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르 바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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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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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습)

이름비토르 마누엘 마르틴스 바이아
(Vítor Manuel Martins Baía)
생년월일1969년 10월 15일
국적포르투갈
출신지빌라 노바 데 가이아
신장185cm
포지션골키퍼
소속 팀FC 포르투(1988-1996)
FC 바르셀로나(1996-1998)
FC 포르투(1999-2007)
국가대표80경기 0골

1 개요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수문장

이견 없는 FC 포르투 역대 최고의 골키퍼이자 포르투갈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이며,[1]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관통하는 포르투갈 대표팀 황금세대의 뒷문을 지킨 명 골키퍼.

2 클럽

지역의 유소년 클럽에 있다가 1983년 거함 FC 포르투의 유스팀으로 적을 옮겼고 1988년에는 1군으로 콜업되어 서서히 입지를 넒혔다. 1988-89 시즌 제 베투, 요제프 무이나르치크와의 경쟁에서 15경기 출장을 잡아낸 바이아는 시즌이 끝나고 무이나르치크의 은퇴와 동시에 완벽한 주전 골키퍼로 올라섰다.

1996년 바르셀로나로 떠날 때까지 바이아는 주전자리를 사수했고 모든 대회를 합쳐 315경기에 출전했다. 1996-97 시즌을 앞두고 바이아는 안도니 수비사레타의 은퇴 이후 확실한 대체자를 구하지 못한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한다. 첫 시즌 바이아는 주전자리를 확보하며 컵 위너스컵,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기여했으나 무릎 부상이 발생했고, 설상가상으로 감독이 자신을 영입한 바비 롭슨에서 루이스 반 할로 교체되며 루드 헤스프를 영입하자 백업 멤버로 전락했다.

결국 1999년 바이아는 친정팀인 포르투로의 복귀를 선택했고 후반기를 보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시절 입은 부상이 재발했고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등 01-02 시즌 후반기가 거의 다 되서야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02년 포르투에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 영입되었는데, 주제 무리뉴가 바로 그였다. 무리뉴의 선임으로 포르투는 유럽을 휩쓰는 강팀이 되었고, 베테랑 바이아는 후방을 든든히 지켰다.

02-03 시즌 포르투는 UEFA 컵에서 셀틱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03-0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AS 모나코를 격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바이아는 이 과정에서 무수한 선방을 해내며 팀의 성공에 기여했고 2004년 UEFA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했다. 무리뉴가 첼시로 떠나고도 04-05 시즌까지 바이아는 포르투의 No.1 골키퍼였으나 05-06 시즌 브라질 출신의 에우통이 팀에 입단하자, 서서히 자리를 내주었고 06-07 시즌 완전히 백업 멤버가 되면서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1990년 미국을 상대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주요 대회로는 유로 1996, 유로 2000,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했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총 80경기에 나섰다.

유로 1996, 유로 2000,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전경기에 출장했으나 뚜렸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감독이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로 교체되자 바이아는 국가대표팀에 더이상 차출되지 못했고, 2004년 UEFA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음에도 유로 2004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 대회에서 포르투갈이 결승전까지 올라간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

4 여담

2002년 월드컵 기간 당시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마성의 남자와 술을 마셨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이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홍석천 문서 참조.

은퇴한 뒤로는 포르투의 엠버서더로 활약하고 있다.

2016년 현재까지 포르투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 드라강에 그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FIFA 16에 전설의 선수로 추가되었다.
  1. 국가대표팀에서는 주로 벤피카의 황금기를 이끈 코스타 페헤이라, 84년 유로 4강 당시 수문장이었던 마누엘 벤투와 올타임 베스트에서 경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