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작가는 이광수.
2 줄거리
주인공 이형식은 경성학교의 영어교사로, 김장로의 딸 선형의 가정교사 노릇을 하게 된다. 선형의 가정교사 노릇을 하던 형식은 어느날 자신의 과거 정혼자이자 은사의 딸이던 영채의 소식을 듣게 된다.
영채는 투옥된 애국지사인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으나, 딸이 기생이 되었다는 것을 안 아버지는 자살하고 말았다. 영채는 기생으로 일하면서도 형식을 위해 순결을 간직하고 있었고, 형식은 영채를 만나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영채는 배학감에게 겁탈을 당해 순결을 잃고,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다.
영채는 자살을 하려다가 기차에서 동경 유학생인 신여성 병옥을 만나게 된다. 영채의 사연을 알게 된 병옥은 봉건적 가치관에 따라 타인을 위해 희생만 하며 살아온 지금까지의 영채의 삶은 잘못 되었다고 하면서 그녀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병옥의 도움을 받아 영채는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춤과 음악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한편, 형식은 결단을 내려 선형과 약혼을 하였으며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다가 기차 안에서 병옥과 함께 가고 있던 영채와 재회한다. 그들은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면 고국에 돌아와 문명 발전에 힘쓸 것을 다짐한다.
3 의의
한국 최초의 현대소설로 종래의 신소설과 구분되는 소설이자 연재 당시에 엄청난 인기[2]와 큰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믿겨지지 않겠지만, 한국에서 최초로 '삼각관계'를 다룬 연애 소설이기도 하다[3] 그런데 이 삼각관계도 골 때린다. 왜냐하면 전개가 여자 두 명에게 모두 책임이 있고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남자가 선택을 요구하는 두 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계몽시키는 것"이라고하면서 자신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얼버무리는 것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즉, 양다리. 이게 왜 골 때리냐면, 이광수도 양다리를 걸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전적 위치를 얻어 꾸준히 연구와 재출간이 이뤄지고 있으며,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선형과 영채를 대하는 주인공 형식의 상반된 태도에 대해서 당시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논쟁을 벌였을 정도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광수가 무정 외에도 동성애 코드가 함유된 작품을 익히 발표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발표된 시기가 1910년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과감한 동성애 표현으로도 끊임없이 뜨거운 감자였다. 영채와 월화의 유사 성행위 장면이라든지, 기차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영채에게 작업을 거는 병옥이라든지, 형식이 희경에게 남녀 사이의 사랑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사랑한다는 묘사 등이 당시 큰 논란이었다.
연재 당시에도 인기가 상당했지만, 그 이후로도 꾸준히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 작품.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나 20세기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책 등에 대한 주제에서 빠지지 않고 상위 랭크 후보로 분류된다.
4 정본 논란
현재 무정의 완벽한 정본은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워낙 자주 재출간이 이루어진 인기작품이었던 만큼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수없이 많은 판과 쇄가 나왔기 때문. 그나마 작가인 이광수가 살아 있었을 때는 작가가 수정에 개입했을 거라 추정되지만 한국전쟁 중에 이광수가 사망한 후로는 워낙 많은 출판사에서 각기 출판사나 편집자 임의대로 수정되어 출간되곤 했었다. 출판사마다 등장인물 이름이 살짝씩 다르거나 문체를 그대로 살린 판과 현대식으로 살린 판,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외국어를 그대로 표기한 판과 당시 조선말로 수정한 판 등 다양하다.
5 비평
의의는 깊지만, 사실 소설 자체의 질은 미묘한 부분이 많아서 무정 까라고 하면 하루 밤새도록 무정하게 깔 수 있을 정도.(…)
당시 편집 기술에 문제가 있었는지, 본래의 원고는 오탈자가 많은 작품이다. 심지어 등장인물 이름도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몇몇은 초반부에 비중이 있는 것처럼 나오다가 돌연 언급도 없이 무정하게 사라져버렸다. 페이크 주연
계몽 소설의 영향이 남아있어 후반부(이재민 모금 운동 부분 이후)에 뜬금없는 민족 발전과 전세계의 문명 발전에 이바지 하자는 내용으로 흘러가는 것이 시대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근대 문명에 대한 우호적인 접근도 엿보인다. 이 문제들은 자선 음악회 사건에서 터져버리기 때문에 읽다보면 결말부에 위화감이 들 수도 있다. 첫머리에도 기승전과학 소설이라는 농담이 있지만, 실제로 무정에 대한 비판적 독해자 중에는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기까지 연애 중심의 갈등구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던 작가가 결말 쓰면서 뭔가 교훈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웃기는건, 연애 문제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전반부의 갈등이 독자의 사고방식을 개조하는데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이런 전개는 당시 소설들의 클리셰이긴 했지만, 이 소설에서는 상당히 추상적인 방식의 계몽을 들고 있는 점이 비판할 점이다. 교육을 통한 개화가, 당시 일제의 핍박으로 인해 집을 잃거나 식량난을 겪는 많은 국민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무정에서 말하는 계몽이란, 일부 지식인들을 통한 소극적 개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작가도 이를 의식한 것인지, 소설 극후반부에 이형식이 생물학을 공부할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교육자가 되렵니다. 그리고 전문으로는 생물학(生物學)을 연구할랍니다."듣는 사람 중에는 생물학의 뜻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형식도 물론 생물학이란 뜻은 참 알지 못하였다. 다만 자연 과학(自然科學)을 중히 여기는 사상과 생물학이 가장 자기의 성미에 맞을 듯하여 그렇게 작정한 것이다. 생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새 문명을 건설하겠다고 자담하는 그네의 신세도 불쌍하고,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
여기서 듣는 사람이라는 이들이 여주인공들과 병옥, 형식 등이다. 자기가 깨우쳤고, 그 깨우침을 전파하겠다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
이에 대한 서술자적 논평에 나타나 있듯이, 당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계몽운동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나타나기는 한다. 사실 이런 소꿉장난같은 계몽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소설의 중반부터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선형의 아버지인 김 장로는 형식을 사위로 삼으면서 미국에 유학을 보내줄테니 박사 학위를 받아서 돌아오라고 하지만, 박사학위를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형식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여자도 박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인(후처, 선형의 입장에서는 새어머니)는 솔직하게 신기하고 놀라워하지만 김 장로는 이미 알고있었던 척 잘난척하면서 즉홍적으로 그럼 선형도 박사학위까지 하고 돌아오라고 결정한다. 그리고 한 집안에서 박사 두명이, 그것도 부부로 나온다는 것에 스스로 자뻑한다.(...) 이런 모습은 작품 내에서도 소꿉장난같고 위태롭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며, 일단 형식은 이 시점까지는 김 장로의 이런 모습을 다소 한심하게 여기지만 그래도 이젠 가족이 되었다는 생각에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작품의 후반에 가면 생물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생물학을 연구하겠다고 하는 형식의 한심한 모습을 작가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현대의 독자는 작가 이광수의 한심한 모습을 비판적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로 서사에서 메타서사, 현실을 관통하여 흐르는 아이러니.
현재 문학계에서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소설적 구조를 취한 정치 선전문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크다. 작가가 갑톡튀하여 자신의 견해를 투영하는 점 때문에, 작가의 주장이 소설의 서사구조를 압도해버리는 소설을 써 가면 무정 써 온 거냐고 무정하게까인다.(...)
6 등장인물
- 이형식
본 소설의 주인공. 조실부모하고 누이와도 헤어져 친척집을 전전하던 것을 박영채의 아버지인 평양 박 진사가 거두었다. 박 진사가 동학혁명에 휘말려 옥에 갇히고 박 진사 집안이 거의 멸문하다시피 한 후로는 영채와 헤어져 일본에 가서 유학하다가 조선으로 돌아와서 서울에서 경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선형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된 이후 갑자기 다시 만나게 된 영채 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영채가 죽을 줄 알게 된 후 선형과 약혼하여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가 교육학을 전공한다.
- 김선형
김 장로의 딸로 빼어난 외모에 정신여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처녀. 김 장로가 선형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 위해 형식에게 선형의 영어 공부를 맡게 하며 형식과 만나게 되었다.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며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이지만 구시대 사고방식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하여, 연애에는 서툴고 부모가 형식을 자신의 배필로 정했으므로 지아비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형식이 자신의 반려자로 그리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듯. 형식과 약혼한 후 영채와 형식의 관계에 대해 오해하며 질투나 허망감을 느끼기도 하나, 형식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 가기 위해 올랐던 기차에서 영채를 만나 화해하고 이후 미국에서 수학을 전공한다.
- 박영채
평양 박 진사의 외동딸. 형식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다가 12살에 아버지와 오빠들이 감옥에 갇히고 친척집으로 보내지며 헤어진다. 친척집에서 무시와 구박을 받다가 결국 도망쳐 평양으로 돌아오는데 그 와중에 납치당해 강간을 당할 뻔하고, 갈 곳 없는 영채를 거둬준 한 남자는 영채를 기생으로 팔고 몸값을 챙겨 달아나버리고, 아버지와 오빠들을 호강시키기 위해 기생이 되었는데 오히려 그들은 그것 때문에 수치심을 느껴 자살해버리고, 기생집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게 된 계월화조차 자살해버리는 등 젊은 나이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다. 어린 시절 박 진사가 영채더러 형식의 배필이 되라 한 것을 기억하여, 기생이 되었지만 형식을 위해 정절을 계속 지켜오다가, 그마저도 더럽혀지게 되자 자살하기 위해 평양으로 떠난다. 평양으로 떠나는 기차 안에서 김병욱을 만나 자살하려는 마음을 거두고 병욱과 함께 일본 음악학교로 유학을 가 새 삶을 시작한다.
- 김병욱
영채가 기차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신식 여성. 전근대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발로 원래 병옥이었던 자신의 이름을 병욱으로 바꾸었다. 형식과 일본에서 함께 유학했던 김병국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자신의 배필로 점찍었던 형식과 이루어지지 못 하고 정절을 잃어 대동강에 몸을 던지려던 영채를 설득하고 자신의 여동생처럼 아끼다가 영채와 함께 일본 음악학교로 유학을 간다. 영채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 일본에서 공부를 마친 후에는 독일 베를린으로 다시 유학을 갔다.
- 신우선
형식과 친구이자 매일신보의 기자. 작가 심훈의 형이자 매일신보의 기자였던 심우섭이 모델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작품의 시대배경상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일본어를 섞어 사용하지만, 유난히 영어나 일본어를 많이 쓰는 말버릇모우 다메다이 특징이다. 쾌활하지만 진중하지 못한 면이 있고, 자신의 아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아내에게서 얻지 못 하는 즐거움을 얻으려고 기생집에 자주 드나들곤 했다. 그러던 중 영채에게 푹 빠지게 되고, 형식을 위해 정절을 지켜온 영채의 고결한 정신을 알게 된 후로는 그녀를 전인격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후 영채를 비롯한 병욱, 선형의 수재민을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아 그 이후 방탕한 생활을 끊고 정진하여 문필가로서 더욱 이름을 날리게 된다. 여전히 술은 많이 마시지만 명문장가는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작가가 허락하셨다. 여담이지만, 형식이 사는 하숙집의 세상 물정 어두운(개명하지 못한) 노파를 다소 우습게 보고 놀리는 신우선의 모습과 신우선보다 좀 더 개명해서 우습게 여기지만 차마 말은 못하는 형식의 모습은 이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계몽주의자와 계몽 대상에 대한 아이러니의 좋은 예.
- 배 학감
경성학교의 학감으로 역사지리 교사. 독재적이고 방탕한 성격이라 학생들에게 자주 반발을 사며 형식과 갈등을 겪었다. 영채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몸을 허락하지 않는 영채를 강제로 범하려다가 신우선이 부른 경찰에게 검거된다. 자신이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는 교육 전문가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유명 교육학자 페스탈로치와 엘런 케이의 이름도 몰라서 그 두 사람의 이름을 꺼내며 자신을 놀리는 형식 앞에서 '푸스털'과 '얼른커'의 학설은 자신도 들어 보았지만 다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대답해서 허당 인증. 하지만 형식도 저 두 사람의 이름정도밖에 모르는 것 같다.
- 이희경
경성학교 4학년 학생. 형식이 입학했을 때부터 가르치며 매우 아끼던 우수하고 용모가 뛰어난 학생이었다. 작품 마지막편에서는 안타깝게 요절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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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로 작중 주인공 이형식이 근대 교육을 통한 계몽의 필요성을 느끼며 여관에서 부르짖는 대사이다.
- ↑ 신문에 연재될 당시 연재가 하루만 지연되어도 독자들의 항의 편지가 빗발칠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신문기사를 보려고 매일신보를 산 게 아니라 무정 다음 편을 읽기 위해 매일신보를 샀다는 말도 과언이 아닐 정도.
- ↑ 사실, 연애소설을 통해 접한 근대적/서구적 연애라는 개념은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극동국가의 개화기에서 개인의 자유를 상징하는 문화적 충격으로써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는 마오쩌둥이 미국인 기자인 애그니스 스메들리를 만났을 때 처음 물어본 것 중 하나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것 같은 연애란 것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단순히 소설가의 상상 속에서 나타난 허구의 개념이 아니냐, 실제로 그런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게 있긴 하느냐...는 것이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의 감정에 의한 남녀간의 관계라거나, 그 감정때문에 기존의 사회가 자신에게 부과하는 의무를 방기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