으니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해양민족이 단일 민족이 아니라는 것과 청동기 문명의 멸망 원인이 아니라는 첫번째 근거는 이집트 측이 말하는 '해양 민족들'의 습격이 비단 이 시기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원전 16세기 람세스 2세 시기부터 해양 민족들의 습격이 빈번했으며, 하투실리 3세가 해양 민족에 대항하여 함대를 구축하기 시작하였고 수필루리우마 2세 때는 그러한 해적들과 싸워 이기기까지 했다.

두번째로 이 해적들은 '해양 민족들'이라고 단일하게 부를 수 없는 여러 지역 출신의 각기 다른 무리들이었다. 또한 '해양'이란 말이 암시하듯 섬이나 바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출신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킬라인들이 기원전 13세기부터 소빙하기로 인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동부 지중해 지역을 약탈해 히타이트의 식량 보급로를 위협했고, 아나톨리아 남서쪽 지역의 루카와 바다 건너 아히야와 사람들(미케네 멸망으로 떠나온 사람들이라 추측됨)도 해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루카의 해안은 기원전 21세기부터 해적들의 도피처였다는 이집트의 기록도 남아있다. 이들의 약탈 행위는 당시 전(全) 오리엔트적 현상이었고, 꼭 해안가에만 한정된 현상도 아니었다.

호주의 고대 근동사학자인 트레버 브라이스(Trevor Bryce)는 '해양 민족들'에 의한 지중해 청동기 문명의 멸망설을 반대한다. 그는 '민족이동'이라는 큰 틀의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들의 이동과 약탈 자체가 당시 후기 청동기 세계의 재앙을 가져온 결정적 원인이 아니라, 반대로 무너져가는 후기 청동기 시대 소빙하기로 인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으려는 결과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해양 민족'들이 청동기 시대를 마감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가뭄과 이미 저물어가던 청동기 시대의 영향을 받아 '민족대이동'을 하게 된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각지에서 흩어져 나온 해양 민족이라고 여겨지는 집단들은 터키가 아닌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팔레스타인 등 각기 다른 곳에 정착했다. 이는 기원전 3세기 "켈트족 대이동", 기원후 3세기 "게르만족 대이동", 8세기 "바이킹족 대이동"과도 유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1. 여담으로 이 기록은 소설 람세스에서 람세스 2세의 사르데냐인 친위대장 세라마나가 등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2. 점토 제품을 초벌구이한 테라코타만 봐도 단순 건조 과정만 거친 점토제품이나 생 점토보다 훨씬 보존성이 좋은 것을 알수 있다.
  3.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사이클롭스들이 건축한 성벽 운운하는 부분이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미케네 시대의 성벽 유적이 남아있으나 지들은 못 만들 수준이기 때문에 신화적 존재를 상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