案內孃
1 개요
서비스업에서 손님을 안내하는 젊은 여성을 말한다. 고객 서비스 직업의 일종이다.
2 버스 안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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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안내양 하면 버스에서 여차장[1]을 가리키는 말이다.[2] 참고로 남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61년 6월 17일 교통부장관이 여차장제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버스 안내양의 역할은 버스에서 승객에게 하차지를 안내하고 버스 요금을 받으며 출입문을 열고 닫는 역할이었다.
정류장에 가까워 오면 항상 "다음 정류장은 OOO입니다. 내리실 분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하고, 출발하기 전엔 버스 옆 차체를 탕탕 두드리며 "오라이~"(←オーライ; all right)라고 외쳤다.
50대 분들이 흔히 추억하는 '학창시절 매달려타고 다니던 만원버스'에 학생들을 밀어넣고 출입문에 매달려 다니다 사고가 나곤 했다.
1980년대 말까지도 존재했던 직업이다. 1982년 "시민자율버스" 운행제의 실시와 더불어 정류장 자동 안내방송과 하차 벨(콜부저), 자동문 등의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안내양은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고, 1989년 12월 30일자로 자동차운수사업법 제33조의 6항의 "대통령령이 정하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는 교통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안내원을 승무하게 하여야 한다"는 법 조문이 삭제되면서 1990년부터 모든 지역에서 안내양 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렇게 안내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2006년 초에 충청남도 태안군의 농어촌버스에 안내양을 부활시켜서 주민과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3], 2010년에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안내양을 부활시킨 ‘행복버스’를 도입했다. 지금은 이전과는 업무가 바뀌어서 주로 노령 승객이나 짐을 많이 든 승객을 보조하는 개념. 그 밖에 교통 지원 자원봉사자를 쓰기도 한다.
구로다 가쓰히로는 박봉으로 시달리는 한국적인 직업이라고 혐한적으로 신나게 이 직업을 까댄 바 있다. 하지만 저 주장이 자폭인게, 일본도 19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는 버스걸(バスガール)이라고 해서 안내양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1950년대 일본 안내양 복장)[4]
이런 폄하는 젖혀두고, 사실 196~70년대 안내양은 여러모로 애환이 서린 직업이다. 이 시절 일반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길이라곤 극소수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하면 안내양, 식모, 여공 재봉틀 돌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정도가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국졸 정도의 저학력으로도 가능하며, 돈 말고도 숙식이 별도로 제공된다.[5] 이 때문에 가족의 생활비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꽃다운 아가씨들이 박봉과 빡센 노동시간에 시달리면서도 불만없이 묵묵히 일에 매달렸다.
버스 요금을 받으며 현금을 직접 징수하다 보니 계산이 안 맞으면 돈을 훔쳤거나 횡령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쓰기 쉬웠고 이 때문에 (주로 남자였던) 버스회사 사장에게 알몸수색조차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손님에게 성추행당해도 누구에게도 하소연 못하는 정도는 그냥 일상이었다고.
외국에도 안내양이나 버스차장 같은 직업이 존재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가령 터키의 경우 웬만한 시내버스나 시외버스에 차장이 딸려있는데, 물론 여성이 험한일 하기 꺼리는 사회분위기상 차장은 거의 다 남자긴 하지만 하는 일은 비슷하다. 요금 받아주고, 길안내해주고, 시외버스의 경우 물이나 주스나 차같은것도 서비스한다. 그 외 브라질 등 다른 몇몇 외국에도 종종 남아있는데, 차장이 존재하는 버스의 기사는 손님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한다.
개그우먼 이영자가 1994년 SBS 코미디 프로그램 기쁜 우리 토요일의 한 코너인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안내양 역할을 맡아 "안계시면 오라이~"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