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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 밴드 DAY6의 멤버에 대해서는 성진(DAY6)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No. 7 | |
박성진 | |
생년월일 | 1986년 7월 9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부산광역시 |
출신학교 | 가야고 - 중앙대학교 |
포지션 | 가드 |
신체사이즈 | 182Cm, 75Kg |
프로입단 | 2009년 드래프트 1번 (전자랜드) |
소속팀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09~ ) |
2009~2010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 |||||
하승진(전주 KCC 이지스) | → | 박성진(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 → | 박찬희(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소속의 농구 선수.
김해가야고 시절 천재 가드로 명성을 날리며, 그 해 고교 랭킹 1위의 가드로 평가받았다. 슛이면, 슛, 경기 조율이면 경기 조율 모두 높은 평가를 받으며, 갓 생긴 신생 가야고를 일약 경남지역의 강호로 만들었다. 특히 높은 득점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청소년 대표로 아시아선수권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경력까지 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중앙대학교에 입학해서 1학년부터 준주전 자리를 차지하더니, 2학년부터는 본격적인 주전이 되어 맹활약했다. 2009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일찍부터 1순위 후보로 지명되었다. 다만, 2009년 드래프트는 혼혈 선수 드래프트까지 겹치기도 했고, 자원 풀이 넓지 않아서 쉬어가는 해라는 평도 받았지만, 어쨌거나 1순위 확보. 이 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의해 지명되었다. 중앙대의 52연승 행진에 일익을 담당한 것도 분명하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프로 데뷔 첫 해 성적은 평균 8.0득점에 3.6 어시스트로 평범한 편. 신인상은 오히려 평균 10.1득점을 올린 허일영이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워낙 오리온스가 막장이라서 허일영이 별 주목을 못 받은 관계로 박성진이 무난하게 신인상을 탈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시즌 막바지 동부전에서 13득점 10어시스트로 더블-더블을 기록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득표율이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
하지만 2010-11 시즌에는 제대로 망했다. 조율은 조율대로 되지 않고, 경기 운영은 경기 운영대로, 슛은 슛대로 다 엉망이 되며 시즌을 제대로 망쳤다. 더 문제는 자기가 망했는데 팀은 베테랑 신기성의 가세로 가드진 공백을 최소화시키면서 정규시즌 2위를 찍었다는 것. 결국 좁아진 입지 때문인지 2010-11 시즌을 마치고 바로 국군체육부대로 입대했다. 12-13시즌 복귀후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고있지만 실력은 여전히 기대에 못미치고있다. 게다가 벤슨 트레이드 당시 로드 벤슨과 박성진을 교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유도훈감독이 거부했다는 말이 돌면서 같이 까였다. 거기다가 박성진의 자리를 위해 이현민은 냉정하게도 오리온스로 트레이드 하면서 더 까였다.
덕분에 프로에서 별명은 박봉사(...). 잠재성과 한계를 모두 가지고 있는 가드. 그리고 상대적으로 팀이 버린 이현민이 예상대로 반쪽짜리 선수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비판도 덜게 되었다.
군 전역이후에는 좁은 시야, 2대2 플레이 부족, 불안한 볼핸들링등 영아닌 기량을 보이면서 전자랜드팬의 까임 1순위가 되었고, FA때도 나갔으면 좋을 선수 1위로 꼽혔지만 결국 3년 재계약으로 잔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