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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희상(朴喜相) |
생년월일 | 1972년 8월 1일 |
출신지 | 인천광역시 |
출신학교 | 인하사대부고 - 인하대 |
포지션 | 레프트 |
신체 | 189cm |
소속팀 | 대한항공 (1994~2004) |
지도자 | 인하대학교 코치 (2005~2007) 우리캐피탈 드림식스 코치 (2008~2010) 우리캐피탈 드림식스 감독 (2010~2012) 현대캐피탈 수석코치 (2013~2015) 대한민국 U-23 국가대표팀 코치 (2015) |
해설위원 | MBC SPORTS+ (2012~2013) KBS N 스포츠 (2015~) |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및 감독. 現 KBS N 스포츠의 배구 해설위원. 1972년 8월 1일 생.
2 선수 시절
인하사대부고와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대한항공에 입단했다. 189cm로 배구 선수로는 상당히 작은 키였지만 뛰어난 점프력과 다양한 기술로 대한항공의 라이트를 책임졌으며, "배구 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런 그의 활약으로 대한항공은 1986년에 재창단한 후 처음으로 1999년 슈퍼리그 결승전에 올라왔으나 당시 김세진-신진식의 쌍포를 앞세운 삼성화재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그 때나 지금이나 대한항공은 콩라인
그러나 국제 대회에서는 오히려 경쟁자였던 신진식보다 더 중용되었다. 특히 국가대표팀 세터였던 신영철의 낮고 빠른 토스를 정확하게 때려 1994년 세계 배구 선수권대회 8강에 큰 공을 세웠고, 자신은 월드리그 최우수 수비상을 수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무에서 복무하던 도중 2000년 전국체전 때 당한 어깨 부상으로 부진의 늪에 빠진 끝에, 2004년 시즌 후 대한항공에서 사실상 강제 은퇴하고 만다.[1] 여러 모로 대한항공의 원 클럽맨으로 남은 김종민과 대조된다.안습
3 은퇴 이후
이후에는 모교인 인하대학교 배구부 코치로 일하다가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며 배구계를 잠시 떠났다. 2008년에 우리캐피탈 드림식스의 코치에 부임했고, 2009-2010 시즌 후 김남성 감독이 사임한 후 감독 대행이 되었다가 2011년에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너무 강압적인 작전 타임 및 훈련으로 선수들의 반발을 사서, 2012년 여름에 열린 코보컵 대회 도중 선수단 보이콧 사태를 겪은 후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후임 감독으로는 당시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었던 김호철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3년 뒤 도로공사에 그와 행보가 비슷한 감독이 나타나는데...
그 후 엠스플의 배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어 1시즌 동안 해설가로 활동한 그는 2013년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복귀한 김호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현대캐피탈의 수석코치로 영입되었다.돌고 도는 배구판 하지만 2015년 3월 김호철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수석코치에서 물러났다.
현대캐피탈을 떠난 후에는 인하대 - 대한항공 시절 선배인 최천식 인하대학교 배구부 감독이 이끄는 U-23 광주 유니버시아드 배구대표팀의 코치로 합류하였다.
유니버시아드 이후 해설가로 복귀하여, 2015-2016 시즌부터 KBS N 스포츠의 배구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