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 멤피스 출신의 파워 팝 밴드. 그리고 Badfinger와 함께 파워 팝 1세대 아이콘이자 파워 팝 불운의 역사를 상징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재즈 뮤지션 아버지를 둔 음악가 집안에 태어나 13살에 음악계에 투신했으며, 박스 탑스 시절 The Letter라는 곡으로 대박 히트를 기록한 적이 있는 [1] 알렉스 칠튼과 비슷하게 어린 나이에 음악계에 투신해 뮤지션 생활을 하고 있던 크리스 벨이 합심해 1971년 밴드를 만들게 된다. 둘 다 당시 비틀즈 세례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였던 비틀매니아였고 이는 빅 스타의 음악적 성격과 가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 밴드명은 멤피스에서 유명했던 슈퍼마켓 체인점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박스 탑스가 나름 히트 밴드였고 둘 다 작곡 실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성공할것 같았지만 예상은 반대였다. 첫 앨범 \#1 Records는 오늘날까지도 빅 스타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남은 "Thirteen"에서 증명되는, 둘의 뛰어난 작곡 실력과 16트랙 녹음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음향적 실험을 통해 발매 당시에도 평론가들에게도 찬사를 받았고 훗날 파워 팝의 교과서이자 록 명반으로 남게 되었지만 정작 앨범이 팔리질 않았다. 레이블 사의 문제로 제대로 홍보도 되지 않았고, 음반이 제대로 배급이 되지 않아서 팬들은 음반을 사려고 해도 레코드점에서 재고가 없어서 살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스택스 쪽에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게하려고 컬럼비아 레코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컬럼비아 레코드는 매우 시큰둥했고 결국 첫 앨범은 이렇게 쪽박이 나고 말았다.
데뷔 앨범의 실패 후, 밴드 내에서는 새로 녹음한 곡을 담은 테이프가 사라지는 악재가 이어졌고 이에 벨은 상당히 낙심을 했는지 마약을 하고 밴드 멤버와 주먹질을 하는가 하면, 레이블 사장 존 프라이의 차를 공격하는 돌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견디다 못한 한 멤버가 나가고 밴드는 거의 와해 상태에 이르렀다. 다행히도 밴드 멤버들은 칠튼을 중심으로 다시 모여서 2집 Radio City 작업에 들어갔다. 크레딧에 오르진 않았지만 벨도 참여한 Radio City은 평단에서는 전작을 잇는 명작이라는 찬사를 내렸지만 또 컬럼비아 레코드가 홍보를 제대로 안 해줘서 전작보다 조금 나은 판매량를 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결국 1974년에 이르러서는 밴드의 잔여 인원은 두 명밖에 남지 않았고 밴드의 암담한 상황에 완전히 낙담해버린 칠튼은 남은 멤버랑 함께 세번째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칠튼 솔로작이 된 Third/Sister Love는 레이블 사장인 프라이까지 그렇게 앨범 좀 홍보하고 배급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컬럼비아 레코드는 또다시 시큰등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앨범 제목도 제대로 붙여지지 못하고 홍보도 제대로 안된채 발매된 앨범은 사람들이 밴드의 새 앨범이 발매된지도 몰랐으니 당연히 아무도 사가질 않았고 빅 스타 1기는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탈퇴한 크리스 벨은 솔로 활동에 집중하면서 I am the Cosmos라는 또다른 파워 팝 명반을 남기고 1979년 교통사고로 산화했고, 알렉스 칠튼은 솔로 활동과 크램스의 걸작 Songs of Lord Taught Us을 프로듀싱하면서 펑크 록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빅 스타가 뿔뿔히 흩어지는 동안 영국에 이들의 앨범이 넘어가면서 [2] 호평과 동시에 팬덤이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펑크 록을 거쳐 1980년대부터 조용히 일기 시작한 얼터너티브 록 운동을 통해 등장한 R.E.M., 리플레이스먼츠, 틴에이지 팬클럽, 프라이멀 스크림, 위저, 윌코 같은 밴드들이 이들을 추종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무명의 설움을 벗기 시작한다. 결국 그 추종에 힘입어 이미 사망한 크리스 벨을 제외한 멤버들이 다시 뭉쳐 1993년 재결성하고 2005년 앨범을 내면서 제대로 환대를 받았다. 이후로도 꾸준히 투어를 돌았지만 2010년 알렉스 칠튼이 사망하면서 빅 스타는 그 굴곡 많았던 밴드사를 끝내게 된다.
음악적으로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나 영국 기타 팝 외에도 버즈(미국 밴드)라던가 멤피스라는 출신처럼 블루그래스, 소울 음악에도 영감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이들의 곡조는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고 할만한 부분들이 존재하며 오티스 레딩이나 아이슬리 브라더스 같은 뮤지션들도 좋아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들이 소속한 스택스 레이블은 소울 뮤직으로 유명한 레이블이다. 이 외 1970년대에 이미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루 리드 곡을 커버하는 등,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수줍고, 때론 쓸쓸한 감성의 기타 팝을 했으며 이 때문에 얼터너티브 록 시절 밴드들에게 작곡과 더불어 감수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음반 목록
- \#1 Records (1972)
- Radio City (1974)
- Third/Sister Lovers (1978)
- In Space (2005)
- ↑ 곡 듣기. 의외로 유명한 곡이다. 조 카커나 비치 보이스, 찰리 가르시아, 알 그린 같은 당대 날고기는 가수들이 커버했고 배틀필드 베트남이나 미니언즈부터 한국 영화 태양은 없다에 실렸을 정도. 하지만 이 곡은 칠튼이 작곡한 곡은 아니였고, 단순히 자신을 도구로 생각했던 프로듀서에게 실망해 칠튼은 탈퇴한다.
- ↑ 이 와중에 먼지 슬고 있던 3집도 뒤늦게나마 발매되었다. 하지만 이 발매 역시 제대로 이뤄지질 않았다.
이쯤 되면 고밴드 능욕...트랙리스트는 커녕 앨범명조차 제대로 정해지질 않아서 결국 1993년 다시 원래 의도대로 발매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