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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포
2007년 수학 교수 김명호 교수가 대입 시험에 문제 오류를 제기한 후 성균관대에서 해교 행위 및 연구 소홀로 재임용을 거부당하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 판결을 받자 분노해 석궁으로 판사를 상해한 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일명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2 영화
부러진 화살 (2012) Unbowed | |
감독 | 정지영 |
각본 | 한현근, 정지영 |
출연 | 안성기, 박원상, 나영희 김지호 등 |
장르 | 법정 |
제작사 | 아우라 픽처스 |
배급사 | N.E.W |
촬영 기간 | 2011년 3월 13일 ~ 2011년 5월 17일 |
개봉일 | 2012년 1월 18일 |
상영 시간 | 110분 |
총 관객수 | 3,460,185명 |
국내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2.1 개요
1의 르포를 영화화한 작품.
감독은 <하얀전쟁>, <남부군>의 정지영. 주연은 안성기, 문성근, 박원상. 2012년 1월 18일 개봉. 배급은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2.2 예고편
▲ 티저 예고편 |
▲ 메인 예고편 |
2.3 시놉시스
“이 남자의 분노에 주목하라!”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 김경호 교수.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하기에 이른다. 격렬한 몸싸움, 담당판사의 피 묻은 셔츠, 복부 2cm의 자상, 부러진 화살을 수거했다는 증언… 곧이어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사법부는 김경호의 행위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로 규정, 피의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그러나 피의자 김경호가 실제로 화살을 쏜 일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하면서,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 같았던 재판은 난항을 거듭한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법정, 엇갈리는 진술! 결정적인 증거 ‘부러진 화살’은 행방이 묘연한데... 비타협 원칙을 고수하며 재판장에게도 독설을 서슴지 않는 김경호의 불같은 성격에 변호사들은 하나둘씩 변론을 포기하지만, 마지막으로 선임된 자칭 ‘양아치 변호사’ 박준의 등장으로 재판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데...
상식 없는 세상에 원칙으로 맞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2.4 등장인물
김경호 (안성기) |
박준 (박원상) |
김경호의 아내 (나영희) |
장은서 (김지호) |
2.5 흥행 및 평가
80년대 말, 90년대 초 사회성 있는 작품을 냈으나 <까>, <블랙잭>등 태작을 내서 오랫동안 메가폰을 잡지 못한 정지영 감독의 복귀작으로 개봉 후 실제 사건이 논란이 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 정지영의 페르소나인 안성기가 주연으로 나온다.
영화 자체 완성도는 안정적인 연출력과 주연 안성기의 호연으로 괜찮게 나온 작품이다. 하지만 별개로 왜곡이 심하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극단적으로 메시지에 초점을 두고 있고 극적 효과를 위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왜곡해 놓았기 때문에 실제 사건과는 거리가 있어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 교도소에서 교수가 청년막 상실하는건 왜 넣은거야 교도관!!교도관!!우우우웁!!!![1] 자세한 내용은 판사 석궁 테러 사건 참조.
어찌됐든 당시 개봉 이후 손익 분기점을 금세 넘어서고 계속해서 흥행하였다. 2012년 1월 31일 기준으로 200만 돌파기사 그리고 2012년 2월15일 300만 명을 돌파했다. 최종 관객 수치는 전국 342만.
정지영 감독 자신도 UIP 직배 영화 반대의 일환으로 극장에 뱀을 풀어 놓은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켜서 처벌받은 경험이 있고 이 때 자신의 저항에 대해서 처벌한 사법부에 대한 원한으로 이 소재에 애착이 갔던 것도 사실.[2]
그것이 알고 싶다 2012년 2월 18일자 방송에서도 실제 사건과 영화에 대해 다루면서 영화가 불러 일으킨 사회적 현상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평론가 진중권이 이 영화를 보고 혹독하게 비판했는데 대충 이런 요지였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실화 운운한다면 나에게 5대 0으로 참패한 1998년 월드컵의 한국-네덜란드 전 영상을 가져다 달라. 5분 분량으로 편집해서 한국이 리드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5대 1로 진거였다면 아예 이긴 걸로 만들 수도 있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위의 논란을 무시한 체 김 교수를 일방적 피해자로 만든 것을 지적한 것이다.
2.6 외부링크
2.7 인터뷰 모음
- ↑ 애당초 당 사건의 중심은 부러진 화살이 아니라 교수로서의 품성과 자질이었다고 한다.
- ↑ 영화 시장 개방 이후 한국 영화 점유율이 급속히 떨어지게 된 건 사실이고, 현재처럼 한국 영화 점유율이 할리우드 영화랑 비슷한, 혹은 넘어서는 수준이 된 건 1999년 이후지만 그건 이 기사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당시 한국 영화계가 투자 등에 인색하고 낙후되어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뭐, 당시 영화 배급사들이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수입 영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하고 국산 영화는 최소한으로 상영시키는 편법을 써서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1993년도부터 한국영화 점유율이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