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배구)

V-리그 남자부 감독
김세진
(OK저축은행)
80px최태웅
(현대캐피탈)
신진식
(삼성화재)
박기원
(대한항공)
공석
(한국전력)
50px공석
(KB손해보험)
김상우
(우리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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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감독
신영철(申英哲)
생년월일1964년 3월 14일
출신지경상북도 울진군
출신학교경북사대부고 - 경기대
포지션세터
신체사이즈신장 178cm, 체중 75kg
소속팀한국전력 (1988~1996)
상무 (군복무) (1990~1992)
삼성화재 (1996~1999)
지도자삼성화재 코치 (1999~2004)
LG화재-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감독 (2004~2007)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7)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코치 (2009~2010)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감독[1] (2010~2013)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감독 (2013~)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KB손해보험 스타즈 역대 감독
노진수
(2001~2004)
신영철
(2004~2007)
박기원
(2007~2010)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역대 감독
신춘삼
(2011~2013)
신영철
(2013~)

1 소개

대한민국배구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터였으머, 별명은 컴퓨터 세터. 선수 시절에는 김호철과 더불어 명 세터로 잘 알려졌다.

2 선수 시절

대한민국 남자 배구의 리즈 시절김호철, 강만수 다음 세대인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남자 배구의 지휘봉을 잡았던 세터다. 플레이 스타일은 극한의 지략 싸움과 변칙, 기교를 중시하는 타입으로 장신 공격수의 호쾌한 오픈 공격보다 손동작을 이용해 블로킹을 따돌리는 짧고 낮고 빠른 토스로 스피드와 맞춰잡기에 능한 변칙 공격수의 활용을 극대화해 게임을 운영했다. 현역 시절에 상무를 슈퍼리그 우승으로 이끌 때 이재필, 노진수, 오욱환, 김동천, 유병종 등 평균 신장 190cm이 안 되는 단신 군단을 이 테크닉과 조직력으로 이끌었고, 국가대표팀에서는 박희상이재필 등 단신 공격수의 활용에 매우 능했다. 그래서 신장이 작은 팀이라도 그의 스타일에서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1994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8강[2], 1995년 월드리그 6강 진출 때 주전 세터로 활약할 만큼 국제대회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던 세터였지만, 국내에서의 사정 때문에 발목이 잡힌 케이스.

경기대 졸업반 때 터진 스카우트 파동 때문에 럭키금성, 현대자동차서비스, 고려증권 다 못 가고 만년 하위 팀인 한국전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신영철의 입단으로 한국전력은 만년 하위 팀에서 조금 더 좋은 팀이 되었으며, 그가 군 복무를 위해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1992년에는 상무 배구단 역사상 유일한 슈퍼리그 우승을 했을 때 그 핵심 멤버였다.

그러나 그 때를 제외한 커리어 내내 국내에서 신영철은 그야말로 안습의 꼴찌 팀을 홀로 이끄는 존재였다. 돌격대의 4번 타자 김기태처럼

한국전력의 코치로 일했을 때부터 신영철과 인연을 맺었던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부임하면서 그를 플레잉 코치 형식으로 영입하는 방법으로 한국전력에서 신영철을 빼오고 1998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만, 이미 그 때 30대 중반의 나이에 무릎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신영철은 팀의 우승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고[3] 1998-1999 시즌이 끝난 후 공식적으로 코치가 되어 신치용 감독을 보좌하게 된다.

3 지도자 생활

3.1 LG화재~LIG손해보험 시절

5년 간 수석코치에서 머물렀지만 신치용 감독이 삼성화재 감독으로 건재한 이상 감독 기회는 오지 않았고, 2004 시즌 중 노진수 감독이 사임한 LG화재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감독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LG화재의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당시 지역 순회 대회였던 2005년에는 하현용 등 선수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4] 6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때 선수를 걷어 찬 것 때문에, 배갤에서는 신영철을 싸커로 부른다.[5] 그럼에도 당시 어수선했던 대한항공을 밀어내고 자력으로 3강 PO에 진출했지만, 이듬해 다시 성적이 좋지 않아 결국 계약 기간을 1년 남긴 상태에서 3강 PO 탈락을 이유로 2007년 3월 22일 LIG손해보험에서 해임됐다.

3.2 대한항공 시절

이후 월드리그를 대비하여 남자배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은 것 외에는 2년 간 현장을 떠나 야인으로 지냈다. 2009년대한항공의 세터 전담 인스트럭터로 현장에 복귀했고, 이후 대한항공의 정식 코치가 되었다. 2010년에는 진준택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을 맡았고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여 시즌 중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10-2011 시즌에는 팀의 창단 첫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에 스윕을 당해 준우승에 머물렀다.4년 후 신치용도 이런 일을 겪는다 2011-2012 시즌 역시 정규 리그 2위를 기록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지만, 역시 패배.

그리고 맞은 2012-2013 시즌. 사실상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그 부담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시즌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4위로 내려가자 총감독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해임됐다. 그를 대신하여 김종민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한 후, 대한항공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3.3 한국전력 시절

2013년 4월 2일, 친정 팀인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7년 만의 친정 팀 복귀. 이로써 2012-2013 시즌 대한항공에서 해임된 지 3개월 만에 다시 프로 무대에 선다. LIG손해보험대한항공을 거쳐 3번째로 감독직을 맡게 됐다.

그러나 2014년 12월 말 단행한 서재덕 - 권영민, 박주형 임대 트레이드를 규정 위반으로 주도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됨에 따라 소속 팀의 최근 부진과 맞물려 시즌 중 경질이 유력해졌다. 이전부터 폭행 추문으로 사임했던 전과가 있었던지라 문제시됐었는데, 한국전력의 부진과 함께 규정위반 사태가 터짐으로써 구단은 물론 KOVO 등에 엄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길어도 2014-2015 시즌 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트레이드 철회 사건 후 한국전력9연승을 하는 등 팀이 잘 나가면서 3위까지 찍었다. 그리고 2015년 2월 26일 대한항공과의 홈 경기에서 3-1로 승리하여 봄 배구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OK저축은행에게 스윕[6]을 당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시즌 후 한국전력을 플레이오프까지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2015-2016 시즌에는 전광인, 서재덕 혹사 논란과 후인정, 방신봉의 의존도가 높은 센터진에 대한 대안 부재를 이유로 남자부에서 거하게 까이고 있다. 그제서야 리빌딩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느꼈는지, 결국 대한항공과 트레이드를 단행해 지명권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최석기전진용을 맞바꿨다. 동시에 이 트레이드 때 답이 없었던 세터진도 보강하기 위해 강민웅도 영입하면서 로스터에 자리가 없게 된 후인정을 현역 은퇴 공시하고 트레이너로 전환시켰다. 조만간 권준형이 군에 입대해야 하니.....

2016년 2월 13일 수원 OK전에서 2세트 도중 송명근의 공격 인/아웃 판정 항의+시몬의 포지션 폴트 항의를 이유로 리그 두번째이자 남자부 최초의 완전 퇴장 처분[7]을 받았다. 이운임 댁이나 퇴장하시지? 맡으면 논란 투성이인데? 동시에 벌금 50만원과 2경기 출장 정지가 나왔으나, KOVO에서 후속 징계가 없다고 정정해 다음 경기 출전은 가능해졌다. 사실상 KOVO에서 잘못을 인정한 셈. 이게 왜 논란이었는지는 2세트, 20대 22 시점 포지션 폴트를 참고하자. 이후 경기는 김철수[8] 수석코치가 이끌었다. 다행이 경기는 3:1로 이겼다. 이후 여러 기사에서 심판과 감독관을 대놓고 깠다.

2015-2016 시즌 후 우동예 배구 12편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선수 출신 멤버인 양학진을 이용한 속공 토스를 보고 왜 권준형강민웅을 야무지게 조지는 지 알 수 있었다는 평. 착한 빡침이라 카더라 팼다간 지 배구 인생은 선배인 공정배 단장도 책임 못 지니까

2016 청주 코보컵에서 한국전력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비록 컵대회지만, 준 프로화 선언 이후 한전의 첫 대회 우승. 개인적으로는 코보컵에서 대한항공의 우승을 맛본 이후 2번째 코보컵 우승이다.

4 그 외

현재 현역 배구 감독들 중 보기 드물게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동명이인의 前 SK 와이번스 야구단 사장도 박사 학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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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독 대행 포함.
  2.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축구의 FIFA 월드컵과 비교할 수 있는 최고 권위의 국제대회지만 대한민국은 줄곧 경기 날짜가 아시안 게임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병역 면제와 함께 종합대회 우선인 정책에 밀려 세계선수권에 제대로 팀을 구성해 나간 적이 별로 없다. 그것 때문에 국제배구연맹(FIVB)에서 1년간 국제대회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가 간신히 철회한 적도 있다. 그런 팀으로 이끌어 낸 8강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있는 성적임에도 이 성과는 배구계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1978년 4강 이후 세계선수권 최고의 성적이다.
  3. 1998년의 삼성화재는 나쁘게 말하면 용병급 실력자 김세진, 신진식 2명의 뻥배구로 우승하다시피 했다. 위에 서술하듯 신영철의 강점은 낮고 빠른 토스를 앞세운 스피드와 변칙형 배구지만 이는 삼성화재에 맞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하필 상대 팀 현대자동차가 그 해만큼은 장신 블로커들 천지여서 수도 없이 김세진, 신진식이 낮은 토스 때문에 블로킹의 제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승했으니 두 선수가 얼마나 압도적인 실력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4. 문용관 당시 대한항공 감독도 똑같은 시기에 폭행 사실이 드러나 3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당한 일이 있다.
  5. 이 때 내부 고발을 했던 이동훈, 황원식, 김종일은 얼마 안 지나 팀에서 쫓겨나다시피하며 상무에 입대했다.
  6. 진짜 서러운건 시리즈 0-2 스윕이긴 했지만, 모두 2-3패라는 것. 1차전 1세트(포스트 시즌 한정 한 세트 최다 득점 기록 경신), 2차전 3세트(엄청 앞서다가 역전을 당했다.)의 패전이 정말 곱씹을수록 한스러울 정도.
  7. 리그+여자부 최초로는 2007-2008 시즌 챔결 4차전에서 황현주 감독이 기록했다.
  8. 한일합섬-KT&G에서 뛰었던 김남순 선수의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