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1 Troy

역대 트로이 유적과, 트로이 전쟁 당시의 트로이(troy VI)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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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온 혹은 일리오스(Ίλιον, Ilium)이라고도 불린다.[1]

트로이 전쟁의 무대로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었다.

라오메돈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라오메돈은 아폴로포세이돈의 힘을 빌어 트로이를 지었지만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아 재앙을 입었다. 이를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극복했으나 또 보상을 주지 않아서 열받은 헤라클레스가 병사를 조금 데리고 와 트로이를 박살내 버렸다.[2][3] 덕분에 이후 트로이까지 쳐들어간 아킬레우스외 다른 영웅들은 바보가 되어 버렸다.[4] 이때 유일하게 헤라클레스에게 보상을 주자고 주장한 프리아모스를 제외한 왕자 모두가 죽어 버렸고[5], 프리아모스는 겨우겨우 트로이를 재건했지만...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헬레네를 데려온 것으로 트로이는 또 멸망했다(…).

팔라스라는 트리톤의 딸이 있는데, 아테나의 실수로 그녀가 죽자 팔라디움이라는 수호상을 트로이에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수호상이 있음에도 두 번이나 털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멸망을 이끈 두 인물, 헤라클레스와 오디세우스는 아테나가 아끼던 영웅이었다.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를 발굴한 뒤 후속 연구에 따르면 몇 차례 파괴되어 몇 번이고 다시 재건되었다고 한다. 지진에 부서지고, 전쟁에 부서지고 말도 아니게 고생을 한 도시.

슐리만이 발굴했을 때는 크기가 너무 작았다. 혹자는 초등학교 교정 쯤 되는 크기라고 너레를 떨기도 했을 정도. 하지만 연구가 더 진행된 결과 슐리만이 발견한 유적은 그가 원하던 호메로스의 트로이보다 옛 유적이었고, 호메로스의 트로이는 슐리만이 찾아낸 것의 크기의 17배쯤 된다. 호메로스의 트로이는 약 20만 제곱미터로, 직사각형이라 치면 400×500미터 쯤 크기다. 물론 이것도 현대인들의 기준에선 좀 초라해보이긴 한다(...).

1.1 윌루사와 트로이

고대 히타이트의 기록에 등장하는 '윌루시야(Wilusija)' 혹은 '윌루사(Wilusa)'는 이 트로이로 비정되고 있다. 트로이가 있던 지역을 부르던 이름인 일리오스(Ilios)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이나 히타이트의 기록에 나타나는 윌루사의 위치가 실제로 트로이가 발굴된 지역과 일치한다고 생각된다는 점 등 때문이다. 일리오스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는 있지만, 호메로스의 서사시 제목부터가 '트로이아드'가 아닌 '일리아드'라는 것에서 보듯이 상당히 많이 사용된 이름이었다. 게다가 윌루사와 히타이트의 조약에서 나타나는 윌루사측의 신의 이름은 아팔리우나아폴론과 매우 유사하며, 윌루사의 왕의 이름은 알락산두로, 알렉산드로스[6]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히타이트와의 조약에서는 윌루사측의 또 다른 신으로 '땅 속을 흐르는 수로의 신'이 언급되었는데, 이 수로 역시 트로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는 점도 윌루사가 곧 트로이라는 주장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이다.

참고로 윌루사 측의 신인 아팔리우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아폴론은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 편을 든 신이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 입고 나온 파트로클로스의 눈을 멀게 해서 죽게 만든 것도 아폴론이며, 아폴론이 직접 아킬레우스를 활로 쏘아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7] 트로이의 성벽을 쌓아올린 것도 바로 아폴론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폴론이 트로이의 수호신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몇몇 히타이트 학자들은 트로이에서 사용한 언어는 히타이트에서도 많이 사용된 언어 중 하나인 루위어라고 주장해 왔다. 히타이트에서 많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종족과의 조약문은 당시의 외교 표준어였던 아카드어로 작성되었는데, 히타이트와 윌루사 사이의 조약문들은 아카드어가 아닌 루위어로 작성된 것을 보면 윌루사에서는 루위어를 사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트로이는 그리스가 아닌 히타이트를 중심으로 한 아나톨리아 문화권에 속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트로이 유적 자체에서는 문자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문서 보관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후대에 그리스인들이 신전을 세우면서 유적을 완전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트로이에서 사용한 언어에 대해서는 막연한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에서 문자 몇 개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발견된 숫자가 너무 적어서 발견된 것이 정말로 문자가 맞는지부터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트로이 유적에서 마침내 문자가 새겨진 인장이 발굴되어 대단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비록 인장 하나에 불과하지만 트로이에서 발견된 유일한 문자 기록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인장에 새겨진 것이 히타이트에서 널리 쓰이던 언어 중 하나인 루위어 특유의 상형문자였다. 이 때문에 트로이에서 사용된 언어가 루위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히타이트의 외교조약들을 보면 윌루사, 즉 트로이가 소아시아 서쪽 해안의 중심국가였던 것 같다. 그 지역의 원래의 중심국가는 아수와('아시아'라는 말의 어원으로 생각된다.)였으나, 히타이트의 왕인 투드할리야가 정벌한 이후 윌루사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히타이트의 외교문서에서 윌루사의 이름은 미케네가 멸망한 이후까지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의 전승과는 달리 트로이가 미케네와의 전쟁으로 멸망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는 트로이의 고고학적 발굴결과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8] 하지만 그리스의 침공 자체는 실제로 있었던 듯 한데, 이 무렵 히타이트의 궁정 문서들 중에서 아히야바(그리스를 가리키는 아카이아의 히타이트식 표기)의 왕이 소아시아 서쪽 해안은 자기들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내용이라든지, 아히야바 왕의 아우 아타리시야(그리스식 이름 아트레우스를 히타이트식으로 표기한 것)가 군사를 이끌고 소아시아 서쪽 해안을 노략질하고 돌아갔다던지, 윌루사의 왕이 도시를 버리고 피난을 갔다던지 하는 내용들이 발견된다. 특히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형제의 아버지 이름이 아트레우스라는 점이 이 문서와 일치하여 주목받고 있다.

1.2 슐리만과 트로이 발견의 진실

흔히 트로이의 발견 과정에 대해서 "일리아스는 신화적인 서사시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근세에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남자가 이 책을 읽고는 이것의 실존성을 밝히기 위해서 평생을 걸고 증명에 도전한 결과 트로이와 미케네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트로이 유적에서 대전쟁의 흔적이 발견되어 일리아스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서술된 작품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이야기는 사기다.

실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게 된 과정을 보면, 고고학자인 캘버트가 이미 터키의 히사를륵 언덕(Hisarlık Tepesi)[9]을 답사한 후 학술 저널에 그 곳이 트로이 유적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하고 후원자를 찾고 있었으며, 이 때 슐리만이 캘버트를 후원하겠다고 나서서 함께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게 된 것이었다. 슐리만도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하고 트로이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 때까지 슐리만이 주목한 곳은 그 때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알려진 부나르바시 지역이었으며[10] 슐리만이 히사를륵 지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캘버트의 말을 들은 후였다. 널리 알려진, 슐리만이 여러 지역을 답사한 끝에 히사를륵 지역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점찍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슐리만 본인이 퍼뜨린 것이다.

사실 슐리만은 유적 발굴 과정에서도 '트로이 함락의 극적인 상황에 맞추기 위해서' 유물이 발견된 위치를 조작하려다가 캘버트가 발굴 노트에 발견 위치를 기록했기 때문에 실패한 일도 있고, 트로이 발굴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서 유물을 사들인 후 자기가 발굴했다는 식으로 사기를 치다 들통난 일이 있었다.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해서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은 대단한 일이며, 트로이 발굴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사기꾼인 것도 틀림없다(…).

사진에서 분홍색이 우리가 흔히 아는 트로이(troy VI) 유적이다.

또한 흔히 알려진 이야기에서 트로이 유적에서 '대전쟁의 흔적을 발견했다'면서 일리아스가 실제 역사라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10년 동안이나 싸운 대전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언가 충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그 정도의 전쟁 흔적은 다른 유적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수준이며, 이 트로이 유적에서도 여러 층에서 발견된다. 덕분에 학자들은 어느 층의 전쟁이 '일리아스'의 모델인지를 놓고 지금까지 논쟁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그 중에서 슐리만이 점찍은 '대전쟁의 흔적'은 트로이 전쟁의 후보일 수 없다는 것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연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슐리만이 발굴한 것은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500년경)의 유적으로, 오늘날의 학자들은 호메로스가 묘사한 트로이는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200~1100년경)의 도시로 본다. 즉 슐리만이 트로이가 있었던 곳을 발굴한 것은 사실이지만 슐리만이 발견한 것은 호메로스의 트로이가 아닌 그 천몇백년 전의 유적이었던 것이다. 초기 청동기 시대나 후기 청동기 시대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기 청동기 시대에는 아직 도시국가들이 전쟁을 벌일 만한 사회구조에 도달하지 못했다. 더구나 연대상으로도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와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는 대략 선덕여왕 드라마가 방영된 21세기와 진짜 선덕여왕의 시대 정도의 차이가 난다.

또한 고고학에서 발굴을 할때 가장 윗층(현대에서 가장 가까운 층)을 1번층이라고 명명하고 내려갈 수록 층이 늘어나는데 비해, 그런거 없는 슐리만은 자신이 트로이라고 생각된 층을 1번층으로 지정해버렸다(…). 덕분에 가장 근대에 있는 층이 8번층이 되어버리고, 슐리만이 찾았던 트로이가 1번이였으나, 1번층 아래에 또다른 유적이 발견되면서 슐리만의 트로이는 2번층으로, 최상위층이 9번층이 되는 문제가 생겨나서 여러 고고학자들을 빡치게 만들었다.

더욱 난감한 점은, 슐리만은 '트로이' 발굴을 위해서 그 위층에 있는 유적들을 파괴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고대 그리스 고전시대의 성벽이라고 생각하고 파괴한 것이 바로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의 성벽이었다.(…) 그나마 그 아래층의 유적과 겹치는 곳 일부만 부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물론 슐리만과 캘버트가 해당 유적을 호메로스의 트로이라고 단정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트로이 유적에는 고대의 4개 시대의 유적이 중첩되어 있다. 가장 위층은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이며, 그 아래층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건설된 도시이고, 그 아래의 유적층이 바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이며, 가장 아래층이 초기 청동기 시대의,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이다. 물론 각각의 시대 역시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전쟁이나 해일 등으로 인한 여러 파괴의 흔적이 있다. 이들 여러 파괴의 흔적들 가운데 후기 청동기 시대에 속하는 것 중 하나가 트로이 전쟁의 흔적일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11] 그런데 슐리만은 이 중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의 도시 아래쪽에 있는 도시를 포함한 층, 즉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를 포함한 층을 시대 순서로 미루어 고대 그리스 고전시대의 유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아래층이 일리아스의 트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슐리만이 미케네를 발굴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스 역사학자들이 미케네의 사자문을 발견해서 복원한지 30년 이상 지난 후의 일이었다. 미케네 발굴에 많은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그가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아니다. 트로이와 달리 미케네는 그 위치가 잊혀진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누가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2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Troy

트로이(영화) 항목 참조.

3 스타크래프트 맵

트로이(스타크래프트) 항목 참조.

4 인명

동명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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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y

4.1 실존인물

4.2 가상인물

4.2.1 세인츠 로우의 등장인물

1에서는 3번가 세인츠의 간부였으며, 2에서는 갱 생활을 청산(?)하고 스틸워터시의 신임 경찰청장으로 부임하게된다. 사실 그 정체는 비밀경찰. 1인자 쥴리어스와 손을 잡고 갱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경찰이 심어놓은 세작이었다. 1에서의 공으로 2에선 경찰서장이 된 것. 근데 아무리 비밀임무였다지만 갱단에 들어있었기에 좋게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또 얼터 코퍼레이션의 입김때문에 본인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분명 주인공 입장에선 배신자인데 희한하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경찰서장이 됐다는 쟈니의 말에 'ㅎㅎ 언제 인사 한번 가야겠네?' 하고 농담때릴 정도[12]. 사실 1편 마지막에 보트 폭파도 계획은 줄리어스가 짠 것이었고[13] 이후에 트로이는 자신의 과거 동료들을 체포하는걸 꺼려하는등 경찰이지만 은근히 세인츠에 정이 붙은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도 모른다...만 대사를 듣다보면 아주 원한을 버린건 아닌것 같다.

2에서는 교도소 지역의 파이트클럽 미니미션을 완수하면 동료로 삼을 수 있다(!).

3에선 "이번엔 트로이도 무마시킬수 없을 거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볼때 세인츠의 뒤를 봐주는 것으로 보인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듯.

4편에선 등장하진 않았지만 지구가 글자 그대로 가루가 되었으니 아마도 사망했을 듯.

Gat Out of Hell에서는 고통사기 미션(...)[14]에서 등장. 모델은 덱스와 토비어스 그리고 루즈처럼 지옥의 일반시민을 돌려썼다.

5 미국의 무기업체 TROY 社

회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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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회사를 대표하는 소총중 하나인 M7A1.

정식명칭은 TROY DEFENCE.트로이 방어가 아니다 미국의 많은 중소 무기업체 중 하나다.

대표작으로는 M7A1, 7.62mm탄을 사용하는 762 PDW 등이 있다. SHOTshow에도 종종 참여한다.
  1.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다. 트로이인의 수호신은 아폴론이었으며, 그는 태양의 신이었다.
  2. 이때 포세이돈도 합세했다고 한다.
  3. 이건 헤라클레스가 워낙에 넘사벽이었던 탓도 있다. 티탄도 혼자서 잡는 놈에게 고작 인간이 대수겠는가.(…)
  4. 물론 포세이돈이 합세했다는 점과 이 시기의 트로이에는 대영웅 헥토르가 없었다는 큰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5. 이윤기 작 뮈토스에 따르면 원래 헤라클라스에게 주기로 한 공주에게 왕자들 중 한 명만을 살려주겠다고 고르라고 하자 고른 왕자가 프리아모스라고 한다.
  6.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알렉산드로스 파리스. 파리스라는 이름이 훨씬 유명하다.
  7. 유명한 '파리스의 독화살' 이야기와는 다른 계통의 이야기이다. 어차피 어느 쪽이건 일리아스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8. 일리아스에서도 트로이가 이번 전쟁에서는 멸망하지만 아이네이아스에 의해 다시 재건될 것이라는 포세이돈의 예언이 나온다.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를 떠나 이탈리아로 간다는 이야기는 로마인들이 자기들 멋대로 믿고 있던 이야기인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덕분에 이게 정설처럼 오해받아 버렸다.
  9. 여담이지만, 이 지명은 터키어로 '성채를 세울만한 언덕'이란 뜻이다. 유적지의 설명에 의하면 이미 발굴전에도 이곳에 성이 있었다는 구전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있었다고 한다.
  10. 즉 슐리만 혼자만이 어릴 때의 꿈을 간직하고 트로이를 찾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사실과 다르다. 캘버트와 슐리만 이외에도 트로이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11. 도시 전체가 큰 화재에 휩쓸린 흔적이 있고, 도시 곳곳에서 그리스제 화살촉과 창날 등 무기가 흩어진 모습이 발견되는 등, 다른 파괴의 흔적과는 달리 전쟁에 의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12. 근데 정작 쟈니는 트로이를 죽이려다가 잡혀서 사형당할뻔 했다.
  13. 트로이는 주인공과 쟈니가 세인츠를 해체하고 체포하는 정도로만 계획했었지, 그렇게 나갈줄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놀랐다고.
  14. 전편들의 자해공갈에 해당하는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