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미국 밴드)

The_Byrds_in_1965.jpg
왼쪽부터 이때는 앞머리가 풍성했던 데이비드 크로스비 (1941~)[1], 진 클락 (1944~1991), 마이클 클락 (1946~1993), 크리스 힐먼 (1944~), 로저 맥귄 (1942~)

The Byrds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등 여러 장르에 음악적으로 기여하여 1960년대와 그 이후 대중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밴드

1 개요

미국의 록밴드. 민경훈 보컬의 대한민국버즈하고는 관계가 없다. 한글로는 둘 다 버즈로 쓰지만 위에서 보듯 철자부터 다르다.

공식 홈페이지... 라고 해봤자 별건 없다. 각 멤버 홈페이지로 갈 수 있는 링크 정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만들어놓고 안 돌리고 있다. 지금도 활발히 돌아가는 비틀즈비치 보이스 SNS에 비하면 안습.

대표곡은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Mr. Tambourin Man.(발표는 이쪽이 먼저했다.) 본디 로저 맥귄의 찰랑거리는 기타음을 주축으로 하는 포크록 밴드지만 66년도 부터 68년도 까지 사이키델릭 록을 선보이다, 60년대 후반에 그램 파슨스의 영입으로 컨트리 록으로 전향했다.

2 역사

2.1 결성 & 포크 록 시기

1964년 채드 미첼 트리오 등 다양한 밴드를 전전하며 브릴 빌딩에서 작곡 알바를 하던 로저 맥귄 (당시엔 짐이라는 이름을 썼다.)이 진 클락과 데이비드 크로스비를 끌어들여 로스엔젤레스에서 결성되었다. 멤버들 전원 포크, 컨트리, 블루그래스 음악을 했지만 곧 비틀즈의 로큰롤에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음악적 배경과 접목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맥귄은 이미 버즈 결성 이전에도 비틀즈 곡을 모두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부를 정도였다고.
비틀즈의 1964년도 앨범 A Hard Day's Night에서 조지 해리슨이 사용한 12현 리켄베커 기타에 영향을 받아 버즈도 같은 기타를 사용했으며 조지 해리슨과 로저 맥귄의 쟁글거리는 기타 사운드는 훗날 쟁글 팝의 탄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극초기엔 제트 세트, 비프이터라는 이름을 썼지만 곧 버즈로 바뀐뒤 드러머 마이클 클락과 베이시스트 크리스 힐먼이 들어오고 밥 딜런이 써준 'Mr. Tambourine Man'을 데뷔 싱글로 발표하면서 빌보드 & 영국 차트 모두 1위를 달성하여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포크를 로큰롤의 DNA에 접목시킨 이 곡은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와 쟁글쟁글거리는 기타로 포크 록의 시대를 열여젖히는 중요한 시금석으로 자리잡게 된다. 동명의 앨범은 대중음악 명반을 꼽을때 자주 나오는 앨범이다. 게다가 빌보드 차트 6위, 영국 차트 7위도 기록했다. 당시 위세는 가히 비틀즈와 대적할만한 수준이었다.

그 다음으로 그들은 음악적 성숙의 박차를 가한 앨범인 Turn! Turn! Turn!을 발표하게 되는데, 동명 곡인 'Turn! Turn! Turn!' (피트 시거의 곡을 리메이크.), 진 클락의 뛰어난 작사, 작곡 실력이 돋보이는 'Set You Free This Time',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 한 'The Times They are a-Changin, 포스터의 곡을 전자기타와 접목시킨 'Oh! Susannah' 등 여러 주옥 같은 곡을 선보이게 된다. 또 그들이 커버 곡으로 먹고 사는 밴드라는 인식을 버리기 위해 자작곡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특히 진 클락에 곡들이 돋보인다.). 앨범은 빌보드 차트 17위, 영국 차트 11위로 전작보단 차트 성적이 안 좋아졌다. 동명의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영국 차트 26위에 오르게 된다.

2.2 사이키델릭 록 시기

1966년, 이때는 버즈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또다른 걸작인 1966년 Fifth Dimension을 발표한 뒤 싱글 'Eight Miles High'이 약물을 다뤘다는 이유로 라디오에서 금지당하고 [2] 진 클락이 탈퇴하면서 [3] 버즈는 한 차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닥쳐온 위기 때문에 인기가 시들해져서 버즈는 초기의 인기에 무색하게 비틀즈를 위협할만한 스타덤에 오르는데에는 실패했다. 또 차트 기록도 낮아졌는데, Fifth Dimension은 빌보드 앨범 차트 24위, 영국 차트 27위에 오르고, 또 싱글들은 'Eight Miles High'를 제외하고 딱히 좋은 성적엔 오르지 못했다. 지못미.

어찌 맥귄과 크로스비 체제로 밴드를 재정비한 버즈는 게리 어셔라는 걸출한 프로듀서를 끌어들여 Younger than Yesterday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AllMusic에서도 별 5개를 줄 정도로 뛰어난 명반이다.). 지금까지 다듬어진 작곡 실력을 최고조로 뽑아낸 이 앨범에는 TV쇼에서 만들어진 밴드인[4] 몽키즈디스하는 'So You Want to Be A Rock 'N' Roll Star'라든가 'Have You Seen Her Face', 밥 딜런의 'My Back Pages' 등 널리 애창되는 버즈의 곡이 실려 있으며, 후일 버즈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항상 나오는 앨범이 되었다. 또 이 앨범부터 크리스 힐먼의 기여가 커지는데, 이 앨범에서 크리스 힐먼은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5개(!)나 올리고, 아까도 말했던 명곡 'Have You Seen Her Face', 또 시타르 백워드 마스킹이 들어간(!) 'Thoughts and Words', 진지하게 컨트리 록을 시도한 'Time Between'(후에 버즈의 멤버로 합류하는 클라렌스 화이트가 참여.)과 'The Girl With No Name' 등을 작곡한다. 또 그는 평범하면서도 여러 장르에서 잘 이용 가능한 목소리를 가져 보컬도 많이 담당하게 된다. 여러 주옥같은 곡들이 들어갔지만 역시 흥행에는 실패한다. 빌보드 앨범 차트 24위, 영국 차트 37위 까지 밖에 못 오른것이다. 이 앨범이 끝난 후 그들은 The Notorious Byrd Brothers 제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딜런 빠였던 맥귄과 실험적이면서 오리지널 곡을 쓰고 싶어했던 크로스비 간에 충돌이 발생해 결국 크로스비가 탈퇴하고 말았으며 맥귄은 앙심을 품었는지 The Notorious Byrd Brothers 앨범 커버에서 대놓고 크로스비를 말로 표현해 디스하기도 했다. 게다가 마이클 클락도 이 앨범을 발매하고 얼마후 탈퇴 했으며, 판매량도 여전히 좋지 않았다. 영국 차트 12위에 오르긴 했지만 빌보드 차트에선 47위에 올랐다. 그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The Notorious Byrd Brothers는 무그 사운드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흡수해 찬사를 받으며 버즈판 페퍼 상사화이트 앨범으로 남게 되었다.

2.3 컨트리 록 시기

로저 맥귄과 크리스 힐먼만 남은 버즈는 그램 파슨스와 힐먼의 사촌인 케빈 켈리를 기용해 테네시 내시빌에 짱박혀서 Sweetheart of the Rodeo를 만들었다. 원래는 컨트리에서 시작해 우주적인 스페이스 록에 이르는 더블 앨범이였으나 그램의 강력한 주장으로 컨트리록만 남게 되었다. 또 창작곡도 두 곡 밖에 없다. 기존 버즈와는 다른 컨트리 록 일색의 이 앨범에 그나마 남아있던 팬들이 질겁을 하며 비난했으며 밴드 권력을 잡고 싶어했던 그램의 시도[5], 저조한 판매량 역시 갖가지 충돌을 낳다가 남아공 투어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탈퇴했다. 이후 이 앨범은 얼트 컨트리 록의 시발점으로 재평가받았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 버즈의 또 다른 명반이 된다. AllMusic에서도 Younger Than Yesterday나 Mr. Tambourine Man 처럼 별 5개를 주었으며, 다른 여러 음악 평론 사이트들도 좋은 평가를 내렸다. 이 앨범에 명곡에는 밥 딜런의 곡들을 리메이크한 'You Ain't Going Nowhere', 'Nothing Was Delivered', 그램 파슨스의 명곡 'Hickory Wind', 'One Hundred Years From Now' 등이 있다. 나중에 그램 파슨스는 탈퇴 후 짧고 굵게 솔로 활동을 하면서 얼트 컨트리 장르의 시금석을 놓은뒤 약물로 산화했다.

2.4 침체기, 재결합, 그리고 해체

크리스 힐먼도 탈퇴하고 다른 멤버들도 탈퇴해 로저 맥귄은 Younger Than Yesterday 세션에 참가한 클라렌스 화이트와 베이시스트 존 요크, 뛰어난 드러머 진 파슨스를 고용하고 새로운 시작을 한다. 하지만 그 시작은 좋지 않았다. Dr. Byrd & Mr. Hyde는 그저 그런 평가를 받았으며, Ballad of Easy Rider도 나쁘지는 않지만 예전과 같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Ballad of Easy Rider 앨범을 발표하고 나서 베이시스트는 스킵 배틴으로 교체되었는데, 그래도 나아진 건 별로 없었다. 그들은 Untitled 앨범에서 그럭저럭한 호평과 인기를 얻었긴했으나, Byrdmaniax는 혹평을 받고, 전작보단 나아진 Farther Along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6] . 결국 로저 맥귄 빼고 나머지 멤버들은 탈퇴하고 만다.

하지만 침체기때 라인업의 라이브는 정말 뛰어났다. 각 멤버 모두 그 분야의 내로라 할만한 실력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7] 특히 그 때 시절에 그들이 연주한 'Eight Miles High'는 정말 놀랍다. 원래 3분 30초를 조금 넘기는 그 곡을 9분이나 10분이 넘어가는 대곡으로 만들어 연주하는 것들을 들으면 정말 놀랍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1973년, 1965년 라인업인 진 클락, 로저 맥귄, 크리스 힐먼, 데이비드 크로스비, 마이클 클락 라인업으로 다시 재결합 하여 재결합 앨범이라 쓰고 사망플래그 앨범이라 읽는인 셀프 타이틀 앨범 Byrds를 발표하고 비틀즈비치 보이스 수준의 흥행에 미치지 못한채 버즈는 해체를 선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3 기타

해외에서는 히트곡이 여전히 애창되고 명반들 순위에 오르는 등 비치 보이스비틀즈보다는 못해도 나름 메이저라 할 수 있는 밴드이지만 국내에서는 세부 발음 빼고 이름이 같은 한국의 밴드 때문에 인지도가 바닥이다[8]. 하지만 그들이 보여줬던 12현 리켄베커 기타의 찰랑거리는 하모니는 이후 후대 뮤지션들에게 큰 영감을 줘 파워 팝기타 팝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특히 틴에이지 팬클럽이라던가 빅 스타, R.E.M.에게 영향을 많이 준 편. [9]

유난히 멤버 교체가 많았던 밴드이기도 한데, 아래 표는 버즈의 멤버 교체를 잘 알려준다.
11ac63e4eb019045548b839813946a2b.png

4 디스코그래피

  1. 버즈 활동 중에 앞머리에 탈모가 찾아와 한동안은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버즈 탈퇴 후에는 자신의 모발 상태를 만천하에 공개한 후 '앞머리를 포기하고 뒷머리만 풍성하게 기른' 특유의 헤어스타일(+콧수염)을 백발이 되도록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2. 그래도 빌보드 차트 14위, 영국 차트 24위에 올랐다! 그런데 아직도 부족하다
  3. 가장 큰 사유는 비행기 공포증이였다고 한다. 또 초기엔 진 클락이 작곡을 도맡아했는데 이 때문에 멤버들과 갈등이 발생했다고. 진 클락은 탈퇴 후 솔로로 명반들을 내놓지만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서야 겨우 재발굴되었다. 안습.
  4. 사실상 악기를 든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밴드였다. 나중에는 자기들 스스로 작곡과 연주를 주도한 앨범을 발표함으로써 음악성을 인정받긴 했지만...
  5. 원래 버즈의 리드 보컬은 로저 맥귄이 맡고 있었지만 그램은 그 리드 보컬도 자신이 맡으려고 했다. 즉슨 버즈 자체를 자신의 백밴드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
  6. 그러나 전작보다 뛰어나 지고 더욱 작품성이 높아진건 확실했다. 래리 머레이의 곡을 리메이크한 'Bugler'는 버즈 침체기 최대 명곡 중 하나로 쳐도 될만큼 좋고, 로저 맥귄의 흥겹고 인상적인 리프의 곡인 'Tiffany Queen', 아름다운 트래디셔널 곡 'Farther Along' 모두 뛰어나다.
  7. 참고로 초창기에는 Mr. Tambourine Man 녹음 당시 로저 맥귄을 제외한 악기 연주는 멤버들이 아닌 외부 세션맨이 담당해야 했을 정도로 실력이 매우 나빴다고 한다.
  8. 한국인들이 아는 노래는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 나온 'Turn! Turn! Turn!' 정도 밖에 없다.
  9. 더 스미스 역시 찰랑이는 기타 사운드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밴드지만, 더 스미스의 멤버들은 버즈의 영향을 부정했다. 부정을 넘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