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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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
파일:Attachment/unesco-memoryoftheworld.gif | ||
이름 | 한글 | 동의보감 |
영어 | [1] | |
프랑스어 | [2] | |
국가·위치 | 대한민국 서울 | |
소장·관리 | 국립중앙도서관 | |
등재유형 | 기록유산 | |
등재연도 | 2009년 | |
제작시기 | 1611년 |
대한민국의 국보 National Treasures Of Korea | ||
공식명칭 | 한글 | 동의보감 |
한자 | 東醫寶鑑 | |
영어 | [1] | |
분류번호 | 국보 319호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울대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활자본/ 목활자본 | |
시설 | 25권 25책 24권 24책/17권 17책 | |
지정연도 | 2015년 6월 22일 | |
제작시기 | 조선시대 1596년~1610년 |
東醫寶鑑
목차
1 개요
대한민국 정부에서 지정한 국보 319호로 허준이 완성한 조선시대의 의학서.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 <목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최고의 의서 중 하나로 국외에도 명저로 소개되었고 수차례 번역된 바 있다. 또한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됨으로서 세계의 유산으로 거듭났다.
선조때 당대의 어의(御醫)와 유의(儒醫)들이 왕명을 받고 중국과 한국의 의학서적을 하나로 모아 연구, 편집 등 작업에 착수한 것을 광해군 3년(1610년)에 허준이 마무리하여 완성하고 광해군 5년(1613년)에 간행한 의학서적이다. 총 25권 25책으로 나무활자를 사용하여 발행하였다. 모두 23편으로 내과학인<내경편>, <외형편>4편, 유행병· 곽란·부인병·소아병 관계의<잡병편>11편,<탕액편>3편,<침구편>1편과 이외에 <목차편> 2편으로 되어있고, 각 병마다 처방을 풀이한 체제정연한 서적이다. 이를 허준은 실정에 맞는 의서라 하여 ≪동의보감≫이라 이름하였으며, 훈련도감자본으로 발행되었다. 이 책은 중국과 일본에도 소개되었고, 현재까지 한국 최고의 한방 의서로 인정받고 있다. 한의학에 대한 기록이다 보니 중국쪽이 얽힌 일이 있다. 관련 기록물의 절대량으로 보면 중국쪽이 많으나 체계적인 분류와 관리가 부족하였고 중의학 기록물에 관심도 부족하였다.
2005년 한국은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2013년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기념사업 추진단'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등재 준비를 진행하였다. 이는 언론을 통해 중국에도 알려졌으며 2005년 당시 강릉 단오제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상처입은 자존심을 다시 한번 건드리게 되었다. 게다가 한국이 중의학을 한국 문화 유산으로 등재한다는 중국 찌라시들의 자극적 선동까지 더해졌다. 결국 2009년 동의보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등재사유는 예방의학측면과 공공의료서비스측면에 대한 선구적인 면에 대한 고평가이다. 다만 동의보감이 중국의 모든 의서보다 우월하다는 자뻑 지나친 주장은 맞지 않다.
강릉 단오제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뜨겁게 데인 중국이 이후 허겁지겁 무형문화재 보호에 나섰듯이 이후 허겁지겁 중의학 서적 등재에 나섰으며 2011년 본초강목과 황제내경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2 특징
목차에 내경편은 인체의 본질인 정(精), 기(氣), 신(神), 그리고 그 '정ㆍ기ㆍ신'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들(피, 꿈, 목소리, 말, 진액(津液), 담음(痰飮)) 및 '정ㆍ기ㆍ신'을 만들고 담고있는 오장육부, 기생충, 소변, 대변 순으로 기술되며, 각기의 작용및 생리, 병리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외형편은 인체의 상부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순서대로 기술되며, 이는 기의 상승과 하강, 출입의 원리 및 내상 및 외감의 진행방향이 외형에도 반영됨을 이해시키는 흐름으로 기술되어 있다. 한마디로 한의학의 기본 원리를 목차만 봐도 쉽게 파악할수 있는 구조로 편집하고 있는 것이다.
각 항목에 병증(病症)과 처방의 실질적인 것만을 빠짐없이 선택, 수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출전(出典)이 밝혀져 있기 때문에 각 병증에 대한 고금의 치방(治方)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고, 그 밖에도 속방(俗方)을 기재하였다. 동의보감의 위치는 송대 이후에 무수히 많이 나왔던 의서들의 범람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기도 한다. 왕실 서고나 민간에 떠돌던 수많은 의서들중에 정말 필요한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지식을 당시 의사로서 알아야 되는가의 관점에서 정리한 것인데 당연히 이 과정에서 의원의 의학관과 지식, 임상경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다만 중국에서 만들어진 책을 참조하는 과정에서 국내에 자생하지 않는 약초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기록한 부분이 있어, 편집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집필 당시에 나름대로 검증되었던 거의 모든 의서를 참조한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조선 세종 ~ 세조에 걸쳐서 발간했던 의방유취가 기초 원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상한론과 황제내경, 의학입문을 인용한 부분이 많다. 물론 독창성 부분에서 떨어진다고 이 책이 얕보일 이유는 없다. 애시당초 의학이란 실용적인 학문은 100% 창작, 독창적일수가 없다. 당장 동의보감이 참고한 상한론이나 내경 조차도 그전에 있었던 다른 텍스트와 임상 자료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는 연구가 있다. 또한 상한론, 의학입문 등이 외부의 기운 중심이거나 질병, 병증 중심이었던데 비해, 도교적 관점을 도입하면서 사람 중심의 의학을 정립한 공도 있다. 실제로 서문에 '병이 같더라도 사람에 따라 치법이 다르다'는 걸 언급하고 시작한다. 또 이후 한의학의 방향을 외사(外邪)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는 중국에 비해 한반도가 기후가 다양하지 않아 풍토성 질환이 적다는 점도 있다.
최초로 집필된 뒤 후대에 국내의 현실에 맞게 재편집되었다는 의견이 존재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경악전서의 내용이 포함되어있지 않고, 청나라 말에 대두된 온병학의 내용도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재편집이라기보단 중국을 기준으로 한 약방문 조합식을 국내에 맞게 변경한 것이란 의견 쪽이 더 신뢰도가 높다. 동의보감 시절에 경악전서는 있지도 않았고, 경악도 의사가 아니었다. 한참 동의보감(1596~1610)을 쓰고 있던 기간은 임진왜란~정유재란으로 한중일 3국이 한반도에서 국제적으로 전쟁중이었다. 경악전서 서문에 따르면 장경악도 명나라의 군인이어서 이 국제 전쟁에서 참전했지만 군인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하고 귀환했다. 이후에 의사로 직업을 바꾸고 성공해서 유경과 경악전서(1624)를 저술하였다. 시간적으로 따져보면 장경악이 어쩌다가 동의보감을 보았다면 모를까 동의보감이 경악전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외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도교적 공리(道敎的功利)와 실용주의적 사상을 적용하여 정확성과 실용성에 중점을 두어 그때까지 번잡다기(煩雜多岐)했던 많은 의서의 의술적 통념을 취사선택하여 정수(精髓)만을 골라 의술이론과 임상에 완벽을 기하였다.
둘째, 동양의학사에서 최초로 정(精)·기(氣)·신론(神論)에 근본을 두고 내장기(內臟器)의 생리적 기능변조(機能變調)와 그 직접적인 병증을 일괄하여 내경편(내과)에서 새로 다룬 저작이다. 이것은 지금의 정신신체의학(心·身)과 같다. 즉, 의술의 본의(本義)를 정신수양과 섭생에 두고, 복약과 치료는 2차적 의의라고 하였다. 이것이 《동의보감》 전편의 일관된 중요한 특색으로서 350여 년 전에 현대의학의 선구적인 학설과 치료법이 이미 강구되었다는 사실은 경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고, 《동의보감》이 한방(漢方)이면서도 한방적(韓方的)이라는 의의가 여기에 있다.
셋째, 당약(唐藥:중국에서 나는 약재)이 아닌 한국에서 나는 약재를 권장하였으며, 탕액편에 나오는 약물학의 약재는 속명(俗名)을 일일이 한글로 부기하여 채약(採藥)과 사용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넷째, 각 고방의서(古方醫書)를 고증할 때 인용한 학설이나 처방의 출처를 명시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억설이 아님을 밝혔고, 후학들에게 연구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현대 논문에서나 볼 법한 인용 출처 표시를 확실히 해 두었다.
다섯째, 각 처방약의 용량에 대한 관심인데, 고서에 표시된 것은 용량이 너무 많아 한국인의 체질에 적당치 않음을 지적하였으며, 오랫동안의 임상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살려 표준용량의 기준을 만들어 적의(適宜)를 가감하도록 하고, 그 복용법까지 명시하였다.
여섯째, 민간에서 아쉬운데로 쉽게 조제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단방약을 집어넣었다.
2.1 영향
동의보감이 한국의 한의학계에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 수 있다.
- 책이 워낙 비싸다 보니 이 책을 구하기 위한 계를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마을 단위로 구비하여 글(한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의사를 겸하게 되는데, 이렇게 유학자이면서 의술 지식도 갖춘 유의(儒醫)들이 늘어나자, 직업 자체로는 중인 계급인 한의사의 위상이 크게 상승되었다.
- 저서의 완결성이 뛰어나 전체적인 한의학의 질을 크게 끌어올렸다. 현재도 동의보감을 공부해서 치료하였을 때 상당한 정도의 적중률을 보장할 정도이다.
- 사실 동의수세보원의 내용도 동의보감을 상당수 인용한 것이다. 게다가 현대의 대학 교과서까지도 동의보감을 기본적인 근거로 하여 만들어졌다. 결국 동의보감은 현대 한국 한의학의 모태가 된 셈이다.
- 동의보감의 방대한 분량을 요약하고, 명의 이천이 저술한 의학입문의 요점을 합쳐서 방약합편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조선시대 일본에 간 통신사가 병이 나자 일본인 의사가 치료를 하러 왔는데 "야 저 야매 오랑캐 의사 집에가라고 해라~" 하는 발언을 하자 화난 일본인 의사가 "나 비싼동의보감 보고 공부한 진짜 의사인데 님 왜 그러삼?"하고 화를 냈고 마침 의술에 조예가 있던 통신사가 정말 공부했나 시험을 해본 후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으로 파견 나간 사신이 중국 책방 거리에 책을 사러가면서 "조선에서 출판된 책으로 팔리고 있는 것이 뭐 있을까 ?" 하고 돌아다녔는데 조선 책으로 명나라에서 출판되어 있는 것은 동의보감뿐이었다고 한다. 내심 "우리도 잘나가는 문화국"이라는 생각에 조선 양반이 쓴 성리학 책 등을 기대했겠지만 실상 인정받고 있는 것은 동의보감뿐이었다고한다.
3 비판
3.1 인용의 오류
앞서 '특징' 부분에서 설명했듯이 동의보감은 인용 출처를 철저하게 밝혔는데, 문제는 인용의 오류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자세히 찾아보면 황제내경의 문구는 물론이고, 의학입문의 내용조차도 잘못 적은 경우가 있다. 의학입문은 동의보감 저작 당시엔 명나라에서 들여온 의서 중에서 나름 신간이었다. 동의보감에서 인용한 최신간서적은 공정현의 만병회춘이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동의보감에서 인용한 출전들이 너무 방대한데다가, 최근까지조차도 그 원전들을 구할 방법조차 막막한 까닭에 후학들이 과연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비교 검증할 엄두도 못내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중국이 대다수의 고전 의서를 온라인 문서화한 덕분에 오류 발견이 매우 쉬워졌다. 한편으로는 출전 자체가 아예 세상에서 없어졌거나 애매해서 특정 서적으로 확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3.2 한의학 정체와 동의보감
'너무 뛰어난 나머지' 후대에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이 사상의학이라는 개념을 새로이 들고 나오기 전까지 실질적으로 의학 이론의 발전에 장애를 가져왔다. 실제로 동의보감 이후에 한국 한의학은 어느 정도 정체 상태였으며 이는 마치 서양 과학계에서 뉴턴이 끼친 영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동의보감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경악전서 기반의 처방이나 온병학 등은 한국에서 비중이 상당히 작은 편이다. 동의보감의 양이 너무나 방대했기 때문에 그 가격과 부피면에서 접근성이 떨어져 방약합편과 같은 요약집이 나오는 등, 당시 한의학은 그 발전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도 동의보감 믿고 그 이상을 추구하지 않으려는 매너리즘이 생긴 건 사실이다. 너무 동의보감만 들먹이는 탓에 "한의학은 1610년 이후로 정체돼있는거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당시 한의학의 정체 현상은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까지 이어진 일련의 전쟁으로 적잖은 양의 문서가 소실되었다는 것과, 조선 후기의 국력쇠퇴 등의 시대적 요소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 초기의 의방유취, 향약집성방과 조선 중기의 동의보감은 모두 국책사업으로 제작했던[관찬(官撰)] 엄청난 분량의 백과사전식 의서였다. 또한 중국의 최신 의서들을 심혈을 기울여서 반영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1575년 간행한 이천의 의학입문, 1587년 간행한 공정현의 만병회춘을 인용한다. 불과 십 몇 년의 시간차가 있을 뿐이다. 허나 동의보감 이후의 관찬 종합의서는 1799년 정조(조선)가 명하여 동의보감을 요약할 목적으로 간행한 제중신편과 조선 멸망 직전인 1906년 고종 무렵의 의방촬요 정도뿐이다. 조선 후기는 더이상 관찬 종합의서를 발간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제도적으로 백성이 개인적으로 외국에 드나들거나, 무역하는 행위를 제약했다. 수입된 것이라면 의학서적은 물론이거니와 약재조차도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전혀 유통시킬 수 없는 사회였다. 동의보감이 씌여진 시기는 역사상으로 중국의 명-청 전환기였고, 사대주의에 입각한 조선 지식인들이 오랑캐(청)의 학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던 것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조선의 지식 풍토가 경색되어가는 와중에도, 중국 청나라 건륭제 시기에는 조선이 제중신편을 발간했던 시점보다 앞선 1782년, 거대한 규모의 서적 정리 사업인 사고전서를 이미 완성해 놓았다. 박제가와 같은 북학파(실학) 학자들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분명히 최신 의서를 들여왔었을 텐데도 제중신편에는 1624년 간행한 경악전서까지만 반영되었다.
또 국토가 좁고 4계절이 뚜렷한 조선의 상황과, 외기(外氣) 중심의 의학으로 발전 방향을 잡은 중의학이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견도 있다. 이제는 점차 열대화가 되어가는 한국 기후를 볼때 사고의 중심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도 현대에 이르러서는 온병학을 점차 강조하는 추세이다.
3.3 재료 문제
보통의 의서가 확실한 치료방법에 중점을 두는 반면 동의보감은 일반백성이 손쉽게 구할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어 약효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즉, 동일한 병에 대해 보통의 의서가 값비싼 약재를 쓰는 확실한 약제법을 제시한다면 동의보감은 약효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산이나 들에서 쉽게 구할수 있거나 약방에서 값싸게 구할수 있는 재료를 먼저 제시한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약재를 혼합했을때 더 효과가 뛰어난 경우에도 가급적이면 단일 약재나 재료배합이 적은 치료법을 우선시한다.
재편집되면서 지나치게 국산 약재로 대체하는 것을 선호한 나머지 일부 약재의 기원이 불분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지만 안 그런 경우도 있다는 게 문제이다.
3.4 이상한 처방
중금속 관련 처방은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어쩔 수 없는 오점으로 남는다(물론 도교 자체의 결함이긴 하지만…). 예컨대 수은을 장복하면 귀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있는데, 수은 중독이 되면 환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좋은 건 아니다.
그 외에도 예를 들자면 매우 많다.
- 부부가 서로 사랑하게 하는 처방(=원앙새 국을 먹거나 뻐꾸기 머리뼈를 차고 다니면 된다)
-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살리는 처방, 목매 죽은 사람 살리는 처방(아침에 목매 죽은 사람은 저녁에 살릴 수 있어도 저녁에 목매 죽은 사람은 아침에 살릴 수 없다)
- 딸아들 가려 낳는 방법 6가지(예: 월경 끝나고 1, 3, 5, 7, 9 홀수날 수태하면 아들 낳는다
- 아들 낳는 방법: 월경이 끝나고 1, 3, 5…… 홀수 날 수태하면 아들, 남편의 오줌에 담가둔 계란을 먹으면아들, 좌로 누워 수태하면 아들 등), 또는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방법 등
- 가위에 눌린 사람에게 불을 비추거나 앞에서 갑자기 부르면 죽을 수도 있다. 이때는 오직 그 사람의 발뒤꿈치나 엄지발가락 발톱 근처를 아프게 깨물어 준다.
굳이 그럴 필요 까지는... - 원숭이가 말을 하게 하려면 수은을 먹이면 된다
살려줘 - 악몽을 예방하는 법: 호랑이 해골로 만든 베개를 베고 잔다.
오래된 수필집을 보면 악몽때문에 호랑이 해골을 구했는데 너무 커서 베고 잘수가 없다고 투덜거리는 내용도 있다고 카더라[3]
이런 정도.
- 주술도 나온다. 목에 가시 제거법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무당이 외우는 주문을 외우라고 한다. 여율령.
다만 어이가 없어 보여도 당시 기준으로는 정상이거나 현대 기준으로도 정상인 경우도 꽤 있다. 확실한 게 아니면 무조건 까진 말자. 그리고 집대성 및 재편집의 성격이 강한 동의보감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저자인 허준이 저런 걸 다 믿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 당연한 얘기지만 한의사들도 저런걸 믿을리 없다.
3.4.1 투명인간?
잡방문에 은형법(隱形法)이라는 처방이 있다. 개의 담(膽)을 포함한 세 가지 본초로 구성되어 있으며 효과는 '隱形(형체를 숨김)'이라고 되어 있다. 이 처방을 KBS 스펀지에서 실험했지만 투명인간이 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동의보감에 투명인간이 되는 법이 있다고 회자되었다. 그런데 우석대 한방병원에 의하면 이 처방은 안구의 염증성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의 '투명인간이 되는 법'은 진짜일까?[4] 참고. 여기서 개의 담은 눈의 고름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고 나머지 본초는 항염증작용이 있다. 따라서 '隱形'이란 시야를 막는 고름을 없애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입장에선 눈 뜨면 장애물이 계속 '보이는' 셈이기 때문. 요즘의 감각으로 보면 은형법같은 말이 썩 좋은 표현은 아니나 예전에는 전대의 표현을 고치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그대로 썼다고 한다.
3.5 의사와 한의사 간의 논쟁
3.5.1 의사들의 입장
동의보감에는 좀 황당한 게 아니라 그냥 황당한 처방이 많이 존재한다. 한의학적 설명의 한계인 듯하다. 황당하면 황당한 것이지, 좀 황당하다는 말로 얼버무리려 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처방이냐, 아니냐가 문제이다. 해부학부터가 한의학은 현대 생물학으로서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장부론을 논하고 있다. 음양오행에 억지로 맞추는 비과학적 시각이 한의학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현대 의학과 차이를 보면 현대 의학에서는 아무리 히포크라테스가 서술했다고 해도, 그건 잘못이다.라고 아주 단순하게 선을 그어 버린다. 잘못은 잘못이지, 쉴드를 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한의학은 과학적 관점에서의 명백한 잘못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과학과 철학의 차이이다. 한의학이 또 다른 과학을 주장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과 통계학적 검증을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의사들이 한의학을 까고 비웃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은 비판을 적극 수용하고 실험하고 검증한다. 그러나 한의학은 이러한 비판을 거부한다. 그러나 올바른 과학자, 의사라면 아무리 보기 싫은 비판이라도 그 비판을 남겨두고 재비판하는 방법을 일반적으로 택한다. 논쟁과 토론으로 살아남아야 올바른 지식이라고 본다. 정말 허준이 믿지 않았는데도 처방을 기록했다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지가 문제가 된다. 또한 한의사들은 허준이 믿지 않았다는데 더 중요한 건, 허준은 믿었다는 거다. 위의 투명인간 되는 법= 은형법에서는 푸른색 개가 더 좋다라고 부가 설명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주술까지 수록했다. 허준을 쉴드 치기 위해 허준은 믿지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동의보감에 어떤 내용을 믿을 것이고, 어떤 내용은 믿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 동의보감에는 위의 예 외에도 황당무계한 내용이 많다. 심지어 정액을 피로 만드는 법도 있고, 엄마 배 안의 태아의 성별을 바꾸는 처방도 있다. 이걸 아직도 믿는 한의사도 있다. [5]
3.5.2 한의사들의 반론
동의보감에 황당한 처방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동의보감이 가지고 있는 애초부터의 목적과 역사적 상황을 감안해야 하며, 동시에 위에 나오는 의사들의 의견은 상당수 한의사들은 아직도 동의보감 원본이나 뒤적거리며 교육받는다라는 거의 혼자만의 망상에 가까운 전제를 깔고 있다. 동의보감은 애초부터 허준이 조선정부의 명령으로 조선에 존재하고, 또한 이루어지고 있던 모든 처방들과 당시로서는 모든 부분에서 관련된 말 그대로 민간요법이나 주술적 요법까지 전부 다 체계화하여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발간된 책이다. 이것을 위하여 당시 조선과 중국의 거의 모든 주요의서들을 수집하는 것은 물론, 조선의 각 군현에서 이루어지던 민간요법이나 주술요법까지 전부 다 체계화하여 기록해야 했던 것이 바로 허준이 어의로서 총 지휘하던 동의보감 편찬작업이었다. 따라서 허준이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말 그대로 조선에 존재하고 있던 모든 한의학적 처방은 물론 각종 기타 등등의 민간, 주술요법까지 총동원하는 것이 동의보감의 편찬 목적이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경옥고에 대한 처방을 동의보감에서 소개할 때는 이걸 매일 먹으면 360세 까지 산다고 적혀있는데, 이 말을 그럼 허준이 믿었단 말인가? 그 동의보감 편찬완료 소식을 듣고 직접 보게 되는 대신들과 임금들은? 투명인간이 된다는 방법을 설명한 은형법은 동의보감 잡방, 즉 여러가지 방법을 수록한 것으로서, 여기에는 불 피우는 방법, 자석이 남쪽을 가리키는 방법, 옷에 묻은 기름때 제거하는 방법들도 있다. 한마디로 뭔가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것, 혹은 누군가가 그것을 위하여 사용한다고 말한 모든 잡다한 것까지 수록한 것이다. 허준은 동의보감을 지을 때 의서에 있던 텍스트를 그대로 옮겨와 출처를 표기하며 처방에 기록하고 체계화했을 뿐이다. 이것을 가지고 '좀 황당한'이라고 말한 것을 '좀'이 아니라 그냥 황당한 것이라며 말꼬리 붙잡고 공격하는 것은 동의보감과 그 동의보감에서 비롯된 처방을 주로 사용하는 한의사들을 까내리지 못해 안달난 일부 의사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유치한 꼴일 뿐이다. 또한 장부론은 해부학이 아니라 생리학이다. 한의학에서 해부학이 나름대로 발전했다면 아마 한의대에서는 양방해부학, 한방해부학을 따로 가르쳤겠지(...) 장부론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멋대로 정의내리는 일부 의사들의 수준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그리고 음양오행에 억지로 맞추는 시각이 한의학의 근본적인 한계라는데, 당연히 한의학의 역사에서 적어도 최근 100년을 제외한다면 한의학은 지금의 자연과학적인 시각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저 병이라는 현상에 한의학적 치료술기인 침구학과 각종 처방을 사용하고 이에 대한 효과와 치료경과 관찰이 이어지면서 현재의 한의학 치료술기와 처방들이 경험론적으로 만들어져 온 것이다. 여기에 음양오행이 사용된 것이야 당시로서는 자연을 설명하는게 음양오행론이라는 세계관 철학밖에 없으니 당연했다. 또한 현대에 와서는 의료이원화로 인해 한의학에서 쓰이는 치료나 처방을 현대의학적으로 설명하거나, 검증하는데 성공하면 의사들이 곧바로 '그게 한의학이냐, 현대의학이지'라면서 일갈하거나, 혹은 그냥 가져가버리는 일도 존재한다. '기나 음양오행을 증명해봐라'라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는 덤이다. 당연히 이에 대해 한의사들은 결국 현대의학으로 설명하면서 효과도 입증하고 동시에 한의학이론으로도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를 두개나 떠앉게 된다. 전자를 설명하면 의사인 척 구는 한의사가 되고, 후자를 설명하면 누구 말대로 한방주술사라고 매도당하는 것이다.
또한 한의학이 과학적 통계론과 접근방법을 거부한다? 이건 전적으로 일부 의사들의 망상적인 착각이다. 애초부터 한의학계의 논문만 봐도 이딴 소리는 못한다. 그리고 푸른 개 관련한 말은 허준이 주석으로 써놓은 것이 아니다. 텍스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거지. 그리고 주술요법을 수록하는데 주술을 달았지 뭘 어쩌란 말인가? 마음이 번잡할 땐 불경이나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그것 둘 모두를 수록하면 그 글을 쓴 글쓴이나 작가는 불교와 기독교 모두를 믿는단 말인가? 또한 마지막 전녀위남법은 한의학계 내부에서도 말도 안된다는 소리라며 배척당한 지 오래다. 그 예시만 봐도, 동의보감에 나온 처방들을 수록하고 있는 한방부인과학 교과서에선 전녀위남같은 소리는 나오지도 않는다. 또한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남아선호사상이 판치고 있던 한국에서 아들낳고 싶어 안달난 불쌍한 부부들을 노리고 돈 벌려고 사기치는 한의사들이 존재하던 것은 어쩌고 보면 당연하다. 당장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비뇨기과 의사들이 포경수술은 꼭 해야 한다고 TV나와서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것과 똑같다.
3.5.3 세계기록유산 등재 후폭풍
유네스코에서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자 이에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이러한 성명을 발표하였다.[6] 이에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일원화특위에서 이러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내용은 '이것은 문화사적 유물로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지 임상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 아니며, 한의사협회는 은근슬쩍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이용하고 있다.'라는 비난. 이 기사에서 투명인간이 되는 법, 귀신을 보는 법 등이 담겨있는 책이 오늘날의 상식에 맞느냐는 말을 했고, 이 병크발언이 터지면서 두 진영의 신경전이 달아올랐다.
다만 의협의 주장이 무조건적인 비판을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시기의 부적절성, 문제 제기의 지엽성,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정서를 무시한 정도가 컸던 것이 실패의 요인. 사실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동의보감 내용이 100%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한국의 국민성을 생각해볼때 나라의 자랑으로 발표되자마자 정면으로 동의보감을 까내리는 짓은 멍청이 같은 일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감한 발언을 하려면 (1)눈치보고 (2)분위기파악하고 (3)타이밍을 맞추는것이 매우 중요한 한국에서 그것들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비난을 한몸에 받게 될수밖에. 게다가 외국인 집단도 아니고 다들 한국에서 수십년 이상 살아와 적응이 될대로 되었을 사람들이 저것들을 제대로 못맞춘것을 보면 말그대로 그냥 병크. 결국 외국에서 한방에 대해 언급한 사례가 나오면 덮어놓고 '한방의 우수성' 운운하는 한의계와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닌 단말적인 비난에 치중하는 의학계가 한데 어우러져 사람 여럿 피곤하게 만든 해프닝. 따라서 '밥그릇 싸움' or '그게 그거'라는 일반인의 인식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진흙탕 싸움에서 누가 더 진흙투성이인지 따지는 것만큼 한심한 일이 또 있을까. 한의학계의 자중과 의학계의 대범함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둘 다 못해서 집안 싸움이나 벌이고 말았으니... 둘 다 욕먹어도 싸다. 의학도들은 괜히 의협만 욕먹는다고 억울해하지 말자. 대중의 인식은 '둘 다'이지 의협만 욕한 적은 없으니까. 이랬든 저랬든 동의보감이 훌륭한 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다만 시대의 변화, 그리고 인간 지식의 진화에 맞추어 선별해야 할 것이 있을 뿐.
4 번역
동의보감은 한문으로 되어 있거니와, 현대말과 맞지 않아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이 있어왔다. 동의보감을 최초로 번역한 사람은 선비인 허민이다. 1964년에는 『동의보감』(상중하, 동양종합통신대학 발행)을 완역하였다. # [7]
어렵고 난해한 동의보감을 쉽게 풀어서 쓴 역주본도 나오고 있다. 2012년 현재도 출간 진행 중으로 동의과학연구소 겸 양재동일한의원 원장인 박석준 씨 주도로 2002년 동의보감 완역본 1권 내경편이 발간되었고 2008년 동의보감 완역본 2권 외형편이 발간 되었다. 2권 이후의 작업은 현재까지 없다.
보건복지부 지원하의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내는 동의보감 영어 완역본도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 2013년 실제로 나올 것임을 말하는 기사도 있다. 후속기사 하지만 이후 2013년 말까지 작업이 완성되었다는 후속 기사가 없어 작업 상태는 알 수 없다.
4.1 동의보감과 저작권법
남한의 제헌의원이자, 6.25 전쟁으로 입북한 조헌영 박사[8]의 주도로 국역본이 완성되었다. 이후 1982년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다시 펴낸다.
한의학계는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로부터 판권을 옮긴 '동의보감'(여강출판사)과 허민의 '동의보감 국역증보'(남산당)를 주로 참고했으나, 내용과 해석이 분분하였다.[9][10]
이 북한 번역본을 둘러싼 사건 덕분에, 동의보감은 한의학 뿐만이 아니라, 한국 저작권법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조헌영 박사의 번역을 참고한 여강출판사의 '동의보감'과 흡사한 법인문화사[11]의 '동의보감' 국역본이 나왔는데, 여강출판사 측이 이를 고소한 것이다. 하급심에서는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온 적이 있다. 2001년부터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2005년 경 법원이 북한과의 판권 계약을 주장한 여강출판사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북한에 조회를 하자,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저작권사무국'[12]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저작권사무국은 저작권자의 승인과 저작권사무국의 공증확인서가 없는 한 남측에서의 우리 저작권에 대한 이용은 저작권침해로 된다는 것을 알립니다.라는 공문을 보냈고, 이에 법원은 저작권을 주장한 원소에게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13] 원고는 북한 출판사가 78년에 조선족문화예술관에 판권을 위임하고, 남한인이 그곳에서 판권을 취득해 왔다고 주장했으나, 북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고 한 것이다. 북한은 공산국가라 저작권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남북한은 저작권 관련 국제협약인 베른조약에 가입하고 있다. 북한의 법학사전 설명을 보면, “과학, 문학 또는 예술의 창작품에 대하여 창작자가 가지는 권리"가 저작권임을 명시하고 있다.
5 400년만의 재편찬
우수한 한의학 의서이긴 하지만, 21세기 현상황에선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이에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동의보감 편찬 400년만에 재편찬 사업을 2012년에 추진하였으며, 2016년까지 집필을 완료하고 편집과정을 거쳐 2018년에 공개할 예정이라 한다.
동의보감은 1613년 발간돼 지금까지 한의학 대표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등장한 임상적 성과를 담지 못하며, 일부 내용은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게 한계점으로 꼽혀왔다. 이에 신동의보감은 크게 기초한의학, 임상한의학, 한국형한의학 등 3개 분야로 나눠 동의보감을 재집필하기로 하였다. 기초 및 임상한의학 분야는 동의보감 외 중요 문헌 고찰을 통해, 현재까지 등장한 동아시아 한의학을 중심으로 집대성하기로 하였다. 남자 태아를 여자로 바꾸는 식의 '전남위녀법', '투명인간' 등 비판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리뷰도 포함된다.주목할 부분은 한국형한의학 편찬사업이다. 동의보감 이후 국내 한의사가 자체 개발해 현장에서 사용 중인 치료기법을 체계화해 추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신동의보감은 한의학 교육과 일선 한의사들의 임상 참고자료로 보급될 예정이다. 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 때마다 위키피디아 형식의 업데이트 시스템도 구축된다. 즉, 허준의 업적을 계승하고 동의보감 편찬 이후 의학적 성과를 한데 모아 현대 한의학의 임상적, 과학적 성과를 반영한 통합형 근거중심의 한의학서를 만든다는 것이다.
6 그 외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것과는 달리 동의보감은 일반인이 쉽게 볼수 있는 서적이 아닌 전문서적이라는 것이다. 위에 나왔듯이 한문으로 쓰여있는것도 있지만, 한글 번역본도 최소한의 약초학이나 한의학적 지식이 없지 않으면 안된다는것. 비유를 하자면 고딩에게 번역본 동의보감 주면 힐러가 되는것은 아니라는 소리이다. 위 투명인간 드립이나 부분부분은 해석이 될지는 몰라도, 초등교육도 못받은 초등학생이 중력 가속도가 뭔지는 이해해도 기타 개념이 없으면 낙하속도 계산이 안되는 것처럼 의학용도로써의 사용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총두깨만 해도 무지막지해서[14] 작은 글씨로도 웬만한 대백과나 친일인명사전급 물건 두세권 정도의 분량이 된다. 당연히 나눠져서 판매중이지만 그 한권으로도 충분히 흉기가 될 정도. 단순 암기는 둘째치고, 환자가 생겼을때 바로바로 해결법을 찾기도 힘들다. 민간 배포용이라는 의도로 만들기는 했지만, 완전 초보자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게임으로 치면 패키지에 포함된 설명서나, 튜토리얼을 완료한 정도는 되는 사람들을 위한 공략집으로 봐야 한다. 솔직히 기본의 기본부터 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이기도 하고 시중에서 동의보감 검색해봐야 소설 동의보감밖에 안나오는것도 대략 이런 이유이다.
허준이 침구에 능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것은 일부 무면허 침구사들이 근래 내세운 주장이다. 이들은 허임의 일화를 내세워 침구의가 전혀 다른 분야인것처럼 포장하는데[15], 세종때에 침구의를 뽑기 시작하면서 침구학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일종의 전문의가 존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력의, 치종의등의 다른 전문의도 있었으며, 이는 어디까지나 전문 분야의 차이라서 과거 시험에서는 비중의 차이가 있으나 한의학 전반에 대하여 모두 공부하여야 했다. 무엇보다 침의가 약 처방한 내용도 버젓이 나오고 있다. 실록에서 허준이 '소신은 침을 잘 모르옵니다만(후략)'라고 하여 침의인 허임이 침을 놓게 한 기록이 있으나[16], 이때의 왕실 의료는 집단 협진 체제였다. 즉 주치의격인 원로 의사가 병명을 진단하면 그 밑의 의사들이 각각 혈자리를 잡고 침을 놓는 방식이었다. 당장 허임이 나오는 저 기사만 봐도 허준은 병명을 진단하고 남영은 혈자리를 잡고 허임이 침을 놓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허준이 정말로 침구에 능하지 않았다면 선조가 뭐때문에 침구 치료에 대해 허준과 상의를 했겠는가.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주치의가 병명을 진단하고 좀더 술기가 능숙한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 주치의가 수술에 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런 방식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왕의 몸에 침습적 치료인 침 치료를 하기 때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것이다. (실록에서도 침의의 실수로 왕이 죽는 경우가 몇번 나온다) '침구편이 상대적으로 부실한 편이다. 23편중 달랑 1편이 침구에 할애되어 있을 뿐'이라고 하나 이는 동의보감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 동의보감의 신형편을 제외하고는 각 편마다 끝부분에 침구 관련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무엇보다 허준의 다른 저작들에도 침구 관련 내용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