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역대 FIFA 월드컵
16회17회18회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2 FIFAワールドカップ 韓国/日本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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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기간2002년 5월 31일 ~ 6월 30일
개최국대한민국, 일본
대회 이념새 천년, 새 만남, 새 출발
新しい千年、新しい出会い、新しい出発
New millennium, New encounter, New start
공인구피버노바(Fevernova)
공식 주제가Boom
마스코트아토(Ato), 카즈(Kaz), 니크(nik)
참가국32개국
우승국브라질
준우승국독일
3위국터키
4위국대한민국

1 개요

21세기에 개최된 첫 월드컵이자, 사상 최초로 아시아에서 개최되고 2개의 국가에서 공동개최된 유일한 FIFA 월드컵.

이제는 전설이 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

2002년에 개최된 17번째 FIFA 월드컵으로 역대 월드컵 중에서 최초이자 최후로 공동개최된 대회다. 2002년 5월 31일부터 2002년 6월 30일까지 32개 국가가 대한민국일본의 20개 경기장에서 64경기를 치렀다. 한-일 양국의 각 10개 도시의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애초 공동 개최가 아닌 단독 개최를 상정하고 계획한 경기장 건설/보수 계획을 공동개최가 확정된 뒤에도 축소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1개 경기장당 고작 3~4경기만 개최되었다. 그런 연유때문에 일본측에서 32개국 출전 64경기를, 40개국 96경기로 늘려 달라고 피파에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0억을 들여 건설한, 서울월드컵경기장도 딸랑 3경기만 개최되었다. 근데 그 3경기도 입장권 시스템 오류와 비인기 경기 개최로 만석을 채우지 못했다...

보통 월드컵은 유럽의 프로축구리그 일정에 맞춰서 6월 중순~7월 중순에 개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경우 7월의 장마 때문에 토너먼트 경기가 엉망이 될 것을 우려해서 5월 31일날 시작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유럽리그가 끝난 후 휴식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회가 진행된 점이 한일 월드컵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이변의 원인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당시 기준으로 우승 후보들이 전부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고 우승 후보가 아닌 팀들끼리 결승전에 올라간 유일한 대회. 독일과 브라질이라는 이름값을 보면 이게 무슨소리인가 싶겠지만, 당시 두 팀은 결코 우승후보로 꼽히지 않았다. 우승국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는 커녕 에콰도르에게도 밀리며 남미예선 탈락까지 몰렸다가 겨우 3위를 달성했고, 독일은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에게 1-5로 털리는 치욕을 당하며 두 팀 모두 한물갔다는 평가와 함께 '녹슨 전차 군단'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으로 불리며 우승후보에는 꼽히지도 못했다. 게다가 더 분석해보자면 독일은 미로슬라프 클로제 원맨팀에 불과했고 브라질은 다시는 없을 신의 꿀대진[1]을 받았다. 2002 브라질은 역대 피파 월드컵 우승국 중에서도 최강에 가까운 팀인데.. 왜 여기서는 신급 꿀대진빨로 우승했다고 폄하하는 걸까? 4강의 나머지 두 팀은 이전까지 본선무대에서 1승도 해 본 적이 없던 대한민국과 이 대회와 1954년 대회를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지역예선조차 뚫지 못하는 터키였다. 반면 디펜딩 챔피언이자 피파랭킹 1위의 프랑스, 피파랭킹 2위의 아르헨티나와 자국 축구 역사상 최강팀을 구축한 포르투갈이 조별리그에서 떨어졌다.


오프닝 인트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 개막식 장면

2 개최 경쟁

한국 + 스웨덴 레나르트 요한손 UEFA 회장 + 마라도나 ↔ 일본 + 브라질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 + 펠레

아시아 자존심이 되고 싶었던 한국과 탈아입구를 외쳤던 일본의
축구사에서 역대급 자존심 한판 대결로 결국 FIFA가 공동개최 할 수 밖에 없었다.

1989년 일본이 최초의 월드컵 아시아 개최를 목표로 월드컵 조직위를 결성했고 일본에 자극을 받은 대한민국1994년에야 월드컵 조직위를 결성하고 1995년에 일본과 함께 FIFA 월드컵 개최 제안서를 제출한다. 제안서를 제출한 국가가 두 나라 밖에 없었으므로 유치 경쟁은 굉장히 치열해졌다. 펠레브라질의 우방인 일본의 개최를 강력히 희망했는데 마라도나는 단순히 펠레가 일본편을 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편을 들었다.[2] 마라도나는 2002년 월드컵 유치 홍보 계획의 일환으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마라도나 공식 재기전'(1995년, 보카 후니오르스 초청)에 출전했다. 그 경기는 마라도나가 1994년 미국 월드컵, 약물 복용으로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후 첫번째 공식 경기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경기였다. 여담으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시축을 하고, 마라도나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치열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유치 경쟁은 일본 vs 현대 그룹의 싸움이라고 할 정도로 현대 그룹이 한 일이 많았다.

펠레와 마찬가지로 브라질 출신이었지만 더더욱 친일적으로 알아준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 역시 일본의 단독개최를 희망.[3]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우세가 기정사실이었지만, 월드컵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국가는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부족하다[4][5]는 한국의 주장이 대두되면서 상황이 미묘해지기 시작한다. 실제로 한국은 2년 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독일 등의 유럽 강호들에게 상당한 선전을 펼친 경력도 있었던 덕분에, '일본은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한국의 주장이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먹히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 대세론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와중에, FIFA 고위 관계자들이 관전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축구 아시아 챔피언쉽 결승전에서 한국이 시종일관 일본을 몰아붙인 끝에 2-1로 이기고 우승컵을 따내버렸고, 분위기는 급반전되기 시작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남미는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다. 브라질이 일본에 붙자 이런 브라질이 싫어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한국에 붙었고 거기에 아르헨티나를 싫어하는 칠레가 일본에 붙자 이번에는 또 칠레를 싫어하는 페루와 볼리비아가 한국에 붙었다. 그러자 또 볼리비아를 싫어하는 파라과이가 일본에 붙었다. 이렇게 남미에서는 한바탕 병림픽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FIFA의 개혁을 주장하던 레나르트 요한손 UEFA 회장을 필두로 유럽측 FIFA 집행위원들이 아벨란제 회장을 견제하기 위해[6] 한일 두 나라의 공동개최를 강력히 주장하고 여기에 그동안 부동표였던 아프리카 측 FIFA 집행위원들까지 유럽 측 FIFA 집행위원들에 동조하기 시작했으며, 열성적으로 한국의 개최를 주장했던 정몽준 역시 FIFA 집행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한다면 공동개최에 찬성한다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때문에 아벨란제 회장으로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개최지 결정 이틀 전에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공동개최 의향을 타진했는데, 사실 당시의 분위기로 봐서는 표 대결로 갈 경우 일본이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공동개최를 수용했다. 물론 한국은 이미 공동개최를 사실상 승인한 상태였다.

결국 FIFA는 양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감안, 한 쪽이 월드컵을 개최하면 다른 한 쪽은 엄청난 좌절감에 빠질 것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집행위원 만장일치로 공동개최를 선언하게 된다. 후에 정몽준 부회장은 한국이 공동개최라도 이뤄낸 것은 FIFA 내부의 정치 싸움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회술했다.

일본 입장에서 단독개최 실패는 유치단의 전략적 판단미스가 불려낸 참극이었다. 같은 대륙에 두 후보지가 나오는 실수를 범한 피파 + 그러한 아벨란제의 삽질과 그 삽질한 아벨란제를 믿고 유치 전략을 편 일본의 삽질로 인해 가장 개최 준비에 앞섰으면서도 공동개최를 허용한 셈이었다. 결국 일본은 단독 개최는 놓쳤지만 결승전이라도 자신들이 치르겠다고 주장했고 대한민국 측은 추첨으로 정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실무 협의 결과 개막전과 대회 공식 명칭 우선권을 대한민국이 가져가고 결승전을 일본이 가져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결승전을 가져왔으면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를 일본에서 치를 뻔했다[7] 한국 국민 정서상 대회 공식 명칭이 일한 월드컵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일 월드컵이라 불리는 대신, 실리라 할 수 있는 결승전은 일본에 넘겨줬다. 부가적으로 3/4위전은 한국, 지역예선 추첨식은 일본, 본선 조추첨식은 한국, IBC(국제방송센터) 기술조정센터는 일본에 두는 것으로 협의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약속 안 지켰다! 뭐~예상된 결과 이지만

정몽준 부회장에 따르면 아버지(정주영 회장)에게 공동개최 사실을 말하자 "몽준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했다고(...). 일본을 제치고 서울 올림픽을 따낸 정주영의 입장에서는 성에 차지 않았을 수 있긴 하지만… 흠좀무.[8]

스페인 스포츠 지 아스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축구협회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고 나서 거액을 돌렸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아스 지에 따르면 나가누마 겐 전 일본축구협회장은 한일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2000년 남미축구연맹에 150만 달러를 보냈다. 아스는 남미연맹에서 15년간 근무한 직원으로부터 이런 정보를 입수했다고 전했으며, 150만 달러 가운데 120만 달러가 당시 FIFA 집행위원이며 남미연맹 회장이던 니콜라스 레오스의 개인계좌로 흘러들어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30만 달러는 에두아르도 데 루카 남미연맹 사무총장과 소라나 다니스 남미연맹 임원이 나눠 가졌다고 아스는 덧붙였다.[9]

3 명칭

본래는 2002 FIFA World Cup Japan/Korea™이었다. 이에 정몽준왜 일본이 대한민국 앞에 오냐며 항의했고 제프 블라터 당시 FIFA 사무총장은 J가 K보다 먼저와서 어쩔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정몽준은 FIF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는 프랑스어를 사용한 단체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게 먹혀서 결국 프랑스어로는 Corée라고 표기하는 한국이 앞선 Korea/Japan으로 정정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FIFA Coupe du monde Corée/Japon이라고 써야 맞겠지만.(…)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한 월드컵이라고 표기하기 시작한다.(…) 오죽했으면 일본어 위키백과에 있는 문서는 자꾸 일한 월드컵이라고 수정되어 수정제한이 걸렸다.그럴 일본어 위키백과가 아닐텐데? 지금은 아예 한국이 빠지고 일본 단독 개최로 나와있다ㄷㄷ 한국어 위키백과의 문서도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 의해 일본/남조선(…)이라고 바뀐 적이 있다.

사실 결승전을 일본에 넘기는 대신 명칭을 Korea/Japan으로 표기하는 것을 사전에 일본과 협의했다.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일본이 임의적으로 협약된 명칭을 어기고 Japan을 앞에 두기시작하자 사전 협의를 이행할 것을 한국측이 촉구. 그 과정에서 정몽준이 협의사항을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정몽준은 Japan을 앞에 두려면 결승전을 포기하라는 식으로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일본은 대회기간동안은 가급적 공식적인 Korea/Japan의 표기를 사용했다[10] 조직위 외의 일본내 매체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회 공식 브랜드인 'FIFA 월드컵'으로만 표기하면서 '일한 공동개최'로 수식하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무시하였다. 일본, 이것들이 역사적으로 일본 우익사관을 봤을 때, 애초에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이 명분을, 일본이 실리를 택하였으나, 타국에서는 한국보다 일본의 인지도가 더 높아서 2006년까지도 japan-korea 월드컵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몇몇이들은 한국은 속빈 명분을 얻었고, 일본만이 이익을 취했다며 한국의 선택이 어리석었다고 비판했다.
[1]
[2]

4 엠블럼 · 마스코트 · 공인구

world-cup-brands-korea-japan-2002.jpg
대표팀 색에 맞추면 한국이 빨강, 일본이 파랑이 맞다.
위 사진 왼쪽의 엠블럼이 대회 엠블럼으로, 이 엠블럼의 도안은 한일 월드컵 이후부터 월드컵을 상징하는 공식 도안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독일 월드컵, 남아공 월드컵 엠블럼에도 같이 포함되어 나왔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로 사라졌다. 아마 FIFA가 IOC의 오륜기처럼 월드컵 로고에 일종의 관습적인 상징을 만들려고 하던 시도였던 듯하다. 2014년부터 월드컵 로고는 월드컵 트로피를 바탕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위 사진 오른쪽 부분)대회 마스코트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단일 마스코트가 아닌 3가지 유형의 마스코트로 만들어졌으며 3D로 제작되었다. 정식 명칭은 아트모(Atmo). 스페릭스(Spheriks)라고 불리는 외계인(…) 종족인 이 마스코트는 90년 월드컵 마스코트보다 별로지만 어쨌든 소개를 해야하므로 코치를 상징하는 아토(Ato)와 두명의 선수를 상징하는 니크(Nik), 캐즈(Kaz)로 이루어져 있다. 공동개최라는 대회 특성상 마스코트도 특정국가의 상징물에서 벗어나 외계인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디자인도 영국의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맡았다. 그 때문인지 친근감이 떨어져 인기는 별로였다. 또 이름이나 디자인이 일본쪽의 영향을 많이 받은게 명백하게 보여서 국내에서 인기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11]

마스코트를 이용한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은 TV판과 극장판을 모두 만들었다. 아동용으로 그냥저냥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 듯하지만 대중적으로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이런 마스코트가 그러듯 대회가 끝나면서 자취도 사라졌다. 한창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국내에서도 KBS 2TV를 통하여 방영되었다.

여담인데 한국에선 진돗개삽살개를 한국 측 마스코트로 정해야 한다고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진도군에선 '진돗개를 2002년 월드컵 마스코트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자체적으로 마스코트 도안까지 만들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으며. 한국삽살개보존회에서는 '독도 지킴이 삽살개'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후 월드컵 마스코트 지정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결론은 둘 다 김치국 마시는 소리로 끝났다. 아키타견도 그렇게 했으면 둘 다 됐을텐데


월드컵 공인구로는 피버노바가 사용되었다. 열정(Fever)과 신성(Nova 新星)의 합성어로 기존의 축구공과는 다른 화려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이후로 오랜만에 새 디자인을 적용한 사례. 흰색 바탕에 돌개무늬가 양쪽으로 두 개 그려진 디자인이었다. 그 때문인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에도 상당한 화젯거리였다. 요즘 나오는 여러 공인구들과 비교해도 피버노바만큼 튀는 디자인은 좀처럼 없을 정도. 그래서 골키퍼들이 뜬 공을 처리할 때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병림픽, 아니 병든컵 방지를 위해한국어일본어가 아닌 제 3의 언어를 사용했다.

참고로 공이 꽤 가벼운 편이다. 특수 기포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해서라고 하는데...

5 지역 예선 통과 팀 목록

각 지역 별로 예선을 통과한 팀(본선 진출/플레이오프)들은 다음과 같다. ●표는 개최국 자격 자동 진출팀을, ★표는 전 대회 우승 팀 자격 자동 진출팀을 의미하며 ()안의 팀은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거쳤다.(유럽-아시아, 남미-오세아니아)

  • 남미(4.5장):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 북중미(3장): 코스타리카, 멕시코, 미국
  • 아시아(4.5장): 대한민국●, 일본●,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 아프리카(5장): 카메룬, 나이지리아, 세네갈, 튀니지, 남아프리카 공화국
  • 오세아니아(0.5장): (호주)
  • 유럽(14.5장): 프랑스★, 러시아, 포르투갈,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크로아티아,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슬로베니아, 터키,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 대륙 간 플레이오프: 우루과이, 아일랜드

호주와 이란은 각각 우루과이와 아일랜드에게 1승 1패를 기록했으나 골 득실에 밀려 탈락.[12] 결과적으로 오세아니아는 단 한 팀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아시아와 유럽의 대결 역시 예상대로 끝났다. 실력 차를 감안한다면 아시아-오세아니아, 유럽-남미를 묶어서 플레이오프를 치렀어야 했을 듯.....

유럽 지역예선에서는 충공깽스러운 결과가 2개국에서 발생했다. 그 네덜란드포르투갈아일랜드에 밀려 지역예선에서 탈락해버렸고 독일은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진통을 겪은 끝에 본선에 올라오긴 했지만 잉글랜드에게 1-5로 학살당했다. 다만 잉글랜드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 지역예선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UEFA 계수를 엄청나게 갉아먹었고 그래서 톱시드에서 짤려 아르헨티나가 톱시드인 조로 들어갔다.

남미 지역예선의 경우 아르헨티나의 압도적인 질주와는 대조되게 브라질이 승점자판기가 되는 해괴한 현상이 발생하다가 브라질은 간신히 본선에 직행했다. 특히 칠레가 꼴찌했는데 브라질은 이 칠레에게 0-3으로 패하기까지 했다. 우루과이는 이 월드컵도 마찬가지로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갔다.

참고로 월드컵 역사상 최다 점수 차 경기 및 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 당 최다 득점자가 이 대회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나왔다. 호주 대 미국령 사모아의 경기로 31(삼십일)-0이라는 신기하고 놀라운 점수가 나왔으며 아치 톰슨은 이 경기에서 혼자 13골을 퍼부었다. 절대 오타가 아니다. 3-0이 아니다. 삼십일 대 영 저 점수가 맞다.

6 대회 진행

6.1 경기장

본 대회를 전후로 열린 1998년, 2006년 월드컵은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거의 모든 경기장이 재활용이었다. 하지만 2002년의 경우, 두 개최국 중 축구 인프라가 열악한 모 국가에선 아쉬운 대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재활용하려고 밑밥을 깔다가, 대회 준비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부터 지리한 말싸움의 장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잠실 주경기장 재활용" 떡밥을 덥썩 문 서울시청에서는 "설마 서울을 개최지에서 제외하겠어?"라는 안이한 판단 하에 개최 당시 내걸었던 경기장 신축 약속을 뒤집어버린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 그래도 IMF 외환위기 여파에 허덕이고 있는데 자금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운운하면서 경기장 신축에 부정적인 여론이 차츰 표면화되었고, 이는 곧 서울에 축구전용구장을 굳이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윽고 서울 전용구장의 대안으로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 인천문학경기장 증축, 수원월드컵경기장 주경기장 선정, 신축 돔구장과 겸용 등등 별의별 안이 나왔지만 결국에는 축구전용구장을 신축하는 쪽으로[13][14] 결정되었다.

잠실 리모델링 안은 상암신축 비용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금액이 나온데다가 FIFA 실사단 평가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아 폐기되었고, 문학경기장의 경우는 "주 경기장이 수도에 없는 게 말이 되느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던데다가 축구전용 구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 수 미달로 주 경기장 후보군에서 제외, 돔 구장 신축 안은 뚝섬 돔 경기장 건으로 안 좋은 야구계의 여론, 그리고 신축 약속을 안 지킨 서울시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실현될 가능성이 적었다. 다만 인천, 부산, 대구는 각각 전국체전,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로 건설이 이미 확정된 경기장이었다. 그러나 인천 문학 경기장은 착공이 늦어져서 역설적으로 전국체전에 활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이슈가 되었던 곳이 전주였다. 이 곳은 종합운동장이 수용인원이 3만 명도 안되는 데다 당시에는 조명시설조차 없었음에도 개조해서 월드컵을 개최하겠다는 만용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그 제안이 원체 턱도 없다 보니 결국 전주 월드컵 경기장을 신축하게 된다.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은 실사단 점수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았으나 지역 안배 문제로 포항이 탈락[15]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져가게 되었다.

일본도 그리 좋은 사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기존 구장을 많이 활용한 편. 다만 일본 역시 월드컵 유치 시점에 운영되고 있던 경기장은 오사카 나가이 및 가시마 스타디움 2개 뿐이었다. 양국에 10개씩 모두 20개의 구장에서 경기를 진행했다.[16]

신축한 구장들은 대회 이후에도 잘 활용하고 있다.

  • 한국 : 일단 10개 경기장이 모두 K리그의 홈구장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나,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축구전용구장으로 새롭게 개장된 숭의 아레나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축구뿐만 아니라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은 아시안게임, 문학 월드컵경기장은 전국체전, 대구 월드컵경기장은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세계육상선수권 개최, 광주 월드컵경기장은 하계 유니버시아드 유치등등 월드컵 이후에도 많은 스포츠 행사에 사용되었으며 축구전용구장들도 모두 프로구단들이 입주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장 활용이 잘 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이 도시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만 2004년2006년 각각 벌어진 K리그의 연고이전이 월드컵 경기장 활용을 명분에 끼워넣는 형태로 벌어진 과거가 있었다.
  • 일본 : 대부분의 연고 J리그 구단이 월드컵 경기장과 기존 경기장을 공용하는 형태이다. J리그가 복수 홈경기장을 유지하는 이유 중에는 기존 경기장이 시립 또는 모기업 소유이고 월드컵 경기장이 현립이어서 양측의 이해가 엇갈리는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매경기 3만명 이상을 가볍게 동원하는 우라와조차 2009년까지는 매년 한두 경기 쯤은 기존 고마바 스타디움(21,500명 수용)을 사용했다. 반면 미야기나 시즈오카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뜬금없이 박혀있는 입지 탓에 거꾸로 기존 경기장을 기본으로 연간 1~3경기 정도를 소화하고 있다. 시즈오카는 주빌로 이와타시미즈 에스펄스의 중간지점에 있다 보니 이들이 붙는 시즈오카 더비를 유치하다가, 지금은 그조차 없이 원정팬 많이 오는 우라와 경기만 치르고 있다. 미야기는 2011년부터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 경기장 명칭은 월드컵 당시 사용된 명칭.

  • 한국의 경우 실질적으로 모든 경기장이 'XX 월드컵 경기장'으로 통칭되었으나 모두 정식 명칭이었던 건 아니다.
  • 일본 경기장들의 법적 정식 명칭은 '또 따로 있다'. 매우 복잡하므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규 애칭'을 기재.
국가도시경기장수용인원전용구장
대한민국서울특별시서울월드컵경기장66,086명O
부산광역시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55,983명X
대구광역시대구월드컵경기장[17]66,422명X
울산광역시울산문수축구경기장43,550명O
광주광역시광주월드컵경기장[18]44,118명[19]X
대전광역시대전월드컵경기장40,535명O
인천광역시인천문학경기장[20]52,179명X
수원시수원월드컵경기장[21]43,288명O
전주시전주월드컵경기장42,477명O
서귀포시제주월드컵경기장[22]43,657명[23]O
일본요코하마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24]72,327명X
사이타마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63,700명O
시즈오카시즈오카 스타디움 에코파[25]50,889명X
오사카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26]50,000명X
미야기미야기 스타디움[27]49,133명X
니가타니가타 스타디움[28]42,300명X
삿포로삿포로 돔41,484명[29]
이바라키이바라키 현립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40,728명O
오이타오이타 스타디움[30]40,000명X
고베고베 윙 스타디움[31]42,000명[32]O

도쿄가 없다.[33][34]

보다시피 모두 신축 경기장임에도 종합운동장의 숫자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것은 국제대회 행사 유치와 경기장 활용 등의 이유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종합운동장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대표 감독인 거스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이 종합운동장에서 경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홈 어드밴티지를 약화시킨다'며 대회 조직위원회가 경기장 배정을 생각없이(…) 했다고 자서전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다.[35] 종합운동장은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멀어, 심리적으로 홈이점을 충분히 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테이블에서 보듯 종합운동장들이 축구전용구장에 비해 수용인원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한국 관중들이 들어와 압도적인 응원을 선사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은 사정이 더하다. 축구경기용으로 전환 중인 상태의 삿포로 돔을 축구전용구장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한국보다 2개 더 적은 4개 뿐이다. 그나마도 가시마는 기존 전용구장을 마개조 증축한 것, 고베는 기존 구기장을 재건축한 것으로 완전 신축은 사이타마 1개 뿐이라고 할 수 있다.

6.2 조 추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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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월드컵 조 추첨행사가 열렸다. 총 13명의 조 추첨자가 선정되었으며, 한국 측 인사로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월드컵 국가대표 홍명보 선수, 바둑기사 조훈현 9단, 산악인 박영석, 배우 송혜교, 국제심판 임은주 등 6명이 선정되었고, 일본에서는 오카노 순이치로 일본축구협회장과 프랑스 월드컵 때 일본 주장으로 활약했던 이하라 마사미 등 2명으로 결정되었다. 나머지 5명의 인원들은 대륙별 안배원칙에 따라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 네덜란드요한 크루이프, 카메룬로저 밀러, 중국의 여자 축구스타 쑨웬, 프랑스 월드컵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미셸 플라티니가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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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 추첨자 선정에서 한국 축구의 전설로 불리는 차범근이 제외[36]되고, 축구와 관련이 없는 비축구 스포츠계 인사들이 채워지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으며, 특히 스포츠 분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배우 송혜교가 선정된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상당했다.[37] 아마도 차범근프랑스 월드컵의 경기 진행 도중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는 등 오랫동안 대한축구협회와 마찰을 빚은 전력 때문에 추첨자 선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38] 행사에는 재미교포 출신 가수 스티브유그 당시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소개되어 축하공연을 했다. 행사의 남자 MC도 재미교포릭 윤이 맡았다. 유승준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립싱크 공연을 해서 작은 논란도 있었다. 그런데 이 작은 논란이 불과 몇 개월 후 훨씬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줄은 아무도 상상 못 했을 것이다.

비 스포츠인 2명이 탈세의 대명사와 병역비리의 대명사이니 역대급 막장

6.3 조 편성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우승국에게 주었던 월드컵 자동 진출제가 폐지됨에 따라 이번 월드컵 우승국인 브라질은 다음 월드컵부터는 지역예선을 거쳐서 본선진출을 하게 되었다.[39]

A조 ~ D조는 대한민국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고 E조 ~ H조는 일본에서 경기를 치르게 됨에 따라 대한민국은 자동으로 D조 1번째에 배정되었고 일본H조 1번째에 배정되었다. 지난 월드컵 개최국이자 우승국인 프랑스는 우승국 자격에 따라 A조 1번째에 배정되었다. 한편 A조와 C조의 2라운드 진출 팀은 일본에서 F조와 H조의 2라운드 진출 팀과 토너먼트를 치르게 되고, E조와 G조의 2라운드 진출 팀은 한국에서 B조와 D조의 2라운드 진출 팀과 토너먼트를 치르게 된다.

대진표 결과를 보면 조별리그의 아르헨티나-잉글랜드, 이탈리아-크로아티아[40], 잉글랜드-스웨덴전과 8강전의 잉글랜드-브라질, 그리고 결승전 등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빅매치는 대부분 일본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 팀들이 죄다 조기 광탈해 버린건 신경쓰지 말자

한편, 중국은 조 추첨 전에 예선전을 한국에서 치를 수 있도록 FIFA 측에 요청했다. 중국 본토에서 가까워 흥행에 유리한 점과, 중일관계 등을 고려해 중국은 C조에 배치되는 것으로 미리 결정을 하고, 조추첨을 시행했다.

조 추첨 결과 F조가 이번 대회 최악의 죽음의 조로 꼽히게 되었다. 그러나 A조가 다른 의미로 죽음의 조가 되어버렸다.

시드 배정

  • 톱시드 - 대한민국(개최국), 일본(개최국), 프랑스(전대회 우승국), 독일, 브라질, 스페인,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 톱시드 팀 이외의 유럽 팀(11) - 유럽 팀 중 3개 팀은 비유럽 시드 팀이 속한 조에 편성.
  • 톱시드 팀 이외의 남미 팀(3), 아프리카 팀(5) - 남미 팀은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다른 조로 편성.
  • 톱시드 팀 이외의 아시아 팀(2), 북중미 팀(3) - 아시아 팀은 한국, 일본과 다른 조로 편성.

6.3.1 대한민국

6.3.2 일본

6.4 대회 직전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이번 월드컵 우승 후보 0순위. 98 월드컵, 유로 2000,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잇달아 재패하여 그랜드 슬렘을 달성했을 뿐더러, 특히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에서 한국을 5:0으로 작살내어 세계 최강의 위용을 선보였던지라, 당시만 해도 프랑스의 월드컵 2연패 가능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그 외에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의 2연패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팀으로 거론되었고, 91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우승의 주역인 소위 황금 세대들이 포진해 있는 포르투갈 역시 이 대회의 최대 복병이었다. 이에 비해 남미 예선 3위[41]로 간신히 본선에 진출한 브라질과 잉글랜드에 밀려 플레이오프로 밀려나고[42]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간신히 본선 진출권을 따낸 독일은 8강 이상 진출하기 어렵다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는 전술한 프랑스의 유일한 대항마로 급부상했는데 지역예선에서 3위부터 7위까지 혼전 양상인 와중에 독보적 1위를 거머쥔 데다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남자 축구 종목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에르난 크레스포1998 FIFA 월드컵에서 무서운 활약을 보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쌍포가 있는 팀이라 엔트리에서 행복한 고민을 한다고 인정되는 팀이었다. 그런 아르헨티나가 일본으로 배정받은 것이 독이 되었다.[43]

6월이면 한/일 양국이 장마철에 접어들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개막을 예전 대회에 비해 열흘 정도 앞당겨 5월 31일에 개최하였다. 그래서 유럽리그에서 뛰던 선수들, 특히 월드컵 직전에 챔스 결승을 치뤄야 했던 레알 마드리드레버쿠젠의 선수들이 피로누적 때문에 대회 초반 제대로 뛰지 못했다는 해석이 많다. 그런데 조별리그 일본-토너먼트 한국을 비행기로 오가면서도 준우승을 한 독일을 보면 설득력이 없다. 더 나아가서 200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평소에 열리는 시기보다 약 열흘정도 앞당긴 5월 15일에 열렸고, 피로누적 정점을 찍었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레알 마드리드 출신 선수진이 과반수를 차지했던 2002년의 스페인 대표팀은 8강에서 대한민국에 잡히기 전까지 순항했다.[44] 게다가 챔피언스리그 준우승팀 레버쿠젠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브라질과 독일은 나란히 결승전에서 맞대결을 벌였다.[45] 결국 다 유럽팀들의 구차한 변명인 셈이다. 아니, 이건 구차한 변명이라기 보다는 아시아나 유럽 축구는 대회가 많기 때문에 서로 스케쥴이 다르니 이건 명심하자 구차한 변명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저렇게는 생각하지말자

일례로 포르투갈은 한국에 적응하겠답시고 옛 식민지였던 마카오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는데 그나마도 우기라 훈련도 제대로 못했다. 이때 중국과 평가전을 치러서 2:0으로 이겼는데, 다행히 소림축구에 피구나 파울레타 발목이 아작나는 일은 없었지만 '중국을 이겼으니 비슷한 한국도 간단하겠지'(...)라고 단단한 착각을 하고 만다.[46] 거기에 한국에 입국한 뒤에도 전력분석했다면서 98년도 데이터를 꺼내서 대표팀에도 없는 김도훈을 조심하라고 했다"차두리를 막아~!"(...).[47] 거기에 하라는 훈련은 안하고 쇼핑만 하러 다니질 않나[48] 완벽하게 막장 그 자체였다. 그리고 2009년 강심장에서 홍석천이 포르투갈 대표팀과 술자리를 했다는 이야기[49]를 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오심으로 승리를 도둑맞은 러시아 정도면 모를까 다른 팀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 그냥 준비 부족이었던 거다. 상대가 개최국이라고는 해도 승점 자판기 신세였던 아시아 팀들이니 요태까지 구래와틋 그냥 바를 거라고 생각하고 안일하게 나왔다가 참변을 당해버렸다. 물론 모든 유럽팀들이 이런 막장인 것은 아니었다. 가령 위에서도 언급한 독일 대표팀의 경우 제주도에서 현지적응훈련을 한 뒤 16강전을 서귀포 경기장에서 치르는 등 제대로 대비해 좋은 성적을 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에서는 초박형 LCD모니터로 에밀레종을 재현하거나[50] 차세대 통신기기 IMT-2000을 든 도우미들이 경기장 지붕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오는 등 각종 이벤트로 당시 일본에 가려있던 한국의 디스플레이, IT 기술을 잘 홍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6.5 조별 라운드

좌측부터 조 순위대로 나열되어 있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나라가 16강 진출국.

A조덴마크세네갈우루과이프랑스
B조스페인파라과이남아프리카공화국슬로베니아
C조브라질터키코스타리카중국
D조대한민국미국포르투갈폴란드
E조독일아일랜드카메룬사우디아라비아
F조스웨덴잉글랜드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G조멕시코이탈리아크로아티아에콰도르
H조일본벨기에러시아튀니지

6.6 결선 토너먼트

6.6.1 토너먼트 결과

경기대진표경기대진표경기대진표경기대진표
A16강 1경기
독일 1:0 파라과이
I8강 1경기
독일 1:0 미국
M4강 1경기
독일 1:0 대한민국
P결승
독일 0:2 브라질
B16강 2경기
멕시코 0:2 미국
C16강 3경기
스페인 1:1(3:2) 아일랜드
J8강 2경기
스페인 0:0(3:5) 대한민국
D16강 4경기
대한민국 2:1 이탈리아
-
E16강 5경기
덴마크 0:3 잉글랜드
K8강 3경기
잉글랜드 1:2 브라질
N4강 2경기
브라질 1:0 터키
F16강 6경기
브라질 2:0 벨기에
G16강 7경기
스웨덴 1:2 세네갈
L8강 4경기
세네갈 0:1 터키
H16강 8경기
일본 0:1 터키
O3/4위전
대한민국 2:3 터키
2002 FIFA 월드컵 우승

브라질
다섯번째 우승

7 주요 팀 결과

8 기타

  • 대한민국의 경우는 포르투갈이 한국과 맞서야 하는 상대였음에도 사람들끼리 모아다가 반을 갈라서 한쪽은 미국을, 다른 한쪽은 포르투갈을 응원하도록 약속하고 경기장에 들어가서는 각자 자기들이 응원하는 나라를 조국을 응원하는 심정으로 응원했으며, 3/4위전에서는 터키와 맞붙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진 형제의 나라 이야기에 힘입어 관중석에서 대형 터키 국기를 내걸어 주기도 했다. 실제로 터키 현지에서는 한국 응원단의 이런 호의에 감동한 터키인들이 한둘이 아니라 카더라. 그리고 터키는 16강전에서 일본을 무너뜨렸다
  • 일본의 경우는 인기있는 팀들만 너무 노골적으로 응원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응원하지 않는 팀에게는 노골적으로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주로 잉글랜드, 브라질, 이탈리아, 독일 등의 강호들에만 열광했으며, 나머지는 무시했다.
    • 조별리그 이탈리아 대 에콰도르 전에서는 에콰도르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 조별리그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전에서도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이거 강팀보다 약팀을 응원한 거 아닌가? 지금이었으면 정반대로 잉글랜드 보고 야유를 퍼부었을 텐데... 과연 원숭이 오오
    • 16강 세네갈 대 스웨덴 전에서도 세네갈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뭐여? 이건? 자기들이 서양 국가인 줄 아나...
  • 또한 제3국 간의 경기에서도 한국 관중들과 일본 관중들의 태도가 대조적이었는데, 한국 관중들은 주로 강팀보다는 약팀을 응원, 그것도 일방적이 아니라 서로 공정하게 응원하거나 아예 응원단을 둘로 쪼개서 양쪽을 서로 응원한 반면, 일본은 무조건 인기팀 위주로 일방적인 응원을 했다. 특히 일본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브라질 경기를 보면 일본인지 유럽이나 남미인지 헷갈릴 정도인데 세네갈은 16강전을 일본에서 치렀는데, 한국에서 조예선을 할 당시 한국인들이 세네갈 국기를 흔들고 세네갈 극소수 관중들과 어울려 세네갈을 응원해줘서 일본도 그러겠지 여겼더니만 그런 거 없고 죄다 스웨덴만 응원해서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 측에 부탁하여 응원도구와 몇몇 물품을 일본으로 공수해주기도 했다.[51] 이렇게 보면 아르헨티나는 한국에서 경기를 했어야 했다. 일본에서 경기하는 바람에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 월드컵 본선에 오지 못한 나라들의 대형 국기가 경기장에 종종 걸리기도 했다. 웨일즈 국기나 이스라엘 국기 등등. 이쪽 나라 축구팬들이 구경와서 자국팀도 언젠가 월드컵에 진출하기를 바라며 걸어놓은 것도 있지만, 지역적 혹은 정치적인 앙숙인 국가를 도발하기 위해 내걸기도 했다[52]. 한국 대표팀 경기에는 항상 네덜란드 국기가 걸려 있었는데, 이는 히딩크 감독의 고국이 네덜란드였기 때문. 그래서 2002 월드컵에 탈락해서 기가 죽었던 네덜란드 사람들도 나름 위로를 얻었다고. 거기다 히딩크호가 승승장구 하니 아이 싱나 분위기(...).
  • 스웨덴 대 세네갈의 16강전, 한국 대 이탈리아의 16강전, 터키 대 세네갈의 8강전은 골든골로 승부가 갈렸다. 세네갈은 스웨덴에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막판에 동점골을 성공시킨 데 이어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성공시킴으로써 8강에 올랐으나, 8강전에서는 터키에 골든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승전을 제외하고 2라운드 최대의 빅 매치였던 브라질 대 잉글랜드 전에서 브라질은 잉글랜드의 오언에게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히바우두와 호나우지뉴가 잇달아 골을 성공시키면서 2:1로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특히 호나우지뉴가 직접 프리킥으로 작렬시킨 역전골은 이 대회 베스트 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이시절 카메룬 대표팀은 민소매 유니폼을 도입했는데, 제프 블라터가 보기 안 좋다고 깠다. 근데 블라터는 여자축구선수 핫팬티 착용을 주장한 적이 있어서 까였다.(...) 결국 카메룬 대표팀은 반팔 언더웨어를 더 입고 뛰었는데, 유니폼으로 인한 효과는 없었던지 1승 1무 1패로 탈락했다. 마지막 3차전에서 강호 독일을 넘지 못하고 패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둘다 단두대 매치 상황이라 경기분위기가 무시무시했던건 덤
  • 이때를 기점으로 서포터즈 클럽인 붉은 악마가 유명해졌다. 2002년 당시에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 특히 매 경기마다 펼친 카드섹션 퍼포먼스가 매우 화제가 되었다.
    각 경기 별 카드 섹션 문구는 다음과 같다.
    • 폴란드전 : WIN 3:0
    • 미국전 : GO! KOR 16!
    • 포르투갈전 : 대한민국
    • 이탈리아전 : AGAIN 1966[53]
    • 스페인전 : PRIDE OF ASIA
    • 독일전 : 꿈★은 이루어진다[54]
    • 터키전 : CU@K-리그[55] 편의점? 이때는 cu가 family mart였다.
  • 길거리 응원은 대단한 장관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응원하는 모습은 모두의 찬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56][57] 월드컵의 단골손님인 훌리건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응원 이후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는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초상집도 월드컵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였다(...).[58] 그러나 몇몇 시민들[59]이 시내버스 천장 위에 올라가는 등의 지나친 행동을 보인다거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소매치기, 성추행 등의 범죄도 벌어졌었다.
  • 사회뿐만 아니라 군대 내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육해공군 가리지 않고 부대 내에 큰 스크린을 설치해서 장병들에게 경기를 보여준다든지, 다른 경기는 알아서 요령껏 보되 한국전만은 꼭 시청하게 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훈련이나 경계 인원은 제외. 지못미.
  • 아일랜드 축구팬들은 조예선을 일본에서, 토너먼트를 한국에서 하는 바람에 두 나라를 오가야 했다.[60] 체류비용을 걱정했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물가가 당시에는 싸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하기도. 거기다 지자체에서 여행객을 위해 고수부지에 텐트촌까지 마련해 줘서 체류비가 많지 않은 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아무튼 그렇게 체류비가 남아서 '기왕 온 김에 관광 더 하고 가자'고 남은 아일랜드 팬들이 꽤 많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영어 원어민 교사로 채용되어서 말뚝 박은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2002년 기점으로 국내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 체류비 이야기를 하자면 터키 기자들을 뺄 수가 없다. 원래 자국 성적은 잘해야 16강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터키가 계속 토너먼트에서 승리하자 터키 기자들은 좋아 하면서도 체류비 문제로 난감함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일본 물가가 한국보다 비싼 것을 알고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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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대표팀은 월드컵 기간 중에 한국 똥개토종개를 길렀다. 시장에서 멍멍탕(...)이 될 운명에 처한 강아지를 보고 가엾게 여긴 스페인 기자가 1만원을 주고 구해왔다고. 이 누렁이는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의 이름을 따서 '카마친(작은 카마초)'이라고 불렸다. 카마친은 스페인 선수들에게 몹시 사랑받았지만, 비행기 검역에 걸려서 선수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못 데려갔다고 한다(...)[61]. 카마친에게 정이 들었던 카시야스는 공항에서 헤어질 때 눈물을 글썽였고, 라울은 잘 돌봐주라며 거금을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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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한국전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한 호아킨은 흑화한 모습이 찍히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 올리버 칸베지밀의 맛에 반해서 한국에 있는 내내 베지밀을 달고 살았다. 대회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 갈 때도 한 박스 부쳐갔다고. 그리고 이후에 독일의 한인촌을 배회했다 카더라 지단의 경우 2% 부족할 때를 매우 좋아해서 훈련내내 물 대신 2%만 마셨다.[62]
  • 브라질 대표팀 또한 여러가지 일화를 갖고 있다. 목욕탕에 때를 밀러간 호나우두는 때밀이 아저씨가 팬이라고 하자 자신의 팬티(...)와 모자, 슬리퍼를 선물로 줬다.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호텔 직원과 탁구를 했는데, 번번이 지는 바람에 오기가 생겨서 계속 도전했다고.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은 노래방을 무척 좋아했으며, 카를로스와 호나우딩요는 당시 유행한 펌프를 즐겨했다고 한다.
  • 한국과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한 지네딘 지단은 부산의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병원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근데 그 병원에서는 이 사진을 멋대로 광고용으로 써버렸고, 지단은 나중에 이 소식을 전해듣고 어이없어 했었다. 지단의 몸값이나 초상권을 생각해 본다면 병원 측은 무지막지한 용자짓을 한 셈이다.#
  • 세네갈 대표팀 선수 파디가는 대구에 왔을 때 모 귀금속 가게에서 가족들에게 사 줄 목걸이를 고르고 있었다. 근데 파디가를 금은방 절도를 하러 온 아프리카 노동자로 오해한 금은방 주인이 경찰에 신고(...) 나중에 혐의가 풀리자 무안해진 금은방 가게 주인은 파디가에게 그 금목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 포르투갈 대표팀은 굉장히 한심하게 이 월드컵에 참가했다. 한국에서 경기를 한다는 팀이 팀베이스를 마카오에 차렸고 선수분석도 출전하지도 않는 김도훈을 집중분석하는 등 참 병맛졌다. 게다가 미국을 상대로는 너무 깔보다가 패하는 바람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결국 한국에게마저 패하며 짐을 쌌다. 데이비드 베컴의 인기로 인해 일본 훌리건들의 야유와 감독의 삽질로 에르난 크레스포를 제대로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게다가 심판 운까지 나빠서 떨어진 아르헨티나나 지네딘 지단이 경기를 못할 정도로 심하게 부상을 입어 팀이 자리를 못잡고 떨어진 프랑스와는 달리 포르투갈은 변명의 여지가 일절 없다.
  • 포르투갈의 세르지우 콘세이상은 호텔 미용사 아가씨에게 반해서 날마다 머리를 손질하러 갔다. 콘세이상은 엄청 끈질기게 구애를 했지만, 결국 차이고 말았다.
  • 우루과이 대표팀은 천안연수원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 후 몸도 풀겸 천안연수원의 조기축구회와 경기를 가졌다. 비록 친선경기이긴 하나 컨디션 점검 차 레코바, 몬테로, 실바등 정예 멤버가 출격했는데, 예상외로 2골이나 내주면서 5-2로 승리했다.# 참고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우루과이 상대로 2골을 넣어본 적이 1번 밖에 없다.[63] 그리고 우루과이 대표팀은 연수원의 미니 냉장고를 매우 탐냈기에(...) 삼성에서 그들의 고국길에 선수 전원에 미니 냉장고를 선물해 주었다. 소원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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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비드 베컴으로 위시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헤어 스타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베컴의 모히칸풍 헤어스타일(일명 닭벼슬)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누구나 따라하는 간지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호나우두의 뭐라 설명하기 힘든 머리(일명 다리미)는 만인에게 큰 웃음을 주며(...) 월드컵이 지구촌 축제가 되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 대회 공식주제가는 미국 가수 아나스타샤의 Boom. 리키 마틴이 불러 대히트했던 98월드컵의 'La Copa De La Vida'의 인기를 이어갈 거라고 기대되었지만 개최국 내 반응은 썰렁 그 자체(...) 한국 이외에는 유럽과 대만에서 그럭저럭 좋은 성과를 거뒀다. 아나스타샤는 다음해 유방암에까지 걸렸지만 다행히 치료를 계속하며 아직까지 잘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다 그 해 펠레눈길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다. 버틴게 용하다.#


(Boom M/V)

  • 오히려 대회 공식주제가보다는 월드컵 특수와 맞물려 나온 여러 노래들이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클론의 월드컵 주제가들(특히 '발로 차')과 윤도현 밴드의 '오 필승 코리아'만 울려퍼졌던 2002년 여름이었다.[64] 거기에 추가로 크라잉 넛의 '필살 오프사이드'나 레이지 본의 'Go West'(펫 샵 보이즈 버전의 리메이크) 정도가 인기있었다. 그리고 한/일 전용 주제가로 브라운 아이즈, 박정현, 소웰루, 케미스트리가 부른 Let's get together now가 있지만 상기한 노래들에 비해 그야말로 듣보잡인지라 이 역시도 시망. 참고로 Let's get together now는 1945년 광복 이후, 지상파 방송에서 일본 가수가 부르는 일본어 노래가 방송된 첫 사례이다. 사실은, 1985년 8월 24일 고베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막식 중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일본어로 된 대회 주제가가 방송을 탄 일이 먼저 더불어 브라운 아이즈 결성 이후 몇 안되는 나얼의 방송출연이기도 하다.

  • 완전 시망한 주제곡에 비해 그리스 작곡가 반젤리스가 한국의 아리랑과 사물놀이, 일본의 전통 북 소리를 조합해서 만들어냈다는 공식 입장가(入場歌) 'Anthem'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Anthem 전곡) # 리믹스 홍보영상

현대건축물을 바탕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선수들 원시 축구를 묘사한 것이다.
Anthem을 편곡한 JS Radio Edit 버전도 널리 사용되었다.

  • 또한 테마곡 중 하나인 조수미의 champions(챔피언) 또한 대호평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반젤리스의 입장가와 함께 2002년 월드컵 관련 영상의 단골 bgm으로 사용되고 있다.[65]


  • 이 즐거운 축제의 막바지에 북한에 의해 큰 비극이 일어났으니,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였다. 그 이전에도 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두고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이 일어나면서 안그래도 안톤 오노에게 뺏긴 금메달과 미국전 무승부 때문에 반미감정에 기름을 붓는 격.
  • 여기에 더욱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한국-포르투갈전이 있던 날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각계의 반응을 다뤘고 그중에는 해군 2함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도 반응도 살피고 인터뷰도 했는데 문제는 인터뷰에 응한 인물 중 한 명이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당시계급 대위)이었다.

1분에서부터 윤영하 소령과의 인터뷰가 시작된다.[66]
이로부터 16일 뒤에는 이들의 생전 응원 장면을 취재한 내용을 유족들에게 공개한 장면이 보도되었다.

  •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중 미필자들에 한해 병역혜택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포르투갈을 이기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었을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라커룸으로 들어와 선수들을 축하해주었는데 당시 주장이자 합법적 병역 브로커이었던 홍명보가 "선수들 고생했는데 병역헤택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했다. 대통령은 "생각해 보겠다."라고 했으며 이후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이 주어졌다.[67] 많은 사람들이 4강 진출로 병역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16강전이었던 이탈리아 전과의 결과는 상관없이 16강 진출 기념으로 병역혜택이 주어졌다.[68][69]

9 결과

순위국가경기득실승점비고
1브라질7700184+1421우승
2독일7511143+1116준우승
3터키7412106+4133위
4대한민국732286+2114위
5스페인5320105+5118강
6잉글랜드522163+388강
7세네갈522176+188강
8미국521277078강
9일본421153+2716강
10덴마크4211550716강
11멕시코4211440716강
12아일랜드413063+3616강
13스웨덴4121550516강
14벨기에412167-1516강
15이탈리아4112550416강
16파라과이411267-1416강
17남아프리카 공화국311155041라운드
18아르헨티나311122041라운드
19코스타리카311156-141라운드
20카메룬311123-141라운드
21포르투갈310264+231라운드
22러시아310244031라운드
23크로아티아310223-131라운드
24에콰도르310224-231라운드
25폴란드310237-431라운드
26우루과이302145-121라운드
27나이지리아301213-211라운드
28프랑스301203-311라운드
29튀니지301215-411라운드
30슬로베니아300327-501라운드
31중국300309-901라운드
32사우디아라비아3003012-1201라운드

10 대회 이후

2000년대 초반 들어 J리그에 스타 선수들을 빼앗기며 침체기에 들어섰던 K리그는 월드컵 이후 축구 붐에 힘입어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게 된다. 물론 월드컵을 위해서 지었던 10개의 최신식 구장도 인기에 한 몫했다. 올스타팀에 선정된 알파이 외잘란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기도 했다. 인천에 와서 각종 깽판을 다 치고 간 게 함정

하지만 4강이라는 성적은 한국 축구에 너무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이후 여러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 등으로 유럽 축구의 인기가 많아지고 한국 축구가 연달아 병크를 내자 한국 축구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축구 저변 자체는 꾸준히 성장했다. 대회 전에 10개 팀이 고작이던 K리그는 14년이 지난 2016년 현재 1부, 2부 합쳐 23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유소년 축구도 상당히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실망감을 느낄 수 있는 자체가 관심이 있다는 소리다. 일부 기레기와 야빠들의 말대로 그들만의 리그나 그들만의 종목이었다면, 이미 한국 축구는 프로든 아마든 진작에 망하고도 남았다. 저놈의 기레기들의 성화 때문에 한국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까지 국가대표팀 감독을 세 번이나 바꿨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2006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것을 심판과 나눠먹은 스위스 탓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준비 부족이라고 깨끗하게 인정하면서 1년도 안 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팀웍을 다지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기레기들이 16강 못 가게 막았네? [75]

이 당시 한국대표팀은 미래를 위해 유망한 청소년 선수 4명을 훈련 파트너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정조국, 여효진, 최성국, 염동균이었는데, 정조국과 여효진은 이렇다할 성장을 보이지 못했고(하지만 정조국은 2016시즌 현재 K리그 득점 1위), 최성국과 염동균은 승부조작질로 한국 축구계에 먹칠을 가했다.(...)

월드컵 수익금은 18억달러(약 1조2960억원)로 TV 중계권료가 10억8000만달러(약 1조2960억원)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후원업체로부터 들어오는 돈도 3억달러(약 3600억원)나 된다.

그러나 FIFA가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과 달리 공동개최국인 한·일 양국의 흥행은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공동개최를 하다보니 경기장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10개 경기장을 신축하는데 2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쏟아부었다.#[76] 다만 대회 운영과 준비를 한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는 200년 1662억원 흑자를 보았다.

일본도 경기장 신축과 보수에 3조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재주는 개최국이 부리고 돈은 FIFA가 챙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탈 아시아를 외쳤지만, 대한민국의 기대 이상의 선전과 아시아 팀들의 상향평준화 속에 묻혀서 물 건너갔고 J리그의 파이를 키우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2009년 열린 FIFA 총회에서 FIFA는 더 이상의 공동개최는 없다는 선언을 냈고, 이는 이 월드컵을 최초이자 최후의 공동개최 대회로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 원칙은 2018년 월드컵 개최에서 폐기되어 벨기에-네덜란드(원래 룩셈부르크도 같이 묶어서 베네룩스 3국으로 하려 했다고 한다.), 포르투갈-스페인이 공동개최를 추진하였다. 투표 결과 둘 다 러시아에 밀려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후 2030년 월드컵에서도 우루과이-아르헨티나가 공동개최를 추진한다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월드컵은 피파에서 "개별개최로 신청된 나라를 임의로 묶어서 공동개최로 만들어버린" 것이므로 처음부터 공동개최로 신청하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기는 하다. 한마디로 월드컵 개최 유치전에서 무승부가 난 유일한 월드컵인 것이다.

FM에서는 2002 FIFA 월드컵은 대한민국에서만 개최되었다고 나와있다. FM의 전신이자, 2002년 당시 발매된 'CM(챔피언쉽 매니져)01/02 or 2002 K리그'에서는 공동개최라고 되어 있지만 대다수 중요한 경기들이 실제와는 달리 일본 경기장에서만 진행되었다.(개막전과 심지어 3-4위전과 4강 전 경기가 일본 개최) 처음 있었던 공동개최였기에 시스템상 지원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201x년 월드컵은 북유럽 몇개 국가가 공동개최한다고 뜬다.

월드컵이 끝나고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넣었단 이유로 어이없게 AC 페루자에서 방출당해 커리어가 밑바닥을 치기 시작했다.(…)[77] 그리고 이탈리아 의회에선 대한민국과 국교를 끊어야되는거 아니냐(…)는 잉여스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루머가 있다.[78][79]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 직전에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한국과 재대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80]을 보면 아직까지도 앙금이 남아 있는 듯.[81] 그리고 FM2014에는 이탈리아 국대의 라이벌로 대한민국이 설정되어 있다.(...)

이 대회까지는 전 대회의 우승국이 개최국과 마찬가지로 예선 없이도 참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대회의 흥행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게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다. 논란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 '전 대회 우승국이 그 전력을 4년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이였다. 결국 이 대회에서 프랑스가 1라운드부터 처참하게 개발살이 났다. FIFA에서는 '전 대회 우승국이 그 전력을 4년간 계속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 대회를 끝으로 전 대회 우승국의 자동 출전권을 폐지해 버렸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이 대회가 개최되기 전에 이미 전 대회 우승국의 자동 출전권은 폐지된 상태였다.[82] 그래서 전 대회 우승팀 대신 개최국이 개막전을 치르게 되어 전 대회 우승팀이 개막전에서 고전한다는 징크스도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4강 진출의 분위기를 타고 정몽준 축협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했다. 그리고 돌연 노무현 후보 지지를 일방적으로 철회[83]해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서양 축구팬들한테는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하다. 이유는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지금까지도 떠도는 오심 모음 동영상 때문이다.

10년 후인 2012년 한국에서는 2002년 월드컵 10주년을 맞이하여 K리그 올스타전을 2002년 당시의 대표팀과 2012년 현재의 K리그 올스타와의 경기로 꾸몄다. 흥행도 성공했고, 그에 걸맞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많았던 알찬 올스타전이었다. 10년전 현역 선수들이었던 멤버들이 감독이나 코치, 혹은 베테랑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감회가 새롭다. 대작 애니메이션이 종료된 뒤 후일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84] 그리고 그런 와중에 월드컵 엔트리에 끼지 못해 2002 멤버들과 최소 동기, 내지는 그들보다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2012 팀에서 뛰게 된 이동국을 보고 있으면 눈에 습기가 절로 찬다(...).

이 대회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이름만 올리고 실제로는 그라운드에 얼마 서있지도 못한 카카는 브라질이 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덕에 FIFA 월드컵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 중 최대의 행운아가 되었다. 겨우 20분 정도만 뛰고 월드컵 우승 멤버가 되었으니...

이경규가 간다가 2002 월드컵 특집방송으로 부활하여 좋은 반응을 얻자 이후 한국 지상파 방송 3사는 다음 대회인 독일 월드컵부터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의 월드컵 특집은 물론이오 아예 월드컵 특집예능을 런칭하는 등 월드컵 시즌에 맞춰서 특집방송을 경쟁적으로 편성하게 되었다.

재미있는게 이 대회 본선 16강전~4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나라들이 훗날 개최된 월드컵에서 공교롭게도 대결한 순서대로 모두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6강전 상대 이탈리아는 다음번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8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스페인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으며, 4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독일 또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85] 그럼 2018 러시아 월드컵터키가 우승인가?! 그만큼 당시 대한민국이 우승후보들을 줄줄이 꺾으며 올라갔었단 얘기.

2015년 6월 FIFA에 대한 비리가 대대적으로 적발되어 수사되는 과정에서 스페인 언론이 2000년 당시 일본 축구 협회장인 나가누마 겐 회장이 남미축구연맹에 대회 유치 사례로 15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폭로했다. 일본조와 토너먼트 대진이 널널했던 이유 사실 대회 유치 결정은 그 전에 결정이 났지만, 일본은 현재 카타르처럼 1998년 자력 진출이전에 월드컵에 출전한 사례가 없기에 명분적으로 한국에 밀리는 상황이었다.[86] 일본 측에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지만, 돈이 오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도 있으며 그 서류에는 돈을 받은 당사자인 레오스 전 남미축구연맹 회장과 아내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고 알려져 앞으로도 두고 봐야 할 일이다.

11 2002 FIFA 월드컵 스폰서십

11.1 FIFA 월드컵 스폰서

11.2 대한민국 국내 스폰서

11.3 일본 국내 스폰서

  1. 마치 하늘이 브라질을 이 월드컵에서 우승시키려고 작정한 것과도 같았다.
    조별리그 1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이래 이 월드컵까지 지역예선을 한 번도 뚫어본 적이 없는 터키
    조별리그 2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는 녀석들이 공동개최가 된 덕분에 지역예선 자리가 두 개나 빈 덕에 무임승차해서 본선에 온 중국
    조별리그 3은 당시에는 그냥 참가하는 것에 의의를 둔 코스타리카
    16강은 한 물 정도가 아니라 두 세물은 가서 우루과이에 비견되는 퇴물 벨기에
    8강은 죽음의 조를 뚫었다지만 나이지리아 정도와 비길 정도로 답이 있지가 않은 잉글랜드
    4강은 전술한 터키를 한 번 더 만났으며
    결승은 전술한 잉글랜드에게 지역예선에서 1-5로 줘팸당한 독일이 상대였다. 이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맞붙은 상대는 훗날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는 3위의 독일과 16강의 잉글랜드를 제외한 모든 팀이 죄다 지역예선에서 누웠다.
  2. 마라도나와 펠레는 서로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 20세기 최고 축구선수선정을 두고 둘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면서 결국 피파는 펠레, 마라도나 둘다 최고 선수로 선정하면서 둘이 굉장히 기분나빠했다. 허정무에게 맞은건 잊었나보네?
  3. 아벨랑제는 아예 한국은 전쟁위기가 있으니 일본이 개최해야 한다는 인터뷰라든지, 자신은 매해 휴가를 일본으로 간다고 자랑한다든지(...) 너무나도 노골적인 일본 지지를 보여줬다. 이젠 일본으로 놀러가려나?
  4. 실제로 일본은 199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첫 본선 진출이 거의 다가온 상황에서 이라크에 발목을 잡히고 본선 티켓을 한국으로 내주면서 탈락했기 때문에 다음 대회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야 첫 출전한다. 그런데 사실 이때도 지역 예선에서 홈에서 한국에 역전패하는 등 고전한 끝에 조 2위로 떨어져서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고 각 조 2위간의 플레이오프에서 이란과의 연장 접전 끝에 간신히 본선 진출 티켓을 획득했다.
  5. 참고로 2022년 월드컵의 개최지가 중동의 카타르인데, 카타르 역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한 번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일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1934년의 이탈리아 이후로 무려 88년만에 월드컵 출전 경험이 없는 나라가 월드컵을 개최하는 사례가 된다. 물론 이미 개최 과정에 많은 비리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긴 하다. 참고로 월드컵 본선에 올라온 적 없는 팀들 중에서도 몇몇 나라들이 개최 유치를 시도하고 있는데 2026년에 동남아 몇 개국이 뭉쳐 공동개최를 신청하고 있고 2030년에는 베네수엘라가 공동개최를 신청하고 있는데 베네수엘라는 안 될 거야 아마. 2030 월드컵이 월드컵 100주년 기념 대회인데 첫 대회와 같은 우루과이가 또 개최를 신청했는데 그당시에 비해 월드컵이 너무나 커져버린 탓에 우루과이는 자기 혼자 힘으로 개최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 아르헨티나를 끌어들여 공동개최로 신청했다.
  6. 당시 유럽 측 집행위원들은 조앙 아벨란제 회장의 장기집권에 불만을 가지고있던 터였다.
  7. 나중에 결승전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개막전을 대한민국에게 양보한 일본은 전 대회 챔피언 프랑스가 개막전 1라운드부터 탈락하며 피똥을 쌌다(...)
  8. 88올림픽 유치 당시 경쟁 상대가 비교적 만만한 나고야였고 일본 국내 여론도 '도쿄에서 했는데 또?'식으로 시큰둥 해서 일본 측이 맥이 빠져있었던 반면 02년 월드컵 유치는 일본도 필사적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올림픽 유치 때와 비교하면 한국의 위상이 훨씬 높아진 상태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9. 참고로 니콜라스 레오스는 미국 사법당국이 수사 중인 FIFA 비리 혐의에 연루돼 현재 인터폴의 수배를 받는 6명 가운데 1명이며, 현재 가택연금 상태로 모국인 파라과이에 머물고 있으며 미국이 압송 절차를 밟고 있다.
  10. 그런데 이후에도 포스터로 장난질까지 쳤다. 파란색 바탕에 Korea라는 폰트를 파란색으로 칠해서 사실상 '2002 FIFA World Cup Japan'이라 알아보게 만든 것. 그런데 12년 후 일본은 진짜 교과서에서까지 한일 월드컵을 삭제해버렸다.
  11. 특히 카즈는 일본 축구의 영웅 카즈 미우라와 유사했다. 니크도 니폰과 발음이 유사하다.
  12. 호주는 원정 0-3 패, 홈 1-0 승. 이란은 원정 0-2 패, 홈 1-0 승.
  13. 결정일이 언젠지 누락돼있음. 아는 분이 추가 바람.
  14. 결정의 주체가 정확히 누군지가 누락돼있음. 아는 분이 추가 바람.
  15. 영남권에만 대구,울산,부산 세 곳이 있어서 포항까지 주게 되면 지역 편중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16. 당초 한국에서는 특별시+광역시에 7개 경기장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했지만 일본과 비율을 맞추고자 10개로 늘렸고 추가된 수원, 전주, 서귀포는 국고지원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경기장을 유치했다.
  17. 2008년 3월 5일부로 '대구스타디움'으로 정식 명명되었다.
  18. 월드컵 기간 중에는 본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에 가변좌석을 설치하여 축구전용구장으로 운영했지만, 월드컵이 끝난 후 가변석을 철거하고 육상트랙을 설치해서 종합운동장으로 변했다. 당초 설계를 종합운동장으로 했다고.
  19. 가변석 철거 후 현재는 40,245석.
  20. 당초 전국체전용으로 기존 구장을 신축 또는 리모델링하려고 했는데, 월드컵 유치로 계획을 수정하여 경기장 규모를 키웠다. IMF 사태로 서울 축구전용구장 신축 반대 여론이 제기되면서 한때 월드컵 개막전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다.
  21. 문학과 마찬가지로 한때 월드컵 개막전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다.
  22. 위치가 서귀포여서 '서귀포 경기장'으로 통칭되기 쉽지만 정식으로는 제주를 달고 있다.
  23. 이후 가변석 철거, 보수 공사로 인해 2013년 현재는 29,971석이다.
  24. 명명권 채택으로 2005년부터 닛산 스타디움으로 명명되었다.
  25. 광주와 유사하게 월드컵 기간중 가변좌석을 활용하여 5천석 정도를 늘렸다. 현재도 축구 경기에는 사용중이나, 광주와 달리 처음부터 육상경기장 명목이었다.
  26. 명명권 적용으로 2014년 이후 '얀마 스타디움 나가이'. 한일 월드컵에 사용된 경기장 중 가장 먼저 완공되었다.
  27. 명명권 적용으로 2014년부터 '히토메보레 스타디움 미야기'.
  28. 명명권 적용으로 2007년 이후 '도호쿠전력 빅 스완 스타디움'.
  29. 야구장-축구전용구장 간 전환이 가능한 구조이다.
  30. 명명권 적용으로 2010년 이후 '오이타은행 돔'.
  31. 명명권 적용으로 2013년 이후 '노에비어 스타디움 고베'. 덧붙여 이유는 불명이지만 FIFA의 경기 기록에는 2007~2012년 사용된 스폰서 명칭 '홈즈 스타디움 고베'로 기재되어 있다. FIFA는 원래 경기장의 스폰서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
  32. 양쪽 골대 뒤 임시 스탠드를 설치한 상태에서의 수용 인원으로, 대회 종료 후에는 임시 스탠드를 철거하여 34,000석으로 조정되었다. 단 홈팀인 비셀 고베가 상단 스탠드를 열지 않아 J리그에서의 정원은 30,132석으로 되어 있다. 이전 버전에 서술된 6만석짜리 경기장은 이전 홈으로 사용하던 고베종합운동공원 육상경기장 (애칭 유니버시아드 기념 경기장) 으로 이 경기장과는 무관하다.
  33.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개최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9.11 테러 이후 유사한 테러 발생을 우려하여 취소하였다고 한다. 도쿄는 당시 국립경기장의 노후화 및 시설 부족(예를 들어 관중석 중 지붕이 덮이는 면적이 20%도 되지 않으며, 관중석도 4강전 등 주요 경기 용도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으로 신규 경기장이 필요했는데, 이에 따라 재정 및 혼잡 등을 사유로 입후보하지 않았다. 애초에 일본 내 단독 개최지 후보로도 꼽히지 않았다.
  34. 비록 도쿄에선 월드컵경기장이 없었지만 사이타마, 이바라키, 요코하마 경기장은 도쿄 근교 도시들로 도쿄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35. 그럴 만도 한것이 대표팀 조별리그 3경기가 열린 곳은 부산, 대구, 인천으로 모두 종합운동장이었다…
  36. 때문에 국내보다 차범근에 대한 인지도가 높던 유럽에서는 "혹시 차범근이 죽은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37. 추첨자 선정 통보를 받았을 때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처음에는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몰랐다. 국제적인 행사인 것을 알게 된 뒤 깜짝 놀랐다."는 송혜교의 인터뷰 내용 때문에 이런 논란은 더욱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38. 대신 차범근은 2003년 12월에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대륙별 조추첨 행사에서 아시아 대표 조 추첨자로 참석하여 약간의 한풀이는 했다.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09830&cloc=joongang%7Carticle%7Crelated_news
  39. 일설 에는 프랑스 가 조별예선 에서 처참하게 탈락하여 그랬다는 말도 있고 그동안 의 디펜딩챔피언 들 이 계속 부진해서 참다못해 폐지 했다는 우스개 도 있다. 실제로 역대 의 월드컵 우승국 들은 다음대회 조별리그 에서 고전 을 한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꼭 그랬던건 아니고 개막전 을 주로 치르다보니 주로 네임벨류 가 높은 강팀들과 경기를 잡는게 대부분 이었기에 손해를 보는 경우에 속했던 탓이기도 한 만큼 꼭 프랑스 의 부진 탓 만은 아니다.
  40. 전대회 4강 진출국
  41. 2위 에콰도르와 6위 콜롬비아의 승점 차이가 겨우 4점이었다. 3위 브라질과 6위 콜롬비아의 차이는 겨우 3점. 한 경기만 더 졌어도 월드컵에 못 올라올 수도 있었다!
  42. 잉글랜드에 무려 1:5로 대패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43. 당시 안 그래도 일본은 데이비드 베컴 광풍이 불었고 거기에 이 월드컵 공동개최에서 아르헨티나가 한국을 지지해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를 노골적으로 증오했다. 일본이 노골적으로 인기팀만 응원했는데 딱 두 경기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 아르헨티나 대 나이지리아전과 아르헨티나 대 스웨덴 전이다. 이 정도로 일본이 아르헨티나팀을 싫어했다. 특히 아르헨티나 대 스웨덴 전은 일본이 유일하게 아르헨티나보다 인기없는 팀인 스웨덴을 응원했는데 스웨덴이 공을 잡으면 환호성을 질렀고 아르헨티나가 공을 잡으면 야유를 퍼부었다.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한국으로 배정되었더라면 절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는 달리 특정 팀을 증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폴란드와 포르투갈이 경기할때 붉은 악마들은 둘로 나눠서 폴란드 응원할 응원단과 포르투갈 응원할 응원단으로 나눠 각자 응원하고 경기 끝나면 다시 응원단을 합쳤다. 매너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극명한 차이가 보였다.
  44. 알다시피 스페인은 한국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로 패했고, 승부차기 패배는 공식적으로는 무승부로 기록되기 때문에 스페인은 대회를 무패로 마감한 셈이다. 여담으로, 다음 대회인 2006 FIFA 월드컵의 스위스도 이와 유사하게 패배 없이 8강에서 탈락했다.
  45. 레버쿠젠은 당시 다수의 브라질 국가대표 선수들을 기용했는데, 레버쿠젠의 브라질 선수들 중 제 호베르투만 스콜라리호에 승선하지 못했다. 푈러 또한 레버쿠젠 선수들을 독일의 2002년 대회 최종 엔트리에 다수 승선시켰다. 그리고 이 대회를 통해 주가가 오른 레버쿠젠 선수들이 몽땅 다 나가버려서 02-03 시즌에는 강등권에 허덕였다.
  46. 한중간 역대전적도 안 봤던 모양이다. 공한증 항목 참조. 게다가 이런 의식은 이후에도 비슷했는지 2006년의 프랑스와 스위스도 한국전을 대비해 중국과 평가전을 치렀고, 기어코 프랑스는 이 때 지브릴 시세를 소림축구로 잃었다 심지어 2010년의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는 중국보다도 더 전력이 떨어지는 북한(...)과 평가전을 치른 바 있는데, 중국이나 북한이나 피파랭킹을 보든 A매치 역대전적을 보든 기본적으로 한국보다는 한 수 아래의 상대들이다.
  47. 이 말도 안되는 짓은 포르투갈 전력 탐색관의 불성실 때문이다. 단순히 유럽 내의 자료만 봤기에 이런 병크를 터트린 것. 프랑스만 해도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한국을 5-0으로 처발랐으나 월드컵 개막 직전에 가진 한국과의 평가전에서는 2-3으로 진땀승을 거두자 '이놈들 1년 사이에 엄청 강해졌다.'고 놀랐는데, 정작 한국과 조예선을 치르는 포르투갈은 이러고 있었으니...
  48. 미국에게 발렸을 때만 해도 선수단이 긴장을 탔지만, 폴란드를 4:0으로 바른 다음에 다시 기강이 헤이해졌다고. 거기다 감독은 안그래도 부실한 데이터가 담긴 노트북이 고장이 났지만 고쳐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49. 신빙성이 있냐 없냐 시끄러웠는데, 후에 홍석천이 방송에서 당시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사인받은 티셔츠를 공개하며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폴란드만 해도 호텔 앞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노가리 까더라는 축구팬들의 증언이 있었을 정도니...
  50. 백남준작 '동방으로 부터'
  51. 월드컵을 앞두고 국내에선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주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자로 잰 듯한 애국주의가 통용되던 시대의 끄트머리여서인지 관민이 하나되어 이에 동참했고 본 문단 역시 이러한 경향의 일례다.
  52. 이와 비슷하게 유로 대회에서도 이탈리아를 도발하려고 상대국 팬들이 태극기를 올렸다.
  53.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을 의식한 문구. 붉은 악마 측에서는 깊은 생각 없이 적은 건데, 문구를 미리 발견한 이탈리아 측에서는 항의까지 할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반대로 잉글랜드는 이거 보고 싱글벙글했다. 다름아닌 자기네가 유일하게 우승한 월드컵이다.
  54.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해 유니폼에 별을 새기자는 의미.
  55. See you at K-리그. 월드컵 끝났으니 K리그에서 보자는 뜻이다.
  56. 이에 대한 일화로 90대 할머니가 3.1 운동 이후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57. 참고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자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월드컵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국제스포츠 중계 시 자막에 보통 '한국'이라고 썼고 신문이나 TV 등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보통 대한민국이라고까지 얘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한일월드컵 이후 언론에서도 꼬박꼬박 대한민국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58. 원본은 2002년 6월 15일자 MBC 뉴스데스크 일부. 장소는 경기도 광주시의 한 장례식장이며, 포르투갈전 다음날 뉴스 영상이다. 다행히 호상이었나보다.
  59. 8강전 승리때 에는 수유동 의 어느경찰 마저 순찰차 위에 올라갔다. 물론 외친건 대한민국 이 아니라 몰려나온 시민들 에게 차도 에 나오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였다.
  60. 조예선을 치른 일본에는 약 3만, 그리고 한국에서 열리는 16강 전에는 8천명이 방문했다.
  61. 하지만 나중에 알려지기로 몇 개월 후에 카마친을 그리워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사람을 보내서 통역관이 맡아서 기르고 있던 카마친을 정식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참고로 이 통역관은 스페인 선수들과 함께 PC방(...)에 놀러가기도 했다.
  62. 여담이지만, 축구선수마다 수분 보충을 위해 물/이온음료를 취사선택한다. 2002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 팀닥터였던 김주영에 따르면 안정환게토레이와 물을 반반 섞어서 마셨다고.
  63. 1982년 친선전에서 2:2 무승부 기록
  64. 이후 YB는 축구팬들 입장에서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2002년 월드컵 특수로 인기를 한 몫 따낸 다음에 2006 독일 월드컵에선 깔끔히 등을 돌렸던 것. 2006년 초 애국가를 리메이크한 응원가를 만들었으나 비판만 받았을 뿐이었다. YB에서는 밴드 이미지가 월드컵이나 축구 관련으로 굳혀질까 그랬다고...
  65. 그런데 MBC에서는 한때 이 노래를 국가대표팀 경기 중계에서 득점이 나올 때마다 삽입하여 빈축을 샀다.
  66. 주의깊게 보면 윤영하 소령뒤로 참수리 357호정이 찍힌 구명조끼를 입은 승무원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67. 당시 많은 기자들과 카메라가 있는 데서 요구를 한것이었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또한 사상 최초의 16강 진출로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 혜택은 있어야 않겠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도 해서 병역혜택이 주어지고 난 후 군말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68. 그리고 이 병역혜택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진출 기념으로 야구선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며 이후 다른 종목의 반발로 월드컵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병역혜택은 사라졌다.
  69. 이때 혜택을받은 선수는 현영민, 김남일, 최태욱, 설기현, 이영표, 이천수, 차두리, 안정환, 박지성, 송종국
  70. 의미는 남한의 '남'+ 니코동의 혐한태그인 똥술 + 영어권의 땅을 나타내는 접미사 'land'
  71. 한국사람을 다 싸잡아서 욕하는건 아니고, 니코동에서 '성형을 자주 하는 한국의 여성을 인간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뭐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다만 이 영상에서처럼 그냥 한국을 까고 싶을 때도 빈번히 사용한다.
  72. 5골을 기록한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브라질의 히바우두는 공동 2위를 기록했다.
  73. 마의 6골 벽을 깨뜨린 호나우두도 MVP감으로 손색이 없었지만 기자단 투표가 호나우두가 두 골을 넣기 전인 결승전 하프타임에 열렸기 때문에 칸이 수상자가 되었다. 이 대회 이후로 MVP 투표가 결승전 종료 이후에 행해지게 되었다.
  74. 골든 볼, 실버 볼, 브론즈 볼을 통틀어서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비유럽, 비남미권 선수의 수상이다.
  75. 사실 2014 브라질 월드컵때 1무 2패로 팀을 광탈시켰다고 욕먹은 홍명보 감독도 사실 부임해서 팀을 맡았을 당시에는 이미 공중분해된 상태였다. 이게 다 최강희 감독과 냄비팬 그리고 축협 때문이야 게다가 아드보카트 감독처럼 시간 부족도 있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홍명보 감독을 까는건 옳지 않다.
  76. 하필 한국/일본이 공동개최하여 양국 간의 경쟁의식이 과열된 영향이 컸다. 통상적으로 월드컵을 위해 10개 안팎의 경기장이 사용되는 데 반해 2002 월드컵 때는 양국이 각자 10개의 경기장을 개축/신축하였으니...
  77.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브라질의 키퍼 타파렐이 비슷하게 이탈리아에서 쫓겨났다. 안정환은 골든골이나 넣었지만, 타파렐은 승부차기에서 선방하지도 않았다. 로베르토 바죠가 홈런 지른거다.(...)
  78.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축구와 관련해서 우민정치를 행하고 있기에 이탈리아의 반응이 더 격앙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79. 실제로 당시 월드컵이나 축구에 관심이 없이 그냥 이탈리아 여행을 하던 한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인이라고 하면 대번에 이탈리아인들의 표정이 변했다고 한다. 그정도로 이탈리아인들에게 앙금이 남았다.
  80. 실제 말디니는 자신의 국가대표 은퇴경기때 상대할 팀을 한국으로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천수에게 대갈통이 차인 것이 엄청 분했던 모양(...)
  81. 2006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 패배한 우리나라의 느낌이 이탈리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이들에게는 축구는 전쟁이다.
  82. 프랑스의 무승 탈락의 충격이 커서 잘 언급되지 않지만 아르헨티나는 전 대회 우승 후 다음 월드컵 개막전을 모두 패배하였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개막전에서는 벨기에에 패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개막전에서는 로저 밀러가 이끄는 카메룬에 패배하며 체면을 구겼다.
  83. 월드컵에 편승해서 새치기 하듯이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꿀꺽하려 했으나 온갖 소동 끝에 이루어진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 패배하여 대권도전의 꿈이 물건너 갔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날의 유세에서 노후보가 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아닌 정동영, 추미애 당시 국회의원을 차기 지도자로 언급하자 마음이 상했는지 곧바로 유세 도중 자택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잠그고 그날 저녁 지지철회를 언론에 공표한다. 이에 노후보의 지지층은 결집하게 되고 부동층의 표심동정표도 상당수 노후보에게 향했다.
  84. 이 시합에서 '젊은 것들이 어르신들 골 좀 넣겠다는데 필사적으로 막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광훈은 소속팀 감독인 황선홍을 악착같이 막아서 경기 중에 황선홍 감독이 째려보기도. 그리고 소속팀으로 돌아간 후 뒤끝이 작렬했었다(...). [3]
  85. 덤으로 상대 팀 골키퍼인 부폰, 카시야스, 칸은 모두 야신상을 수상했다.
  86. 실제 대회 유치 직전의 기사를 보면 나가누마 축구협회장과 유치위 오구라사무총장의 마지막 해외활동 일정은 극비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의문이 큰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