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 문서: Operation Crossroads, 핵실험/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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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지밥의 탄생
당시의 사진(참고로 이 사진은 2번째 핵폭탄 Baker의 폭발 장면이다)
1 개요
1946년 7월 1일 미국의 비키니 환초로 알려진 태평앙의 마셜 제도 해역에서의 세계 최초 '원자폭탄투하' 공개핵실험이다.
비키니 섬, 정확히는 비키니 환초(Bikini Atoll)는 서태평양 오세아니아 중 미크로네시아의 마셜 제도 북부에 있는 환초이다.
랄리크 열도(列島)에 속하며 북위 11 °35', 동경 165 °25'에 위치한다. 비키니·에뉴·나무 등 약 20개의 환초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에 둘러싸인 초호(礁湖)는 길이 34km, 너비 17km에 달한다.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며 유명한 휴양지가 될 수 있었던 이 섬의 운명은 1946년 미국의 원자폭탄 실험으로 한순간에 뒤바뀌게 되었다.
2 핵실험
미국은 비키니 섬과 에니웨톡 섬의 주민을 강제로 몰아내고 1946년 7월부터 1958년까지 모두 23차례의 핵폭탄 실험을 실행했으며 그중 1954년에 행해진 수소폭탄[1] 실험들(캐슬 브라보)에서는 섬 3개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섬이 통채로 증발해버렸다.
1946년 섬에서 쫓겨나 난민생활을 하던 비키니 원주민들은 1974년 30여년만에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방사능 위험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지만, 방사능에 대한 공포보다 고향에 대한 열망이 더 컸던 몇몇 원주민들이 자의로 돌아오는것을 막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방사능이 기준치 이상으로 심각하게 농축되어 있다는 조사 결과가 속속 발표되었고, 결국 4년만에 비키니 원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섬을 떠나야만 했다.#
또한 1954년 비키니 섬의 수소폭탄 핵실험 때 발생한 낙진에 노출되었던 론게랍 섬의 주민들도 메자토 섬으로 이주,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10∼15년 정도의 기간 동안 비키니 섬을 정화시켜주기로 하고 핵무기 실험으로 야기된 반미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1억 5,000만 달러의 위탁기금을 적립했다
1989년 미국 대법원에서는 자유연합협정에 의거하여 "마셜 제도의 주민들은 피해보상을 목적으로 미국 정부를 고소할 수 없다" 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1990년 1월에 핵실험에 의한 피해자의 보상 문제를 심의하는 핵손해배상 재판소는 마셜 제도 주민들에 대한 추가 보상을 승인하여 1993년 중반까지 1억 1,200만 달러 핵실험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되었다. 1997년 드디어 첫 안전설이 나온지 30년만에 섬을 거닐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과일은 위험하단 이야기가 있다.[2]
여담으로 저기에 보이는 배들은 2차대전이 끝나고 난 후에 항복한 독일군과 일본군의 함선과 쓸모없어진 미군 함선들이다[3]. 핵실험 결과 미군은 '생각 외로 핵공격은 함대를 전멸시킬 피해를 주지 못한다' 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핵만능주의가 도래하자 핵폭뢰, 핵어뢰, 핵포탄, 핵대함미사일 같은 함선 공격용 핵무기들이 개발 되고 배치되었다.
이때 실험에 끌려나온 전함 중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구 일본군 전함으로서는 전쟁 후 유일한 생존 전함인 전함 나가토. 역시나 전쟁 후 유일한 생존 경순양함인 사카와와 함께 핵을 맞았는데, 둘 다 맞을 당일날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나가토의 경우 수주일 뒤 2차 실험에서도 '즉사' 하지 않다가 며칠 뒤 침수되어 서서히 침몰했다. 다만 유난히 내구력이 뛰어나서 그런 건 아니고 그나마 나가토가 다른 미군 전함들과 엇비슷한 내구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만든 다른 실험용 구식 전함들의 경우에 2번째 핵실험도 견뎌내고 다른 실험에 끌려나가 기어코 침몰한 케이스가 많고, 폭심지 중앙에 있던 1916년 건조된 네바다 호의 경우엔 상부 구조물만 붕괴되었으니...[4] 그 외에도 3번이지만 실질적인 미국의 첫번째 정규항모이자 최다 함재기 출격 기록의 새러토가, 독일 중순양함프린츠 오이겐 등 여러 귀한 함선들이 저 실험으로 갈려나갔다.
Operation Castle에서는 폭심에서 동쪽으로 160KM 떨어진 곳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 어선 "제5 후쿠류마루(第5福竜丸)"가 이 실험에 휘말려 선원 23명이 방사능 피폭을 당했다.
당시 부선장이었던 쿠보야마 아이키치는 6개월만에 세상을 떠났고, 이후 총 13명이 방사능 피폭 때문에 사망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나오게 된 영화가 그 유명한 고지라 시리즈이다. # 2014년 할리우드판 레전더리 시리즈 첫 작품에선 아예 새 고지라의 압도적인 내구력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상 이 실험이 사실은 고지라를 탄생시킨 계기가 된 핵실험이 아니라 핵실험을 위장해 핵폭탄으로 고지라를 죽이려다 실패(...)한 실전이었다고 한다.
저 충격적인 실험이 행해진 때에 마침 루이 레아르라는 디자이너가 노출도가 매우 심한 수영복을 디자인하고 핵폭탄급의 충격을 준다며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슷한 제품이 자크 앙(Jacque Hem)이라는 디자이너에 의해 만들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 디자이너는 수영복의 크기가 매우 작은 것을 원자 같다고 하여 이름을 아톰(Atome)이라고 붙였다. 아톰보다는 비키니의 충격이 더 커서인지 아톰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무대가 되는 비키니 시티는 저 실험이 행해진 군도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어쩐지 다들 맛이 갔더라 어쩌면 스폰지밥은 방사능의 무서움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참고로 저 1번째 핵폭탄 Able에 사용된 핵물질은 해리 K. 더그힐란 2세와 루이스 슬로틴을 죽인 바로 그 플루토늄 코어, 일명 "Demon Core"를 사용했다...
3 외부 링크
Operation Crossroads
A series of watercolour paintings
- ↑ 게다가 이때 사용된 수소폭탄이 수소 폭탄 겉에다가 우라늄으로 감싼 15메가톤짜리 3F폭탄이었다. 이게 폭발력 강화는 물론이거니와 방사능재를 사방에 뿌리는 매우 더러운 폭탄이었다. 이때문에 근처에 있는 마셜섬 주민 수백명이 몰살 당할 위기에 처해졌었고 아래에 후술된대로 일본 어선이 그 근방을 지나다 방사능에 피폭되었다.
- ↑ 게다가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이 고기를 안 잡다 보니 인근 바다는 상어 천지가 되어 해변에 수영하러 가는 건 위험하다고. ㅎㄷㄷ
- ↑ 미국 함선 90여척, 독일 함선 1척, 일본 함선 2척이 실험에 동원 되었다.
- ↑ 물론 이것도 네바다가 튼튼하단 이야기는 아니다. 폭심지에 있는 구조물은 오히려 잘 안 무너진다. 후폭풍의 영향을 수직으로만 받아서 생기는 일로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서도 폭심지 바로 아래의 건물은 기화해서 뼈대만 남을지언정 무너진 건물은 생각 외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