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소설)

1 개요

소설가 겸 영화인 심훈의 장편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 작품.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소설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으로, 같은 해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당시 브나로드 운동(농촌계몽운동)을 반영한 장편소설로, 시 그 날이 오면과 더불어 심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 줄거리

청석골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하던 채영신과 한곡리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하던 박동혁은 어느날 모 신문이 주최한 농촌계몽운동 집회에서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후 두 사람은 학교를 그만두고 각자 청석골과 한곡리로 내려가 농촌계몽운동을 하면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운다.

영신은 야학을 하는데 좁은 교회당 건물을 빌려 쓰지만 넘쳐드는 아이들로 인해 야학당을 지을 것을 결심한다. 갖은 어려움 끝에 야학당을 건축했지만 영신은 피로로 쓰러지고 맹장염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소식을 들은 동혁이 달려와 영신을 간호하지만 동혁이 한곡리에 돌아와 보니 고리대금업자 강기천이 농촌계몽운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에 격분한 동혁의 남동생 동화가 회관에 불을 지른 후 도망가고, 동혁은 이것 때문에 옥살이를 하게 된다. 동혁이 출옥하고 보니 영신이 동혁을 부르다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혁은 영신이 못다 한 몫까지 자신이 이루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한곡리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3 구성

3.1 인물

  • 채영신
  • 박동혁

3.2 배경

일제강점기

3.3 사건

  • 추가바람

4 여담

이광수(소설가)의 "무정"과 비교되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무정"이 지나치게 교훈조인 내용인 것과는 달리 "상록수"는 브나로드 운동과 주인공들의 애정을 적절하게 결합했다는 특징이 있다.

심훈은 생전에 "상록수"를 영화화하려고 애썼지만, 일제 강점기의 상황상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8.15 광복 이후 신상옥 감독에 의해 그가 죽고 나서 26년이 지난 1961년에 영화화되었다. 게다가 심훈은 상록수가 당선된 이듬해 1936년에 상록수의 출간 작업 도중 갑작스럽게 장티푸스에 걸려 숨지고 말았다. 신상옥이 감독한 상록수에서 채영신 역에는 당대 최고 인기의 여배우이자 신상옥 감독의 부인인 최은희가, 박동혁 역에는 신영균이 캐스팅되었는데,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과 배우들의 열정적 연기가 결합되어 훌륭한 영화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뒤에도 1978년에 임권택이 감독하고 김희라, 한혜숙이 나온 영화도 만들어진 바 있다.

읽다 보면 로맨틱한 장면도 나온다. 한밤중에 바다로 가서 키스를 한다던지 물론 이런 내용보다는 농촌 계몽운동이 더 중요해서 이런 부분은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못한다. 시간이 된다면 교과서에만 나오는 부분만 읽지 말고 원문을 찾아서 읽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다.

한편, 상록수의 무대가 된 경기도 안산시는 2개 구로 분할됐을 때 이 지역의 명물인 소설 상록수를 기념하고자 지명 이름으로 상록을 채택했다. 이는 국내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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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 선생님의 사진

여주인공 채영신은 실존 인물에서 따왔는데, 그 모델은 옛 안산지역에서 농촌계몽 운동을 펼쳤던 최용신 선생[1]이다. 공교롭게도 1935년 이 소설이 나오던 해에 과로로 인하여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기리기 위해 안산시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그의 이미지인 상록수를 지명지하철 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중에 보면 일본의 방해로 가르치는 아이들 수를 제한해야[2] 해서 공부를 못하고 창밖에서 바라보던 아이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국어 수업시간에 십중팔구 선생님들은 "이런 애들을 가르쳐 봤으면 좋겠다."라고 한다는 카더라가...

5 수상·비평

  • 추가바람
  1. 1909~1935/ 당연히 여자. 채영신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2. 시설이 좁고 낡아서 학생들의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핑계를 내세우고, 만약 이를 따르지 않으면 강제로 폐쇄시키겠다는 암묵적인 협박을 가한다. 채영신은 고심 끝에 일찍 등교하는 순서대로 아이들의 수를 제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