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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이나 가죽 등을 바느질하는 기계. 흔히 미싱이라고도 하는데, 영어 단어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이 일본어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머신(machine)'의 발음을 따 '미싱(ミシン)'으로 바뀌어 굳어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일상에서 재봉틀을 손수 사용하신 분들의 연령대가 그렇다보니 '재봉틀'보다 '미싱'이란 표현을 더 쉽게, 큰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다. 함경도에서는 마선이라고 부르는데, 러시아어의 영향이다.
산업혁명 당시 발명되었으며, 당시 발명품들을 대표하는 기계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자동화된 공업용 재봉틀로 면직물 생산이 급증했고, 산업혁명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노동 착취를 상징하는 기계이기도 했다.
초기의 재봉틀은 수동식이었다. 위 사진이 수동식 미싱으로 재봉틀 옆에 달린 손잡이를 손으로 직접 돌려 작동시켰다. 이후 등장한 것이 페달식으로 발로 발판을 밟으면서 동력을 얻는 방식이다. 수동식을 살짝 고친 형태라 구조적 차이가 거의 없다. 페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책상이나 장롱형태로 만들어 평소에는 내부에 수납해 두었다가 사용시에 꺼내서 쓸 수 있게 한 형태가 많다. 이후 전기 모터를 이용하여 동력을 얻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지금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되었지만, 1970~8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한대씩 있었다. 한창 경제 개발에 매달리던 시절엔 혼수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을 정도. 이 물건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였냐면 60년대부터 서울역 맞은편으로 약간 왼쪽 건물에 커다란 재봉틀 그림이 그려진 광고판이 있을 정도였다.[1] 때문에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 주부들은 열에 아홉은 재봉틀을 무척 잘 다루신다. 게다가 6.25 전쟁 때 피난갈 때에도 재봉틀만은 꼭 챙겼다는 분들도 계신다. 재봉틀은 집안일에도 필수품이지만 삯바느질이 생계에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단 가정에서뿐만이 아니라 섬유산업 등 경공업에 집중되어있던 국내 초기 산업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대의 노동환경에 대해 묘사한 문학에서 가혹한 노동환경에 고단함을 이기지 못한 여공이 졸면서 재봉틀을 돌리다가 손을 기워버리는 장면은 클리셰였다. 노동운동의 시발점을 당긴 전태일 열사 역시 생전에는 재봉사로 일하였다. 또한, 노찾사의 사계 역시 재봉사 여공들의 고단함을 표현한 노래이다.
현대에도 코스프레나 퀼트 등의 취미가 있다면 가까이 하게 되는 물건.[2]
어떤 나라가 산업화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생산기술을 쌓아서 만드는 기계중 하나이기도 하다. 봉제 의류 산업같은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한 경공업부터 시작하다 보니 당연히 재봉틀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처음에는 만들 기술이 없으니 선진공업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지만 유지보수를 하며 기술을 조금씩 쌓고 조금이라도 값싸게 부품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호환부품의 국내생산을 도모하게 된다.(물론 영국이나 미국같은 나라는 산업혁명의 선발주자다 보니 수입을 한 적이 없고 첨부터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부품을 제작하면서 더더욱 노하우를 쌓아 최종적으로는 재봉틀을 자체 제작할 능력을 갖춘다. 이전에 재봉틀을 만들던 선진공업국의 기업들은 가성비에서 상대가 안되니 시장에서 점점 밀려나게 된다.
이 루트를 한국과 일본, 중국이 그대로 밟았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일본제 재봉틀을 수입하다가 한국 기업들이 기술을 갖춰 우월한 가격과 성능으로 일본제를 시장에서 밀어냈다. 그 뒤 중국이 개방하고 경공업이 한참 성장할 때 한국 재봉틀을 수출해서 재미를 많이 봤다. 지금은 한국업체들도 밀려나고 중국산 재봉틀이 베트남 등 동남아 각 국가에 한창 수출되는 중. 그리고 현지기업들이 슬슬 부품을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이나 일본 기업들은 아예 컴퓨터와 로봇을 이용한 자동재봉쪽으로 개척을 하는 중.
2 장수만세
100년이나 된 재봉틀도 현시대에 중고로 거래되고 있다.[3] 그런 골동품이 움직이긴 할까 의심스럽지만 아주 잘 돌아간다. 220볼트 대응 전기 모터를 내부에 집어넣어서 페달을 밟으면 작동이 가능할 정도. 가격은 60~80만원 선. 오오 가격방어 오오
100년이나 된 재봉틀이 사용가능한 이유는 톱니바퀴 및 내부의 부품들이 전부 금속, 쇳덩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쇳덩이라 한들 기계장치이니 쓰다보면 마모되고, 망가지기도 하겠지만, 미친듯이 많이 돌아가는 만큼 빨리 닳는 공업용의 경우와 달리, 작동양이 적고 그런 만큼 닳는 양이 적은 가정용의 경우는 초기 재봉틀의 쇳덩이 부품들은 마모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당장 100년도 전에 Singer 사가 만든 초기 재봉틀이 지금도 문제없이 굴러가는 판이다. 한 마디로 너무 튼튼했던 것
그리고 이게 어떤 무슨 결과를 초래했냐면 재봉틀이 도통 망가지지를 않아서 새로 개발된 신제품이 팔리지 않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이 망가지지 않는 재봉틀을 구매해서 문자 그대로 대대손손 물려가며 영원히 사용하려 드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니, 초기엔 불티나게 팔리던 재봉틀이었지만 어느 선을 넘는 순간 판매율이 하락하기 시작하고, 결국 상인들의 시야에 재봉틀 장사를 말아먹을 미래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부턴지 재봉틀 회사들은 톱니바퀴를 적절하게 망가질 수 있게 설계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현대의 가정용 재봉틀 톱니바퀴는 모두 합성수지 내지는 플라스틱으로 제조한다. 까놓고 말해 돈을 들여가면서 재봉틀의 성능을 떨군다는 어이없는 행동이긴 하지만, 회사의 이윤 추구의 논리 앞에선 불가능한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4]
물론 그냥 성능만 떨굴 경우 욕을 처먹을 거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기 때문에 신형 재봉틀에는 구형 재봉틀과는 차별화되는 여러 기능을 넣긴 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전자식 재봉틀이 판매되고 흑백 LCD 스크린에 패턴을 입력하면 재봉틀이 패턴 모양으로 재봉질을 하는 기능까지 탑재되는 마당.
그렇다고 상인들이 저 판단을 욕하기도 뭣한 것이, 초기에 팔린 전기모터도 못 붙여놓은 100년이나 된 공장제 제품이 지금도 잘 작동하며 심지어 마개조까지 해가며 사용이 가능한데다 그냥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현역으로 뛰는게 가능하다. 그런 판이니 저 꼼수가 없었으면 재봉틀 회사들은 진짜로 고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하튼 이렇게 100년된 물건을 아직도 굴리는게 가능하다는 건 분야를 막론하고서 정말 희귀한 케이스이다. 빗대어 이야기할 물건이 정말 드물다. B-52가 100년을 채우려면 몇년이 남았나 그나마 무기계에서 콜트 싱글 액션 아미는 140년을 채웠고, 콜트 M1911을 비롯하여 존 브라우닝이 설계한 총기들이 민수/군수 할것 없이 100년을 넘긴게 많다는 점이 비견될만하다.
워낙에 역사가 길다보니 실제로 쓰지 않더라도 오래된 고급품들은 앤티크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를 얻어 매우 대접받는다. 약간 빈티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때는 손때 묻은 재봉틀이 장식품으로 쓰이기도 한다.
3 트리비아
리듬게임에서는 재봉틀의 바늘이 빠르게 왔다갔다하는 모양과 유사한 플레이를 요구하는 연타형 채보를 재봉틀 채보라고도 한다. 이러한 채보가 유명한 음악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EZ2DJ 시리즈에서 유명한 곡을 뽑으라면 단연 The Future와 20000000000, Fell Hound 3[5]일 것이다. 아예 곡명 자체가 '재봉틀'인 Sewing Machine이라는 곡도 있고... BEMANI 시리즈에서 유명한 재봉틀 채보로는 beatmania IIDX의 Fascination MAXX와 사운드 볼텍스의 Ganymede kamome mix 등 다양하지만 더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니 생략.
그중 Zirkfied는 5버튼 7연타라는 정신나간 패턴을 보여준다.
골동품급 모델을 뺀 일반형 재봉틀 제조사로는 일본 브라더공업이 유명하다.[6] 하지만 워낙 국내에서 재봉틀로 유명한 나머지 오히려 지금은 주요 사업이라 할 수 있는 프린터나 공작기계 사업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 브라더 프린터를 보면 오히려 '이름만 빌린 짝퉁 아님?'이라고 묻는 사람이 대다수. 프린터나 프로젝터가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수정 디바이스 등 시계 부품이나 LCD 센서 사업을 한다면 이상하게 보는 엡손과 비슷한 사례.[7]
1998년 5월 지방선거 도중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소설가 김홍신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새정치국민회의의 경기도지사 후보 임창열씨에 대해 "거짓말 많이 하면 염라대왕이 입을 꿰맨다는데,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드르륵 꿰메야하는거 아니냐."고 폭언을 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이 사건으로 김홍신 의원은 모욕죄 ,선거법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형을 받았다.
최초로 할부판매가 된 제품이다. 1856년에 아이작 메리트 싱거가 판매한 '싱거 재봉틀'이란 가정용 재봉틀로, 당시 가구당 연평균 수입이 500달러였는데 재봉틀은 125달러나 해서 석 달치 월급을 모조리 합쳐야 할 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싱거는 ‘할부판매’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아 소비자의 부담을 덜었고, 또 보상판매도 처음 시도했다. 낡은 재봉틀을 50달러에 쳐주고 새것으로 교환해 준 것이다. ‘한 집에 한 대의 재봉틀!’이라는 슬로건 아래 가정마다 싱거 미싱이 한자리씩 차지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판매 방식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 지금 같으면 전광판에 해당하는 비중을 가진 광고 위치였다. 실제로도 재봉틀 그림이 세워진 건물은 아직도 건재하며, 실제로 그 재봉틀 광고의 위치가 전광판 위치와 흡사하다.
- ↑ 그러나 재봉틀만 있으면 다 될 거라는 환상엔 빠지지 말자. 기본적인 바느질 실력이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관계는 그림그리는 사람과 타블렛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 ↑ Singer 사의 100년 쯤 된 제품이 실제로 을지로 재봉틀 거리에서 구매 가능하다.
- ↑ 재봉틀 뿐만 아니라 현대의 수많은 소비재 기업들이 이렇게 한다. 괜히 소니타이머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요즘의 제품들은 요란한 기능을 보유하지만 그 내구성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1970년대에 생산된 골드스타 선풍기는 아직도 현역이지만 2000년대에 생산된 중국산 선풍기는 분리수거함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 후반부에서 무려 14초 동안 까지 재봉틀 치듯이 플레이 해야 한다. 이 때, 스크래치도 같이 나오므로 두 손으로 번갈아 연타하는 것도 불가. 수전증 걸린 것 마냥 한손으로 떨면서 해야하며, 심지어 노트가 나오는 버튼이 일정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바뀌는지라 손가락을 옮기다 삑사리가 나면 클리어가 위험해질 때도 있다.
- ↑ 국내에서는 '부라더'라고 해야 알아 듣는 사람이 많다.
- ↑ 엡손은 수십년 전부터 시계로 유명한 SEIKO의 계열사였다. 시계 부품 사업을 하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