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슬로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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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Louis Alexander Slotin. (1910년 12월 1일 ~ 1946년 5월 30일)

제정 러시아의 박해로 캐나다의 매니토바주에 위치한 위니펙으로 이민한 유대인계 가정 출신의 평범한 캐나다물리학자, 화학자.
맨해튼 계획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제임스 에드워드 군처럼 위키러들의 관심을 끌 만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인물의 항목이 위키에 있는 이유는 슬로틴과 연관된 사고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심한 피폭을 받은 과학자 중 하나.

2 로스 앨러모스 핵실험 사고

사고가 난 곳은 로스 앨러모스에 있는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로, 원자력 관련 연구가 진행되었던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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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과학자들의 피폭량을 알아보기 위해 증언에 따라 사고상황을 재현한 그림이다.

1946년 5월 21일, 슬로틴과 그의 동료 7명은 중성자 반사재인 베릴륨으로 만들어진 2개의 반구로 각각 플루토늄 덩어리를 감싸고, 이들을 하나로 합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두 덩어리가 붙을 경우 연쇄반응이 일어날 정도로 적절한 중량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중에 이 플루토늄은 핵실험에 사용될 예정이었으므로 이런 확인이 필요했다. 임계에 이르지 않은 플루토늄 덩어리 자체는 체내로 들어가지 않는 한 치명적으로 위험하지는 않다. 그 이유는 자연상태에서 플루토늄은 알파붕괴를 해서 피부 각질도 관통하지 못하는 알파입자(헬륨 원자핵) 을 방출하기 때문인데, 문제는 이 알파입자의 에너지가 베타, 감마선보다 월등히 커서 체내에 들어가면 큰 피해를 입힌다.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은 조그만 플루토늄 덩어리를 가리키며 손으로 만지면 은근히 따뜻한 정도라고 한 적도 있다. , 물론 어느 정도의 방사능 차폐를 위해 은도금을 한상태로. 슬로틴은 엄지를 위쪽 구멍에 넣어서 왼손으로 위쪽 반구를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스크류 드라이버를 밀어넣어 반구의 높이를 조절하고 있었다. 이렇게 스크류 드라이버를 쓰는 것은 지침에 규정된 정식 방법이 아니었다. 사실 크고 작은 원자력 사고들이 대개 규정 위반으로 발생했다. 원래대로라면 두 개를 붙인 후 재빨리 떼어내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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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드라이버가 미끄러져나가면서 위쪽에 있던 반구가 덜컥 떨어졌다. 두 덩어리는 하나가 되었고, 임계량을 초과한 플루토늄은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이것을 재빨리 떼어내면 되는데, 둘 사이를 벌릴 드라이버가 빠져서 플루토늄을 떼어낼 방법이 사라졌다. 아이구 맙소사 우린 이제 죽었어 곧바로 푸른 빛과 열파가 방을 휩쓸기 시작했고, 슬로틴은 입 안에 시큼한 맛과 왼손에 작열감을 느꼈으며, 방 안의 동료 과학자들 역시 사색이 되어 공포에 질렸다. 드라이버를 다시 꽂아 들어올리면 되지 않았을까 싶었겠지만 플루토늄의 밀도는 19.8g/cm'3 으로 철 (7.85g/cm'3) 의 약 2.5배이다. 위와 같은 부피의 플루토늄은 수십 kg이 넘는 무게이고 이로인해 드라이버를 다시 꽂아 들어 올리는건 불가능 했을 것이고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어 성공적으로 떨어트려놓았더라도 고농도의 피폭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슬로틴이 위쪽 반구를 왼손으로 직접 들어내 바닥에 던졌다. 두 개의 덩어리가 분리되면서 연쇄반응은 중지되었고, 슬로틴은 동료들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슬로틴은 자신을 구할 수 없었다. 연쇄반응에 들어간 플루토늄을 맨손으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무려 21시버트라는 어마어마한 방사능 피폭을 당했다. 1시버트나 5시버트만 피폭되어도 죽느냐 사느냐 문제인데 이 정도로 피폭을 당한 사람은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슬로틴의 통증을 덜어주려고 시도하는 것 뿐이었다.

놀라운 것은 슬로틴이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한 가지. 슬로틴은 베릴륨 반구를 분리한 직후 동료들에게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것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실험실 바닥에 분필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을 그렸다. 위의 그림에서 각 인물의 위치가 정확히 표시되어 있는 것은 슬로틴이 그린 원 때문이다. 다른 과학자들을 위해 거리와 피폭량의 상관관계를 산출할 데이터를 얻기 위함이었는데, 죽음의 공포에 굴하지 않는 과학자혼이라 하겠다.

슬로틴은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방사능 피폭의 영향으로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동료들과 함께 병원으로 실려갔다. 동료들은 모두 살아났지만 슬로틴은 살아날 수 없었고, 집중치료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고 9일 후에 죽음을 맞이했다.

영화 "멸망의 창조 (Fat Man And Little Boy)", 1989에서 그려진 사고장면. 사고 경위가 잘 나타나 있다.

2.1 실험에 참여했던 다른 동료들

당시에 이 실험에는 루이스 슬로틴 외에 라이머 E. 슈라이버, 앨빈 C. 그레이브스, 스탠리 앨런 클린, 마리온 에드워드 클리스리키, 드와이트 영, 테오도르 펄만과 패트릭 J. 클리어리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 동료들의 피폭량은 각각 3.6시버트, 2.5시버트, 1.6시버트, 1.1시버트, 0.65시버트, 0.47시버트, 0.37시버트 (위에 열거한 이름순은 아니다) 이다. 대부분 회복했지만 슬로틴의 바로 뒤에 서 있었던 앨빈 C. 그레이브스과 슬로틴을 마주보며 가까이 서 있었던 드와이트 영은 급성 방사능 증후군을 보였고, 그레이브스는 몇 주간 입원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이 사고로 만성적인 신경질환과 시력문제를 얻게 되었으나 슬로틴과 달리 그레이브스는 살아남았다.

그레이브스[1]는 이 사고로부터 20년 후, 54세의 나이에 이 사고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클리스리키는 이 사고로부터 19년 후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42세에 사망하며, 영은 27년 후 재생불량성 빈혈과 세균성감염으로 83세에 사망한다.

로스 앨러모스 핵실험 사고가 그들의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라고 보는 의견도 있으나, 이 사고가 그들의 건강과 생명단축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허나 루이스 슬로틴이 그 자리에 있었기에 그들은 이 사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남은 시간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슬로틴이 이들을 피폭시킨 스크류 드라이버를 잡고있던건 잊은걸까

2.2 슬로틴 사후

이 사건은 처음에는 군 시설에서 일어난 일이라 기밀로 취급되었지만 슬로틴의 부모에게만은 사건 직후 아들의 예정된 죽음이 통보되어 임종 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세상에 알려졌으며 사람들은 슬로틴을 영웅으로 칭송하게 되었다. 슬로틴이 실험 중에 실수를 저질러서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사람을 시킨 것 자체가 문제였으며 결국 결자해지로 슬로틴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면서 타인을 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래는 Thomas P. Ashlock가 로스 앨러모스 타임즈에 기고한 시다. 시의 제목은 "Slotin - A Tribute"이다.

May God receive you, great-souled scientist!
While you were with us, even strangers knew
The breadth and lofty stature of your mind
Twas only in the crucible of death
We saw at last your noble heart revealed.

신께서 그대를 받아주실 것이오. 위대한 혼을 지닌 과학자여!
그대가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이방인들조차 알고 있었소
그대의 마음의 관용과 고결함을
죽음의 시련이 닥친 후에야
우리는 그대의 숭고함을 알게 되었소.

해리 K. 더그힐란 2세의 사고 등 몇 차례의 사고에 이 사고가 결정타를 먹여 미국은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기계를 사용하게 되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쓰는 나라근처에 있다. 공밀레 항목 참조.

이 사건 이후 슬로틴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는 원자력 사고를 다루는 소설이나 TV드라마에 종종 나오게 되었다.

슬로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도 있다. "루이스 슬로틴 소나타"라는 작품인데 사고 후 슬로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9일간을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는 보기가 힘든 작품이지만 대본은 아마존닷컴 등에서 입수할 수 있으니 흥미가 있다면 읽어보자.

루이스 슬로틴을 죽음에 이르게 한 플루토늄은 "데몬 코어"라는 별명이 붙었고, Operation Crossroads에서 첫번째 폭탄인 에이블에 탑재되었다.

2002년에 슬로틴의 이름을 딴 소행성이 생겼다. 1995년에 발견된 소행성이 12423 Slotin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더 자세한 정보는 영문 위키피디어 루이스 슬로틴 항목에 가면 볼 수 있다.
  1. 다소 씁쓸한 것은 앨빈 C. 그레이브스는 이 사고의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후 낙진피해에 대한 우려를 꾀병부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는 등, 방사능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발언을 많이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