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법조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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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사건 전문으로 유명한 변호사.

완도군 노화읍 출신으로, 노화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했다. 즉, 고졸 출신 변호사. 故 노무현 변호사 이후로 유명 변호사 중에서는 아마 유일무이한 사례일 듯.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착실했으나 가정의 불행으로 고등학교 시절엔 문제아였다고 한다. 가출하고 돈을 벌던 참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만은 따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음을 잡아 가까스로 대학에도 진학한다. 이후 사법시험 준비를 하게되는데, 그 계기가 자기보다 잘난 것도 없던 친구들이 "행세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인생 역전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의 모습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한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35기를 수료한 후 수원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는데,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국선변호인으로서 변호하게 된다. 처음에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리고 변호사 일에 도움이 될까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수원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재심을 이끌어 낸 후 재심 전문 변호사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의 장경욱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했으며 이로 인해 국정원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재심 사건을 많이 맡게 되면서 수입이 줄어들어 이미 사무실 직원도 다 내보내고, 이후에는 직원도 없이 혼자 일하는 사무실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들이 수없이 쌓인다고 한다. [인터뷰] 재심이 필요한 힘 없는 돈 없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며 누명을 썼고 그래서 박 변호사에게 줄 돈이 없다. 반면 확정 판결 난 사건을 다시 재판해달라고 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준비가 필요[1]하여 다른 영리활동과 병행하기란 불가능하다. 변호사들이 자조 반 농담 반으로 하는 말 중에 "무죄 변론해 달라는 사건이 자꾸만 들어오는 것은 그 사무실이 망할 조짐"이라는 것이 있는데(...) 보도대로라면 딱 그 격언대로인 셈이다.

결국 2016년 8월에 사실상 파산을 선언하였다. 이젠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어 사무실도 정리하였다고. 박 변호사는 고민 끝에 함께하는 박상규 기자에게 요청하여 스토리펀딩을 열었다. 관심 있는 위키러라면 꼭 읽어보자. 한겨레의 정치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서 한 말에 따르면, 1억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의 만기 연장이 안되서(...) 스토리펀딩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안습.[2] 만기 연장만 되었어도 계속 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파산 전문 변호사가 아니고 파산'한' 변호사이다

다행히 스토리펀딩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호응하여 주었다고 한다.[‘망한’ 변호사에서 ‘희망’ 변호사로] 여담이지만 기사에는 3억원 달성으로 되어 있으나 펀드 마감 4주 전인 10월15일 기준 4억 5천만원이 넘어갔다.

2 대표 사건

이 사건에서 누명을 쓴 청소년들을 변호하여 무고한 이들을 범인으로 잡았다는 것을 밝혔다.
이 사건에서는 경찰이 무고한 청소년을 범인으로 만들고 실제 진범이 잡히자 진범을 풀어주고 무고하게 잡은 청소년을 끝까지 범인으로 만든 정황을 밝히며 이슈화하였다. [다음 스토리펀딩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 편]
  •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재심결정
이후 존속살해 혐의가 최종 확정되었던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사건의 재심을 이끌어냈다.[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 편]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과 비슷한 사건. 누명을 쓴 3명의 소년을 변호하고 있다. 재심이 개시되었고,[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 편] 결국 1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

3 기타 사항

박준영 변호사가 변론을 한 해당 사건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의문점과 누명의 가능성을 파헤친 적이 있다.


일본 사법용어인 엔자이에 해당하는 한국 사례의 사건 변호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 엔자이 항목에서 한국 사례에 나온 사건 다수와 연관되어 있다.
  1. 증인을 30초 접견하기 위해 지방까지 내려간다
  2. 그래서 스토리펀딩 목표액도 1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