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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醫學(국내 정식 표기, 1986년 이후)
한국 한의학(韓醫學,Korean Medicine)
일본 한방의학(漢方医学,Kampo medicine)
중국 중의학(中医学, Chinese medicine)
목차
1 개요
동북아시아의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 에서 시행된, 경락학설[2]과 음양학설을 기반으로 둔 지역의학이다. 생명의 종합적인 현상을 동적(動的)으로 관찰함으로써 내적 생명력을 근본적으로 배양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음양이론에 의거,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로 보아 자연 현상의 변화를 인체의 생리와 병리에 접목시켰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침(針)을 사용한 것이다.
음양학설과 밀접하나 한의학과 음양학설의 관계가 현대의학과 자연과학과의 관계와는 다르다. 자연과학적 전제에서 출발하는 현대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은 먼저 오랜 역사와 임상 경험으로 축적된 경험적인 처방들을 당대의 자연관인 음양오행으로 설명한 것이다. 즉, 순서가 다르다.
2 역사 개괄
2.1 중국
중의학의 근간이 된 경락학설은 마왕퇴 한묘의 발굴 내용을 근거로 할 때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이미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나라 때에 이르러 황제내경과 상한론이 성립되면서 본격적인 고대 의학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후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발전하면서 송나라 때에는 역대의 의서를 총정리하여 학문으로서의 한의학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게 되었고, 금, 원 시대에 등장한 네 명의 의가(흔히 금원사대가라고 부른다)에 이르러 한의학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 시행하는 상당수의 이론과 처방이 이 시대에 근거한 것이다.
청나라에 이르러서 외국과의 교류 과정에서 새로운 질병이 만연하여 기존 의학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서양의 의학을 접목시키는 중서회통파가 등장하고, 새로운 이론에 근거하여 유행병을 치료하는 온병학이 시도되었다.
2.1.1 근현대
국공내전 당시에는 돈 없고 힘 없던 중국 공산당의 사람들을 한방으로 치료하게 되면서 마오쩌둥이 감격하였고, 이후 공산당이 전 중국을 통일하자 전통의학을 중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대대적으로 지원하였다.
그 덕분인지 현재 국제사회의 한의학 지분의 대부분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서양에서 한의학을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도 중국 때문이다. 냉전시대 핑퐁외교당시에 미국의 고위 인사가 중국에서 충수염(맹장염)으로 수술을 받는데 마취를 침술마취를 하였고 그 일을 미국 일간지에서 보도하면서 미국에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중국에서는 현재 국의대사와 같은 국가 명예직 노중의 제도가 있고, 국의가 되면 그 밑에 도제식 교육을 통해 처방과 치료성과가 후대로 전수가 되게끔 한다. 상한론의 유도주등이 국의 대사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그 성과가 곧바로 출판되는 등 여러모로 공헌을 하고 있다.
현재 RCT와 같은 이중맹검법과 sham침을 활용한 논문 들 중 메타 분석을 이용하여 침의 효과를 밝힌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침은 비용이 싸고 안전하여 권고할만한 치료법으로 등재된 경우가 제법 많다. 다만 이중 맹검에서 sham침이 피부를 찌르기 때문에 실제 플라세보로 불리우기는 어렵다는 서양의 침 연구자들의 의견도 있다.[3]
중국은 서의사와 중의사로 제도를 분류한 이원화 체계이나 서로의 의료영역 침범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중의사들만큼은 아니지만 서의사들도 양약의 대체로 중약제제를 상당히 많이 활용하며, 오히려 현재 중국에서는 서의사들이 중약을 중의학식 변증 없이 사용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의사들이 한의학에 접근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의사들 역시 다양한 이유로 침이나 뜸, 한약을 사용한다. 대개 현대의학적 치료만으로는 어려움을 느끼는 양약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들, 증후군 성향을 지녀서 양약을 다량 처방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는 경우, 만성 질환 및 노인 질환, 현대의학적 치료의 가격이 높은 경우 등등에 한의학적 치료를 사용한다. [4]
한편 중의학은 현대 의학과의 연계를 통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대륙의 기상으로 다양한 기구를 지금도 만들어내며, 경혈도 계속 찾아내고 있고 새로운 치료법도 계속 시도하고 있고 이러한 치료법 중 괜찮다 싶은 건 한국에도 수입된다. 대표적인 성과는 아무래도 2015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투유유 여사. 식물화학자이자 약학자이자 중의학자이다.[5] [6]
중의사는 대략 한국의 한의사와 의사가 7:3 정도로 섞여 있다는 느낌이다.[7] 중의병원 내부에서 서포트파트 (진단검사의학/영상의학 등)는 순수 중의가 아닌 서양의학을 배우고 세부분과과목을 전공한 의사(중국은 아직 전문의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다.) 가 서의습중의(西醫習中醫)과정이라는 2-3년의 추가교육을 받은이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중의사는 진맥비를 따로 받는다.
중국 주도 하에 여러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한국에서도 SCI급 학술지에 실릴 만큼 제대로 된 연구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아직 표준화 문제와 적은 연구비 등으로 인하여 제약사항이 많다. 중국의 경우에는 모택동 시대에 대학이 폐쇄된 이후 현재의 연구 인력들의 양이나 수준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중의대 한 곳에 1천억, 전체적으로는 몇조가 되는 연구비를 중의학 연구에 쏟아붓고 있으니 곧 이른시일내에 가시적 성과가 나올 전망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중의학을 세계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과 한국의 경우, 엄격한 논문 검증 과정을 거친다.
최근 메타 분석들은 중국 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연구가 되며 계속해서 침에관한 연구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2.2 한국
삼국시대 이전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으나,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며, 이에 따라 삼국 시대의 의학에 관련된 기록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옛 역사 기록에 백제신집방, 신라법사방 등 신라나 백제의 처방이 기록되거나 의사의 행적이 기록된 것을 찾을 수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당시 의술은 불교 및 도교의 영향을 받아 주술적 행위와 혼합되어 시행되었으며, 일본에서 의학을 집대성할 때 바다 건너 한국의 처방을 일부 소개할 정도로 한국 의학의 인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의학의 교류는 활발하였으며 의서, 약재의 수출과 수입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작성된 향약구급방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의서 중 가장 오래된 책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한국의 한의학은 거대한 발전을 이루어서, 세종 대에는 당시 국내에 존재하던 처방을 모두 모은 향약집성방이 완성되었으며 당시 의학의 백과사전 격인 의방유취 또한 세종조에 만들어졌다. 의방유취는 양이 방대하여 현재 조금씩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작업은 역시 동의보감이었으며, 이후 한국의 한의학은 이론의 발전보다 대중화를 초점으로 그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사상의학의 등장으로 한국의 한의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구한말 현대의학이 들어오면서 한의학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현대의학을 수용하면서 점진적으로 현대의학으로 이행시킬 기회가 있었고 대표적인 사례로 경성의학교 교장인 지석영은 한의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강점기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한국 한의학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한의학을 시대에 맞지 않는 의학으로 생각하였으며[8] 한의사들은 의생으로 격하되었으며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유효성에 대한 논쟁 또한 격렬하였다.[9]
일본 강점기 시기 점진적으로 새로운 의생의 배출을 억제함으로서 도태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로 인하여 의생 규칙이 시행된 지 1년 뒤인 1914년 말 당국에 등록된 의생 수는 5,827명이었는데 해방 직전인 1943년에는 3,337명으로 30년 사이에 40% 이상 감소했다.
그러나 일제가 한의학을 억압한 것은 일제 병합 후 초기의 현상이고 후기로 가면 갈 수록 한의학에 대한 지원과 학술을 권장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약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나, 화학적 연구를 지원했으며, 조선의 한의학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따라서 일제가 무조건 한의학을 억압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일제가 한의학을 연구하여 만든 약도 제법 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의 한의학은 시기별로 억압의 차이가 다르다.
2.2.1 현대
해방 이후에 잔존한 의생들이 모여 의생협회를 설립하고 동양학관이라는 한의학 강습소를 설립하였고, 국민의료법에 의원(醫療,의사), 치과의사를 1종, 한의사(漢醫師)를 2종의료인으로 구분하였다. 2015년 현재 이러한 구분은 사라졌다.
한의사와 의사의 "사"자의 한자표기가 국민의료법 제정 과정에서 처음에 한의사를 漢醫士 로 다르게 표기했던것은 맞다. 제2독회 과정에서 漢醫士가 漢醫師 로 바뀌었다. 법제처 국민의료법. 또 흔히 잘못 알고 있듯 '士' 자가 비하의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의사를 규정한 법률인 대한제국 '의사규칙(醫士規則)'에서 의사를 醫士로 표기하고 있다.
1961년 5.16이 발생하면서 학교정비령에 따라 동양의학관이 폐교위기에 몰렸으나 로비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1963년 경영난에 빠져 폐교 위기에 처하고...동양의과대학은 이후 경희대학교에 흡수 합병되어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 되었다. 이후 경희대는 한의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어지간한 동네마다 있는 경희대 이름을 내건 한의원들 그와 동시에 서울대 이름을 내건 병원도 참많다 하긴 한의학 탑이 경희대고 의대탑이 서울대니.. 한의학과와 한약학과, 한방재료가공학과 등 학과도 다양하다(...) 근래에는 한의학과 양의학의 융합을 추구해 경희의료원에 양의사와 한의사가 동시에 진료하는 동서(東西) 협진센터도 운영 중에 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의학을 발전시키려 노력 중이다.
2.3 일본
일본의 고대 한의학은 7세기부터 9세기 사이 견수사(遣隋使), 견당사(遣唐使)들이 한반도를 경유하여 중국대륙에서 전수받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5세기 초에 한반도에서 의사가 온 기록이 있으나 일본의 한의학 보급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부분은 없다. 또 대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와 그걸 기록한 서적이 원활하게 전달되지 못했기때문에, 한나라 시대의 상한론을 기초로 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타게된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한의학이 발전한 건 16~17세기 이후로, 명나라 유학파인 의사 타시로 산키(田代 三喜)와 제자 마나세 도산(曲直瀬 道三)이 금원의학(金元医学)을 보급하면서부터 의학과 종교의 분리가 이루어진 뒤 부터이다. 이시기의 의학을 '후세파'라고 부른다.
한편 상한론을 중시하던 '고방파'측에서는 음양오행론같이 실증성이 부족한 추상적인 개념을 들고온 후세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또 외부 세력, 즉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양 의학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같은 16세기에 초기 서양식 병원이 설립될 정도였다.[10]
18세기의 요시마스 도도(吉益東洞)는 그러한 일본의 한의학 역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사람으로, 상한론 연구의 대가였으며 이후에 그 아들이 일본의 독자적 이론인 기혈수 이론 등을 수립하였다. 그 외에 18세기에는 이미 해부학, 마취학 등이 발달하고 있었다. 특히 사형수를 해부한[11]장지는 다소의 오류는 있으나 옛 해부이론의 오류를 지적한 '해부서'로 꼽힌다. 거기에 일본에는 네덜란드 해부학서적을 번역한 해체신서도 있었다.
동시대 인접국가의 경우 청나라 왕청임이 쓴 의림개착이 거의 유일한 해부서이고, 조선은 없었다.[12] 실제로 조선통신사가 방문할 때 일본의 의가 중 하나였던 기타야마쇼우와 조선의 의사였던 남두민의 대화는 양국의 의학발전에 있어서 후대, 특히 한의대생들로 하여금 어이가 없어할 정도로 인식과 개방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시였다.[13]
일본의 전통적인 한의학의 경우 고대부터 상한론을 금과옥조로 떠받든다는 잘못된 사실이 퍼져있다. 사실 17세기 화란 의학이 전래된 이후로, 그 이전까지의 내경의학과는 별도로 상한학파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요시마스 도도와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이제마와 같은 독특한 이론을 설파한 존재로 여겨진다. 실제로 상한학파가 융성하였다 하더라도 일본 한의학에서도 3체질론이나 기타 내경계열 의학자들은 계속 있어왔으니 이는 사실무근이다. 일본내 시판중인 한약제제의 원전은 만병회춘등의 명대 의서인 경우가 많다.
2.3.1 근현대
근대에 이르러 군사 목적으로서의 의학의 수요가 커지면서 일본 내에서는 한의사 제도를 폐지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한의사 제도 자체는 폐지되었기 때문에 의사들이 전문의와 같은 느낌으로 한의학을 공부하며, 이 때문에 의학적 관점에서 한의학을 탐구하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 연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의사가 한의학 연구를 통해 한약 처방을 내릴 수 있게 하고 내부적으로도 1950년 일본동양의학회를 수립하였다. 이후 1976년에는 한방Ex제제[14][15]의 보험 적용을 계기로 일본 한의학은 제도권에 공식 진입하고, 1991년에는 일본동양의학회가 일본의학회에 공식 가입함으로써 완전히 의학으로 다시 인정받게 된다.
현재 일본 제약시장에서 한약제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2% 정도이다. 일견 상당히 낮은 수치이나 일본의 한약제제들은 한국의 첩약과는 달리 일반의약품보다도 싼 저가의 약품들이며, 여러 종류가 함께 처방되는 양약과 달리 대개 단일 처방되기 때문에 그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로 일본 동양의학회에서 연구한 내용 중에서 동일한 질환에 비슷한 효과를 내는 양약과 한약을 비교했을 때 한약의 의료비 절감 효과가 더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가 제법 된다.
현재도 일본 내에는 한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들이 많다. 단, 미국도 그렇지만 일본 내에는 침구사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 침은 침구사들이 주로 사용하고 의사들은 주로 한의학 중 한약 쪽을 많이 연구한다. 일본 한약들은 주로 탕제보다 엑스산제를 많이 사용하는데, 산제 특성상 주로 며칠내에 치료 효과를 보는 것 보다는 1-2개월 이상 장기복용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한약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는 편이다. 따라서 8주, 12주, 32주 이상의 장기 복용이 선호되고 있으며 부작용도 특별히 보고된 바가 없다. 소시호탕과 같은 일부 약재가 간염 치료에 있어서 면역 글로불린과 병용 투여시 폐렴 발생 등이 보고된 정도다.
2009년 일본한방생약제제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의사중 80% 이상이 한약을 처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로 한약처방이 쓰이는 부분은 산부인과, 외과와 부정수소, 갱년기장애같은 부분이라 한다. 다만 한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수의 의사(16.5%)는 진단과 사용의 어려움, 증거의 부족 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진단의 경우도 47.8%가 서양의학식 진단법을 사용하며, 서양 의학 진단을 기본으로 한방도 고려한다는 응답도 36.1%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 약사일보 기사 참조.
이를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한약제제를 통해서 보완대체의학으로써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한의학이 자리를 잡았다.
재밌는 점이라면 일본 한의학의 4대가로 불리는 유모토 큐신(湯本求眞), 오오츠카 게이세츠(大塚敬節), 야카즈 도메이(矢數道明)는 [나머지는 요시마츠 도도] 일본 메이지유신 이후의 의사 출신으로써 한의학을 부흥시킨 인물들이라는 점. 여기서 출발하여 현재 일본 한의학을 재정비하고 토대롤 만든 사람들은 모두 의사들이고, 한약제제 급여 활성화 및 한방 EBM 연구를 진행한 것도 모두 의사들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일본에서는 한약 처방들 중 여러 처방이 일본 내과 메뉴얼집에 근거가 있다고 판정이 되어 실리고 있고, 일본 의대 교과서에도 한약물에 대해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일본 한의학 자료들은 국내에도 번역이 많이 되어있다. 주로 경희대 조기호 교수가 번역하여 출판이 되었는데, 일본 동양의학회의 공식 자료들과 기타 한방 전문의들의 저서들도 국내에 들여왔다. 또한 이러한 출판물의 다양화 덕으로 현대 중의의 고방파의 발전에도 도움을 주었다. 중의 고방파의 대표적 인물로 황황 교수가 꼽히는데 이 분의 저술의 상당 부분이 일본의서를 참고해서 이룩한 결과다.
한국 한의학 연구원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일본 종합병원의 80%가 넘는 곳에 한방과가 설치되어 있으며, 한방약은 내과의사나 혹은 한방 전문의에 의해 투약되고 있다. 일본 교포 등에 의하면 한약인지 모르고 처방을 받아서 먹어보니 무슨 가루약 등이 들어있더라라는 말을 한다. 이만큼 이미 일본에서 한방은 토착화되어있어 현지에서 구분을 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한의학이 황한의학이라고 불린다고 퍼져있는데, 이는 근대일본의 한의사 유모토 큐신(湯本 求真)의 서적 「황한의학(皇漢医学)」에 대한 이야기가 와전된 것으로, 한자 표기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 일본제국을 뜻하던 황국(皇国) 한방의학의 줄임말에 불과하며, 그냥 똑같이 한방의학(漢方医学:かんぽういがく:칸포우이가쿠)또는 줄여서 한방(漢方:かんぽう:칸포우)[16]라고 부른다.
3 현대 한국 한의학
3.1 한의학의 제이론
한의학의 가장 큰 특징은 동양 고유의 철학적 이론인 음양오행이론과, 동양 고유의 신체순환이론인 경락학설을 바탕으로 인체의 생리와 병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는 이미 황제내경에서 일차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이후에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의학은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여겨 자연과 인체의 대응관계를 중시하였으며,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인체의 내외의 대응관계를 수립하여 결과적으로 인체를 분석하는 것보다 전체론적으로 관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의학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맥진(脈診)도 이러한 이론을 근거로 하여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의학의 음양오행론은 경험적으로 쌓여온 인체에 대한 관찰, 치료, 고민 등을 통해 생겨난 한의학에서 제시하는 각종 시스템(장부, 경락, 기혈수, 표리, 한열, 외부의 사기 등등)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한의학에서 환자를 진단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환자를 관찰하는 망진 / 대화하여 정보를 얻는 문진 / 냄새 및 목소리를 듣는 문진 / 직접 환자를 만져보는 절진[17]으로 나뉘어있고[18] 이 네가지 작업을 통해 취합한 정보를 토대로 변증이라는 체계를 거치게 된다.
이 변증은 주로 오장육부로 대표되는 장부[19]와 그 장부를 연계하는 시스템인 경락[20], 그 장부와 경락의 기능적 요소인 氣와 물질적 요소인 血이나 津液, 인체에서 몸을 보호하는 表와 내부에 해당하는 裏, 이러한 장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거나 물질 요소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虛와 병리적인 산물에 해당하는 담음이나 어혈 등등이 발생하여 생기는 實 등 중에서 어디에 문제가 발생하는 지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변증은 경험적 토대로 인해 생겨났으며, 특히 한약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직접 먹어본 결과(...)의 산물로 시작한 신농본초경이 그 시작이 되며, 황제내경과 함께 한의학의 양대 고전인 상한론의 경우 철저히 경험에 근거하여 증상을 분석한 후 그에 해당하는 처방을 제시한 것으로 책 자체에 음양오행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 책이다.
3.2 침술/뜸법
침술은 다른 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침 또한 한의학의 고유 특징으로 특정한 점을 출혈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극함으로써 치료한다는 개념은 한의학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다.
- 구당 김남수의 침-뜸법과 그의 옹호자들은 한의학이 문헌에 수록되지 않은 전통의학을 보존하지 않고 없애버리는 것이 배타적이라고 본다. 그의 학설은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 시절에 보급되었던 침-뜸법과 극히 유사하며, 백회 등에 뜸을 뜨는 것은 기존 한의학 이론에서는 금기다. 과연 이러한 것을 단순히 전통의학이라는 측면에서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뜸사랑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익히고 행해왔음에도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의학 옹호 논리 중 중요한 것으로 '문제가 있었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아왔겠는가?'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구당 측에서도 역시 쓸 수 있는 논리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애초에 한의학 자체가 음양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체계에 대해 현대적 의미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전통적으로 행해진 측면을 고려해서 면허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외부에서 보기에 여타 전통의학과 한의학의 위상 차이를 찾기 힘들다.
- 다만 이들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검증이라는 측면에서, 무차별적으로 전통의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는 있으니, 한의사들은 결국 안전성을 택할 수밖에 없는 실정. 한의학적인 부작용은 그자리에서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생기는 문제도 있다. 흔히 체질을 바꾼다..라고 표현을 하지만, 잘못된 처방을 받은 경우 이 문제가 체질을 안좋은 방향으로 이끌수도 있다는 얘기다. 백회는 인체의 양기가 모이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 열을 가하면 장기적으로 지능이 떨어지고 몸에 열이 쌓여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당장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오래된 한의학 의서들에 허무맹랑한 얘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서는 안된다고 되어있는건 대부분 분명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3.3 사상의학
한국 한의학이 중국, 일본의 한의학과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 것은 사상의학의 대두 이후부터이다[21]. 사실상 사상의학은 기존의 의학체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며, 이론과학이나 논리적이기 보다는 철저한 음양론적, 유교적 사고에 입각하는 특징을 보인다. 한의학에 속하는 이론이지만 오행론은 적용되지 않는다.[22]
다만 사상의학이 수립된 것은 겨우 1백년 전이고 현대의 진단율이나 사상의학의 기원을 보았을 때 바로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사상의학의 수용 정도는 각각 달라서, 사상방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 이전 처방만을 사용하는 한의사도 있는 한편, 사상을 최우선으로 보는 한의사도 있는 등 한의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3.4 한의학의 근거중심주의
근거중심의학이라 함은, 임상 의학을 할 때 통계적 처리를 중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불과 2천년대에 들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경향으로, 원래 역학이나 예방의학자들이 통계적 처리를 중시하면서 일어난 학풍이다. 근거 중심의학의 지지자들은 서양 의학도 여전히 대부분 근거가 없으며, 많은 통계적 정확성들이 결여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근거 중심의학의 학풍이 일어나자 한의학에 대해서도 근거중심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다.
더이상 의학에서 "근거"라 함은 생물학적, 화학적 근거가 아닌 통계적 근거를 말한다. 즉 써봤을 때 어느 정도로 좋았는지 평가하자는 것이다. 근거 중심주의 의학 운동은 200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퍼져서 불과 십몇년밖에 안된다. 따라서 서양 의학에서도 근거중심주의를 가지고 볼 때 근거가 박약한 치료가 많다.
이를 한의학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표준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진료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기 쉬운 부분에서 데이터와 검증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 의학에서도 검증할 수 없는 영역이 많다. 수술은 대부분 임상 시험을 할 수 없고 많은 신약들도 모든 효과와 부작용을 알지 못하고 세월이 지난 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오체 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와 같이, 예전 임산부 입덧 방지를 위해 판매되었던 탈리도마이드가 대표적인데, 임상시험에서는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먹여보니 팔 다리가 없는 아이가 태어나더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전통 의학은 2천년으로 올라가는 역사동안 단절되지 않고 문헌과 근거가 축적되어 있고, 사람을 대상으로 해왔으나, 현재 많이 쓰는 약재와 표준적 치료방식에서 역사적으로 도태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사실 근거중심주의는 환원주의, 생의학적 모델로는 의학을 할 수 없다라며 통계학자, 예방의학자 등을 중심으로 생긴 의학 이론이기 때문에, 한의학이 생물학이나 물리학, 화학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지 않았어도 근거중심의학을 적용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근거중심의학에서 근거란, 생물학적 원리가 아닌 임상 데이터의 통계 처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거중심주의는 사실 한의학을 배척하는 이론이 될 수 없다. 근거 중심의학에서는 생물학적 원리가 없다고 근거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거 중심의학의 근거는 계층화돼 있는데, 이를 근거 중심주의의 핵심으로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1.전문가의 의견 2.케이스 논문 3. 케이스 시리즈 4.코호트 연구 5.무작위 대조군 실험(RCT) 6. 메타분석, 시스테믹 리뷰 등으로 근거의 수준이 올라간다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 집단이 존재하고 고래로 치험례에 대한 다양한 저작들이 남아있는 한의학이 근거가 없다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근거수준을 임상 데이터를 가지고 통계적 유의성을 높이는 것이 근거 중심주의이지, 근거 중심 의학을 하기 위해 쥐 실험을 하고 세포 실험을 하는게 아니다.
이는 똑같이 서양 의료에도 적용이 된다. 근거 중심주의 이전의 서양 의료는 전문가나 권위자의 의견이 진리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2천년대에 들어와서 보다 더 통계적 유의성이 있는 자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갑상샘암의 경우, 최근에 발표가 되었는데 생물학적, 병리학적으로는 암이 틀림이 없으나, 임상 데이터를 축적한 결과 20여년이 지나도록 갑상샘암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불과 3%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서양 의료에서는 갑상샘 전절제와 항암치료를 권유하는 병원이 많다. 이는 근거중심의학으로 볼 때에는 근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현재 네이쳐 자매지 등에 다기관 연구 등의 연구가 실리기 시작했다. 중국 주도로 이루어지는 연구 등에서 연구의 질과 설계가 대폭 올라간다. 이 정도면 근거 중심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봐야 할 듯.
사실 전통의약품의 가장 큰 메리트라면 가격이 싸고 증후군을 대상으로 하므로 의료비 절감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주된 한약 처방은 '첩약'을 위주로 이루어져왔는데, 이것은 사실상 제일 비싼 형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한약은 비싸다는 인식이 생겼다.(...)반면 일본의 경우 한약은 주로 산약, 즉 가루약의 형태로 이루어졌고 중국역시 환약의 형태를 주로 선호해왔다. 특히 일본에서 한약은 복합 과립제 형태로 나와서 왠만한 일반의약품보다도 가격이 싸고, 중국 역시 85% 정도가 제제로 처방되고 보험이 되어서 저가 의료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제제가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이런 메리트를 누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16년, 정부에서 한약제제의 다양화, 그리고 이를 통한 보험한약의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제제 변화의 움직임이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3.5 한약
자세한 것은 한약 항목 참고
4 전망
2015년 보건복지부 한방의료 이용 및 한약 소비실태에 따르면 한약 소비(유통)실태 조사결과에서는 최근 5년간(2009∼2013) 국산 한약재 생산량은 감소 추세인 반면, 한약재 수입량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최근 3년간(2011∼2013) 전체 한약소비기관의 한약소비량은 정체 수준이었다. 세부적으로 2011~2013년까지 조사대상 59개 주요 한약재의 한약소비기관에서의 소비량은 연평균 9,375톤으로 0.1%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중 국산 한약재의 소비량은 40.1%로 조사되었다. 013년도 한약(재) 생산·유통규모를 추정해본 결과, 원재료 한약재의 시장규모*는 3조 2,442억원, 의약품용 한약(제제)는 5,461억원 그리고 한약 도매규모는 1,994억원으로 추정되었다.
의약품용 제제와 농산물은 구별이 되어 수입하는데 간혹 농산물 중 중금속이 많이 나왔을 때 언론에 "한약"이라고 잘못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농산물은 육안으로만 검사하는 관능검사만 하게 돼 있는데, 한약재는 의약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잔류 농약과 중금속 등의 검사를 거쳐 제약사를 통해 한의원에 공급이 된다. 따라서 중금속 농약이라는 말은 실제 한의원에서는 입증된 바가 없다. 각종 시료 분석에서도 잔류 농약과 중금속은 엄격한 기준치에 맞고, 한약물로 수입이 될 때 만약 이런 문제가 있으면 수입 자체가 안된다. 그러니 한의원 한약은 안심해도 된다.[23]
청년층은 한의학을 불신하고, 고연령층은 한의학을 신뢰한다는 피상적인 인식이 있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2,30대의 한방의료 신뢰도가 60대 이상보다 높았다. [24]
하지만 한의원과 한방병원의 경우 경영난이 가중되고 폐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 실제로 대학한방병원은 점점 축소중이다. 이 기사내용처럼 비단 경희대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원광대 그리고 다른 사립대학 한방병원도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대학측에서는 축소하자는 논의가 있어 왔다[25]
4.1 미국
KBS에서 방영된 2016년 특집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이미 많은 대학병원에서 암환자 등에게 침을 이용하여 시술하는 통합 통증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 정부 주도 하에 NCCIH(National center of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Health, 2014년 명칭변경)을 설립하여 큰 연구비를 들여 의학에 보완, 통합을 목적의 연구가 되면서 각종 한의학적 치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는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서 의학을 연구한다. 현재 지속적으로 그 효과에 대해서 연구 중이다.[26][27]
최근에는 타임지에서 미국 종합 병원들이 한약을 처방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바도 있다. 침 연구는 하버드 의대가 세계 2위인 경희대 한의대를 제치고 1위에 차지할 만큼 침 연구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 미드 블랙리스트 등에서는, 주인공 레딩턴이 중간에 얼굴에 침을 맞는 장면이 나오는 등 애호가가 많이 생기고 있다. 다만, 한국이나 중국과 같이 정식으로 학제교육을 받은 침구 시술인력은 부재한 상황으로 보이며 기존 여러 대체의학들의 일부로 보고있다. 실제 치료의 의미보단 심하지않아 현대의학으로 치료하면 비용이나 몸이나 부담스런 문제들을 덜기위해 찾아가는 경우.
중약신약(고전 서적에 기재되지 않은, 새롭게 발명된 한약)의 경우에는 새로이 식약처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시판이 가능하므로, 현대의학의 약물과 동일한 3상 연구를 거치게 되어 의학적 근거도 탄탄한 편이다
만성 질환 및 고령화 질환의 대두 등으로 한의학의 치료법이 검증과는 별개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에 대한 기고가 네이쳐지에 실릴 정도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있는 상황이다. 미국 식약청인 FDA(U 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Home Page)는 구조를 알기 힘든 복합 천연물 제제라도 이전부터 사용해왔던 기록 및 증거가 있다면 1상시험을 면제해주고 2상부터 검증받도록 했다. 이에 맞춰 중국은 2014년 3월 기준 9종의 중약제제를 FDA에 제출한 상황이고, 일본은 쯔무라 제약에서 대건중탕을 FDA에 임상시험을 요청해서 현재 진행중인 상황이다.
복방단삼적환(심적환)은 사실상 3상 연구를 성공리에 종료한것으로 보인다. 2016년말-2017년초 한약(중약)으로서는 최초, 천연물 기반 의약품으로는 3번째(첫번째는 녹차추출물 기반 콘딜로마치료제, 두번째는 에이즈환자의 설사 치료제)로 FDA의 시판허가를 얻을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5 상황별 대처
6 논란 및 양한방 갈등
우리나라는 의료계가 이원화되어 양 한방이 동시에 존재한다. 의학계가 자본력와 인력, 힘에서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일본, 중국과는 다르게 한국에서는 한의사도 동등한 의사 자격을 부여받기 때문에 의사협회측에서 한의학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북미를 미롯한 서구에서는 한국과 같이 이원체계 자체가 없는데다 비교적 한의학이 잘 안알려졌기 때문에 한국과 같이 열성적으로 한의학을 경멸하는 움직임은 아직 크게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6년 의사 협회의 전국의사총연합회 등은 초음파 및, 혈액 검사 기기를 한의사에서 팔지 말고 검사 수탁도 거부하라는 압력을 전국 의료기 업체와 의료 법인에 압력을 행사하였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위법으로 과징금을 먹었지만, 여전히 한의사 집단에 대해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례로, 지금도 대다수의 한의원들은 이미 혈액검사가 합법임에도, 혈액 검사를 의료 법인등에 맡길 수가 없다. 주요 혈액검사 업체들은, 의사협회의 위력 때문에 혈액검사를 해줄 수가 없다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또한 의사협회에서는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날조하여 한의사를 공격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데, 경희대의대 심모 교수가 "한약이 특정 질병의 원인이 아니다"라는 인터뷰가 언론사에 실리자, 개원의사협회 등에서 "심모 교수에 대한 의사 면허 박탈" 등을 건의할 정도로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의사협회, 전의총 등은 의사의 정당한 거래를 막아 공정위에게 2016년 10월 23일 억대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26조·불공정거래행위 중 거래거절 강요) 위반 혐의를 적용해 대한의사협회(10억원), 대한의원협회 (1억2000만원), 전국의사총연합(1700만원) 등 3개 의사단체에 과징금 총 11억3700만원과 시정명령을 부과받았다. 공정위가 사업자단체에 부과 가능한 최대치를 의사협회에 부과했다.
의사협회는 초음파기기 글로벌시장 판매 1위 업체(2013년 기준)인 GE헬스케어에 2009년 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공문 등을 통해 한의사와의 거래 금지, 거래 시 불매운동을 펼칠 것이며 한의사와의 거래 여부도 감시했다.
의사협회는 2011년 7월부터 녹십자의료재단, 서울의과학연구연소(SCL), 씨젠의료재단, 이원의료재단, 삼광의료재단 등 국내 ‘빅5’ 진단검사 전문수탁 기관들에 ‘한의사의 혈액검사위탁을 받지 말라’고 요구하고 거래 여부를 감시했다. 의원협회, 의사총연합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이 같은 거래중단을 요구했다. 이 결과 이들 검사기관들은 한의사와의 거래를 전면 중단하거나 거래 중단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의사단체 행태가 한의사의 정당한 거래를 막았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보건복지부로부터 “현행 의료법상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구입은 불법이 아니며 학술·임상연구를 목적으로 일반 한의원에서 사용 가능하다. 한의사는 직접 혈액검사 및 혈액검사위탁을 해 진료에 사용 가능하다”는 유권해석 결과이다.관련기사
이는 예전에 비해서 의사의 입지가 줄어들고, 소득이 낮아진 점, 먹고 살기 힘들고 개원가의 불황이 계속 되는 점 등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전의총 등의 단체와 시민단체(?) 인 과학중심의학연구원 등에 용역비 등을 주고 한의학을 비방하는 행위를 계속 해오고 있다. 물론 전의총이나 집단이 개입하여 한의학을 비방하는 행위 말고도 단순히 의사나 과학자가 개인적으로 한의학을 비판하거나 비방하는 경우도 많다. 개중에는 타당한 것도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근거가 불분명한 점등도 있어 오랫동안 논란이 되고있다.
6.1 주요 지적
한의학의 문제점을 두고 여러가지 문제제기가 있으나, 내용에 따라서 혹은 진영(?)에 따라서 여러가지 지적이나 문제제기를 비판으로 볼 것인지 단순히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일방적인 폄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의견이 양분되어있다. 대게 문제제기를 받는 한의학측에서 주요 문제제기나 지적들을 폄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고, 반대로 문제제기를 가하는 의학계측에서는 주요 문제제기를 비판으로 취급하고 있다.
가령 의학계에서는 나름대로 자신들이 의학도로서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한의학에 대한 평가에서도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한의학과의 교류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들만의 의견과 입장을 고수하여 막무가내로 문제점만 지적하려 들어 이를 두고 폄훼라고 받아들이는 한의학도가 많다.
상황이나 논리에 따라 여러가지 문제제기가 있으나 개중에서 설득력이 있어 한의학계 내부에서도 인정하여 수정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반론의 여지가 많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지적도 있는 등 한의학에 대한 문제제기라할지라도 주장의 설득력은 제각각이다. 이 항목에서 총 문제제기 항목은 7개이며 이중 반박된 것이 4개, 한의학계에서도 인정하는 것은 3개이다. 반박된 4개의 주장에 대해서는 각기 논란이 있겠지만, 개중에서도 한의학계가 확실한 공신력을 담보로 타당한 논리를 펼쳐 반박하는 것도 있다. 상세한 내용은 반박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병증이 위급한 질병이 아니라면 상관이 없지만, 급성질환 같은 질병이나 부상등을 치료할 때에는 현재 양방과 한방으로 이원화된 보건의료제도로 인해 큰 혼란과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가령 한의학에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으로 응급 상황이 발생하여 한방병원을 찾거나 하는 경우, 십중팔구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렵다. 비록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었으나 뇌졸중 환자들이 과거에는 일단 먼저 한의원을 찾거나 우황청심원을 먹이는 등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응급치료가 늦어져 후유증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의 한의사들은 외상이나 심장마비와 같은 응급질환의 경우 현대의학이 더 우월하다고 인정은 하고 있으나 그 외의 경우는 한의학이 못할게 없고 심지어는 말기암같은 경우에도 한방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여기에 대해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질환에 대해서 한방과 양방중 어떤 의학체계를 선택할 것인지 여부는 오로지 비전문가인 국민들이 그때그때 알아서 하도록 거의 방치 되어 있는데 이는 현대보건의료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 사이에서 유례를 찾기가 어렵고 굉장히 무책임한 일이다[28] 국민들의 혼란에 따른 피해를 막고 해당 질병에 대한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양방과 한방을 일원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 면허제도를 실시함으로써 한의학 치료방법을 쓸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고있다. 예를 들어 미국 의사는 침술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지만 한국 의사는 연구목적에서라도 함부로 침을 사용하면 한국 의료법상 불법이다. 즉 보완대체의학을 활발하게 주류의학에서 가져다 연구하고 검증하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한의학을 오로지 한의사만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배타적인 면허제도를 두고 있고, 이 때문에 오히려 과학적 발전이 잘 안된다. 게다가 면허 제도 자체가 한의학에 대한 포괄적인 인정의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자격을 가진 이후 자유롭게 의료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 굳이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으려 들 수 있다. 또한 구당 김남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들의 경쟁자로 여기는 면허가 없는 다른 전통 민간 요법 시술자들을 오히려 현대 의학계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박해하는 것은 덤. WHO 등에서 보완대체의학을 장려하는 이유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비용이 대체로 현대의학에 비해 저렴하고 방법을 학습하기 쉬워 민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특유의 배타적인 한의사 면허제도 덕분에 한의학에 대한 접근 비용[29]은 현대의학에 비해 결코 저렴하지 않으며 다른 민간전통 의술을 고사시키고 한의학의 과학적 검증도 다른 국가들 보다 오히려 더 더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한의사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한의사를 양성하고 있는 한의과 대학의 커리큘럼을 조사해본 결과 한의학과 현대의학 비중이 거의 3:7로 드러났다. [1] 현대의학에 대해서 한의학의 차별점으로 언급되는 "전일론적 관점"도 양방의 그것을 모방한 각과 전문의 수련 제도 도입 등에 따라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현대의학을 배운 한의사들은 한방적 병증보다는 양진한치에 더 익숙하고 기나 혈 보다는 점점 양방의 용어로 환자들과 소통한다. 대중들은 이미 청진기를 들고 흰 가운을 입은 한의사들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한의학적 개념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한방의료기기는 외면당하는 반면에 [2] X-ray와 초음파진단기기 등 현대의료기기를 어떻게든 사용하고자 한의사들은 의사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3]. 이렇게 점점 더 많이 현대의학에 의존하는 변화의 결과 비록 진료현장에서의 한의사 개개인의 소양과 진료 수준은 높아질 지 몰라도 결국 독자적으로 존립 가능한 의학체계로서의 한의학의 미래에는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고 굳이 한의사라는 의료 직역을 다른 의사들과 분리해서 별도로 교육 양성 하는 현재 시스템의 정당성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 기나 열, 혈이나 맥 등 한의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의 뜻이 아주 모호하고 애매하여 의사 소통에 장애가 있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으나, 실제 현대 한의학에서는 환자의 증후와 증상, 그리고 양방 상병명까지 진단에 참고하여 활용하기 때문에, 고전에 기재되어 있는 서술어들로 학술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다만, 환자들에게 설명할 떄는 과거용어를 혼재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용어와 현대의학용어가 뒤섞여서 용어사용이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고, 때때로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 한의학에서는 "의자는 의야"라는 문장이 있다. 의자의야의 意는 역대로 계속 의미가 바뀐다. 원래 의자의야는 의사와 환자사이의 자세나 성실성, 주의력이런 의미였지만, 손사막등이 의자의야를 이야기할때는 병의 소재를 알아내는 능력을 의미했다. 왈 "의자의야라. 神은 손과 마음으로 진찰하는 와중에 나오는 것으로 스스로 그 정황을 알아냈다하더라도 말로서 다하지 못한다." 라고 말했다. 즉, 의자의야의 意는 의사의 정미한 개인능력이었다. 하지만 송 이후로는 임기응변, 개인적 응용으로 바뀐다. 주진형이 "의자의야라. 병이 지나감에 임기응변으로 대해야지 각주구검해서는 치료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 종종 이 해석이 논란을 불러일으켜 과학적 검증보다 개인적 경험을 더 중히 여기느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 문화적인 이유로[30] [31][32] 인체를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신체의 구조적인 이상징후에 대한 파악이 취약하며, 현대의 외과의술과 같이 수술과 같은 치료방법이 전무하다. 현대에 이르러 한의대에서는 해부학 생리학 등을 기초 과목으로 모두 가르쳐 과거에 비해서 개선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한의사가 정형외과/외과의와 같이 수술을 통한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각종 제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현대의 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국의 한의학이 SARS라든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는 것과 자주 비교되고는 한다. [33] 현재 전염병에 대한 치료능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한방병원을 전염병처리 기관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6.2 반론
- 배타적인 면허로 한의학이 보호되기에 한의학이 그쪽 분야를 독점, 오히려 밥그릇을 챙긴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주장이다. 정확히 보완대체의학은 한의학으로 인해 한의학연구원 등 국세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구되는 단체들에 의해 거두어지는 상황이고, 소위말하는 전통의술가들의 경우 오히려 그 가격은 일반인들이 한의학 의료기관에서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더 비싼 상황이다. 또한 구당 김남수의 경우, 엄밀히 말해 경쟁자가 아니라 사기꾼이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침사면허를 강의를 통해 이수시켜 팔아먹게 하는 상황이 포착되고, 본인이 말하는 경력에도 심각한 모순점이 존재하는 등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 상황. 실력에 있어서도 대놓고 한의사들을 평가절하하다가 한의사가 직접 실력을 대보자는 말에 꼬리를 내리는 등(...)누굴 가르치고 말고할 실력 자체가 아니다.
- 또한 자격이 없는 민간의술가들이 한다는 짓은 정육점이나 이발소 사람이 칼이나 가위 잘 쓴답시고 수술실 잡고 수술해대거나, 일반 의료기기 업자들이 의료기기를 들고 직접 진단을 내리는 행위에 비견될 정도로 의료수준이 형편없었다. 김남수의 경우 그 침술은 한의사들 중 어느정도 상위권에 있는 자들이 직접 대결에 응하면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수준에 불과하며, 한의학에 대해 축적된 지식의 양은 6년제 한의대를 거쳐 전문의, 대학원까지 밟은 교수에 불과하면 일천한 수준이다. 그나마도 그 민간의술가들의 대표적인 예라는 김남수가 겨우 그러한 수준인데, 다른 기타 등등의 아래수준은 말을 하나마나한 수준. 그 가격도 국가에 의해 검증받은 한의학 의료기관에 비해 더 비쌌다. 무엇보다 최소한 현대의학을 교육은 받아서 일반 한의원 차원에서 진료할 수 없는 증상으로 의심될 경우, 한의사들은 최소한 트랜스퍼라도 보낼 수 있겠지만 일반 민간의술가는 그럴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 교육받은 적도 없기 때문.
- 의사들이 침을 연구용으로 쓴다고해도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당연한데, 의사는 침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의 경우 그나마 학부시절부터 예과에서 졸업 때에 이르기까지 현대의학을 교육받아야 하지만, 의사들은 침에 대해 배우는 것이 단 하나도 없기에 연구용으로 쓰기 이전에 그렇게 쓸 수 있는 실력과 학식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인정되지 않는다.
- 한의학이 현대의학 지식을 흡수한다고 하여 한의학이 독자적으로 뭔데?라는 말은 과연 그 말이 한의학은 오로지 음양오행이고 정,기,신 등만을 다룬다는, 한의학을 정확히 16세기 수준으로 파악하기에 가능한 수준이다. 한의학은 그 당시 세계관을 설명하던 음양오행 이론 등으로 치료효과를 설명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 또한 독자적인 한의학세계관을 이룬다면, 한의학이 조선시대 이전 음양오행과 정기신 이론만으로 한의학을 설명해도 한의학에 일단 비난하고자 결정한 자들이 독자적인 한의학을 세웠으니 인정해주마라고 말할까? 이는 거의 답을 정해놓고 한의학을 비난하는 수준이다.
6.3 양진한치
소위 양진한치 즉, 현대의학적으로 진단하고 한의학적으로 치료하는 행위가 일선에서 관행적으로 자리잡았으며 2010년을 기점으로 한의사와 의사가 보험 청구시 상병명(질환명)을 동일하게 사용하도록 강제되었다. 이 때문에 이제는 좋든 싫든 한의사들도 일반 병명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된다면 해당 질환에 대한 진단법, 필요 검사 등등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만 한다. 이를 미리 대비하여 만든 한방병명체계가 있다. 양진한치는 동양의학계 내부에서 국제질병통계에 따라 병명에 따른 환자 비율을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서도 여러 논란이 있다.
- 양진한치라는 표현은 넌센스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다. 양진이라 하여도 한치를 하는데 있어서 진단적인 부분은 참고 사항이지 절대적인 부분은 아니다. 즉 한방적인 진단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오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한방적인 진단은 병에 대한 전체적인 진단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내 몸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설명/주장이다.
- 해당 입장에 따르면, 양진을 한다고 해서 양진에 따라 약이 결정된다는 표현은 아주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에도 과거 양진한치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최근 10여년 사이에는 양진을 통한 한치 보다는 양진에 따른 한치의 분류를 하는데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즉 각 질환에서 주로 나타나는 증후적 패턴을 파악하는데 진단이 사용되는 것이지, 양진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더불어 한의학이 양방용어를 쓰면서 진단을 하려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서양의학이 더 우월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해당 의료서비스의 대상자를 위한 것이며, 말하자면 한의학은 마이너이고 서양의학은 메이저인 상황에서 마이너한 내용을 설명하려면 메이저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단순히 도구적 입장이다, 라는 주장이다.
- 하지만 '양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또 하나의 걸림돌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바로 양진을 위한 실력이 한의사에게 갖춰져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예과, 실습기간 다 떼고 이론만 2년 반~3년을 배우고, 핵심적인 요소는 실습을 통해 습득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한의학 커리큘럼을 통해서는 양진이 가능한지 의문부호가 찍힌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언어도단이라 보는 것이 바로 이 점이라고 한다.[34]
- 게다가 한방 고유의 진단이 효용성을 잃었기 때문에 양진에 목을 맨다던가, 한방의 질병 분류와 의학의 질병 분류가 호환되지 않는데 한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양진을 무조건적으로 허용해야 하느냐는 비판까지 가면 일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방 신의료기술은 동의보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나라에서 인정해주는데, 양진은 이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므로 호환이 되는지를 일일히 검증해야 상식적으로 옳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이다.
- 상술한 것에 대한 반론으로, 양진한치에서 양방과 한방의 호환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배타적인 태도라는 주장이 있다. 양진한치라고 하는 것은 해부학과 인체생리학, 병리학 등을 이용하여 진단의 효율성을 증진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며, 앞서 말한 해부학 등의 학문들은 현대의학이기 이전에 누구든 쓸 수 있는 도구적인 것인데, 현대의학이든 한의학이든 간에 진료를 하는 데에 필요한 학문을 배우고 사용하겠다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 현대의학적 진단에는 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거쳐야 알 수 있는 생리병리학적 내용들도 존재하지만,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것은 학부 수준의 인체역학이므로 무리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35]. 현대의학적 진단을 위한 실력이 갖춰저 있지 않기 때문에 한의사는 현대의학적 도구들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라고 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인체의 모든 생리병리 과정을 이해해야 비로소 진단에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며, 그 말대로라면 한의사는 물론 의사도 평생 환자를 진단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 검사, 진단은 치료행위의 일부이며, 체계의 일부인데, 이를 편의적으로 분리해서 다른 체계에 편입시키는 것이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 현재 한의계에서 양진한치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양방병증으로 내원한 환자에 대해서 한의학적 변증을 한 다음 이에 대해서 치료를 하는 것이며, 그 변증을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양방병증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예를 들어, 한의대 교과서에서 두통을 다룬다면 편두통, 긴장성두통, 군발성두통 및 각종 두통의 현대의학적 내용을 제시하고, 이 두통에 대해서 한방변증을 제시한다음 이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7 관련 용어
의료 관련 정보를 참조할 것.
(한약, 사상의학, 상한론, 침구학 등)- ↑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북한 등 동북아시아의 모든 국가한정. 그 외 국가에선 대체의학의 위치를 점한다.
- ↑ 굳이 음양오행학설이 아니라 음양학설로 표기한 이유는 사상의학이라는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
- ↑ 한약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이중맹검법이나 무작위 대조군 연구를 시행해서 효과가 있음을 제시한 논문이 제법 많다.
- ↑ 그래서 중국의 서의대나 일본 의대 모두 한방 관련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한다. 일본 의대의 경우 일본 의과대학 학장들의 협의로 16시간 이상의 한방교육을 받도록 하였고 실제 80개 대학 중 60개 이상이 16시간 이상의 한의학 교육을 받고 있다. 이 수치는 왠만한 한의대의 기초 의학 교육과 비슷한 수치다.
- ↑ 대표표기를 뭐로해야될지 정립하지못할정도로 많았는데 본인이 직접 식물화학자라고 발표했다.
- ↑ 이 청호 연구는 중의학에서 사용하던 약물(청호), 주치증(학질. 말라리아와 유사하다)과 약물 가공법(저온추출)을 현대의과학 및 약학으로 검증하여 재가공한 연구로써, 중국에서는 중서결합의 성공적 사례이자 중의학이 준 선물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벨위원회에서는 중의학이 아닌 현대 약리학적 연구에 준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이는 양자가 결합한 사례이지만 최종 결과가 약리학적 결과였으므로 중국이나 투유유 여사 본인의 주장과 노벨위원회의 발표가 충돌한다고 보긴 어렵다.
- ↑ 위에서도 언급했듯, 실제 권한으로도 한국의 의사 권한을 포함해서 갖고 있다.
- ↑ 일본 제국주의 입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고 최신 지식인 현대의학을 조선인에게 교육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기에 주요 거점도시 위주로 일본인들 진료를 위한 현대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산간벽지나 오지에는 기존 한의사들을 활용하여 의생이라는 이름으로 의료부분을 담당하게 하였다. 일본이 한국에 현대 의학이라는 신식 문물을 "베풀어(...)" 줌으로서 호감을 얻음과 동시에 한국 의학계를 일본이 독점하려는 의도 역시 숨어있었다.
- ↑ 의생으로 격하된 것이기도 하지만 의사라는 명칭은 현대의사들이 도입되면서 시작된 용어이며 의원이라고 주로 불리웠다. 공무원인 의원에서 해고된 상태로 그냥 일반 의생으로 바뀐것이고 새로운 서양의학을 학습한 의료인을 의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 다만 이 시기엔 서양도 근대적인 해부학, 생리학과는 거리가 먼 4체액설을 따르는 갈레노스의 의학을 기초로 하였다.
- ↑ 해부된 시체 중에는 여성도 있었다(!).
- ↑ 실제로 한의학에서 사용되던 그림 등은 '해부도'가 아니라 장부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그림으로 설명한 개념도에 가까우며, 실제기능도 이러했다. 하지만 '해부학'이라는 의학의 한 부분을 그저 어리석은 사람들의 삽질로 치부하고 아예 무시하였다.
- ↑ 대화는 다음과 같다. 기타야마 쇼우가 "우리나라 어떤 의원이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 장기 등을 자세히 살피니 옛 그림과 다른 부분이 많더라. 이를 교정하고 책도 지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고 하자 남두민은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말라”고 꾸짖듯 대답한다(...)
- ↑ 지금도 과립상 Ex제제의 생산 품질은 일본이 좀 더 뛰어나다.
- ↑ 일본의 엑스산 제품 질이 더 높은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여러가지 국내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현재 국내 한약재의 품질기준치가 명확치 못하여 같은 이름이 붙은 약재라면 모두 같은 취급을 받아 고품질한약재의 사용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 한 문제이고, 이외에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엑스산제와 약국에서 사용하는 엑스산제의 구분을 인위적으로 시켰다는 문제도 있다. 한의원과 약국간의 구분을 위해 약국에 공급되는 엑스산제는 한약전체를 한꺼번에 전탕하여 산제를 만드는 방식을 취하고, 한의원의 엑스산제는 한약탕제를 구성하는 각 약물을 각각 산제를 만들어 이를 비율대로 섞는 방식을 취한다. 이 경우 나중에 특정 약물을 추가하여 약제 구성을 할수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한약이 섞여 탕전되면서 생기는 합성의 효과를 무시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 현재의 엑스산제는 부형제를 포함시키도록 되어있는데(보통 부형제 70% 약물 30%정도) 이때문에 1회 복용량이 쓸데없이 많아져 복용시 불편하고 심한 경우에는 소화장애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문제점을 개선한 백산제(일본엑스제와 같은 방식)도 현재 나와있으나, 제작 비용때문에 늘어난 비용을 건강보험측에서 인정하지 않아 비용 문제로 보험 적용이 현재 되지 않고있다
- ↑ 한약(한방약)을 부를때도 이렇게 줄여부른다.
- ↑ 맥진이 여기에 속한다
- ↑ 현대의학에서도 하는 일이다.
- ↑ 한의학에서 말하는 腎이 콩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뇨생식기계를 포괄하는 System의 개념으로 봐야한다
- ↑ 경락이 기가 흐르는 실체가 있는 선이라는 주장은 현재 한의학에서는 점점 도태되고 있는 이론이다
- ↑ 한국의 한의학이 한자로 한나라 漢으로 사용했으나 1986년 이후 법 개정을 통해서 韓으로 바뀌었다. 그 이전 기록은 광속 수정중인듯 하다. 글자적으로 독자적인 길은 1986년이다.
- ↑ 억지로 적용시키자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이제마의 저술 내에 오행의 등장은 없다. 심지어는 황제내경에서 설명된 오행이론을 사실상 쓰지않는다며 배격하는데, 이래놓고 정작 이제마는 성리학의 심성이론을 토대로 사상의학을 저술했다(...) 성리학에 매몰된 유의 출신이니 그 한계라고 봐야한다.
- ↑ 사실 일반 건강원, 혹은 가정에서 멋대로 만들어먹는 한약과 한의원의 한약가격이 차이나는 경우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식약처에서 검사받고 납품받아온 한약재의 가격과, 재배 후 곧바로 시장에 풀어버린 한약재의 가격이 같을리가 만무하다.
- ↑ 60대 이상은 43.1%가 신뢰, 15.7%가 불신한다는 응답을 해서 가장 한방의료 신뢰도가 낮고 불신도가 높은 연령층이었다. 완전히 통념과 배치되는 결과. 한편 한의학을 가장 신뢰하는 연령층은 4,50대 중년층으로 40대의 경우 45.5%가 신뢰, 3.2%가 불신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4]
- ↑ 폐업률이 높아진다는 떡밥의 경우 한의사들의 신규개업률 대비로 따지는 것이며, 한의원을 옮기기 위해 폐업하는 경우도 포함시켜 버리고, 기존의 노령화된 한의사들(한의사하면 평생 침잡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6-70대 이상까지 간다면 오히려 기량이 쇠퇴하는 경우가 많다. 1981년에 면허를 취득한 한의사들의 경우 26살에 면허를 취득했다해도 벌써 61세다.)의 폐업률을 감안하면 한의원들의 상황은 수가를 올리려는 한의협의 언플로 봐야한다. 실제로 오히려 한의원의 매출규모들은 증가하고 있다.
- ↑ 현재까지 침술의 '재현가능한' 효용성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입증된 것은 1) 요통(Eur Spine J. 2010;19(8):1213.), 2) 무릎 골관절염(Ann Intern Med. 2006;145(1):12.), 3) 편두통(JAMA. 2005;293(17):2118.), 4) 홍조(Ann Intern Med. 2016;164(3):I)의 네가지다. 물론 이 모든 연구들이 가짜 침술에 비해 mild한 효과가 있다라는 것을 보였다. 주류의학계에서는 이를 어디에 침을 놓던간에 통증이 강한 플라시보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Anaesthesia. 2004;59(2):142.). 심지어 침이 피부를 뚫지 않고 피부에 자극만 주더라도 비슷한 효과를 나타났다.(Anaesthesia. 2004;59(2):142.).
- ↑ 물론 한의학에는 경혈에 대해서 침을 놓는 침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근육자체에 침을 놓는 경근침법과 MPS(이는 치료하는 주증이 시술명이 된 사례로 MPS라는 말 자체는 '근막통증후군'을 일컫는 표현이다.), 아시혈 침법등과 아픈부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위에 침을 놓는 원위취혈, 그저 피부에 '자극'을 주는 시침법과 피부침, 테이핑요법까지 피부에 '자극'만 주고도 치료효과를 노리는 것이 많다. 게다가 한국과 중국의 경우 6년이상 학제교육을 받아 정식면허를 소지하여 침구를 시술하는 인력들이 존재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러한 인력이 부재하므로, 검증받은 인력에 의해 침구가 시술되고 효과를 검증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 ↑ 사실 이것은 한국 의료전달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은 것과도 밀접한 상관이 있다. 각과 전문의나 종합병원에 보내기 전에 교통 정리 역할을 하는 주치의제도가 정착이 안됐다.
- ↑ 의료비용 뿐만이 아니라 제도 유지 자체를 위한 사회적 부담 및 부작용 등 정치경제적 비용
- ↑ 의외로 한의학의 가장 기초되는 서적인 황제내경에는 인간의 척추뼈 개수 등에 대해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한의학 서적은 판타지 냄새를 풍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천일합일 사상을 품고 있는 유교의 영향도 크다.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거나 진단해본 적 없는 선비도 유교학자였기 때문에 마음대로 의학서적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
- ↑ 이 경우를 유의(儒醫)라고 부르는데, 대개는 판타지가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경향은 한국사에서도 고관대작들 뿐만 아니라 국왕들에게서도 심심치않게 일어난다! 유의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이제마.
- ↑ 실제로 한의계에서는 고서적이라해도 누가 집필했느냐, 당시의 유학 학풍이 어떠했느냐(실사구시였는지 혹은 추상적인 개념을 추구했는지)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경우가 있다.
- ↑ 중국에서 SARS 등에 한방치료를 도입하려고 한 것은 단지 치사율을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의료비 자체가 저가이고, 상대적으로 공급받기 쉬운 한약제제로 치료할 수 있으며 증후군 상태로 오는 후유증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심지어 극단적인 의사나 일부 카이로프랙터들은 한의학 커리큘럼 중 양방 수업을 빼면 1~2년밖에 남지 않는데 의료기사 커리큘럼과 다를게 뭐냐는 사람도 있다. 사실 카이로프랙틱도 배우려면 이 정도 시간이 걸린다. 이들도 나름대로의 논리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한방은 국가면허로 인정하면서 왜 자기들은 인정해주지 않는지 불만이 많고 한방에서 추나요법을 들고 나오는 것을 두고 자기들 것을 베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불만이 위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 ↑ 한의과대학에서도 현대의학적 지식을 상당히 많이 배운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