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가쓰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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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黒田 勝弘(くろだ かつひろ). 일본신문 기자/언론인. 구체적으론 산케이 신문[1] 논설위원/서울지국장이다. 정치적으로는 극우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2 활동

1941년 가고시마현 태생으로 교토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고, 교도통신(共同通信)에 입사하여 서울주재원으로 파견되면서 한국과 연을 맺게 되었다. 일본 현지에선 한국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언론인으로 유명하다. 본래 교도통신 기자였던 그가 산케이신문으로 이직한 것도 가능한 한 한국에 오래 남아있을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해서 이직했을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지한파로 유명하며 한국에 관한 저술만도 30종 이상 펴내고 부인도 한국 사람이다. 지금은 일본극우기자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전두환 정권 시기 한국에 부임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도 제법 썼고 야당, 재야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아 공안 당국에게 마크를 꽤나 당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1993년 '추한 한국인'이란 혐한서로 한국을 헐뜯어 전여옥이 깐 가세 히데아키[2]도 70년대까진 친한파로 굴면서 야당 및 재야인사 외 한국정부에게도 유명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이시하라 신타로와 절친한 일본 극우견으로 활약한다. 일본 극우 홍보영화 프라이드나 무르데카 감수를 맡고 야스쿠니 신사에도 자주 나간다.(...)

그런데 이 부분은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일본의 정치 스펙트럼은 매우 복잡하다. 좌익신좌익, 국제주의, 스탈린주의, 맑스주의, 레닌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정파가 존재하고, 우익군국주의, 왕정복고파,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족사회주의 등 엄청나게 복잡하다. 구로다나 가세 같은 경우는 우익 중에서도 입헌군주제나 그에 준하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부류로,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비판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딱히 한국에 대해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다는게 아니라는 소리.

1990년대 MBC의 모 프로그램에 한복을 입고 출연해서는 "경상남남도 출신"이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상당한 미식가로 일본에서의 저술 중에는 한국음식에 관한 책이 있기도 하다. 특히 고래고기말고기를 좋아한다고(이거야 일본에서도 먹는 것이긴 하지만). 그중에는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서술도 있다. 그가 출간한 미식책에서는 죽 덕에 겨우 복통을 고쳐서 당시 집주인에게 고맙다는 글까지 있다.[3]

스스로는 그의 발언이 국내 언론에서 마구 확대 해석되어 도마에 오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를테면 김희로의 한국 송환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서 한국 언론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사실 기사의 논조는 일본인들에게는 살인을 저지른 범법자에 불과한 자를 마치 개선장군인양 추켜세우는 당시 정계와 한국 언론에 대한 질타였다. 그리고 이후 김희로가 치정 문제, 정착금 문제로 온갖 사건을 일으키고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되자 이 부분은 재평가되기도 했다. 문젠 이 양반이 이런 기사만 쓴게 아니잖아. 구로다 본인의 서술로는 자신에게 가장 비판적인 한국 언론사가 조선일보. 그런데 재밌는건 그의 둘도 없는 친구가 월간조선 출신이자 지금도 조선일보 계열에서 꽤 인맥이 큰 조갑제라는 것.(...) 유유상종

근래는 "고령이라서 신변에 위험한 발언은 자제한다"고 한다(…). 하지만 물론 우파 경향을 숨기고 있는건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극우파 잡지 "SAPIO"(소학관)에도 정기적으로 <서울의 바람(ソウルの風)>이란 기사를 싣고 있고 "정론"(후지/산케이 미디어그룹)에도 한번씩 기사가 실린다. SAPIO에서는 김완섭(...)과의 대담 기사도 실린 적이 있다. 박근령이 대담을 기다립니다. 정론이 구 보수우익의 대변지라면 SAPIO는 신우익의 대변지이다. 이를테면 정론에는 미국 비판은 잘 오르지 않으나 SAPIO는 매 호마다 양념처럼 오른다. 혐한 기사도 자주 오르는 편인데 사실 SAPIO는 한국 까기용으로 김완섭고 젠카라는 전문요원(...)을 두고 있기도 하다.

3 화려한(?) 기사 모음

신문이 신문이니만큼 우파 독자의 입맛에 맞추어 글을 쓰고 있고 30여년 동안 그 글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그네들의 구미를 잘 맞추어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통해 짐작해 보자.

  • 2007년 당시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 구로다 기자는 서울발 기사로 위안부 문제 국제화 배경에는 북한이 배경에 있다는 개드립을 쳤다. 그럼 위안부 결의안 통과시킨 미 하원도 좌빨인가? 또한 이 당시 국내 케이블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위안부는 한국의 경제적 사정, 즉 가난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 구로다와 김구라의 토크쇼 1 2 이 동영상을 보면, 위안부 문제의 경우 미국 하원의원제에서는 수많은 의견들이 많아서 여론을 수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 산케이 신문에 "서울에서 여보세요"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읽어보면 한국이란 나라에 호감을 가지기 힘들게 만드는, 비꼬기와 돌려까기의 향연이다.
  • 주간조선 2293호에선 자신도 놀란 일본의 반한감정이란 기사를 쓰며, 일본에선 자신이 친한이라고 욕먹는다는(...) 개드립을 쳤다. 그동안 쓴 기사는 친한적인 기사였던거다 혐한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네.
  • 30년 이상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의 반일 감정은 전보다 후퇴한 반면, 2010년대에 와선 일본이 과거의 한국처럼 혐한 감정이 극도로 심해졌다는 발언도 했다.공수교대기사
  • 그 밖에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우호적이다. 다만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식민지 근대화론은 국내 경제학자들에게서도 많이 주장되어지고 있으며,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어 식민지 수탈론(현재 국사 교과서에 실린 이론)을 주장하는 정통 사학자들도 쉽사리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2015년 1월에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부는 혐한붐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한국을 동정하는 마음까지 든다고 밝혔다.(...) 일본 극우조차 못봐주겠다는 혐한인들 하긴 이들은 존재 자체로도 나라망신

3.1 특징

구로다의 칼럼이나 인터뷰를 보다보면 일본의 다테마에(建前, 겉마음)와 혼네(本音, 속마음) 개념이 어떤건지 대략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빔밥을 양두구육이라고 한 뒤 논란이 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강 한국을 칭찬하면서 얼버무린 뒤 다음 칼럼부터 어김없이 한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반응을 번역한 게시물들로 일본인의 혼네만 보게 되거나, 오프라인에서 일본인과 만나서 다테마에만 보게 되는 일반적 경우와 달리 혼네, 다테마에 모두를 접해볼 수 있는 산 표본인 셈. 근데 사실 저건 어느 나라든 차이만 있을뿐 다 비슷하지 않나? 사실 구로다가 겉으로 한국을 칭찬해주는 경우도 파고 들어가면 교묘히 비꼬는 뉘앙스가 강하다.(...)

논리나 자기 발언에 대한 옹호, 극우파에 대한 비판이나 옹호 이런 모든 걸 제쳐두고, 일단 한국을 비아냥거리는 것 자체에만 집중해서 그의 발언들을 보면,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강만 봐도 바로 반박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구로다의 기사는 일본 내에서만 연재되며 한국에서는 극단적인 기사의 경우만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구로다 본인이 한국 미디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고 한국 네티즌이 구로다에게 접촉할 수 있는 경로도 별로 없는지라 절친 조갑제한테라도 문의해보던지 구로다는 여전히 일본 내에서 반한 소재로 쓰이기 쉬운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4 트리비아

서강대에서는 이 사람을 교양과목 강사로 초빙했는데, 취업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의 직업변동사항에 대해서 신고를 해야 함에도 구로다는 신고를 안해서 벌금형을 받았다.

간혹 한국 언론이 일본의 극우인사들에 대해 취재를 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한 예로 PD수첩에서 혐한 성향을 가진 한국인들에 대해 취재를 할 때 구로다를 통하여 당사자와의 연결을 시도하였으며, 이 장면은 해당 방송에서도 나온 바 있다. (정확한 방송 시기는 추가바람)

2005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때, 일본측 패널로 백분토론에 나온 적이 있다. 재밌는건 그때도 신변의 위험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 때 그런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는 나라라는 뉘앙스로 답변해준 사람이 당시 100분 토론 사회자였던 손석희. 신변이 위험하지만 무려 30년이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는 구로다 가쓰히로상.

그러나 의외로 TV에서의 발언은 글보다 수위가 매우 낮았다. 예를 들어 글로 자주 썼던 "한국인들은 일본 지배를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는 발언 대신에 "한국인들은 좀 더 이성적으로 당시를 볼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돌려 말했는데, 아마도 언급한 신변의 위험이나 자신의 혐한적 생각이 직설적으로 방송을 타면 한국인을 더 자극하여 반일감정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랬을 확률이 높다. 아님 집중다굴을 맞아서 정신이 없었거나[4] 때문에 TV에서 구로다의 화끈한 혐한 발언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는듯.

1993년 산케이 신문 서울 주재원 한국군 기밀을 털려다가 잡힌 시노하라 기자 사건이 있었다. 한국군의 K-1 전차의 구체적 스펙을 털려고 한국군 장교와 국회의원에게 접근했다 영관급 장교 몇명이 이 사람에게 인사청탁을 하면서 2급 군사기밀을 넘겼는데, 기무사에 의해 시노하라 기자는 간첩죄로 체포되었다. 미국 같았으면 징역 수십년을 때릴 만한 죄였지만, 한국에서는 집행유예로 선고했고 시노하라는 1심 판결이 나자마자 일본으로 튀었다. 이 때 구로다는 이 사건을 보고 울어주던 한국 아줌마를 칭송하는 투로 정이라면서 일본인에게 대해주는게 고맙다는 식의 글을 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아줌마는 시노하라의 아내였을 가능성이 높다.(...) 시노하라는 구로다와 마찬가지로 한국여자와 결혼했다.

90년대에는 좋은 생각이란 월간지에 한국에 대해 정이 많다느니 어쩌니 하는 긍정적인 글을 자주 쓴 적이 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책들을 보면 한국인들에게 매우 따뜻하고 온건한 시선(?)들이 느껴지는 내용도 많아 보인다.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 한류 열풍에 편승하여 쏟아지고 있는, 혐한류를 위시한 이슈를 노려 팔아먹는 것만이 목적인 저질책들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그가 쓰는 기사는 그 나름대의 균형있는 시각을 유지하는 것처럼 겉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지한파(知韓派)일 뿐 친한파(親韓派)가 아니다.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그는 일본 우익의 시각을 대변하는 인물이며 그의 글에서는 한국에 대한 혐오감이 묻어나온다.

그만큼 그의 논조가 일본 보수우익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논설위원이니만큼 그가 쓰고 있는 기사는 팩트의 전달이라기보다는 일본 보수우익의 시각과 구미에 맞춰 재단된 정치적 대변이기 때문이다. 보수우파 + 지한파라는 입장은 상반된 것도 아니고 성립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 만큼 그가 쓰는 기사의 행간을 짚어내어 일본 보수우익의 시선을 짚어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 할 수 있겠다.

덕분에 조갑제가 욕먹는 이유 중 하나가 구로다에 대하여 어떤 비난도 삼가하고 나몰라라하는 점이다. 북한 비난에 대해선 좋아라 서로 사이좋게 협조하지만 조갑제가 한국에 대하여 비아냥거릴때 조갑제는 입에 지퍼를 채우고 어떤 반응도 안 보이기 때문. 오죽하면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라는 책자에서 보수를 옹호하던 다른 논객들이 조갑제를 보수의 망신이라며 비난할때도 바로 구로다를 거론하며 이런 혐한을 옹호하는 게 한국의 보수라고 알려졌으니 한국 보수가 욕먹는다라고 깠을 정도.

따라서 구로다의 글에 대해 관심을 주는 것에 대한 여부는 여러분의 머리로 판단하자.

유사한 케이스로 이글루스를 한바탕 뒤흔들었던 이마무라 사건의 장본인이 있다.
  1. 일본의 극우보수우익지로 산케이의 일본내 인식은 구독하면 사은품은 많이 주지만 기사의 질은 좀 많이 떨어지는(...) 신문 정도이다. 좌익지라며 우익의 지속적인 비방을 당하는 아사히 신문보다 정작 구독자 수도 떨어진다.
  2. 책을 낼 때는 박태혁이란 가명을 썼다.
  3. 다만 한국음식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상당히 낮춰보고 있다. 맛있다고는 해도 세련되다거나 조리가 깔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국적이고 야성적이라는 어투. 이 자의 한국음식에 대한 상투적인(그리고 최대의) 찬사는 '야취(野趣)가 있다.', 즉 야성적이고 소박하다는 말이다.
  4. 실제 외국인이 외국어로 외국tv프로에서 토론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