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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 | 김대령 | 이덕일 | 김상태 | 문정창 |
목차
1961년 10월 7일생. 한국의 대중 역사평론가, 저술가, 사학박사. 유사역사학자# 독살마니아.
고대, 조선사의 김대령
환빠, 창조(적 역)사학의 거두
역사학자 이덕일, 김현구 교수 명예훼손 혐의 유죄
1 개요
한국 역사계의 파울 요제프 괴벨스 + 트로핌 리센코
밑에 자세히 나오지만 이덕일에게 이런 말이 붙는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1. 과격한 배타적 민족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다. 심지어는 "간도 조선 영토설을 부정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가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건 일제가 썼던 치안유지법과 다를 게 없는 유사 파시즘이다.
2. 그걸 위해 날조를 해서 선동을 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점이다. 가장 큰 것은 김현구 교수 경우와 동북아가 있는데 정작 이덕일은 "원래 왜는 한반도의 국가였고 백제와 신라를 지배했고 고구려와 패권경쟁을 할 수준으로 강했는데 고구려에게 패배해서 일본 열도로 이주했다"는 역사왜곡을 해놓고 "임나일본부설은 후대에 만든 조작"이라고 말한 김현구 교수를 임나일본부설자라 주장 했다.
또한 이은순 교수가 제기해서 몇십 년 전부터 "주류사학"이었던 사도세자 당쟁 희생설을 자기 프레임인 것처럼 허위 선동을 퍼트린다.
종합하자면, 자신의 헛소리에 동조하지 않는 학자들을 식민사학자로 몰아붙이며 돈을 벌고 있는 선동의 대가 되시겠다.
2 경력과 주요 저작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태어나 아산 온양천도국민학교-아산중학교-천안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함과 동시에 강사로 일했으며,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주의계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연구 논문인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북항일연군은 사회주의계, 즉 훗날 북한을 구성하는 독립운동단체인데, 80~90년대까지만 해도 강한 반공의식때문에 북한 계열 독립운동 단체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동북항일연군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고 그 지원자가 중국 공산당이다. 80~90년대 공안정국 시대에 이딴거 연구했다간 끌려갔겠지
정치적 성향은 분명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을 운운하기도 하였고, 민족주의적인 성향도 강해 보이지만 김일성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일성은 좌파라기보다는 민족주의 성향이 압도적으로 강한 인물이라 이것 자체는 좌우와 무관할 수도 있다. 애초에 김일성을 연구했다고 김일성을 좋아하리란 법이 없고, 히틀러를 연구했다고 히틀러를 좋아했다는 법도 없으며, 박정희를 연구했다고 박정희을 좋아하리라는 법이 없다. 실제로 북한학 전공 학자들만 봐도 극우에서 극좌까지 이념은 다양하며, 소련 연구자들 중에도 당연히 반공주의자부터 스탈린주의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최근 근대 독립운동사를 다루겠다고 했으니 현대 정치에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드러날 수도 있다. 다만 원래 전문분야가 이쪽이 었으니 그나마 이쪽에는 불쏘시개를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소설을 쓰는 환빠라는 세간의 평 때문에 김운회처럼 비전공자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이덕일은 어쨌든 역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전공자다. 그래서 후술하는 부분 및 별도로 분리된 비판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악영향이 누구보다도 크다.[1]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박사학위를 받아서 수십년간 일제강점기 한 시대만 연구해도 논리적 허점이 없지 않은데, 이덕일은 고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를 모두 다루다보니 깊이가 없이 허점투성이가 된 것이다. 즉, 본인의 주 전공 분야인 독립운동을 제외한 분야의 역사적 식견은 재야사학자들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덕일을 쏘아붙일땐 쏘아붙여도 엄연히 강단사학계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라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소한 석사급은 되야 이덕일씨가 가진 주장의 허점을 완벽히 논파가 가능하니, 본인이 비전공자인데 쓸데없이 인터넷에 이덕일을 까다가 환빠들에게 역관광 당하지말자. 남을 까려면 그만큼 수준을 갖추고 까자. [2]
1998년부터 사단법인 한가람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정조 독살설과 관련하여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정조가 독살되었다고 주장하는 주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서로는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왕 독살사건, 여인열전, 누가 조선왕을 죽였는가 등이 있다. 독살설 관련은 조선왕 독살설을 참고.
고대사에서 독특한 주장으로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은 물론, 조선사에서도 소현세자의 문제, 정조 문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게다가 역사서라고 해서 무조건 딱딱한 문체가 아닌, 화려한 수식은 없어도 무난히 읽혀지는 글을 썼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우리 안의 식민사관"부터는 그것도 떨어진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2.1 이덕일의 고대사/조선사에 대한 전문성
결론을 말하면, 이덕일은 고대사 및 조선사 분야의 전문가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초기에는 전체적으로 공부하지만 점점 파고갈수록 자기 분야만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 예 중 하나가 바로 언어다. 언어 경우 영역이 어떤 것이냐 따라 완전히 다르다. 한국사만 보면 아래와 같다.
- 한국고대사 : 한문, 중국어, 일본어[3]
- 고려시대사 : 한문 사륙변려체[4]
- 조선시대사 : 한문 초서체[5]
- 한국근대사 : 일본어 마스터, 한문[6]
- 한국현대사 : 영어 마스터.
이덕일의 경우는 좀 극단적이라 언어만 해도 다른 영역에서 기본수준도 못 되는 경우를 보여준다. 이덕일/비판 문서에 자세한 내용을 참고하길 바라나, 여기서 대표적인 업적(?)을 몇 가지만 쓰자면...
- 묘예(苗裔 : 먼 후대의 자손.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단어다.)를 '묘족의 후예'로 착각했다. 이 착각은 뿌리가 좀 깊은데, 1990년경 2세대 환빠인 이중재가 대륙설을 주창하면서 만든 해석이었다.
그러니까 이덕일은 환빠라고... - "태묘"(즉 종묘)를 "태조의 묘"로 착각해서 완전 딴 내용을 주장했다. 광복 이후 초기라면 모를까 지금 기준에서 제대로 배웠으면 저런 걸 착각할 수는 없다.
- 자기 전공 시대범위 안에 들어가는 근대 한글에 대한 언어학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덕일/비판문서 에서 두음법칙 관련 내용 참고.
이덕일이 다른 영역에 극단적으로 무지하다는 걸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임오화변이다. 이덕일은 사도세자 죽음이 정신병처럼 됐다는 걸 근거로 노론사관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세자 당쟁희생설은 이덕일이 그에 대한 책을 쓰기전부터 사학계에선 정설이었다. 다시 말해 주류사관이었다. 오히려 정병설 교수가 비주류설이다. 그런데 이덕일은 완전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이다. 이덕일은 심지어 이은순 교수의 논문조차 몰랐다.
이덕일이 제시했다는 프레임은 1968년 발표된 이은순 현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논문 ‘한중록에 나타난 사도세자의 사인’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은순은 '사도세자의 고백'이 출간되기 30년 전에 "한중록에 나타난 사도세자의 사인"이라는 논문에서 그런 가설을 발표했다. 그것을 발전시켜 1981년에는 한국학보에 "현륭원지 행장과 한중록의 비교 연구"라는 논문을 실었고 1988년 출간된 자신의 저서 '조선후기당쟁사연구'에 수록했다.
- 이은순, 한중록에 나타난 사도세자의 사인, 1968(이화사학연구) 이화사학연구소
- 이은순, 현륭원지 행장과 한중록의 비교연구, 1981, 일지사, 이은순
- 이은순, 사도세자의 정치적 생애와 시벽의 분립, 조선 후기 당쟁사 연구, 1988
책을 내기 몇십년전부터 이미 이은순 교수가 제기해서 "주류사학"이 된 것이 바로 사도세자 당쟁희생설이다! 그런데 이덕일은 이런 "주류사학" 프레임을 자기 것인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일부에선 착각이 아니라는 주장도 한다. 다시 말해 알면서 일부러 그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건 아직 증거가 없으니 섣불리 말하는 건 곤란하다.
이덕일은 심지어 사도세자 당쟁희생설을 "주류사학"으로 만든 이은순 교수의 논문조차 들어보지 못 했다고 한다. 이덕일이 근현대사 영역 빼고는 기본수준조차 안 된다는 근거다. 학자로서 기본 중 기본인 선행연구 확인조차 제대로 안 했다는 것. 다시 말해 근현대사 이외에 대한 이덕일의 주장은 박사학위 수준의 전문성이 없으며 철학과 박사학위자인 5.18 민주화운동/왜곡의 대표유사역사학자인 김대령과 수준이 다를 게 없다.
2.2 초기엔 의도는 좋았다
초기엔 순수(?)한 부분도 있었다. 특히 세조에 대한 이덕일의 해석 및 평가는 한국 대중의 역사인식에 발전적인 영향을 준 바 있다. 이덕일이 송시열만큼 증오하고 혐오하는 인물이 바로 세조인데, 이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이덕일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세조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구국의 결단을 내린 위대한 영웅'이라는 군사정권의 일방적인 칭송과 찬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덕일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90년대 말 이후로는 세조에 대한 더욱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세조에 대한 이덕일의 시각은 이러하다. 정통성이 결여된 자가 왕위 찬탈(이 때 왕은 조선에서도 정통성이 만렙이었던 단종이) → 이에 반발하는 세력의 반란 → 반란을 진압하면서 또 공신책봉이란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쏟아져 나온 공신세력을 태종처럼 적절한 숙청 없이 무작정 친위세력을 키워주면서 자신의 생전에는 왕권이 강화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는 살아있던 공신들이 원로로서 국정을 장악하여 군약신강의 환경이 조성될 토양을 마련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덕일의 세조 증오는 이덕일 자신이 그토록 주장하는 '사악하고 강력한 신권에 맞선 왕들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 토양이라고 주장할 건덕지가 있고 그간의 미화에 대한 반대급부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덕일이 드라마 <왕과 비> 방영 당시 세조 미화를 비판하며 쓴 글을 보면 이게 이덕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개념글이다.
3 법의 심판
김현구 교수를 모함한 행위로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
4 문제점과 비판
이덕일 세력의 역사왜곡 | ||
왜인 한반도 남부 지배설 | 김현구 임나일본부학자설 |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초기기록 수정론 식민사관설 | 한사군 한반도설 식민사관설 | 동북아역사재단 독도 누락 조작 사건 |
이덕일은 역사적 왜곡뿐만 아니라 다른 학자들을 향한 마녀사냥도 자주 행하는 편이다. 자세한 비판에 대해선 비판 문서를 참조.
누구나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 관점과 취향이 있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문구멍으로 보지 않는다고 타인을 공격하거나 남의 시각을 날조해 공격하는 폭력은 광적인 파시즘에 지나지 않는다. 폐쇄적 도그마에 빠지면 이성과 감성이 마비되어 자신도 모르게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이주한,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2011, 53쪽.
이주한의 팀킬
5 대중적 인식과 평가
어느 블로거는 어둠의 역사가라 칭했다.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가 대중 역사서로 수많은 국민들에게 인지도가 높다는 점과 실제로 책을 써서 부와 지위를 얻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대중들은 사도세자 당쟁설은 사실처럼 믿게 되었으며, 노론, 벽파=개쌍놈으로 생각하고 있다. 올바른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여 초중고교에서도 이 설을 사실처럼 말하는 역사 교사들도 많다. 역사 왜곡 드라마를 추천하는 역사 교사들도 많다.
이것은 교사TO가 부족한 한국학교 특성상 역사과 교사가 아니라 사회과 교사가 역사과목을 수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 역사가 사회과목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벌어졌던 현상인데 사실 현재도 역사교사가 없어서 사회교사로 땜빵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이다. 적어도 전공교사에 한해서는 그런 경우가 적다.
심지어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를 까기 위해 정순왕후가 세도 정치를 시작한 안동 김씨라고 하는 일까지 있다. 그렇지만 안동 김씨는 노론 시파이며, 정순왕후의 집안 경주 김씨는 안동 김씨에게 숙청당했다. 여기에다 안동의 김씨 가문 등이 경북 안동에서 한양 조정을 원격조정한 게 세도정치인줄 아는 일반인의 오해와 겹쳐 역사가 엉망이 되기도 한다. 아직도 한국의 청소년들은 꼭 그의 저서가 집에 한두 권은 있으며(부모나 학교, 신문의 추천으로) <조선왕 독살사건> 같은 책은 거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가끔씩 제법 좋은 수준의 역사서를 저술하기는 한데, 책을 팔아먹기 위해선 자극적이고 뜨거운 소재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계속 독살 음모론이나 환단고기에 관련된 책을 저술하거나 의견을 피력하는 데 힘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름대로 역사학을 전공했으니 만큼 아는 것도 많고 대중에게 어필하는 능력이 크지만, 그 주장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사학자 겸 표퓰리즘에 영합하는 환빠 상업 작가.
그가 책에 쓰는 내용은 자신의 편집이 들어간 주장일 뿐, 학계에서 공인된 설은 아니다. 그것을 유의해야한다.
물론 환빠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역사학자이자 최고의 역사학자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2012년 10월 26일 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역사학회 등 대다수 학회들의 회장, 총무이사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주최측의 입장으로 축사를 하던 KAIST 부총장이 유수의 역사학자들 앞에서 자신이 요즘 역사책을 읽고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여기까지는 역사와 거리가 먼 KAIST 부총장의 덕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름 아닌 이덕일의 책이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해당 부총장은 그 책을 읽고 '우리 역사 왜곡이 이렇게 심한지 처음 알았다'고 발언하였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시오노 나나미? 솔까 이덕일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냐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상상을 말할 때는 "...가 아닐까."라는 식으로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은 분명히 한다. 그런게 자주 나온다는 점이 문제일 뿐[7], 이덕일처럼 그런 상상을 진실이라고 단정짓고 다른 역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부정, 매도하는 행각을 벌이진 않는다.
이덕일이 정말로 놀라운 부분은 그가 비록 근대사를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사학과를 졸업하고 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주류 학자 출신이라는 데에 있다. 즉 이덕일식 해석과 주장은 어쩌면 책을 팔아먹기 위한 고도의 전술일수도 있다는 것. 역사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1차 사료에 접근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실수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이덕일은 그런 것도 없다. 시오노 나나미보다 이덕일이 더 나쁠 수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저 역사에 관심이 있고 관련지식이 좀 있는 소설가일 뿐인데 이덕일은 학자라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소설가(시오노)의 주장과 역사학자(이덕일)의 주장은 대중적 신빙성에서 영향력이 다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인 임승수는 페이스북에서 묘한 말로 사도세자 관련한 이덕일에 대한 비판 경향이 지나치다며 이덕일을 옹호하기도 했다. "물론 이덕일 저자가 학문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덕일 저자를 너무 과도하게 깐다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진보적 지향의 좋은 책을 쓰는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 그 밖에도 김상태의 책을 추천하는 등 수학적으로 엄밀한 검증 드립, 선배 드립, PD출신 드립 묘한 말들을 댓글에 썼다.
6 다른 저자들과의 논쟁
이미 이덕일은 2000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쓴 이후로 수많은 역사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충남대 교수 조종업(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비판), 서울대 교수 오수창(살아있는 한국사 비판), 한신대 교수 유봉학, 성균관대 교수 안대회(이덕일의 정조 독살설 비판), 전주대 오항녕 교수(십만양병설 관련 주장 비판) 등이 이덕일의 편협한 사고와 빈약한 논리에 대해 질타했다.하지만 이덕일은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긴커녕 자신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친일파, 노론 후예로 매도하더니 마침내 아래와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2009년 한겨레에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라는 제목 아래 역사학계를 조선사편수회의 후예로 몰아 싸잡아 비난하는 글들을 연재하였다.
그러나 그가 쓴 내용에 남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누리꾼들의 댓글에서 엄청나게 까이고 말았다. 논거로 드는 문헌 중 하나가 재야사학자의 탈을 쓴 문정창의 <고조선사연구>.
연재가 끝난 뒤에 이덕일의 조선시대사 논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오항녕 고려대 강사(현 전주대 교수)가 반론글을 한겨레에 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오항녕과 이덕일의 논쟁(?)이 신문상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이 논쟁에서 오항녕으로부터 "그는 오류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자신의 논거가 무너진 것을 모르나 봅니다"라는 굴욕적인 비판까지 받았다. 사실 이 논쟁은 한겨레 측에서 제대로 불이 붙기 전에 적당히 끝내버린 것이라고 한다. 신문에 실린 반론 글
오항녕 교수는 이후 이 논쟁을 2010년 출간한 조선의 힘에 수록하며 다시 한 번 이덕일을 깠다. 조선의 힘 판매량을 보면 이덕일에게는 굴욕. 여러모로 2010년인 이덕일에게 팔자가 사나웠는지 자신이 추천평까지 써 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정확히는 경종·영조실록, 정조실록) 사도세자와 정조 사망원인에 관해서 이덕일의 주장을 대놓고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영향때문인지 작 최후반부인 고종실록, 망국편에서 이덕일의 추천사가 빠졌다.
그리고 2011년 1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정병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한중록을 바탕으로 한 '정병설, 권력과 인간'을 연재하던 도중 이덕일의 저작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덕일은 즉각 한겨레를 통해 이를 비판했으나 정병설 역시 반박하였다. 참고로 정병설 교수는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 비판을 역사비평에 올려버렸고 이덕일의 유사역사학을 떡실신보냈다. 자세한건 정병설 항목 참고.
김현구 임나일본부학자설과 관련하여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는데, 1차 공판을 앞둔 인터뷰에서 일본의 극우 야쿠자의 자금이 한국 사학계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덕일의 입장에서 바라본 기사들을 양산하면서, 개편 전에는 나름 괜찮은 평을 듣고 있었던 팩트올의 신뢰도도 이젠 의심스러워 보인다.[8]
7 칼럼
- 이덕일 사랑(舍廊) (2005~2009, 조선일보)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2006~2008, 한겨레)
- 이덕일의 事思史(사사사) : 조선 왕을 말하다 (2008~2010, 중앙SUNDAY)
-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2009, 한겨레)
- 이덕일의 고금통의 (2011~2012, 중앙일보)
- 이덕일의 事思史(사사사) : 근대를 말하다 (2011~2013, 중앙SUNDAY)
- 이덕일의 칼날 위의 역사 (2014~2015 , 한겨레)
- 이덕일의 천고사설 (2014~2015, 한국일보)
8 저서
- 침묵과 왜곡 속에 숨겨진 이야기 (1996, 글동네)
- 성학십도·동국십팔선정(이상진, 송기섭과 공저) (1996, 자유문고)
-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1997, 석필)
-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1997, 석필)
- 사도세자의 고백 (1998, 푸른역사/2004/2007, 휴머니스트)
- 누가 왕을 죽였는가(조선왕 독살사건) (1998, 푸른역사/2005/2009, 다산초당)
-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이희근과 공저) (1999(1~2권)/2004(3권), 김영사)[9][10]
- 운부 (2000, 중앙M&B(현 랜덤하우스코리아))
- 고구려 700년의 수수께끼 (2000, 대산출판사)
-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2000, 김영사)
-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아나키스트가 된 명문가 이회영과 젊은 그들) (2001, 웅진닷컴/2009, 역사의아침)
- 오국사기 (2002, 김영사)
- 역사에게 길을 묻다 (2002, 이학사)
- 한권으로 읽는 한국사 (2002, 휴머니스트)
- 이덕일의 여인열전 (2003, 김영사)
- 살아있는 한국사 (2003, 휴머니스트)
- 이덕일 선생님과 함께 우리 역사의 벌판으로 달려보자 (2003, 두산동아)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004, 김영사/2012, 다산초당)
- 교양 한국사 (2005, 휴머니스트)
- 장군과 제왕 (2005, 웅진지식하우스)
- 조선 최대 갑부 역관 (2006, 김영사)
- 조선 선비 살해사건 (2006, 다산초당)
-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김병기와 공저) (2006, 역사의아침)
- 다산 천자문 (2006(1권)/2008(2~3권), 웅진주니어)
- 이덕일의 영웅천하 그 위대한 전쟁 (2007, 김영사)
- 이덕일의 역사사랑 (2007, 랜덤하우스코리아)
- 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2007, 역사의아침)
-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김병기 공저) (2007, 역사의아침)
-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2008, 고즈윈)
-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그들 (2008, 한겨레출판)
- 조선의 승려는 북벌을 꿈꿨다 (2008, 랜덤하우스코리아)
-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 (2009, 옥당)
-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2009, 역사의아침)
-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2010, 옥당)
- 조선 왕을 말하다 (2010, 역사의아침)
- 윤휴와 침묵의 제국 (2011, 다산초당)
-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2011, 역사의아침)
-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2012, 옥당)
- 난세의 혁신리더 유성룡 (2012, 역사의아침)
- 이덕일 역사평설 근대를 말하다 (2012, 역사의아침)
- 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김병기와 공저) (2012, 예스위캔)
-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김성국, 강동권 등과 공저) (2013, 이학사)
- 이덕일 역사평설 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2013, 역사의아침)
-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 (2013, 역사의아침)
- 정도전과 그의 시대 (2014, 옥당)
- 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2014, 옥당)
- 이덕일의 고금통의 (2014,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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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만권당)[11] - 당의통략(이건창 저, 이준영과 공동 번역) (2015, 자유문고)
-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2015, 만권당)
- 칼날 위의 역사 (2016, 인문서원)
- 조선이 버린 천재들 (2016, 옥당)
9 그 외
- 한국근현대사 분야도 다루겠다고 밝혔다.# 흠좀무... 이덕일의 박사학위 논문이 독립운동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근현대사쪽이 본업.
- 아나키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 저서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집필하는 등 한국 아나키즘 역사 연구에도 이름이 알려진 연구자 중 한 명이다. '한국 아나키즘 100년'을 공저하기도 했다.
- 2011년 여름에는 윤휴를 소재로 한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라는 책을 냈다. 사실 윤휴가 조세나 민생문제 해결에 열정적이었고 주목할 만한 대안도 많이 낸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알고 보면 문제도 많았던 인물이고 이덕일 본인이 제일 증오하는 송시열의 학설보다도 더 퇴보된 주장을 하기도 했던 인물인지라 무작정 옹호할 만한 인물은 아닌데 말이다.(사문난적 항목 참고)
- 책마저도 성실하게 쓰는 것 같진 않다. 예를 들어서 <조선왕 독살사건>의 정조 파트 대부분, 특히 마지막 몇 문단은 <사도세자의 고백>을 그대로 카피 페이스트했다("정조가 죽자 삼각산도 울었다."라든지, "상복 입은 벼" 이야기가 그대로 진행된다).
- 초기 작품인 <당쟁으로 보는 조선사>(개정증보판이 바로 <조선 선비 살해사건>)에 실린 프로필 사진을 보면 아주 말랐다. 그런데 지금은 보다시피 어느 정도 기반을 유지했는지 후덕해졌다.
-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이란 책에서 갑옷 그리기로 유명한 네티즌 두정갑의 그림을 표지에 무단도용하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들리는 소문에, 뒤늦게 소식을 들은 네티즌 두정갑은 해당 출판사에 정식으로 항의를 했고 그로 인해 몇백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는 얘기도 있었으나 실제로 당사자는 그렇게까지 많이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진짜 인외마도를 걷는 건가
- 조용헌 교수의 저서 <고수기행>에서 이덕일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이덕일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자신의 꿈에서 사도세자가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독살당했다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했다지 않나, 책 출판 전 이덕일의 책에서 적대시하는 인물이 꿈에 나타나 자기에게 침을 뱉으니 그곳에 종기가 나 고생했다지 않나... 진위여부를 떠나 이쯤 되면 순수한 학문을 하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신앙인의 신앙 수준이다.
- MBC 이야기속으로 1998년 9월 25일 방송분에 그에 대한 일화가 방송된 바 있다.
- '근대를 말하다'의 2권이라 할 수있는 '잊혀진 근대 : 해방전사를 말하다'에서 이덕일은 난징 대학살 사건의 주범이 마쓰이 이와네라고 썼지만 사실은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가 진범이다. 아마 실수로 범한 오류였을 것이다.
-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가히 원자단위로 깐다. 이 책을 반박하기 위해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위안부의 분노를 묘사하기 위해 박유하를 일본군을 상징하는 강간범에게 성폭행 당한 여자로 예시를 드는 극단적 행보를 보인다. 자신의 책에서 대놓고! 특정 인물한테 대놓고 성폭행당한 인물로 비유하며까지 예시를 드는 것은 전형적인 성희롱이기 때문에 논란에서 자유롭진 못할 듯하다.
- ↑ 위에서도 서술했듯 독립운동 전공자다.
- ↑ 마찬가지의 사례로 단국대 윤내현 교수와 복기대 교수가 있는데, 이분들은 이덕일보다 고대사에 대한 이해수준이 훨씬 높다. 이 두 교수님들도 고대사 전공하시는 교수님들 사이에서 거의 왕따 수준으로 까이긴 하는데, 엄연히 박사급은 되야 완벽한 논파가 가능하니 함부로 재야사학계라고 몰아붙이지 말자.
어설프게 공격해서 환빠들에게 물어뜯기지 말란거다 - ↑ 한문, 중국어는 삼국지 등의 중국쪽 문헌판독에 필수. 일본어는 일본서기 등 문헌을 볼 때 필요하다.
- ↑ 4,6자를 바탕으로 대구를 이루는 한문의 문체, 고려시기까지 성행하다가 쇠퇴함.
- ↑ 승정원일기를 대표로 조선시대 1차사료들은 초서체로 쓰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깊게 들어간다면 이두까지 읽어야 한다. 초서도 초서지만 조선시대 한문은 맹자나 논어처럼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말 어순처럼 서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교열작업이 이루어지는 가장 큰 이유다.
- ↑ 한국 근대사에서 일본이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거기에 연구하는 분야에 따라 중국어나 러시아어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 ↑ 시오노 나나미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크게 실수한 경우가 있다. 칸나이 전투 참고. 아울러 정설이 아닌 것이나 학계 소수 의견 중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과도하게 강하게 미는 경우도 있다. 콤모두스 황제 즉위 직후 전쟁 중단 결정이나 카라칼라 황제의 로마시민권 확대등의 사례가 대표적.
- ↑ 다만 이건 일부 극소수 학자에 야쿠자가 간접으로 참여한 걸 과장했을 수 있다. 뭔소리냐면, 일부 소수 학자중 일본하고 같이 참여하는데 일본 지원에 야쿠자가 꼽사리로 꼈을 가능성은 있다. 물론 가능성이라는 거지 팩트가 확실하다는 건 아니다. 누군지 말하면 검증이라도 할텐데 설명을 안 하니 검증도 못 한다.
- ↑ 1,2권의 출판 이후,일반 독자들에게 괜찮은 반응을 얻자 후에 3권을 출판하였다.
- ↑ 1권에서는 역시나 환단고기에대한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역시나 노골적으로 위작이아니라며 헛소리를 시전해 놓았는데 사람들에게 좀 읽힌 대중역사서에 이런 헛소리를 써놓았으니... 다만 이러한 부분만 제한다면 흥미로써 역사를 접하기에는 나쁘지않다.
- ↑ 2015년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져 구매할 수 없다.