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론

傷寒論

1 개요

중국 동한(후한)시대 장사 태수로 재직했던 장중경이 썼다고 하는 고대 한의학 의서. 일반적으로 감기 등으로 대변되는, 통칭 한사(寒邪)에 의해 변화하는 인체의 생리와 병리, 그리고 치료방법을 서술하였다.

2 왜 이런 문서까지 생겼는가?

이 의서가 한의학의 발전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여, 현재까지도 여전히 응용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이를 해석하는 과정이 한의학 발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한의학계에서는 황제내경을 뛰어넘는 성전 취급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모두의 성전까지는 아니지만 그 실용적인 유용성 때문에 국가고시에서 아예 분리된 파트로 존재하고 있는 정도.

이렇게 이 서적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고대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질병의 변화과정과 그에 따른 인체생리의 변화, 그리고 의사의 치료가 잘못되었을 때의 변화를 서술했기 때문이다. 질병이 진화한 오늘날에도 인간의 병리라는 것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 치료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수학에서 말하는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에 대비될 만한 책.[1] 후대에 이제마동의수세보원을 내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의서들이 상한론을 기초로 해서 씌여졌다.[2]동의보감도 상한론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의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쓰인 동기가 또 뭔가 후대에 귀감이 되는데, 대략 현재의 인플루엔자 A급으로 생각되는 질병이 유행하여 일족 1/2가 사망하는(!) 크리티컬을 맛본 장중경이 의학 연구를 시작하여 다시는 그런 희생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장사 태수라는 그의 출신을 미루어볼 때 본인 실력보다도 그가 동원할 수 있었던 의사의 수가 많았기에 이런 훌륭한 저작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기는 하지만 문맥 전체에서 일관성이 느껴지는 서술을 고려하면 장중경의 영향이 적다고 할 수 없는 책.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지나가듯이 등장했다. 중종의 정체불명의 질환이 상한과 비슷하다 하여 상한론을 들여다봤지만 결국 비슷한 병을 알아내는데는 실패하고 장중경이 쓴 다른 잡병에 대한 책을 들여다보고서야 질환의 정체를 알게된다는 스토리.

기독교에 성경이 있듯이 한의학의 바이블이라 할 만 것이 바로 《상한론》과 《내경》이다. 그럼에도 이 둘은 내용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도가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은 동의보감식의 백과사전이 황제내경이라면, 상한론은 그 당시 유행하던 어떠한 질병에 대한 실제 진료기록서이다.전국시대 즈음에 의학은 크게 의경파와 경방파로 나뉘었다는 설이 있고 그 설에 따르면 상한론은 실전적인 처방위주의 경방파 서적이며 내경은 이론중심의 의경파 서적에 해당한다.

최근까지 한의사의 대부분이 내경이론을 따르고 있고 상한론 역시 내경을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일본에서 상한론의 한 판본인 강평본이 발견되면서 상한론의 허구와 진실이 새로이 부각되었다. 내경의 일부를 참고하였다고 하던 상한론 서문의 글이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으며 그 강평본의 내용에 따르면 오리지날 상한론은 내경의 내용과는 꽤 큰 차이가 있었다. 음양오행을 거론한 많은 부분들이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로 인해 상한론과 내경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한의사들이 한의학의 뿌리를 내경이라 생각하고 곧 음양오행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고 있었지만 강평본에서 비롯된 연구에 따르면 상한론 역시 한의학의 또다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상한론은 치밀하고 현실적인 치료방법을 추구하였고 그 안에 도가의 오행설은 존재하지 않았다.그러던 것이 당시 대세였던 의경학파들이 상한론을 이론해석을 덧붙이는 과정에서 묘하게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상한론 서문이 실제로 날조된 것이라면 그 당시 상한론을 내경 아래로 놓고싶은 의도가 있었으리라 추측해봄 직하다.

3 트리비아

참고로 이 책에는 이 책에서 처음 쓰인 것으로 보이는 글자가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𠘧(유니코드 20627)이다. 이는 几(책상 궤, 유니코드 51E0)와는 다른 글자로 두번째 획 끝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뒷목과 어깨가 뻗뻗한 증상을 묘사하는 의태어이다. 읽는 방법은 성무기 이래로 '수'라고 하였으나, 요즘 상한론 해설서에는 '긴', '견' 등의 독음도 제시하고 있다.

상한론에서 이게 들어간 문장과 이를 인용한 문장 외에, 이 글자가 사용된 것을 본 사람이 있다면 추가바람. 안 나올듯.
  1. 인간의 병리가 바뀌지 않더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통제된 실험이 불가능했던 고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발견한 병리와 기법의 상당수가 오늘날까지 사용 가능하다는 것은 당시 의사들의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내경을 기초로 하는 사상과는 전혀 다른 사상을 따르고 있다. 보통 의서는 증세에 따라 적절한 약을 사용하여 허실을 채워주는 식이라면, 이제마는 인체를 중심으로 약을 사용하는 정반대되는 사상을 펼쳤다. 심지어 인체를 이해하는 사상도 내경 전통의 오행사상이 아닌, 유교의 사단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마의 의학사상은 당시에는 거의 이단아격인 존재였다. 이런 성격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에 주의할 점이 있는데, 이제마가 사용한 유교는 이제마식 유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동시대 활동했던 석곡 이규준(石穀 李圭晙)선생도 의사이자 유교의 철학자로, 십삼경에 주석을 달았을 정도의 학자이다. 또한 유교에 기반하여 의론을 폈다고 평가받지만 그는 철저히 기존 한의학의 가르침을 보강하는 노선을 따랐다. 따라서 유교가 사상의학의 철학적 뒷받침을 한다는 주장은 신중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