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

1 신라 시대의 공주

삼국유사 서동요에 기록된 진평왕의 셋째 딸이며, 선덕여왕천명공주의 동생이자, 백제 무왕의 왕후이다.

2 서동 설화

백제 사람인 가난한 서동은 를 캐면서 살았기에 맛동이라고 불리었는데, 신라에 가서 아이들에게 를 나누어주면서 이 불순한 노래(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스캔들을 만들고는, 진평왕의 명령에 의해 쫓겨난 선화공주와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및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말통(末通)대왕"이란 명칭으로도 나오는데, 이는 바로 "薯童"을 훈독한 "맛둥" 정도의 어휘를 적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적절한 바이럴 마케팅언론플레이로 결혼에 성공한 능력자 이 설화가 어째 지금은 러브스토리로 미화되지만 타국의 공주를 모해할 목적으로 노래를 지어서 퍼트린 것이 사실이라면 ...

이는 현대 기준에서 봐도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

이후 서동은 어찌어찌 해서 금도 얻고 인심도 얻어 백제의 왕이 되고, 이후 선화 공주와 함께 유명한 백제 사찰인 미륵사(彌勒寺. <국사國史>에서는 왕흥사王興寺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주석이 있음)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설화의 전문이다.

삼국유사의 <서동 설화>

이 때문에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와 서동 설화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가치와는 별개로 내용 자체가 그지 깽깽이적국의 미소녀 공주를 후려서 이 되어 알콩달콩 살았다는 그야말로 로망과 판타지의 결정체이니만큼 천년도 넘는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중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진 향가이다.

여기까지는 참 쉬운데 이 뒤부터가 난관이다...

3 실존여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면서 나온 사리함의 기록에는 미륵사를 중건한 왕비가 백제 귀족 사택씨의 딸이라는 기록이 적혀있어서 설화에 나오는 신라의 선화공주라는 말과는 맞지 않게 되었다. 또한 당시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험악했기에 결혼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현재는 보완 차원에서 무왕의 왕비가 여러 명이었거나, 기록에 나온 사택왕비는 선화공주의 사망 뒤에 들인 후처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덕일 교수는 당시 공주라는 칭호가 왕의 딸에게만 쓸 수 있는 용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선화공주의 아버지가 진평왕이 아닌 익산지역 토호였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신라 출신의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유물이 발견되어 논의가 가속화 될 예정이다. 익산의 왕릉급 고분인 대왕묘에서 출토된 유골이 20-40대 사이의 여성이고, 부장품 중에 신라제 토기가 있어 선화공주 설화와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신라에서 백제로 건너온 왕족급 여성은 실존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설과 역사 사이 ‘선화공주 연애담’ 진실 밝혀지나

4 창작물에서의 선화공주

일단 기록에는 존재하지만 삼국유사의 설화적 존재로만 등장하기 때문에 당시 시기를 다룬 사극에서도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데 주로 백제 쪽 배경 위주라면 나오고 신라를 주 배경으로 한 선덕여왕(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잠깐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등장하지 않았다.

서동요(드라마)에서는 이보영이 연기했다. 아역은 설리(배우).

계백(드라마)에서도 백제 황후로 등장했다. 배우 신은정이 연기.

5 기타

21세기에 재현되었다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