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석궁 테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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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7년 1월 15일,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1]에게 석궁을 쏘아 부상을 입힌 사건.

2 사건 일지

이 내용은 영화 《부러진 화살》의 팜플렛에 나온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 1995년 1월,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 대학별 고사 수학 출제 문제 오류 지적 및 시정 요구
  • 1995년 10월, 부교수 승진 불합격 판정 후 지위 확인 소송 제기
  • 1996년, 성균관대 재임용 탈락 확정
  • 1997년, 부교수 지위 확인의 소 항소 기각 및 상고 기각
  • 2005년 3월, 교수 직위 확인 소송 제기
  • 2005년 9월, 교수 지위 확인의 소 기각
  • 2007년 1월, 교수 지위 확인의 소 항소 기각
  • 2007년 1월 15일, 석궁사건 발생
  • 2007년 10월 15일, 징역 4년 실형 선고
  • 2007년 11월~2008년 3월, 석궁 사건 항소심 1차~5차 공판
  • 2008년 6월 12일, 대법원 석궁 사건 상고 기각
  • 2011년 1월 24일, 만기 출소

3 사건 배경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우선 사건의 배경이 되는 2개의 사건을 알아보아야 한다.

3.1 성균관대 본고사 문제 사건

서울대 졸업 후 미국 미시간대에서 1988년 박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1991년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었으나, 1995년 1월 본고사에 출제된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후 승진에서 탈락하고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1996년 2월에는 재임용에서 제외되었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전 교수는 성균관대 측에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심과 2심에서 연달아 패소하였다. 당시 학교측은 해교(학교에 해를 끼침) 행위와 연구 소홀 등을 재임용 탈락 사유로 들었으나, 본인은 “출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학교측이 자신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998년 이민을 떠난 김 교수는 뉴질랜드미국(2001년 재이민) 등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지냈다. 보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내가 베이비시터 등 궂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3.2 교수지위 확인 소송 사건

3.2.1 사건 개요

2005년 3월 귀국한 김 전 교수는 다시 ‘교수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그 해 1월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이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나 법원소송 제기도 할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었다.

1심 재판부는 “입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고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학교가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다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패소 판결을 받은 김씨는 변호사도 없이 홀로 즉각 항소했고 대법원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나, 서울고법 민사2부(당시 박홍우 부장판사, 주심 이정렬 판사[2]) 역시 2007년 1월 12일 김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4월 17일, 김씨는 ‘2006 형제24637 사건에 대한 맞고소 및 국제적 망신, 성대 입시부정 은폐방조하는 판사들 고소(직무유기 또는 직권남용)’라는 제목으로 재판관들을 향한 고소장을 냈으며, <20년간 양심적인 교수들을 대학에서 축출한 대법원의 재임용법 해석의 문제점>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서 국회 법사의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3.2.2 수학계의 시각

수학계에서는 김씨의 재임용 탈락에 대해 ‘올바른 문제제기를 했는데도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당시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89명은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성균관대에서 제시한 ‘모범답안’은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김씨의 이의 제기는 정당했으며 이를 둘러싼 갈등이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면 매우 잘못됐다.”라는 내용의 연판장을 당시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연판장에서 교수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정상급 저널에 3편을 내고 유수의 (응용수학의 한 분야인)수리물리 잡지에 논문을 발표한 연구실적을 낸 김씨가 탈락한다면 국내의 수학자 중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수 있는 수학자는 별로 많지 않으리라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의견”이라며 ‘연구 소홀’을 재임용 탈락 사유로 든 성균관대측을 압박하였다.

또한 세계 양대 과학학술지 중 하나인 사이언스(Science)에서는 <올바른 답의 비싼 대가>(The High Cost of a Right Answer)라는 제목으로, 수학 분야 국제학술지 매서매티컬 인텔리전서(Mathematical Intelligencer)에서는 <정직의 대가?>(The Rewards of Honesty?)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이 다뤄져 ‘한국 수학계에 자정능력이 없다’는 국제적 비판이 실리는 일도 있었으며, 첫 재판 당시 재판부로부터 전문가 의견을 요청받은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이 ‘의견을 낼 수 없다’고 회피하자 서지 랭 예일대 명예교수[3]와 마이클 아티야 에딘버러대 교수 등 세계 수학계의 거장들이 항의성 서한을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김씨 재임용 탈락 당시 연판장에 서명했던 한 교수는 “부당한 해직을 당했는데도 침묵하는 학계 풍토와, 이를 구제해 주지 않는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과 좌절로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싶다”며 김씨에게 동정론을 폈다.

3.2.3 판례의 시각

김씨의 재임용 탈락이 단순히 본고사에 출제된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수학문제로 인해 징계를 받은 것은 사실이며, 이것이 재임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판시하기를 김 전 교수의 위 대학별입학고사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원고에 대한 징계처분, 부교수 승진 탈락 및 이 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위 원고가 위와 같이 대학교원으로서 갖추고 있어야 할 품성과 자질을 지니고 있지 못한 이상 그러한 사정을 들어 이 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이 부당하다 할 수 없다. 즉, 본고사 오류지적의 옳고 그릇을 떠나 사학의 교수임용 재량권을 확인해준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측의 평가기준인 교육자로서의 품위와 자질을 평가하는 방법이 옳으며, 이에 따라 김 전 교수의 임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4]

다음은 판시에서 인정한 부분이다.

  • 원고는 외부연사 강연 후 다른 수학과 교수들에게 ‘원로교수들은 학생들이 포기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 학과교수회의석상에서 선배이자 원로인 교수에게 ‘당신 전공은 학과를 위해서 별로 필요가 없고 만일 대학원 학생을 위한다면 내가 당신 과목을 다 강의할 수 있으니 걱정말라’고 말하고, 이어 원래 있었던 전공과정을 없앨 수 없다는 원로교수에게 ‘말 같지도 않는 말 하지 말아요’라고 대응하였다.
  • 본인이 담당하던 위상수학 II과목의 수강신청자가 최소수강인원인 10명에 미달되어 폐강의 위기를 맞게 되자, 수강신청만 해 놓으면 B학점은 보장할 테니 많이 신청하고, 졸업시험에 출제할 것이니 많이 홍보하라는 말을 하였다.
  • 위 학생들 중 홍보를 담당하던 학생은 위 과목의 수업에 전혀 출석하지 아니하고도 최고점인 A+학점을 주었다.
  • 수업시간 중 학생들에게, 위 입학시험 문제출제 관계자를 지칭하여 그런 씨팔놈이 어디 있느냐는 말과 전철에서 노약자나 애기와 동행한 엄마에게 절대로 자리를 양보하지 말라는 말을 하였다.
  • 수업시간 중 시위로 인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자 저런 새끼들이 학생이냐, 저런 놈들을 총으로 쏴 죽여 버리고 싶다라는 말을 하였고, 수업 중 공공연히 ‘내가 내년에 학과장이 되면 과내 모든 써클을 없애버리고, 학생회도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
  • 수업 중 성균관대학교 출신 교수들을 대상으로 그런 사람이 무슨 교수냐는 말을 하고, 수업시간 중 교생실습은 본인들이 공부가 하기 싫어서 나가는 것이니 나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수업 중 ‘애가 어렸을 때 잠자는데 울길래 패버렸다’, ‘취직은 나와 상관없다. 어느 회사에 합격을 하더라도 내가 졸업 안 시키면 못하는 거다. 맘대로 해라’,‘성대 대학원에는 오지말라’고 말하였고, ‘성대 수학과 대학원생들은 쭉정이들이다’라고 말하였다.
  • 다른 교수의 추천서를 받으려는 학생에게‘다른 교수에서 추천서를 받으려면 나에게는 받을 생각 하지 말고 나에게 추천서를 받으려면 저쪽을 받지마라'고 했다.
  • 학교 수학과 동아리에서 학생들에게 씨팔놈, 개새끼라는 욕설을 하였다.
  • 교수모임 자리에서 동료교수에게 ‘성대 대학원에 오면 무엇 하나 취직도 못할텐데’라는 말을 하였고, 1994년도 학기초에 위 학교 신임교수로서 부임인사차 방문한 다른 교수에게 ‘성대 수학과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대학원 수업에도 문제가 있었다.
  • 1991년 부터 1995년 경까지 대학원생들에게 박사과정을 1명도 지도할 계획이 없다고 공언하고, 실제로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학생을 1명도 지도하지 않았다.
  • 배정된 석사과정 학생 중에서도 1명만을 지도하였으며, 우수한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보내는 행위를 하였다.
  • 1992년 학과장에게 ‘앞으로 학과교수회의에는 참석 않을 것과 학과의 작은 일에는 모두 열외시켜 달라’는 통보를 한 이래, 위 학교 전체교수회의를 비롯한 학과교수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아니하였다.

진작에 짤리지 않은게 신기하다.

그러므로 위 김씨가 학자로서는 유능한 인물일지 몰라도 교수라는 직함을 달기에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보여지므로,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 원인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으나 대학교수로서의 품성과 자질을 지니고 있지 못하므로 성균관 대학교의 재임용거부결정을 부당하다고 할 수없다는 판시했다. 즉 1991년에 임용된 이래 1995년까지 언행과 업무상에서 문제를 일으킨 부분이 사실로 확인되었으며, 임용권 행사는 정당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문제를 일으킨 김 교수의 언행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묵인해오다가[5] 본고사 문제를 지적하자 그제서야 문제 삼아 재임용을 탈락시킨 성대의 행동을 치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6] 객관적으로 김 교수가 인격적인 면에서 교수의 자격에 크게 벗어났던 것은 사실이므로 법적인 잘못은 없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1월 25일 공개한 이정렬 판사의 발언에 따르면, 본래는 만장일치로 승소판결을 내려고 했으나 김 교수의 청구에서 "1996년 3월1일자 재임용 거부를 무효로 한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법정공휴일인 삼일절에 처분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심리를 재개하였다고 한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항소심에서 "삼일절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왜 공휴일이니까 쉬었거든! 그러니까 김씨의 말은 거짓말이다!"라고 학교 측이 주장한다면 김씨의 주장이 "사실관계 위반"으로 파기당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사건 발생

2007년 1월 15일 오후 6시 30분, 패소 판결을 알게 된 김씨는 석궁과 석궁화살, 회칼, 노끈을 가지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박홍우 판사의 집을 찾아갔다. 판사는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씨는 석궁을 들이대며 판사를 습격하였다.

김씨가 쏜 화살에 맞은 판사는 김씨와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김씨는 판사의 몸 위에 타고 올라 죽여버린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판사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아파트 경비원과 판사의 운전기사가 달려와서 다시 석궁을 장전하려 했던 김씨를 제압했다.

박 판사는 경비원에게 신고하라고 하면서, 아파트에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10분 쯤 뒤에 내려와서 119 구조대의 구급차를 타고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갔다. 붙잡혀 있던 김씨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5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

5.1 재판의 과정

링크된 판결문과 녹취는 그대로 스캔되어 올라가 있거나 기자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므로 그것만 보면 된다.

김씨는 상해죄와 그 동안 1인 시위를 거치면서 여러 판사들에게 실명으로 퍼부은 욕설과 비난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었으며, 1심에서는 박찬종 전 의원과 이기욱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다.

김씨는 공판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물의를 일으켰다. 판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며 판사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으며, 개판같은 재판이라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김씨를 옹호하는 방청객들은 여러 차례 재판정에서 소란을 피워 퇴장 명령을 당했다.

결국 5번째 공판에서 김씨는 이기욱 변호사를 해임하는 기행을 벌였고, 나머지 두 차례의 공판에서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출석하지 않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항소심에서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자인 박훈 변호사를 선임하여 재판을 진행했다.

5.2 판결례의 요약

자세한 항목은 대법원 2008.6.12. 선고 2008도2621 판결을 찾아보면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비전공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간단하게 개요를 덧붙인다.

우선 이해해야 할 부분은 이 판결은 대법원에 대한 항소를 기각한 판결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심 3심을 신청했지만 적절한 사유가 없어 각하되어 결국 형이 확정된 사건이다. 그런데 여기서 판결문이 공개된 것은 3심, 즉 대법원에서 기각된 판결만이 있기에 이를 기초로 설명한다.

여기서 여러 부분을 주장했지만 사실상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형사재판에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및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에 있어 합리적 의심의 의미 부분이다.

5.2.1 판사의 상처가 석궁화살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

증거를 정리해 보면 당시 목격자인 경비원은 두사람의 격투 직후 아랫배에 속옷에 피가 묻어잇는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고, 옷을 갈아입은 이후 구급대원이 상처가 있다고 증언했으며 병원의 진단서도 상처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피고인이었던 교수 역시 현장에서 상처를 보았다는 증언을 하였다. 복부 배꼽 좌측 부분에 길이 2㎝ 정도[7], 깊이는 근육층까지 뚫고 들어가 있는 상태의 창상이었다. 그리고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 흰색 와이셔츠에 혈흔이 있으며, 국립수사연구소의 유전자 분석 감정 결과, 피는 모두 동일인의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김씨는 이 부분에서 자신이 화살을 쏜 것은 사실이나 판사가 화살을 맞지 않았으며 판사는 자해를 하였고 위의 증거는 모두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증거가 없다. 농담이 아니고 애초에 김씨의 주장은 검사가 주장한 중간 와이셔츠에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고 부러진 화살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무효 → 따라서 검찰의 주장은 증거를 조작한 억지. → 결국 판사의 상처는 자해한 것이 틀림없다.는 주장뿐이다.

김교수의 주장대로라면 김교수와 박판사가 격투직후에는 상처가 없었으나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10여분 사이에 옷도 갈아입고 자해도 하고 다른 누군가의 피를 얻어와서 묻히고, 다른 여러곳에 전화도 하는 등 여러 조작을 하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근데 애당초 재판에서 이런 김교수의 추측이 무색한것이 이미 경비원의 증언에 의하면 피해자 측이 격투 직후 이미 아랫배을 아파하면서 속옷에 피가 묻어잇었다는 증언이 있다.[8] 즉, 사건 이후 아파트에 올라가서 자해한 후에 상처가 생긴게 아니라 격투에서 상처가 생겼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그 이후의 김교수의 이러저러한 추측보다 이것이 핵심적 증언이다.

게다가 부러진 화살이 증거로 없다는 주장 자체가 논점을 흐리는 주장이다. 부러진 화살의 유무와 상관없이 김씨가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이 명중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 가능하다. 목격자 및 자기 자신이 화살을 쏘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기에 전자는 이미 인정이 되며, 후자 또한 딱히 부러진 화살이 필요한 이유가 없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몸에 맞은 화살이 없어서 유죄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완벽한 헛소리이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살인자가 칼로 사람을 죽인 후 칼을 바다에 버릴 경우에는 어떤 증거가 있더라도 무조건 무죄가 된다. 실제로 이렇게 법을 적용할 경우 법규가 유명무실해질 수 밖에 없다.

형사 재판에서 살인 사건의 기본 성립 조건은 시신이다. 애초에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 살인인지 실종인지 알 수가 없고 사건 자체가 법정으로 가기가 힘들다. 즉, 시신 없이 살인 사건으로 유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혹은 시신이 있어도 재빨리 화장해 버리면 살인 증명이 힘들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시체 없는 살인 사건의 유죄는 거의 없다. [9] 이와 비슷하게 상해 사건이 성립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은 상처 입은 몸의 존재이다. 정확하게 는 상해 진단서가 핵심이다. 상해 사건에서 상해 진단서 없이는 죄가 성립하기 힘들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몸에 상처가 있었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했다. 살인 사건이나 상해 사건에선 흉기는 증거 중의 하나일 뿐이다. 살인 사건이든 상해 사건이든 흉기가 없어도 다른 증거가 있다면 얼마든지 유죄가 될 수 있다.

또한 석궁을 쐈는데 상처가 너무 작다는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1심 재판에서 이미 실험과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 증명된 사항이다. 당시 증인으로 나온 석궁 전문가는 석궁의 위력은 제대로 쐈을 경우에는 상당히 강력하지만, 초보자가 발사 과정에서 실수를 할 경우 상당히 약해질 수도 있다고 증언 하였으며 그것이 실험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그 예로 불완전하게 화살이 장착되거나 수직으로 맞은 게 아니라 비스듬히 화살을 맞은 경우 등이 거론되었다.

이에 대해 김교수 측은 화살이 비스듬히 맞을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고, 그 이후 이 문제에 관해서도 수많은 인터넷과 영화, 그것이 알고싶다 등에서도 비스듬히 맞을 가능성을 철저히 논외로 두었다. 그러나 현실과 실험은 명백히 다르다. 마치 마이클 타이슨이 무생물인 샌드백이나 펀치력을 측정하는 기계에서 펀치력을 측정하는 경우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주먹을 뻗을 경우의 차이와도 같다.

만약 마이클 타이슨같은 선수에게 정타로 한방 맞으면, 단 한방으로 대부분 기절하거나 죽게 된다. 그러나 천하의 마이클 타이슨이라도 권투 경기마다 단 한방으로 경기를 끝낸 경우는 없다. 살아있는 사람, 특히 권투 선수가 상대의 주먹을 호락호락 맞아줄까? 이와 같이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서도 발차기를 그렇게 날려도 얼굴에 정확히 킥을 맞고 360도 회전하면서 ko당하는 장면은 거의 안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의식 중에서라도 어떤 식 으로든 방어를 한다. 즉, 눈앞에서 석궁 들고 위협하다가 결국 화살이 날아오는데 마네킹처럼 피하지 않고 차렷 자세로 화살을 맞는 경우는 현실에선 없다.

김교수의 재판 기록에서도 본인이 석궁 발사 연습 할때 맞는 위치나 각도에 따라 꼽히기도 하고 튕겨 나오기도 했다고 발언한 바가 있다.

재판 과정이나 SBS방송 등에서는 석궁 발사 실험을 할 때 별 생각 없이 정면으로 화살이 맞는 경우를 상정하고 실험하였다. 죽은 돼지고기에 화살이 정면으로 꽃혔을때 얼마나 관통 하느냐 를 실험한 것이다. 그러나 수직이 아닌 기울어진 각도로 화살이 맞으면 충격이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다고 전문가가 증언 하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1.5미터 거리에서 맞출려면 화살이 날아오는 각도가 거의 수직일 수밖에 없다며 반박하는데, 화살이 수직으로 날아와도 맞는 사람의 몸이 앞으로 굽혀져 있는 상태거나 혹은 옆으로 돌아간 상태면 화살이 맞는 면이 수직이 아닐 수 있다.

사실 가슴을 펴고 정면으로 화살을 맞았다면 몰라도 누구나 싸우는 상황이나 앞에 흉기를 든 사람이 있는 상황이면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고 움추려 몸을 굽히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화살을 맞아도 수직이 아닌 기울어진 각도로 화살이 몸에 도달하게 된다.

게다가 정면으로 서지 않고 옆으로 약간 돌아있는 상태라면 더욱 더 기울어진 상태로 화살을 맞게 된다. 태권도에서 대련 할 때나, 권투나 유도같은 격투기의 시합 화면을 유심히 보면 항상 정면으로 사람이 서 있지 않고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자세로 싸운다. 즉, 애시당초 마네킹처럼 정면을 향한 자세를 설정한 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가정이다.

게다가 누구든지 손에 바늘로 살짝 찌르면 손을 떼어내듯이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에도 몸을 뒤로 빼고 옆으로 비트는 동작으로 회피하게 된다. 마치 권투에서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도 몸을 흔들며 충격을 분산시키면 충격이 상당히 흐트러지는것과 같다. 즉, 마이클 타이슨의 무쇠주먹이라 해도 정타로 맞지 않고 살짝살짝 비켜맞으면 데미지가 적다. 권투선수조차도 움직이지 않는 샌드백은 거의 매번 정타를 칠 수 있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매번 정타를 칠 수 없다. 얼굴에 맞긴 맞았는데 비켜 맞을 경우와 정타로 맞을 경우의 충격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재판과정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어도 자세히 거론되진 않았지만 죽은 돼지고기를 놓고 화살을 쏘는 실험이 많은 것을 증명 할 수는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고정된 과녁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1심 재판의 실험에선 석궁으로 상처가 생기면 더 커야 한다. 그런데 피해자의 상처가 작다는 게 의아 스럽다'고 의문을 제시 한 것이다.
그러나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선 새롭게 실험했는데, '인체라면 석궁이 튕겨 나온다 (즉, 상처가 아예 안생긴다)'는 흠좀무한 결론이 나왔다. 즉,
사용된 석궁은 수렵용이 아니기 때문에 석궁에 맞아서는 상처가 안 생기는데 상처가 생겼으면 허위라는 것이다.[10]
파일:Attachment/판사 석궁 테러 사건/Example1.jpg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실험내용


즉, 재판 과정에서 나온 전문가 실험과, SBS 석궁 실험의 결과가 정반대이다.

어쨌든 석궁 관통 실험은 실험 방식에 따라 결과가 판이 하게 나온다는 건 분명한 듯 보인다. 실험 방식에 따라 화살의 위력이 다르고, 맞는 사람의 서있는 자세와 회피 동작에 따라서도 상처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김명호 본인의 검찰 증언에서도 석궁 쏠때마다 여러 상황에 따라 꼽히기도 하고 튕겨 나오기도 하는 등 석궁은 위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11]
파일:Attachment/판사 석궁 테러 사건/Example2.jpg

김명호 본인의 검찰 증언

화살이 실제 인체에 맞았을 때 어느 정도의 상처를 낼 것인가는 함부로 예단하기 힘들고 석궁실험 만으로는 상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는 힘들다.

결국 피해자 몸의 상처 크기를 통해서 그것은 석궁으로 인한 상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김명호 피고인 측의 주장은 무게가 많이 약해지는것이다.

그리고 와이셔츠의 혈흔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분석 감정 결과 다른 옷에 묻은 혈흔과 동일한 DNA가 검출되었다고 한다.# 항간에 널리 퍼진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다는 주장은 거짓인 것이다.
파일:Attachment/판사 석궁 테러 사건/Example5.jpg

그리고 또 하나의 논란은 혈액의 진위 여부이다. 기본적으로 알아 둘 것은 김교수가 피해자인 판사의 복부상처 자체는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그 상처가 자해일 것이다 라고 추정할뿐. 격투 직후 잠시 집에 갔다 온 후 복부에 작은 상처를 봤다는 증언을 김교수가 직접 재판 장 에서 했다.[12] 즉, 박 판사의 상처 자체는 인정하지만, 피는 인정 못한다는 것이다. 박판사가 자기 몸에 상처가 있으면서도 피는 굳이 다른 사람의 피를 구해서 묻혔다 는게 김교수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기술했다시피 상해 사건의 기본 요소는 상처 입은 몸과 상해 진단서이다. 피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상처가 있으면 됐지, 피가 적든 많든 그건 상해 사건에선 큰 의미가 없다.실제 석궁에 의한 상처든 교수의 주장대로 자해로 입은 상처든 간에 상처가 있는 이상은 조금이라도 피는 있을 것이고 상해 사건에서 조작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부러진 화살 영화에서도 잘 나오듯, 김교수와 변호사는 혈액이 피해자의 것인지 국과수에 문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그걸 받아줄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 이다. 재판을 10년, 20년 할 것도 아니고 재판에 필요한 것만 검사를 할 뿐 해달라는 걸 무조건 다 해줄 수는 없다.

혈액 검사나 DNA검사는 범인이 누군지 모를 경우에 누가 범인인지 밝혀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폭행 당하고 죽은 여성의 경우, 범인이 누군지 모를 때 범인을 확정하기 위해서 정액과 혐의자의 DNA를 비교한다. 혹은 폭행 사망 사건에서 살인자가 피를 흘리고 도망갔거나 피해자의 손톱에 살인자의 살점이 남아있을 경우 혐의자의 DNA와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폭행 사건이나 상해 사건인 경우 현장에서 범인이 체포되고 실제로 상해를 입은 사람이 있고 그 몸에서 피를 흘리는 게 확실한데, 옷에 묻은 피는 다른 사람의 피 일거라고 의심하여 DNA검사를 하는 경우는 없다. 영화에선 혈액 검사를 무조건 하는 게 기본인 것처럼 나오는데 사실 기본이라 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친구와 술을 먹다가 기분이 상해서 치고 받고 싸우다가 상대가 코피도 나고 내가 휘두른 맥주병으로 인해 상대 몸에 상처가 생기고, 옷에 피도 묻으면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그 피가 본인 건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 혈액 검사를 하지 않는다. 폭행 사건에서 혈액 검사는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다.

더 웃긴것은 김교수측에서 1심재판당시에는 혈액의 진위여부는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2심재판당시에 혈액의 진위를 가려달라고 요구한것이다. 만약 혈액검사가 필수이고, 혈액의 조작이 의심스럽다면 왜 1심부터 적극 요구하지 않았을까. 2심때는 1심과 별반 달라진것도 없이 느닷없이 혈액검사를 요구한것이다.

물론 혈액검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해도, 담당 변호사가 논리적으로 필요성을 주장하면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재판에서 담당 변호사는 논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자해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변호사측의 주장이었으나,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원인이 석궁이든 자해든 간에 상처와 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당시 판사의 몸에 상처가 있었다는 건 김교수의 증언에서도 분명하고 상처가 생기면 피는 반드시 나온다. 자기 몸에 상처와 피가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의 피를 구해와서 묻혀야 할 이유가 없다. 자해 상처에서 피가 조금 나왔으면 옷에 피를 조금만 묻히면 된다. 굳이 피를 많이 묻혀야할 이유가 없다. 피는 상해 사건에서 중요치가 않다. 피를 보고 진단서가 발급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의 피일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판사에게 이야기하고 검사를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자해 가능성은 피검사를 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정말로 자해인 경우 피검사를 통해 다른 사람의 혈액이 발견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피검사를 통해서 자해임을 증명할 수는 없다. 자해이든 화살의 상처이든 동등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재판부가 정상이고 피고와 변호사가 비정상이다.[13]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경비가 이미 교수가 격투 직후 아랫배를 움켜쥐고 피가 나는 걸 봤다고 주장했다. 물론 김교수는 격투 직후에 피를 못 봤고 집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상처를 봤다고 했다. 즉, 집에 들어가서 자해하고 나왔다는 이야긴데, 그리고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서 병원에서 치료 받고 진단서 까지 나왔다. 어쨌든 상처가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나온 내용을 보면 옷에 화살 구멍 위치가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라 자세나 여러 상태에 따라 구겨지기도 하고 헐렁하기도 해서, 몸싸움이나 계단 위에서 내리 쏘거나 하는 경우 같은 위치에 정확히 옷 구멍이 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김교수가 격투 과정에서 화살을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옷이 무슨 레슬링 복처럼 몸에 딱 달라붙지 않는 이상 같은 위치에 구멍이 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부러진 화살의 존재 여부도 사실 확실하지 않다. 박판사가 애초에 병원에 실려갈 당시 구급 일지에 석궁 화살을 맞았고 부러졌다 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이 구급 일지에 실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박판사는 그 이후 화살에 맞고 뽑아냈을뿐 부러지지 않았다 라고 주장했다. 근데 김교수는 구급 일지에 실려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부러진 화살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데, 애당초 박판사의 주장이 두 가지다. 그 두가지 주장이 상반되는데 첫번째 증언 만을 옳다고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재판에서 증인이 과거에 어떤 말을 했지만, 재판장에선 그 말을 뒤집었다면 그 증인의 증거 능력이 약화 되는 것 이지, 무조건 과거 발언을 사실로 믿고 판결 내려야 할 이유가 없다. 즉, 박판사의 말이 바뀐 건 박판사의 다른 증언의 신뢰성 저하로 이어지는 것이지 그 중에서 첫번째 발언을 골라서 믿어야 할 이유가 되는건 아니다.
게다가 그 상반된 여러 증언들이 있다.
그 당시 검찰에서 부러진 화살을 수거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최초로 출동한 경찰은 부러진 화살을 보지 못하였다고 했고, 경비원 등 여타 증인들은 부러진 화살을 봤다고 증언했다가 최근에 한겨레 인터뷰에서 사실 못 봤다고 주장했다. 한겨례 기사즉, 여러 논란이 있지만, 부러진 화살이 있었다고 재판부에서 단정할 이유가 없다. 또한 위에서도 서술했다시피 부러진 화살이 실제로 있었다 그 화살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유죄가 나올수 있다.

즉, 관련 증언이 여러가지인데., 김교수측에선 본인에게 유리한 증언만을 골라서 증거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에서 판사가 여러 증언중에서 특정 증언만 사실로 믿어줄 이유는 없다. 정반대의 증언이 나왔으면 둘다 증거능력이 약해지는것이지 그 중에서 특정 증언만을 믿는 판사는 있을수없다.

재판부는 어떤 특정 증거가 제출되었다면 그 증거로 판단하고, 제출되지 않았다면 그냥 그 증거 없이 재판 하는 것 일뿐 그 이상은 재판부의 권한 밖이다. 김교수 측은 부러진 화살을 경찰이나 검찰이 고의적으로 숨겼다고 추측하는데,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숨겼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재판부에서는 제출된 증거로만 판단할 뿐 경찰이나 검찰이 증거를 숨겼다는 가정해서 재판하진 않는다. 만약 정말로 검찰이나 경찰이 증거를 숨겼다는 게 의심되면 검찰 경찰을 따로 고발해서 따로 재판을 받아야 할 것 이다. 게다가 재판결과와는 무관하지만, 검찰이 부러진 화살을 정말 숨길 가능성이 있을까? 피해자의 옷에 묻은 피조차 다른 사람의 피라고 주장하는 김교수의 논리로 생각하자면. 검찰이 그렇게 대놓고 조작할거였으면 부러진 화살을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 부러진 화살에 피해자 피가 안묻어서 증거능력이 없어서 숨긴거라면, 피해자의 피를 차후에 묻히면 되는거 아닌가. 김교수 논리대로면 조작쟁이 검찰이 그 정도도 못하나??

그리고 김교수의 증언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발사된 화살이 피해자에게 맞았는지 안 맞았는 지를 자기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김교수 조차도 그냥 추측일 뿐 자기 눈으로 확고하게 확인한 적이 없다. 즉, 애초에 본인의 화살이 안 맞은 걸 자기 눈으로 보고 그것에 확신이 차서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닌데 화살이 안 맞았다고 확신하고 달려드는 것이다.

5.2.2 고의로 판사를 공격했는지에 대해서

김씨는 피해자에게 석궁을 고의로 발사할 생각은 없었고 위협만 할 생각이었는데 몸싸움 과정에서 실수로 석궁이 발사되었다고 주장한다. 원래 고의라는 것은 직접적인 증거가 있을 수 없기에 간접적인 증거로 인정되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명확하게 인정되기는 어렵지만 이 사건에서는 명확하다고 볼 만한 부분이 있다.

김씨는 석궁을 구입한 다음 1주일에 1회 정도 60, 70여 발씩 석궁을 발사하는 연습을 하였고, 사건 당일 전까지 약 7회에 걸쳐 피해자의 거주지 부근을 찾아가 거주지 및 귀가시각을 확인했으며, 판사를 위협할 때 굳이 석궁의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은 채로 협박을 했다. 그리고 이 사건 직후에 목격자들에 의해 피해자로부터 격리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석궁에 화살을 장전하려고 시도하였다가 목격자들에 의하여 제지당하고 석궁을 빼앗겼다.

게다가 김씨는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노량진에서 전문조리사용 회칼을 구입하여 범행 당시 다른 것을 넣기 불편한 석궁가방에 노끈과 함께 가지고 있었다. 김씨는 노량진으로 이사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노량진으로 이사한다고 해서 이런 칼을 석궁가방에 넣고 휴대하고 다닐 이유도 없고 애초에 교수가 노량진으로 이사한다고해서 전문조리사용 회칼이 왜 필요하다는 것인가?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보면 고의로 판사를 공격했다는 혐의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영화 부러진 화살의 개봉에 따라서 김씨는 사법부의 증거조작과 무리한 법 적용을 주장하나, 최소한 판결문만으로는 김씨에게 내려진 판결은 전혀 문제가 없는 판결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6 의의

이 사건은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공격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피고인의 주장과는 다르게 판결 자체를 공격할 만한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으며[14] 해당 판사만을 노려서 공격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고 보인다. 다른 판사가 이 재판을 맡았다 해도 결과는 대동소이했을 것이라는 것.

그러나 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법감정은 이미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수준까지 떨어져 있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그 원인 또한 몇몇의 픽션이나 국민들의 무지 때문이 아닌 법조계 스스로의 자화상 때문이라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전관예우는 기본이요,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법조계의 몰상식과 후안무치함은 이미 '어떻게 판사를' 이라는 말을 너무나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

7 관련창작물

2009년에 출판된 소설부러진 화살[15]과, 동명의 영화 《부러진 화살》[16]이 있다. 영화에서는 안성기가 김명호 교수 역할로 출연하였다. 감독남부군, 하얀전쟁을 맡았던 정지영 감독이다.

2012년에 김명호 교수가 《판사, 니들이 뭔데?》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주장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8 기타

이 사건은 사건에 대한 판결 자체는 큰 문제가 없는데 그 사건을 일으킨 피고인의 행위가 충격적이어서 이슈가 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실제 사건과 차이가 있게 재구성 되었음[17]에도 많은 사람들이 실제 사건을 잘 모르고 이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18] 일각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보고 사법부를 불신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애초에 사법부가 국민의 법감정과 다른 판결을 자주 내려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자세한 이야기는 사법불신 항목을 참조할 것. 게다가 부러진 화살이 개봉하기 얼마 전에 도가니가 개봉되었고, 이쪽은 오히려 영화보다 현실이 훨씬 더 막장이었다. 이로 인해서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을 같은 관점에 놓고 보게 된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영화와 사실은 다르며, 이 사건에서는 사법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비록 영화에서 기존부터 사법부에서 존재해오던 악습을 많이 담아내려 노력하였고 분명히 그 중에서 귀 담아 들을 부분도 있지만, 제대로 된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영화를 맹신하여 김씨의 무죄를 주장한다던가, 김씨를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싸운 영웅이라는 식으로 우상화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영화가 크게 흥행하자 경찰청에서는 모방범죄를 우려하여 전국의 석궁을 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9 관련링크

9.1 기사

9.2 홈페이지

9.3 기고문

9.4 방송

  1. 2011년에는 의정부지법원장, 2016년 대전고등법원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함
  2. 가카새끼 짬뽕을 말한 그 판사 맞다.
  3. 수학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라면 한번쯤은 봤을 그 두꺼운(…) 대수학 책의 저자 그분 맞다.
  4. 원본 판례는 http://glaw.scourt.go.kr/jbsonw/jbson.do 에서 2005나84701을 검색하면 볼 수 있다.
  5. 실제로 그는 학과장으로 추천된 적도 있다.
  6. 다만 이에 대해서는 계약 기간 중에 문제를 일으키느니 재임용 거부로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성대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7. 이것을 깊이 2㎝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상처의 정확한 깊이는 알 수 없다. 의사가 일부러 상처를 파 후비고 자 넣어서 깊이 재어보는 사람도 아니고.(…)
  8. 경비원 김씨는 기자와 만나 “박 판사가 집으로 올라가기 전 왼쪽 아랫배를 움켜쥐고 있기에 ‘어디 다쳤냐’고 물은 뒤 살펴보니 속옷에 동그랗게 피가 묻어 있었다. 상처가 난 것 같기에 내가 직접 구급차를 불렀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잠실지구대 이 아무개 경위도 “저녁 7시가 막 되기 전 현장에 도착했는데 박 판사가 7시 정각 즈음 아파트에서 내려오는 걸 봤다. 10~20분 사이에 자해를 하고 옷까지 갈아입고 나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1]
  9. 부산 시신 없는 살인 사건, 산낙지 보험 사망 사건 등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가지 사건은 시신은 있지만 단지 그 시신이 화장되어서 살인인지 여부를 판단하지 못 할 뿐이다. 아예 그 사람이 없어져서 생존 여부를 모른다면 실제로는 죽었다 손 치더라도 살인 유죄가 거의 불가능하다.
  10. [2]
  11. [3]
  12. [4] 피고인: 그것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그것을 그때 본 것이 아니라 그때는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우당탕탕 하고 둘 이서 같이 계단 6-7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먼저 경비원이 왔고 운전수가 와서 붙잡혀 있을 때 박홍우가 자기 집에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내려와서 지구대나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옆에 서있었습니다. 저는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옆에 서있었는데, 오는 사람이 지구대 인지 경찰 인가가 어디 다쳤냐고 물어보니까 이렇게 들춰줬어요. 그때 봤을 때 왼쪽 복부에 동전만한 빨간 것 그게 보였다는 얘기입니다. 발사된 순간을 본 게 아니라, 그때 는 이게 완전히 빗나갔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 하면 실랑이 중에 발사가 됐기 때문에 맞았으면 분명히 비명이나 석궁 잡고 있는 힘이 약해 졌을텐데 그런 것이 없이 계속 밀고 당기고 했기 때문에 이거 완전히 빗나갔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죠. 그랬다가 나중에 박홍우가 옷을 갈아입고 양복을 벗고 파카 같은 것을 입고 서서 지구대가 왔을 때 보여줬을 때 하얀 바탕에 빨간 동전만한 크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까징끼인지 빨간약인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13. 실제 재판 기록
  14. 현재 피고인을 지지해 주는 전문가는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
  15. 작가는 서형. 서형이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필명이며, 본 책은 절판되었다가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2012년 1월 27일에 재출간된다.
  16. 영제는 ‘unbowed’인데, ‘부러진 화살’이라는 뜻의 <브로큰 애로우>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고, 굽힐 줄 모르는(‘unbowed’에는 ‘패배하지 않는’이라는 뜻이 있다) 주인공의 캐릭터에 잘 맞아 이렇게 정해졌다고 한다.
  17. 대부분의 쟁점이 1심에서 이미 끝났음에도, 영화는 1심을 거의 묘사하지 않고 항소심에 더 중심을 두고 있으며 주인공은 뜬금없이 교도소에서 강간을 당한다.
  18. 여기에는 영화를 편향된 관점으로 찍어 놓고 사회비판 취지를 담았다는 감독의 주장이나 김교수 측 변호사의 말만 듣고 작성한 기사를 진실처럼 내보내는 일부 언론의 태도도 일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