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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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ーチャファイター3
Virtua Fighter 3
1 개요
1996년 9월 발매. 당시 최강의 스펙을 자랑하던 MODEL3 기판의 첫 작품으로 등장하여 유저들에게 경악스러운 그래픽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1] 게임 자체는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동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와 구 유저와 신규유저의 평이 엇갈렸으며 동시에 게임 자체의 난이도가 증가하면서 게임이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래픽 퍼포먼스나 완성도는 여전히 탄탄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3편은 인류의 역사적인 발명품으로 인정받아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2 시스템 특징
시리즈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E버튼이 추가되어[2] 4버튼 체제로 제작되었고 기존의 사각의 링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타일의 스테이지가 추가되었다. 이런 스테이지 변화에 기존의 평지에서 싸우는 것이 아닌 고저차와 벽 콤보, 바운드콤보를 처음 도입하여 게임상에서 여러가지 상황에 맞는 유연함을 강조했지만 2탄에 비해 대전의 속도감이 다소 저하되고 극한의 심리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기에 시스템적인 변화에 비해서는 플레이 양상이 다소 고정적으로 정착되었다. 결국 선택되는 스테이지는 아키라 스테이지 또한 각 캐릭터마다 몸무게를 게임상에 적용시켜놓아 게임의 플레이를 좀 더 심도있게 하게 만들었다.
여담이지만 게임라인의 철권빠였던 모 객원기자는 이런것들을 시스템의 힘으로 게임성을 변화시켜간다는 독특한 컨셉..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이기도..
그리고 3만의 새로운 시스템이 다시 유저의 의해 창안되기도 하였는데 바로 '스텝'이다.[3] 이를 통한 횡이동이 강조되어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가 중요시되고 있는 3편이지만 단순 활용을 넘어 스탭을 통한 거리조절 및 공간의 활용을 극단적으로 높이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2의 종결자였던 신의욱. 하단 대쉬를 캔슬하여 단순 1회 이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플레이 내내 위빙을 하면서 상대방의 간격과 거리를 자유롭게 조절이 가능하게 해주는 코리안 스텝을 창안하면서 E버튼의 활용폭이 커졌다.[4]
덕분에 이 활용은 세가의 공식 버추어 파이터 3 가이드에 신의욱의 이름과 함께 가장 중요한 테크닉으로 등록. 그리고 신의욱은 제작자였던 3편의 제작진들과 스즈키 유 앞에서 직접 '코리안 스텝' 시연. 이것을 본 스즈키 유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5]
이외에도 디아블로팀에서 창안한 디아블로 매직 스탭 등 다양한 스텝과 여러가지 휭 이동을 활용하는 방법이 존재하였으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이 정도...
3 한국의 상황
그래픽의 퍼포먼스가 경악스러운 만큼 기판의 가격도 굉장히 높아 보급은 원할하지 않았고 초기 비용도 300~500만원이라는 고가로 책정되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에는 무리였다. 2012년 현재를 기준으로 해도 적은 돈은 아닌 마당에 이 게임이 국내에 발매된 것은 1997년 봄이라는 점에서 체감가격은 현재보다 더욱 높았다.
게임의 흐름은 대시 거리가 짧아진 것을 스피드가 떨어진다고 느낀 사람이 많았던 탓인데 한국에서는 팀 배틀이 활성화된 곳 말고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때문에 오히려 2편으로 희귀하는 유저가 많았다.[6]
다만 2편 시절의 최상위 괴수들은 3편으로 전환하였고 2편에 이어서 세계최강의 수준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었지만 신규유입 유저가 없었다는 점과 게임의 기본적인 난이도가 타 게임에 비해 높았던지라 결국 한국에서 버추어 파이터가 몰락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발전시킨 팀 배틀 문화는 3편에서 완벽하게 정착되어 타 게임의 유저에게도 정착되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한국 최초의 전국단위 팀 배틀이었던 '메가 배틀'[7]을 주최하여 배틀문화의 기점이 되었다. 특히 PC통신을 기반으로 하여 전국 각지의 고수들이 연결되면서 '지역 버파'를 고수하던 환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폭넓은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강한 한국세의 원동력이 되었다.
4 일본의 상황
2편에서 강자로 군림했던 4대철인이 카시와 제프리를 제외하고 일거에 몰락하면서 새로운 세대교체가 되었다. 2편만큼은 아니더라도[8] 역시 큰 인기를 누렸지만 한국과 비슷하게 기존의 유저들의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새로운 유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여전히 인기를 지켜나갔고 동시에 일본의 유명 플레이어들도 카게 철인이었던 '카사오'만 유일하게 살아남고 나머지 철인들은 세대교체의 흐름속에 몰락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4 시절의 강자로 이름을 날리게되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했다.
이때 등장한 유저는 침서탄과 승리만을 추구하는 엽기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던 '오카다' 및 4에서도 명성을 날린 '치비타', '세가루' , '오스 아키라'등이 있지만 한국의 일본과의 수준차이가 심각했었기에[9] 이때 당시 한국에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5 맥시멈 배틀
2편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한 신의욱, 3편에서도 마찬가지. 2편에서 비해서는 조금은 포스가 줄어든 느낌이 있지만 어차피 의미가 없는지라 여전히 극강의 실력자로 명성이 높았다. 그리고 세가에서는 3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계대회를 주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맥시멈 배틀'이다. 세계 7개국에서 12명의 선수가 선발되어 참가했으며 일본내 최강의 파이, 여성유저 챤네와 잭키유저 야나가사라가 출전했다.
한국의 대표로 선발된 이는 리플레이즈의 신의욱과 사시미팀의 조학동. 신의욱의 경우 당시에도 한국 최강자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고 조학동의 역시 특유의 심리전과 라우의 사상장 러쉬로 명성을 날리는 유저였다는 점에서 한국의 무난한 우승을 예상했다.[10]
대회는 예상대로 신의욱은 화려한 플레이로 일본관객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순조롭게 결승까지 올라갔었다. 특히 아키라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에서는 정석이었던 타격, 잡기, 가드해체의 삼지선다 및 순보번과에 의한 가드해체에서 연결되는 콤보라인, 잡기 타이밍에 붕격운신쌍호장 심어두기 등등의 플레이에 완전히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반격기도 잘 썼다. 아키라 다운 아키라를 처음 본 셈. 당시 상대하는 유저들의 발언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강하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조학동 역시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특유의 사상장 러쉬와 카운터잡기를 비롯, 8강에서는 일본 최강파이였던 찬네를 상대로 라우가 뽑을 수 있는 최대한의 데미지 콤보(사상장카운터-쌍호열파-비연전신장-전신사하장-연환전신소각)를 일본에서 선보이며 압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학동 역시 순조롭게 이겨나가면서 4강전에서 야나가사라와 격돌. 이때 야나가사라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4강전. 야나가사라를 특유의 사상장 러쉬로 4 스테이지 퍼펙트 승으로 몰아붙이는 명장면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결승까지 진출, 결국 한국대표 두 명이 1위를 다투는 상황이 왔고 신의욱이 우승하면서 세계대회는 마무리되었다. 이 때문인지 공식발매된 대회 비디오를 보면 결승에서는 해설 자체도 거의 없다.[11]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신의욱이나 조학동이나 일본의 4각스틱을 대회에 참가하고 나서 처음 만져봤다는 것. 연습조차 하지 못하고 곧바로 한 번의 패배로 탈락하는 실전에서 4각스틱을 사용하는 극악한 조건이었음에도 이를 극복하고 우승한 것이다. 특히 조학동의 경우 손이 커서 굉장히 치명적으로 작용했는데 그 덕에 대회 초반부는 기본 잡기와 한두 가지 기술로만 심리전으로만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물론 조금 적응이 된 이후로는 앞서 언급하다시피 일본의 대표 두 명을 멀리 보내게된다. 그것도 4각스틱에 완벽하게 적응된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맥시멈배틀 본선
맥시멈배틀 본선, 3, 4위전
맥시멈배틀 결승전
5.1 맥시멈 배틀 이후의 여파
한국인 두 사람의 결승은 일본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화로 남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생각외로 컸다. 일본의 우승을 생각했던 세가는 이런 결과에 당혹했는지 공식 비디오에는 60분 가량을 일본 대표선발전을 위주로 채워버리고 나머지 20분을 세계대회로 살짝 채우는 비범한 짓을 저지른다. 또한 대회 당시 신의욱, 조학동의 인터뷰를 모두 편집, 삭제를 하는 행동까지 선보인다.
그리고 우승직후 신의욱, 조학동 두 명은 일본의 최강 플레이어들 상대로 다시 한 번 일전을 벌이게되는데 결과는 당연히 처참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첫날 무패로 압살한 조학동은 먼저 귀국. 홀로 남은 신의욱과 일본 대표게이머들의 대전은 모든 격투게임을 통틀어 벌어진 한일전에서 가장 잔인하고 냉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결과로 말하면 10X승 6~7패 가량. 6~7패로 인해 철권의 장익수의 100연승 무패 신화 비교할 수 없다는 유저들이 간혹 있었지만 실상 내용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시 신의욱은 2일간의 일전 (조학동은 1일차 무패 연승 이후 먼저 귀국) 속에서 한판당 9전 5선승제라는 압박스러운 룰로 진행됐다. 그리고 신의욱의 플레이방식 역시 철저히 일본 유저들을 농락하는 형태로 진행됐는데 자신의 주력 캐릭터는 배제한 체 상대방의 캐릭터와 동일하게 선택하여 플레이 했다. 쉽게 말해 일본의 사라 최강자가 나오면 사라로 대응하여 플레이, 일본의 잭키 최강자가 나오면 잭키로 대응하여 대놓고 압살해버리는 형태로 진행. 즉 자신의 주력은 제외한 체 전 캐릭터를 사용하여 능욕하는 사상 유례없는 안드로메다 관광을 진행했다.
참고로 신의욱의 주 캐릭터는 대회에서 우승한 아키라 유키가 아닌 카게마루였다. 버추어 파이터 2 시절과 맥시멈 배틀의 우승으로 인해 아키라가 주 캐릭터로 많은 이들이 착각하곤 하지만 3 시절에는 카게를 주력으로 사용했었다.
어쨌든 문제는 이런 결과를 본 세가는 우승자 자격 이후 다음 대회에 초청한다는 약속과는 달리 철저히 한국인 선수들을 제외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두 번 다시 대회를 열지도 않았다. 덕분에 자국의 유저만 우대하는 병크를 저지르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2]
6 확장판
6.1 버추어 파이터 3TB
버추어 파이터 3TB 엔딩
3편 발매이후 1년후인 1997년 9월에 발매된 게임. TB라는 제목 그대로 3VS3를 지원하는 팀배틀의 방식을 지원하는 확장판. 기존의 버추어 파이터3가 A~D 버전까지 4가지가 정리되지 못하고 난립하면서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4개의 버전을 하나로 통합하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쉬웠고 팀 배틀도 3TB로 계속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버추어 파이터 2의 인기에 근접 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TB버전에서는 또한 고수급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농익어서 절정고수급 레벨이 다수 등장, 더이상 신의욱을 단독 최강자라 부를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TB 발매 이후에는 일본 중수급 이상 유저들에게도 한국스텝은 필수적인 것 중 하나가 되었다.
3 VS 3만을 지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밸런스 측면에서도 D버전을 베이스로 재조정되었고, 알게모르게 수정사항이 많다. 다운판정인 기술을 맞아도 다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타카아라시의 다운 조건은 다른 캐릭터와 동일하게 조정되었다(물론 뜨지는 않기 때문에 콤보 전략이 일반캐릭터와 상당히 다르다). 아키라의 순신번과 등 일부 캐릭터에 신기술이 추가 되기도 해서 이래저래 3와는 다른 감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7 이식작
세가 새턴 : 아케이드판이 출시되고 얼마 후 새턴으로의 이식이 정식으로 발표되었고 실제로 개발이 진행중이었지만 2년여간 제대로 된 정보 하나 공개되지 않고 립서비스만 날리며 새턴용 버파3 희망고문만 주다가 결국 드림캐스트판 3tb의 이식이 발표되면서 새턴판의 발매는 취소되고 말았다.
파이터즈 메가믹스의 버파 캐릭터들 모션이 3를 기준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커맨드 연습이나 겨우 할 수 있는 수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나마도 아키라 등 소수를 제외하면 없는 기술까지 있어서 망했어요. 새턴판의 발매를 취소하는 대신 새턴판 이식에 들어가는 인력과 자금을 드림캐스트판으로 집중할 수 있으므로 드림캐스트판으로 더욱 충실한 완성도로 아쉬움을 달래드리겠다고 했지만 이는 훗날 완벽한 립서비스용 구라로 판명난다(...)
그래서 지금도 스즈키 유를 점박이 구라쟁이라고 까는 사람도 많다.
드림캐스트 : 드림캐스트 동시 발매작. 베이스는 버추어 파이터 3TB이고[13] 이식작업은 겐키가 담당하였다[14]. 그나마 그래픽은 볼 만한 편이었지만 모델 3에 비해 아무래도 드림캐스트의 성능이 굉장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15] 아케이드에 비해서 떨어지는 디테일과 모델링을 선보였으며 아오이의 도복바지나 잭키의 상의가 펄럭이는 연출도 삭제 되었다.
스테이지 그래픽도 눈에 띌 정도로 하향되었고 또한 배경 그래픽이 뒤집히거나 색상이 변하는 등 눈에 띄는 버그가 상당히 많았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 게임상의 적용된 몸무게를 아오이 기준으로 하나로 동일하게 만들어[16] 3편의 게임성과 특징을 훼손하여 많은 지탄을 받았다. 당시 콘솔용 아케이드 게임들은 혼자 연습해서 아케이드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트레이닝 모드를 다양하고 충실하게 만드는 추세였고 그 밖에도 콘솔 전용 모드를 추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버파3TB는 놀랍게도 VS모드조차 없었다! 트레이닝 모드도 CPU가 죽자사자 덤비는 걸 키입력을 보며 두드려패는게 전부일 정도로 부실해서 여러 모로 욕을 먹었으나 그나마 북미판에서 트레이닝 모드를 보강하고 VS모드를 추가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였다.
사실 드림캐스트판 버추어파이터3가 혹평을 받는 이유는 3가지 때문이다. 첫번째는 스즈키 유의 과도한 언플과 드림캐스트의 초기 흥행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유저들의 기대가 엄청나진 것이다[17]. 두번째는 드림캐스트의 마땅한 대체품과 후계작이 나오지 않으면서 드림캐스트를 가진 세가팬들이 버파3만 들고파다보니 단점들이 속속 발견된 것이다. 사실 이 2가지 문제는 초기의 평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게임관련 매체들의 평가는 완벽에 가까운 이식이었다. 패미통 리뷰만 고려해도 너무 완벽해서 만점은 못주겠다라는 등의 평가와 함께 40점 만점에 36점으로 플래티넘 획득. 당대 세가빠들의 집결지였던 한국내 게임잡지 게임라인의 평가도 동시 발매작으로는 완벽하다. 이 이상을 바라면 도둑놈이다라는 식이었다. 잡지사 평가만 좋고 유저들 평가는 나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당시 유저들의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시간의 경과로 여전히 버파3만 잡고 있어야 했던 유저들은 점점 하드코어해져서 아케이드와의 냉정한 비교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타를 가한 것이 드림캐스트판 소울칼리버의 등장이다. 전혀 기대를 할 수 없었던 상황[18]에서 등장한 소울칼리버는 패미통 크로스 리뷰 만점[19]에 빛나는 세기의 걸작으로 나오면서 비교대상이 무지막지해졌다.
또한 겐키에게 실드를 조금 쳐주자면 이식에 주어진 시간이 6개월 정도로 촉박했고 겐키에게 주어진 개발킷은 베타버전으로 드림캐스트의 GPU인 PowerVR의 성능을 반 정도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미완성품이었다고 한다. 야이 세가 겐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악조건하에서 분투하며 이식한 작품인 셈.
게임을 찾아 볼 수 없는 현재 다운로드 컨텐츠로 이식되기를 고대하는 올드 버파러가 많다. 현재 드림캐스트 콜렉션이 공식적으로 확인됨에 따라 기대를 걸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역시 희망고문으로 끝났다. 이제 올드 버파팬들은 드림캐스트 콜렉션 2편을 기대하면서 희망고문을 이어나간다.
초회판의 경우에는 쉔무(당시 타이틀은 '프로젝트 버클리')의 예고 및 메이킹 필름이 보너스로 들어있다.- ↑ 현재 기준으로 보아도 최신 게임으로 착각할 정도로 굉장히 깔끔하고 유연한 그래픽을 감상할 수 있다.
- ↑ 2편에서도 몇몇 캐릭터에 한해 횡이동이 있었지만 실제로 공격을 회피하는 성능은 거의 없었다.
- ↑ 2에서도 하단 대쉬를 이용한 기초적인 스탭은 존재하며 G캔슬을 통하는 방법도 존재.
- ↑ 일본의 4대 철인 중 하나였던 붕붕마루가 코리안 스텝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굳어졌다.
- ↑ 하단 캔슬 자체는 스즈키 유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 그대로 출시하였다.
- ↑ 실제로는 프레임 자체가 확 느려지거나 그런 문제는 없었고 모션과 속도 조절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쉬의 경우는 캔슬 대쉬로 중급자 이상은 날라다닐 수 있었지만 이건 동네 오락실에 모든 플레이어가 웨이브 대쉬로 다가가 초풍으로 똥침 넣는 세상에서나 가능한 것.
- ↑ 양재동 메가존에서 열렸으며 만화 선녀강림의 작가이자 날아라 슈퍼보드 환상서유기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유현이 대회 로고 및 일러스트를 맡았다.
- ↑ 초기 3편이 망했다는 말이 많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2편이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적어보였기 때문이다.
- ↑ 신의욱 曰 '일본의 톱 플레이어의 수준은 한국에서는 흔하게 있는 동네 고수 수준 정도' 참고로 맥시멈배틀에서의 대전상대들에 대해서도 대만쪽 유저들이 일본 유저들보다 수준이 높았다고 이야기한다.
- ↑ 다만 대회 당일 일본 호텔에서 한국 유통사는 이 두 명에게 달랑 차비만 던져주고 알아서 찾아가라는 만행도 있었다. 일단 대회장소까지는 무사히 도착, 다행히 현장에 동행한 한국인(=현 프로레슬링 해설가로 유명한 천창욱)이 있어서 순조롭게 대회참가.
- ↑ 여담으로, 신의욱과 조학동은 대회 시작 전에 결승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했고, 보기 좋게 결승에서 만났다고.
- ↑ 세계대회 우승 상품 자체도 버파3 기판이었지만 한국대표가 결승에서 맞붙자 상품을 바꾸었다라는 말도 나왔는데 이 부분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우승상품이 기판이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게임라인 인터뷰에서 신의욱이 우승 상품은 버파3 기판이라도 주는줄 알았는데 기판은 커녕 맥빠지는 상품이라 실망했다 라고 인터뷰한데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 ↑ 팀배틀 모드와 1:1 모드가 둘다 존재한다. 사실 아케이드판 TB도 설정에 따라 기존 3처럼 1:1 대전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 ↑ 당시 쉔무의 작업으로 인해 AM2팀이 직접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 다만, 드캐의 실성능을 충분히 뽑아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며, 나중에 파이팅 바이퍼즈 2나 DOA2, 소울칼리버가 나오면서 버파3TB에서 보여준 것보다는 드캐의 성능이 버파3TB가 보여준 것보다는 모델3에 약간 근접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었다.
- ↑ 아케이드판의 경우 사라>파이>아오이 순으로 몸무게가 무겁게 적용되어있는데, 아오이가 가장 가벼운 관계로 아오이 전용 콤보가 꽤 있었다. 다시 말하면 드캐판은 이 콤보들이 사라, 파이에게도 그냥 들어간다는 이야기.
- ↑ 이 점에서는 쉔무와 배경이 같다. 오히려 쉔무의 경우는 들어간 돈이 워낙에 엄청나서 비판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그 쉔무를 제작하기 위해 버파3의 원래 제작진을 털어줘서 외주제작으로 이식된 버파3 드캐판은 억울한 상황.
- ↑ 남코는 PS에서 가장 중요한 서드파티중 하나로 인정받은 뒤로 세가 하드로 게임을 발매하지 않았다. 그래서 드캐판 소울 칼리버는 정말 특이한 사례였던 것이다. 이때 남코에선 200만장이 안 팔리면 다시는 후속작을 내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드캐로 나온 남코 게임은
전기종 동시발매급을 제외하면이게 마지막이 되었다. 소울칼리버 드캐판이 전세계에서 100만장 밖에 안 팔렸기 때문. - ↑ 역대 최고의 게임에 반드시 꼽히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이후 최초의 만점작으로 역대 2번째 만점 게임이고, 세가 기기 유일의 만점 게임이다. 그리고 쿠소게 죠죠의 기묘한 모험 All Star Battle가 만점을 받은 패미통 크로스리뷰 최악의 흑역사 이전까지 만점을 받은 유일한 대전액션게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