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유키

1 일본의 가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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斉藤由貴
현재 小井由貴(いさらいゆき). 1966년 9월 10일


80년대 일본에서 유명했던 아이돌. 데뷔 때부터 가수와 탤런트 활동 모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여전히 원숙미가 돋보이는 여성 연기자로서 인기가 높다.

가수로서는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아이돌과 달리 가창력을 앞세운 슬로우 템포의 조용한 곡들을 많이 불렀고 홍백가합전에도 출연했다. 작사가로의 재능도 있어서 사카이 노리코혼다 미나코등 동시대 활동했던 여가수들의 곡을 작사해 준 적이 있다. [1] 연기력도 높아서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코믹부터 호러까지 폭넓은 배역을 모두 커버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아 일본 아카데미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80년대에는 정숙한 규수집 따님이나 똑부러진 모범생 이미지로 90년대에는 서스팬스물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다. 대표작으로는 스케반 데카[2] 1대와 메종일각 오프닝곡 슬픔이여 안녕이 있다. 결혼한 후에는 비중있는 배역을 잘 맡지 않다가 유명 각본가인 쿠도 칸쿠로가 각본을 맡은 드라마 나는 주부로소이다 등에 주연으로 나오고부터는 가끔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흔치 않은 모르몬교 신자. 그것도 상당히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로, 교리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연기시에는 천식 치료용 가짜 담배를 사용하였고 누드나 베드신은 심지어 키스신까지 거부했기에 이러한 장면에는 대역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일본의 전설적인 아티스트 오자키 유타카, 탤런트 가와사키 마요와 삼각관계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스캔들이 터질 당시 오자키 유타카는 각성제 복용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지 얼마 안된 시점에다가 시게미라는 여성과 막 결혼식을 올렸던 상태였다. 오자키의 5집과 6집의 표지 사진 모델이 유키이며 그의 유작 앨범인 6집에 유키와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가사가 많이 들어있다는 주장도 있다. 1992년 오자키 유타카가 갑작스럽게 의문사했고 1993년 카도카와 서점의 사장 카도카와 하루키가 마약 밀매 문제로 구속 되었을때 하루키의 리스트에 사이토 유키가 거론되어 마약 사용 혐의를 받았다가 무혐의 판정을 받기도 했다.

큰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지자 사이토 유키는 마성의 여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이미지가 안좋아졌다. 심지어 모르몬교 교단에서 파문을 당하고 곧 헤어누드 사진집을 낼 것이라는 찌라시까지 나왔다. 사이토 유키는 마약 스캔들이 터진 직후인 1994년 미국에 살던 같은 모르몬교 신자인 현재의 남편과 결혼했는데, 이 결혼이 더 이상의 스캔들을 막으려는 교단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모르몬교 교단에서 그녀를 모델로 한 포교비디오를 만들었다가 폐기하는 등 상황이 안좋았던 것은 사실이라서 인터뷰에 의하면 유키의 남편은 결혼 할때까지 사이토 유키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그녀의 각종 스캔들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남동생인 사이토 류지도 한때 배우,가수 생활을 했으며 현재 성우, 가수로 활동 중인 세리자와 유우가 그녀의 조카딸이다.[3] 이 사실이 알려진 건 2015년 11월 20일자 뮤코미 플러스.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한 유키가 방송을 마치고 해당 라디오 후속으로 방송되는 뮤코미 플러스에 세리자와가 출연한다는 걸 알고는 방송을 진행하는 요시이 아나운서에게 우리 유우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나갔는데 요사이 아나운서가 해당 방송 내내 세리자와 유우가 사이토 유키의 조카딸이다 라는 네타를 해당 방송 내내 쳤고 막판에는 유키의 노래들 중 하나를 틀어버렸다. 일단 조카딸과는 사이가 좋은 지 세리자와가 그녀를 두고 유키쨩이라고 친근하게 부른다.

  • 가계 정리
    • (장녀) 사이토 -> 세리자와 / (딸) 세리자와 유우
    • (차녀) 사이토 유키 -> 이사라이 유키
    • (남자 형제[4]) 사이토 류지
    • (남자 형제) 불명

1.1 디스코그래피

1.1.1 싱글

음반명발매일오리콘 최고순위비고
卒業1985년 2월 21일6위
白い炎1985년 5월 21일5위스케반 데카 1기 주제가
初戀1985년 8월 21일4위
情熱1985년 11월 15일3위영화 '雪の断章' 주제가
悲しみよこんにちは1986년 3월 21일3위메존일각 오프닝
土曜日のタマネギ1986년 5월 21일6위
青空のかけら1986년 8월 21일1위
MAY1986년 11월 19일2위영화 '恋する女たち' 주제가
砂の城1987년 4월 10일2위
「さよなら」1987년 11월 18일4위영화 '「さよなら」の女たち' 주제가
ORACION -祈り-1988년 6월 21일4위키스기 타카오와 듀엣
Christmas Night1988년 11월 21일49위
夢の中へ1989년 4월 21일2위이노우에 요스이의 夢の中へ(1973) 리메이크
드라마 '湘南物語 マイウェイマイラブ' 주제가
Ave Maria〜Who1989년 11월 21일62위
いつか1992년 1월 15일50위
なぜ1994년 11월 18일98위
こむぎいろの天使1999년 4월 21일
家庭内デート2006년 6월 7일30위
風の向こう2007년 1월 24일195위애니 레 미제라블 소녀 코제트 주제가
悲しみよこんにちは(21st century ver.)2007년 11월 28일121위
KIZUNA2011년효우게모노 엔딩

1.1.2 앨범

음반명발매일비고
AXIA1985년 6월 21일
ガラスの鼓動1986년 3월 21일
チャイム1986년 10월 21일
風夢1987년 4월 21일
ripple1987년 9월 21일
PANT1988년 3월 21일
TO YOU1988년 12월 7일
âge1989년 4월 21일
MOON1990년 7월 11일
LOVE1991년 12월 4일
Moi1994년 12월 7일
何もかも変わるとしても2011년 2월 14일

2 일본의 야구선수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속)

히로시마 도요 카프 No.21
사이토 유키 (齊藤悠葵)
생년월일1987년 6월 20일
국적일본
출신지후쿠이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2005년 드래프트 3위
소속팀히로시마 도요 카프 (2006~ )

3 일본의 야구선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소속)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No.18
사이토 유키(斎藤佑樹)
생년월일1988년 6월 6일
국적일본
출신지군마 현 오타 시[5]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10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1~ )
와세다 실업고 시절,
이른바 손수건 왕자.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

고시엔 화무십일홍

2006년 와세다 실업고등학교 3학년 때 고시엔에서 7경기 68이닝동안 948개의 공을 던지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유명해진 투수. 경기 도중 마운드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닦는 행동 때문에 ‘손수건 왕자(ハンカチ王子)'[6]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나카 마사히로와 함께 코시엔이 낳은 현시점에서 마지막 슈퍼스타로 평가받을 정도로 당시 인기(특히 여성팬들)가 대단했다.

3학년 고시엔 결승전에서 당시 라이벌이었던 도마코마이 고교의 다나카 마사히로와 맞붙어 명장면을 연출했다. 이때 상대 다나카는 3회부터 중간계투로 등판해 15회까지 1실점으로 막는 호투를 보여줬지만괴물 사이토 유키도 15이닝 1실점 완투(...)를 하는 바람에그럼 얜 뭐야 37년만의 고시엔 결승 재경기가 열렸다. 다시 열린 결승전에서도 자원 선발등판하여 8회까지 1실점으로 막으며 4:1 승리를 하는가 싶었지만, 9회 2점홈런을 맞고 4:3까지 쫓기게 된다. 이때 1점차 리드상황에서 마지막 타자로 나온 선수가 바로 다나카. 드라마같은 이 경기는 사이토가 다나카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와세다 실업고의 첫 여름 고시엔 우승[7]으로 마무리된다.

이 대회에서 사이토 유키는 7경기[8][9][10]에서 무려 950개가 넘는 공을 던졌고, 이른바 "손수건 왕자"라 불리며 (경기 도중 흰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사이토의 모습은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국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한다. 당시 사이토의 인기는 프로선수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역사적으로도 당시 사이토의 인기에 비견할만한 선수로는 사이토의 고등학교 선배인 아라키 다이스케[11], 위에서 나온 PL학원의 KK 콤비 정도밖에 없다.

가을에 있는 제61회 국민체육대회에서도 또 다시 다나카의 도마코마이 고교와 결승에서 맞붙어 1:0으로 승리한다. 이 대결은 2006년 일본 스포츠를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했다.
와세다 실업고등학교와 와세다 대학을 거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했다.

프로 입단 이후엔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뛰어든 라이벌 다나카와 자주 비교되지만, 냉정한 스카우터들의 눈에는 프로에서 뛰기엔 구위가 떨어진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평가 그대로 성적은 인상적이지 않다. 커리어하이는 데뷔시즌의 6승 6패 ERA 2.69. 어느정도 기대를 가지게 할 만한 성적이었지만 이후 분석을 당하고 또한 부상 등으로 인해 재활과 2군에서의 조정을 거치면서 부진하다보니 1군에는 거의 올라오지 못할 정도. 하지만 코시엔 아이돌이라 여전히 상당한 관심이 집중되기도 한다. 특히 아줌마들에게 인기는 여전하다.

다만, 그렇다고 일본 언론들이 그냥 무작정 띄워주기만은 아니었는데, 고시엔 통상성적 12게임 출장 8승 1패 방어율 1.87(완투 10회)로 흠좀무한 성적을 올린 것은 사실이다. 참고로 다나카의 경우는 12게임 출장 8승 0패 방어율 2.07(완투 3회, 이닝수 자체는 비슷하다.)로 사이토 유키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고시엔의 성적과는 별개로 구위 자체가 다나카처럼 위력적이지 않아서 프로구단 스카우터들의 평가는 박했고, 결국 그 평가가 들어맞았다. 한마디로 낮은 수준의 상대에겐 무쌍이 가능한 구위였지만 프로선수 상대로는 통용되기 힘들다고 본 것. 이래서 스카우터들이 고시엔 성적을 잘 안 믿는거긴 하지만.

또한 사이토가 현재 부진한 이유는 일본 아마야구계의 고질적 문제인 혹사와도 연관이 있는데,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입단해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며 실력을 갈고닦은 다나카에 비해 고교시절 저 거의 1000개에 육박하는 연투에 이어 와세다 대학으로 진학 후에도 에이스로서 미친듯이 굴려졌고, 국가대표까지 뛰면서 살인적인 혹사를 당했다. 본인도 고교시절 혹사로 몸이 정상이 아님을 느끼고 대학리그에서 경기감각을 유지하며 몸을 추스리고 요양을 할 생각이었던 듯 하지만 역효과.

결국 현재는 완전히 어깨가 맛이 가버린 상태. 분명 구위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드래프트에서 3개 구단이 경합할 정도로 성장 포텐셜이 있는 유망주였음에도 고교에 이은 대학 시절의 혹사로 2군을 오락가락하는 수준의 선수로 전락한 상태다. 프로데뷔 후 고교시절 라이벌이던 다나카와의 몇 번의 맞대결마다 완패를 기록했고 결국 다나카는 24승 무패의 NPB 역사에 남을 시즌을 보내고 메이져리그로 진출해 더이상 라이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다르빗슈 유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고교, 대학야구계의 혹사를 비판하는 측에서 자주 꺼내는 사례가 바로 사이토의 사례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것은 본인이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지 않고 현재 자신이 예전같은 정통파 파이어볼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구를 익히는 등 절차부심하는 중이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인 상태이다.

2014년 7월 3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원정경기에서 6이닝 6피안타 7탈삼진 1실점으로 758일만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사이토는 "이제 제2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라고 다짐했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그리고 동해 9월 29일 선발등판해 5이닝 2피안타 1실점 호투로 845일만에 홈 선발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의 승리로 닛폰햄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은 것은 덤. 이것이 이 해의 마지막 등판으로 2014년은 1군 6경기 등판 2승1패 평균자책점 4.85로 마무리했다. 오래간만에 그럭저럭 희망을 보인 시즌. 또한 구속도 최고 144까지 올라오는 등 어느 정도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2015년에는 본인은 선발을 원하고 있지만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불펜으로 돌릴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일단 2015년 목표는 두자릿수 승수라고 한다. 아직 젊은 28세인 만큼 보여줄 것이 많은 선수. 8월 6일 현재, 7경기 출장 14이닝 ERA 9.00으로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6월 27일 이후 출장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2군으로 내려가서 올라오지 못하는 듯하다. 8월 8일, 라쿠텐전에서 선발투수로 복귀, 5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8월 15일, 라쿠텐전에서 5와 2/3이닝 2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탈삼진을 7개를 잡아내며 선발로써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
  1. 라이브를 보면 고음을 매끈하고 부드럽게 소화하는 반면에 저음에서 삑사리가 나는 경우가 좀 있다.
  2. 초대 아사미야 사키를 연기하고 주제가를 불러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다만 사키의 상징이랄수 있는 요요를 잘 사용하지 못해서 여러번 NG를 내며 고생했고 2대 사키역에는 능숙하게 요요를 사용하는 미나미노 요코가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2006년에 나온 4대 스케반데카 극장판에서 사키의 어머니역으로 우정출연을 했는데, 요요 사용장면이 간단하게 CG로 처리돠는 것을 보며 조금 억울해했다고...
  3. 언니의 딸이다. 사이토 유키는 2남 2녀중 차녀.
  4. 해당 인물의 남동생.
  5. 닛타 군 닛타 정
  6. TV애니메이션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등장인물 나루미야 메이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7. 봄 고시엔 우승 1회가 있다. 1957년(제29회) 대회였으며, 2학년이던 오 사다하루가 4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며 맹활약했다.
  8. 여름 고시엔 1회전은 부전승으로 통과, 2회전 vs 오사카토인고교, 3회전 vs후쿠이상업고교, 8강전 vs니혼대학야마가타고교, 준결승은 가고시마공고, 결승전은 고마자와대학도마코마이고교와 2경기
  9. 2회전 오사카토인고교의 2학년 강타자 나카타 쇼와 대결해 4타수 무안타 3삼진을 거두었다.
  10. 준결승에서 상대한 가고시마공고는 여름 고시엔 첫 출전교였는데, 이 학교 출신인 가와사키 무네노리와 와세다실업고 동문이자 가와사키의 호크스 감독이었던 오 사다하루간의 즐거운(?)설전도 있었다.
  11. 와세다 실업고등학교 1학년 때 여름에 있은 고시엔 대회 예선 경기인 도쿄 동부 대회에서는 내야수의 대기 선수로서 엔트리에 들어갔고 팀내 에이스 투수가 갑작스런 부진에 의해 등판하면서 호투했다. 전국 대회에서도 5경기에 등판해 네 차례의 완봉승, 44와 1/3이닝 연속 무실점의 호투로 팀은 결승에 진출했지만 요코하마 고등학교한테 4대 6으로 패배했다. 당시에, 이 같은 활약에 더불어 단정한 얼굴형을 가진 외모로 여성 팬들로부터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을 태운 버스에서 여성 팬들이 대거 몰려와 버스 주변을 에워싸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정도로 유명하다. 이 기간에 와세다 실업고등학교의 성적은, 아라키를 에이스 투수로 봄과 여름에 걸쳐 5시즌 연속으로 고시엔에 출전했다. ‘다이스케’(大輔)가 신생아의 이름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일명 다이짱 열기(大ちゃんフィーバー)라는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80년 9월에 태어난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어머니도 아라키 다이스케의 열성팬으로 알려져 있어 그의 아들을 ‘다이스케’라고 명명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